§ 나는 될놈이다 384화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는 강력한 회복 스킬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타깃의 상태를 정해놓은 시간대의 상태로 돌려놓는 회복 스킬!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사망 페널티 같은 문제도 없앨 수 있는 강력한 스킬!
“……이런 스킬이에요!”
“그래. 뭔 스킬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왜 나오냐고!”
태현은 분노의 외침을 토해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대체 왜 <죽음을 거부하다> 스킬이 아니라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가 복사된 거란 말인가!
“잠깐,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를 다시 나한테 쓰면 되지 않을까?”
“네? 김철수 씨는 방금 쓰셨으니 쿨타임 있을걸요.”
“내가 나한테 쓰면?”
“스킬을 쓰려면 시간부터 먼저 지정하셔야 하는데…… 얻기 전의 시간대니까 무리죠?”
태현이 분노하고 있는 동안에도 주변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3 형태로 변신한 갈그랄의 파동에 맞았던 플레이어들이 김철수의 스킬로 순식간에 회복했다.
이런 광역기를 맞았는데도 로그아웃 당한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는 수준!
김철수는 랭커 사제가 있을 경우 어떤 플레이가 가능한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오오오-
괴상한 소리와 함께 갈그랄은 변신을 끝내고 일어섰다.
계속 짐승처럼 울부짖던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묘하게 조용한 모습!
원래라면 바로 공격을 퍼부었을 테지만, 다들 멈칫했다.
무언가 불길했던 것이다.
그 틈을 타 태현은 이세연에게 물었다.
“저 <죽음을 거부하다> 권능 스킬, 혹시 무슨 숨겨진 속성이라도 있나? 남이 쓸 수 없다같은?”
“응? <죽음을 거부하다>? 그거 권능 스킬 아닌데?”
“……뭐?”
“네크로맨서 비전 스킬이야.”
“권능 스킬이라며!”
“내가 언제 그랬어?!”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랬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가 모두 진짜는 아닌 것!
태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자세한 걸 말할 수도 없었다. 말했다가는 이세연에게 태현의 속셈이 들킬 테니까!
태현은 빠득빠득 이를 갈며 이다비에게 돌아왔다.
“왜 그래요?”
“어떤 놈이 올린 동영상 때문에 착각해서 손해를 봤어.”
“무슨 동영상이요?”
“저번에 이세연 <죽음을 거부하다> 스킬이 권능 스킬이라고 올린 놈. 그놈 잡히면 가만 안 둔다.”
“……!”
“왜 그런 표정이지?”
“제, 제가 뭘요?”
“뭔가 아는 것 같은 표정인데. 누군지 알아?”
“글, 글쎄요?”
태현은 이다비를 더 추궁하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갈그랄이 먼저 움직였다.
탓-
나비처럼 가볍게 뛰어올라 불타는 주먹을 뻗어오는 갈그랄.
물론 타깃은 태현이었다.
“젠장! 이제 더 속지도 않네!”
[회피에 성공합니다.]
[발목을 휘감는 화염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화염 재생 스킬로 화염을 흡수합니다. 흡수한 만큼 회복합니다.]
공격은 회피에 성공했지만 그럴 때마다 갈그랄 주변을 불태우는 화염이 태현에게 덤벼들었다.
회피 자체가 불가능한, 무조건 명중하는 공격!
다행히 <화염 재생> 스킬로 받아쳤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언젠가 데미지를 입게 되어 있었다.
스탯은 높지만 레벨이 낮아서 HP가 약점인 태현에게 저런 식의 소모전은 위험했다.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보통 상대방이 데미지를 넣기 전에 숨통을 끊는 식으로 해왔지만, 갈그랄은 그런 게 안 통하는 상대!
훅! 후욱! 후우욱!
갈그랄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공기가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잔상이 생겨났다.
-타오르는 환영의 주먹!
쉬쉬쉬쉬쉭!
그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갈그랄의 공격은 이제까지 상대했던 적 중 가장 빨랐다.
아마 형태가 변신한 것과 상관이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차라리 아까처럼 광역기 퍼붓고 한 방 한 방 묵직하게 넣어주면 편할 텐데.’
아까 갈그랄은 주변으로 광역기를 퍼붓고 한 방 한 방 묵직하게 꽂아 넣는 식으로 공격을 해왔다.
전형적인 덩치 큰 보스 몬스터의 전투 방식!
물론 한 방 한 방 넣는 식으로 싸운다고 해도 느린 공격은 아니었다.
실제로 케인이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잠시 싸운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에게는 저 정도 공격은 충분히 간파하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 갈그랄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덤벼오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는 많이 약해졌지만, 태현 하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초고속 스피드로 공격을 퍼붓는 형태!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발동되는 순간에 낌새만 보고 피하는 태현이 밀리는 수준이었으니, 얼마나 빠른 공격인지 알 수 있었다.
태현은 그런 공격을 막고, 피하고, 흘려보내고, 반격의 원을 사용해 돌려보냈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상황도 잊고 그 싸움을 쳐다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싸움이란 게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런 싸움!
“…….”
흔히 판온 게시판 같은 곳에 대단한 전투 동영상이라고 올라오는 것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화려한 효과를 가진 스킬들의 향연!
얼마나 멋지고 강력한 스킬들을 많이 쓰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졌다.
그러나 지금 태현은 특별한 스킬을 쓰지 않고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캉! 카캉! 카카캉!
다른 스킬을 쓸 시간도 없이 서로를 몰아붙이는 둘!
태현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 돕냐, 이것들아?!”
“아, 아차!”
“지금 갑니다!”
* * *
다른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자 태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으아! 으아아아! 야! 나 죽는다! 힐! 힐 빨리! 김철수 씨! 힐! 힐!!”
“……하고 있습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케인의 말에 김철수마저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나 케인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로 HP가 쭉쭉 깎이고 있었으니까!
탱커 계열의 직업인 케인이 몇 초만 막고 있어도 HP가 1/3 밑으로 내려갈 정도였다.
직격이 아니라 스킬을 켜고 막았는데도!
‘김태현은 대체 어떻게 이놈을 혼자서 상대하던 거야?’
태현이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컨트롤로 버텼지만 그런 묘기가 다른 플레이어들한테도 가능한 게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몸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컨트롤이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한다!
더 괴로운 건 그들을 지원하는 김철수였다.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HP가 5%까지 내려가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그는 침을 삼켰다.
극한직업 그 자체!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플레이어들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죽은 자의 저주, 영원한 고통의 메아리, 파멸의 왕좌!
이세연은 솜씨 좋게 몇 개의 저주를 갈그랄에게 찔러 넣었다.
그럴 때마다 갈그랄의 동작은 조금씩 느려지고,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놈! 어디 한 번 아까처럼 해봐라!”
돌아온 유 회장이 재빨리 갈그랄을 낚싯줄로 묶어나갔다.
갈그랄 밑에 있던 악마들은 아까의 싸움으로 죽거나, 갈그랄에게 흡수당하거나, 태현한테 폭탄으로 쓰여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플레이어들은 차근차근 갈그랄을 몰아넣고 있었다.
갈그랄의 공격은 분명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상대의 숫자가 많아지면 한계가 생겼다.
게다가 뒤에서 지원을 해주니 쉽게 죽지도 않았다.
퍽! 퍼퍼퍽! 퍼퍼퍼퍼퍽!
점점 갈그랄에게 들어가는 공격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세연은 태현을 보며 말했다.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네가 <죽음을 거부하다> 스킬에 관해서 물은 게 뭔가 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소리야?”
“네가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볼 사람이 아니잖아.”
“물어볼 수도 있지. 우리는 팀이잖아. 안 그래? 팀원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지.”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무슨 속셈 있는 거 맞네.”
“……갈그랄한테 집중하자고!”
그 순간, 반파된 요새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현! 내 로그아웃당한 길드원들이! 내 박살 난 영지가! 정의를 원한다! 나와라! 비겁한 녀석! 나와서 심판을 받아라!”
“???”
“뭐야?”
“……쑤닝인데?”
* * *
검투사 마이크.
전투 주술사 카와하라.
암살자 앨콧.
고위 성기사 곤잘레즈.
고대 무술가 린야오.
궁수 수아나.
야만전사 맥필.
얼음 마법사 리우쑹.
전부 다 판온에서는 이름만 말해도 알아주는 랭커들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특징이 있다면, 모두 대형 길드에 들어가 있는 랭커들이라는 것!
물론 그 길드들은 서로 연합한 길드들이었다.
대형 길드 연합 소속의 랭커들!
그들이 지금 요새 밖에서 각 길드원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와, 진짜 너 싫어하는 사람 많구나!”
이번 랭커들의 등장에는 이세연도 놀랄 정도였다.
아무리 태현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그렇지, 저렇게 랭커들을 많이 모아올 줄이야!
판온에서 랭커들은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각자 자기 레벨 올리고 스킬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랭커끼리 부딪히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았다.
좋아하는 건 옆에서 구경하는 다른 랭커들뿐!
랭커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고 다녔던 태현이 이상한 거지, 다른 랭커들은 보통 싸움을 피했다.
“저기 있는 놈들은 너도 싫어할걸?”
“무슨 소리야? 나는 너하고 달리 적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그리고 저기 있는 랭커 중 몇 명하고는 친해. 말로 하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며 요새 밖의 랭커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곤잘레즈!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온 건 아니겠지? 무슨 생각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태현은 피식 웃었다.
노골적인 비웃음보다 더 효과적인 도발!
이세연의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곤잘레즈! 싸우자는 거야?”
“그래. 이세연! 이번 기회에 너도 처리할 수 있으면 일거양득이지!”
“…….”
“…….”
태현과 이세연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생겨났다.
“……그래. 친해 보인다.”
“시끄러.”
랭커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입장.
친하게 지내다가도 서로를 견제할 방법이 생기면 바로 견제하는 게 랭커들이었다.
이세연도 기회가 생기면 그럴 테니, 곤잘레즈를 굳이 탓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궁금한 건 어떻게 저 랭커들을 한 자리에 모았는가였다.
대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랭커는 길드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나서는 건 자기에게도 이익이 될 때!
길드 입장에서도 랭커를 평범한 길드원처럼 취급할 수는 없었다.
평범한 길드원들과 달리, 랭커들은 마음에 안 들면 길드를 나갈 수도 있었으니까.
랭커를 모으려는 길드는 넘쳐흘렀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인 랭커들은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대체 뭘 약속했길래 랭커들이 여기 모였단 말인가?
아무리 대형 길드라도 이렇게 랭커들을 동원하려면 만만치 않게 비용이 나갔을 텐데?
* * *
“네가 말한 게 이런 거였나?”
“비슷합니다. 이렇게 잘 풀릴지는 몰랐는데 말입니다. 김태현이 자기 무덤을 판 덕분이죠. 갈그랄을 잡겠다고 해놓고서 갈그랄과 함께 이 주변을 쓸고 다녔으니.”
쑤닝과 제카스는 흐뭇한 얼굴로 자리에 모인 랭커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현이 갈그랄의 군세에 들어가서 이 주변을 쓸고 다닐 동안(주로 쑤닝 길드의 영지였다), 쑤닝과 제카스는 돌아다니면서 다른 대형 길드들을 설득했다.
-김태현이 갈그랄의 군세에 들어가서 오스턴 왕국을 초토화하려고 한다!
-봐라! 갈그랄도 없는데 저 악마들만 데리고 요새 하나를 그냥 쌈 싸먹는다!
-김태현은 에스파 왕국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더 적은 악마로도 해냈었는데 지금은 갈그랄도 있다! 내버려 뒀다가는 재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