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82화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요새 안으로 갈그랄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보기만 해도 강하다는 기운이 흘러넘치는 보스 몬스터!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이다비가 중얼거렸다.
“진짜 저걸 잡아야 할까요?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사실 갈그랄의 군세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갈그랄과 별 마찰이 없었다.
오히려 이 주변 플레이어들하고만 마찰이 있었지!
“그래. 이 주변을 다 휩쓸고 나서 내 영지로 온 다음에도 사이좋게 지내봐라.”
“안 올 수도 있잖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저 자식이 내 정체를 알아차리는 건 솔직히 시간문제라고. 사실 내가 쑤닝 같은 놈들한테 가장 의문인 게 이런 가장 간단한 방법을 쓰지 않는 거거든? 보통 적의 적을 이간질시켜서 싸움 붙이지 않나?”
“세상 모든 사람이 태현 님처럼 이간질의 달인은 아니라서요……?”
“흠. 그럴 수도 있겠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다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케인이 끼어들었다.
“터뜨리기나 해.”
“오케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요새 벽 하나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일어난 폭발에 악마들도 놀라고,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도 놀랐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
…….
많은 메시지창 중에서 갈그랄을 잡았다거나 하는 메시지창은 없었다.
태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폭탄만으로 갈그랄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인생은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없는 법!
“가라! 가라! 공격해!”
태현은 주변의 플레이어들과 악마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갈그랄이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하면 악마들은 금세 갈그랄에게 붙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좀 먹힐 것이다.
그러나 악마들과 달리 플레이어들은 멈칫했다.
“어, 저거 방금 갈그랄 아니었어요?”
“갈그랄 맞는 거 같은데? 나 분명 제대로 봤거든?”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분명 악마가 되어서 꿀 좀 빨려고 길드에 들어온 거였는데, 왜 갑자기 갈그랄을 공격한단 말인가?
“내가 갈그랄 레이드 뛴다는 건 귓등으로 들었냐?”
“그, 그거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갈그랄 레이드 뛴다고 해놓고 왜 갈그랄 밑에 들어가요!”
“보스 몬스터 잡으려면 보스 몬스터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거지.”
“처음 들어보는 방식이거든요!”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게 태현의 방법은 어이없게 들릴 뿐이었다.
격하게 항의하는 플레이어들!
“갈그랄하고 싸우고 싶지 않다고!”
“맞아! 나는 그냥 악마 종족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온 건데…….”
한 명이 항의하기 시작하자 들불처럼 번졌다.
새로 들어온 모두가 항의를 해대자 우드스탁 길마가 당황한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야, 어쩌지?”
“그냥 보고만 있어라.”
태현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이미 선빵을 갈겨서 너희들도 같이 갈그랄한테 공격당할 거다. 그러니까 같이 싸워서 갈그랄을 잡거나 아니면 갈그랄한테 죽든가 알아서 해라. 참고로 튀면 나한테 죽을 거라는 건 미리 알아두고.”
“…….”
“…….”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우드스탁 길마가 태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이런 방법밖에 없었냐?”
“이 방법이 얼마나 좋은데. 쟤네들 표정을 봐. 다들 납득한 표정이잖아.”
“이놈들은 내 길드에 들어온 놈들이거든?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네가 그렇게 무르니까 아저씨들한테 영지나 뺏기고 그러는 거지.”
“그,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오크 새끼들이 무식하게…… 야! 생각해보니까 네 아버지가 한 짓이잖아!”
태현은 우드스탁 길마의 항의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폭발이 잦아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저기서 갈그랄이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다비가 태현에게 속삭였다.
“폭발이 좀 약하지 않아요?”
“뭐? 저게?!”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요새를 날려 버릴 폭발을 일으켜놓고 약하다고?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해 보이긴 하지. 저게 끝이 아니거든.”
쾅! 콰콰쾅!
다시 폭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갈그랄이 들어와서 한 번 폭탄 세례를 당한 다음, 앞으로 뛰쳐나가면 연속으로 터져 나오게 설계한 함정!
갖고 있던 폭탄들을 싹싹 긁어모아서 퍼부은 걸작 함정이었다.
[폭탄을 연계시켜서 터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폭탄 연계술> 스킬을 얻었습니다.]
[이 연계식 함정의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름을 지은 함정은 당신이 제작자로 영원히 기록됩니다.]
[갈그랄이 극도로 분노합니다.]
[분노 상태에 빠진 갈그랄이 2 형태로 변신합니다. 변신한 상태에서는 전체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칭호:<악마를 격노시킨 자>를 얻습니다.]
“…….”
잡았다는 칭호 대신 다른 칭호가 떴다.
이다비가 빤히 쳐다보았다.
갈그랄이 매우 열 받았다는 메시지는 이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뜬 것이다.
“이것도 계획이 있다고 해주세요.”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잡을 수는 있을 거야. ……아마.”
“마지막에 뭐라고요?”
* * *
“자, 가라!”
폭발이 걷히고, 갈그랄이 요새 한가운데에서 울부짖으며 날뛰기 시작하자 플레이어들은 본격적으로 레이드를 시작했다.
어쩌다가 태현한테 물귀신 작전을 당해서 레이드에 참가하게 됐지만, 그들도 보스 몬스터 레이드의 기본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위치로! 자기 위치로! 탱커 스킬 걸어!”
“변신했다는 건 HP가 많이 깎였다는 거야! 조금만 더 때리면 된다!”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말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걸 들은 옆에서 케인이 중얼거렸다.
“김태현이 그렇게 때렸는데 저 정도면 아마 너희들 수준으로는 무리일걸…….”
“케인, 닥치고 있어라.”
“나는 현실을 알려준 건데?!”
“쟤네들도 고렙 플레이어야. 저 인간방패…… 아니, 저 친구들이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방금 인간방패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그랬는데?!”
“잘못 들었겠지. 앞으로 가서 어그로나 끌어! 갈그랄이 날뛰잖아!”
“그, 아키서스 스킬 써줘! 그 다 회피되는 거!”
“그건 위험하면 써줄 테니까 앞으로 돌진이나 해라.”
“지금 저렇게 미쳐서 날뛰는 게 위험한 게 아니면 뭔데?!”
-감히 하찮은 종족 놈들이 함정을! 나와라! 내 주인의 이름으로 너희를 찢어발겨서 영원한 마계의 화염에…….
[갈그랄이 영원한 화염의 비를 사용합니다.]
[모두 피하십시오!]
“야! 지금! 광역기 터지잖아!”
“좀 견뎌봐. 아직 쓰기는 좀 아깝잖아. 이거 쓰면 분명 갈그랄한테도 틈이 올 거야.”
“야, 야!”
태현은 아키서스 관련 스킬 쓰는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지금이야 갈그랄이 평등하게 요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아키서스 관련 스킬을 사용한다면 태현한테만 화를 낼 테니까!
그걸 모르기에 케인은 펄쩍펄쩍 뛰며 고함을 질렀다.
“스킬! 좀! 쓰라고! 그거! 아꼈다가! 국! 끓여 먹을 거냐!”
“그러려고. 오, 사디크 권능 쓰니까 MP 회복되는데?”
요새의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하늘에서 거대한 화염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범위에 촘촘하게 내리는 화염의 빗방울!
원래 이런 공격은 하나하나의 데미지가 대단하지 않은 도트 형식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갈그랄이 사용하는 스킬은 한 대 맞으면 바로 회복 스킬을 사용해서 버텨야 할 수준!
요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버텼다.
물론 <화염 재생> 권능 스킬을 갖고 있는 태현은 웃으면서 회복에 들어갔다.
화염 스킬과는 궁합이 정말 좋은 태현!
사실, 악마하고는 이상할 정도로 정말 모든 게 궁합이 좋은 태현이었다.
태현의 직업이 신성 관련 직업인 <아키서스의 화신>인 걸 생각해 보면 좀 많이 이상한 사실!
‘악마랑 이상하게 궁합이 좋은 거 같아.’
태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그랄이 광역기를 쓴 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게 보였다.
좋은 징조였다.
보스 몬스터 중 저렇게 거대한 광역기를 쓴 다음 힘이 약해지는 놈들이 종종 있었다.
갈그랄도 그런 게 분명했다.
“좋아, 케인. 지금 가자!”
“지금? 아오. 알겠어!”
케인은 갈그랄의 모습에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준비했다.
이런 부분에서 태현이 틀린 적은 없었으니까!
탁-
콰직!
-끄아악! 갈그랄 님!
-살려주십시오!
[갈그랄이 악마를 먹고 회복합니다.]
“…….”
갈그랄이 손을 휘두르자,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저절로 끌려 들어왔다.
갈그랄의 영역에 있던 악마들이 순식간에 가루로 변하고 갈그랄의 몸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케인은 기가 막혀서 외쳤다.
“뭐 저런 놈이 있냐?!”
“그러게 말이야. 지 부하를 저렇게 써먹다니!”
케인은 동의를 하려다가 입을 벌리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요새의 돌을 치우더니 그 안에서 포박된 악마 하나를 꺼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뭐 하는데?”
“갈그랄하고 싸울 때 준비하려고 레벨 높은 악마 몇 마리 납치해서 가둬놨지. 야, 꽉 잡아. 스킬 써야 한다고. 살아 움직이는 폭탄!”
케인이 도와준 덕분에 태현은 수월하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너 지금 갈그랄이 부하 잡아먹는다고 욕하지 않았냐?”
“얘네는 내 부하 아니거든. 자, 가라!”
-크, 크르륵. 위대한 태현 님. 저는 갈그랄 님에게 덤비고 싶지 않…….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네 목을 쳐서 사디크의 화염으로 태워주마!”
-히, 히익!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협박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태현의 협박이 제대로 통했다.
살아 움직이는 폭탄으로 변한 악마는 비명을 지르며 갈그랄에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콰콰쾅!
주변에 있던 악마를 잡아먹으려 하던 갈그랄은 폭발에 데미지를 입고 괴로워했다.
그 틈에 태현은 다시 한번 화술 스킬을 사용했다.
“부하를 먹으려 하다니, 천벌을 받은 거다! 모두 들어라! 저 갈그랄 놈을 내버려 두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먹을 거다!”
-맞는 말이다! 모두 도망쳐라!
“아니! 도망을 치지 말고 싸워야지! 갈그랄이 너희를 죽이기 전에!”
-어, 도망이 낫지 않나? 갈그랄 님을 이길 수는…….
서걱!
화르륵!
“또 도망치고 싶은 놈 있냐? 나와 봐!”
“…….”
케인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부하를 잡아먹는 놈 VS 부하를 폭탄으로 써먹는 놈!
“……갈그랄을 욕할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시끄럽고, 케인! 빨리 와서 도와! 다음 놈을 폭탄으로 바꿔야 한다고!”
“또 있다고?!”
태현이 요새 성벽 곳곳에서 미리 제압해 놓은 악마들을 꺼내자, 케인은 점점 질린 표정으로 변했다.
“케인 씨, 빨리해요!”
“넌 알고 있었냐?!”
“이걸 다 누가 제압해서 여기다 놔뒀겠어요?”
이다비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에 케인은 더 이상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어, 갈그랄이 여기 쳐다보는데요?”
“기분 탓이겠지.”
“아닌데요!?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어요!”
폭탄(악마로 만들어진)을 몇 개나 맞고 나서야, 갈그랄은 상황을 깨달은 것 같았다.
곧바로 태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촤르륵!
“하하! 잡았다, 이 더럽고 못생긴 놈! 블랙 드래곤의 수염으로 만든 낚싯줄이다!”
[고급 낚싯줄 묶기 스킬로 갈그랄을 묶었습니다. 낚시 스킬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유 회장은 신이 나서 낚싯대를 휘둘렀다. 그걸 본 김 전무는 기겁해서 외쳤다.
“회장님! 이런 정신없고 위험한 곳에 계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겁이 많은 줄은 처음 알았군.”
“아, 아니. 제가 겁이 난다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