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81화
“아, 아니. 꼭 악마 종족이 됐다고 해서 갈그랄 상대할 때 페널티 입으란 법은 없잖아…….”
“불확실한 요소를 없애야지, 늘릴 생각을 하냐? 넌 머리를 폼으로 들고 다니냐? 내가 케인보다 머리 못 쓰는 놈은 오랜만에 본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구박!
우드스탁 길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쑤닝 길드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했다는 기쁨에, 나온 보상 스킬을 냉큼 받아서 사용한 것이다.
“악마 놈들이 얼마나 특이하고 괴상한 스킬들을 많이 쓰는데…… 나중에 페널티 받고서 울지나 마라.”
태현은 아직 아발랍 시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총독으로 위장한 악마가 준 술을 마셨다가 강제로 코가 꿰였던 플레이어들!
판온에서 그런 사기는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김태현, 뭐 해? 거기는 왜 점령한 거야?
멀리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이세연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김태현이 악마를 다른 곳으로 공격을 보내서 소모를 시키려는 건가?’ 싶었다.
갈그랄의 군세니, 어쨌든 소모시키면 갈그랄이 약해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악마들이 묘하게 잘 싸운다 싶더라니 요새를 점령해 버렸다.
‘무슨 생각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태현의 계획!
그러나 이세연은 태현을 믿었다.
판온 1때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길을 찾아내던 태현이었으니, 분명 이 요새를 점령한 것도 계획 중 하나이리라.
-어, 그게…….
-무슨 계획이야? 저 요새를 점령하면…… 아, 설마 그런 건가?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그런 거?
그러나 태현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세연은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서 요새를…… 그런 거구나? 그러면 저렇게 할 수밖에 없겠네.
-……그렇지!
원래라면 그냥 ‘내 화술 스킬이 너무 세서 이렇게 됐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연을 상대할 때는 언제나 쓸데없는 자존심이 나왔다.
-그래. 그러면 믿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끝내.
-그, 그래.
‘뭘 끝내라는 거야?’
태현은 당황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세연 씨예요?”
“응.”
“뭐래요?”
“……빨리 끝내라는데?”
“뭘요?”
“…….”
태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괜찮아. 여기 요새는 좀 허술했으니 그렇지, 다른 곳으로 가면 이 정도 악마들은 막힐 거야. 그러면 갈그랄도 기어 나올 거고.’
* * *
[요새를 함락했습니다. 군세 내에서 공적치 포인트가 오릅니다.]
[칭호:공성의 달인을 얻었습니다.]
[악마들 사이에서 당신의 소문이 확고하게 퍼집니다.]
[갈그랄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악마를 지휘하는 인간 지휘관> 직위를 얻었습니다.]
[몇몇 악마들이 당신의 지휘를 받고 싶어 합니다.]
[중급 전술 스킬이 고급 전술 스킬로 변합니다.]
[<직감과 행운의 지휘> 스킬을 얻었습니다.]
[<화신의 함성> 스킬을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태현은 눈을 감았다.
와! 레벨 업 했다! 신난다!
‘……가 아니지!’
레벨 업은 분명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긴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문제였다.
첫 번째 요새는 뚫었지만 다음 요새에서는 막힐 줄 알았다. 플레이어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런데 뚫었다.
두 번째 요새를 뚫긴 뚫었지만 다음 성에서는 막힐 줄 알았다.
플레이어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런데 또 뚫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악마들이랑 너무 상성이 좋아!’
이제까지 얻은 칭호들과 쌓아 올린 칭호들.
존재만으로도 악마들에게 버프를 더해주는 수준!
게다가 악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악마들이 직접 와서 지휘를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퀘스트까지 떴다.
<진정한 마계의 주인 아다드의 강림-악마 군세 퀘스트>
오스턴 왕국에 나타난 악마들의 주인, 아다드는 마계에서 침략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다드를 대륙으로 불러내는 건 어려운 일.
수많은 희생과 제물만이 아다드를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피와 제물로 아다드를 대륙으로 강림시켜라!
보상:?, ????, ???
이대로 계속 잘 싸워내면 아다드가 온다!
갈그랄 하나만으로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갈그랄의 주인인 아다드까지 온다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 부릴 수 있는 악마들로 바로 공격에 들어가야 하나?’
아발랍 시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차이점이 있었다.
갈그랄을 잡는다고 해도, 이 주변 악마들은 태현의 부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다드가 있으니까!
애초에 태현에게 분노한 아다드가 보낸 악마들이니만큼, 태현의 정체가 알려진다면 태현에게 덤벼들 것이다.
‘그리고 갈그랄 잡으면서 아키서스 관련 스킬을 안 쓸 자신은 없고…….’
태현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에 악마들을 최대한 소모시키고, 갈그랄도 약하게 만든 다음, 가능한 전력을 모두 동원해서 레이드!
그나마 지금 가능한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원래 하려던 방법도 비슷하기는 했다.
태현이 너무 악마들을 잘 몰아서 이 꼴이 났지만…….
“근데 쟤네들은 누구냐?”
못 보던 플레이어들이 요새 주변에 얼쩡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드스탁 길드원들을 보더니 우르르 달려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지금 이거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에요.”
“응?”
“태현 님이 악마 데리고 이 주변 돌고 있잖아요. 그거 때문에 악마 군세 가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꽤 있거든요.”
“……내가 갈그랄 잡는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근데 내가 군세에 있다고 들어와?”
태현이 ‘갈그랄을 잡겠다!’ 선언하고 레이드 파티를 모았는데, 태현이 악마 군세에 들어갔다고 따라 들어온다니.
보통 ‘어? 뭔가 이상하지 않나? 김태현이 뭘 꾸미는 거 같은데?’ 하며 수상해해야 하지 않나?
“사람은 원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잖아요. 그리고 악마화 스킬 같은 게 워낙 효과가 괜찮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우드스탁 길드 때문에 악마화 스킬이 얼마나 괜찮은 스킬인지, 악마 종족이 얼마나 좋은 종족인지 정보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신성 공격만 주의한다면 안 하는 게 이상한 선택!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도 받아줘! 악마 종족 해보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안 받아준다고!”
주변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우드스탁 길드원들에게 아우성을 쳤다.
이 주변에서 악마 군세에 들어간 건 태현 일행과 그들뿐!
그러나 태현에게는 저런 식으로 말을 거는 게 무서웠다.
최상위권 랭커에게 저렇게 뻔뻔하게 굴 수 있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결국 만만한 건 우드스탁 길드원들!
“아, 아니…… 이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러니까 어떻게 들어갔냐니까!”
“이 자식들이 우리한테 맡겨놨냐? 어디서 난리야?”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공유 좀 하자! 너희들도 김태현한테 붙어서 얻어먹은 거잖아!”
“그러면 김태현한테 가서 말하던가!”
“이…… 이 치사한 자식들! 그러니까 최강지존무쌍 길드한테 당하지!”
“뭐? 너 다시 말해봐!”
소란이 심해지자 우드스탁 길마는 곤란한 얼굴로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가서 말 좀 해주면 안 되냐?”
“내가 뭘?”
“네가 가서 조용히 꺼지라고 하면 싹 사라질걸?”
최근 개망신을 당한 우드스탁 길드와 태현은 말의 무게가 달랐다.
부끄럽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뭘 꺼지라고 해. 받아줘.”
“어, 어?”
“악마화 하고 싶으면 악마화 하라고 해. 군세 받아주는 게 뭐 어렵다고. 네 밑으로 받아줄 수 있잖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냥 받아주라고?”
“받아서 안 될 이유 있어?”
“없지만…….”
“그러면 받아.”
우드스탁 길마는 찜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군세로 들어오고 싶은 놈들은 너희 길드에 가입하라고 해.”
“……!!!”
우드스탁 길마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런 방법이……!”
“뭘 그런 방법이야? 당연한 걸 가지고. 이걸로 길드원들 좀 받아서 피해나 수습해라.”
“물론이지! 정말 고맙다!”
우드스탁 길마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옆을 보니 이다비가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왜 그래?”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하라고 하셨어야죠!”
“그건 애들이 안 받아들일 거 같은데.”
“…….”
대형 길드가 대기업이고, 우드스탁 길드는 최근에 개망신을 당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어딘가라면, 파워 워리어는…….
‘다단계에 가깝지.’
악마 군세에 받아주는 대신 우드스탁 길드에 들어갈래? 하면 솔깃해하는 플레이어들이 꽤 있겠지만, 대신 파워 워리어 길드에 들어갈래? 같은 질문에는 ‘미쳤냐 내가 그런 곳을 들어가게’라고 할 가능성이 컸다.
이다비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태현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 * *
-너 대체 그 계획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계속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데.
-이제 곧 시작하려고.
그 계획이 뭔지도 모르지만 태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혹시 몰라서 확인하는 건데, 네가 제대로 이해 못 했을 수도 있으니까. 계획이 정확히 뭐였지?
-응? 요새 하나 잡고 폭탄 잔뜩 깐 다음 갈그랄 끌어들이려는 생각 아니었어? 지금 갈그랄이 있는 카달타 성이야 몰래 폭탄 설치하기 힘들겠지만 새로 점령한 곳은 다를 거 아니야.
-……내 계획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군!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데?
-곧바로 시작하려고. 좀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태현은 귓속말을 끊고 준비에 나섰다.
남의 힘을 빌려 날로 먹으려다 보니 기본을 잊고 있었다.
남의 힘으로 해내려다 보니 일이 이렇게 귀찮아진 것이다.
언제나 간단한 건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는 것!
‘흠, 근데 폭탄을 안 들키게 설치할 곳이 좀 애매한데?’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갈그랄이 무식하고 머리가 나쁜 악마기는 했지만, 엄청난 고렙의 보스 몬스터라는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 정도 되는 악마라면 어설프게 설치한 폭탄은 금세 눈치를 챌 게 분명!
‘고급 대장장이 기술에 고급 기계공학이니 어지간하면 안 들키겠지만 그래도 주의를 좀 해야지.’
위치를 물색하던 태현의 눈에 문득 악마들이 들어왔다.
레벨 높고, 갈그랄 근처에 있어도 의심을 사지 않고, 숫자도 줄여야 하고…….
태현은 무릎을 쳤다.
역시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 * *
갈그랄을 불러내는 방법은 쉬웠다.
하급 악마 하나를 붙잡은 다음 ‘아키서스의 화신이 어디 있는지 찾았습니다!’라고 써져 있는 편지를 써서 보내면 됐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갈그랄이 평원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원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온다. 준비.”
새로 우드스탁 길드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얼떨결에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악마 군세에 들어간 이유는 힘 때문이었다.
악마 군세에 들어가서, 이 주변을 주름잡고 거만을 떨던 대형 길드들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
그런데 정작 뭘 해보기도 전에 갈그랄과 싸우게 되다니.
심지어 그들은 누구와 싸우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근데 지금 누구랑 싸우려고 이러는 거예요?”
“길드 쪽에서 이쪽으로 공격 오나?”
“아, 아마 곧 알게 될 거야.”
“맞, 맞아!”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갈그랄한테 함정 작동시키고 데미지 제대로 먹이면 나도 들어가서 딜 넣을 거야.
이세연의 귓속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다.
함정은 설치했고, 쓸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주변에 깔아놨고, 거기에다가 이세연과 김철수 같은 랭커들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