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80화
갈그랄의 성격을 떠올려보자 은근히 그럴 거 같았다.
부하들이 요새 하나 점령 못 하고 갈려 나간다면 갈그랄 같은 악마는 분노해서 직접 달려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이다.
태현은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악마들은 알아서 요새에 꼬라박다가 쓰러져 나갈 것이고, 갈그랄이 나타날 테니…….
‘잘하면 날로 먹겠는데?’
태현이 갈그랄을 잡겠다고 나선 건, 갈그랄을 상대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세연이나 김철수 같은 랭커들이나, 우드스탁 길드의 지원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것!
태현이 믿는 건 오로지 스스로의 실력뿐이었다.
‘<왕가의 오리하르콘 화살>이 하나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 일이 다 틀어져도 <오스턴 왕가의 오리하르콘 석궁>으로 새로 만든 오리하르콘 화살 하나를 쏠 수 있었다.
행운으로 데미지 버프가 들어가는, 지금 태현이 갖고 있는 최강의 폭딜 수단!
그렇지만 태현은 이걸 쓰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태현 죽이겠다는 놈들이 많아서 고민인데 갈그랄한테 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능하면 안 쓰고 잡는 게 최선!
그래서 이세연도 부르고 김철수도 부르고, 이런 식으로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었다.
거기에 다른 대형 길드까지 엮어 넣을 수 있다면 화살을 쓰지 않고 갈그랄을 잡을 가능성은 더욱 올라갔다.
‘다른 길드들로 갈그랄의 힘을 빼고, 갈그랄이 적당히 지치고 다치면 이세연과 내가 나서서 공격에 나선다. 그 와중에 이세연의 권능 스킬도 뽑아내고…….’
빠르게 계산을 마친 태현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 총공격! 저 요새를 박살 내자! 위대한 갈그랄 님의 이름으로! 갈그랄 님 만세!”
[현재 세력에서 당신의 위치가 낮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냉정하게 뜨는 메시지창!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세력 내에서 위치가 낮으니, 무슨 말을 해도 악마들에게 효과가 약한 것이다.
‘요새를 점령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악마들을 소모시켜서 갈그랄을 불러내려고 하는 거니까.’
악마들에게 버프가 적게 들어가도 별 상관없는 것!
그러나 태현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스스로가 얼마나 이런 상황에 잘 어울리는 스킬들을 갖고 있는지!
[칭호:악마의 혓바닥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들을 설득하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악마를 속인 자를 갖고 있습니다. 악마들을 속이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비정한 지휘관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들을 지휘하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들을 설득하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중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악마들을 지휘하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
[높은 행운 스탯으로 악마들을 지시할 때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악마들이 완벽한 공격을 준비합니다.]
“어, 어?”
다 읽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보너스 메시지창이 끝난 후, 요새 앞의 악마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마들 왜 저래?”
“버프 들어갔다!”
요새 위의 플레이어들은 악마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저 모습은 분명 광역 버프 마법을 썼을 때나 보여주는 모습!
악마들 주변에서 붉은색 오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착착착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요새 위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뭐야? 어떤 놈이 버프 거는 거야?”
“마법 쓰는 거 안 보였는데?”
악마 중 광역 버프 마법을 쓴 놈이 있다면 바로 저격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법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태현이 혓바닥 하나만으로 이렇게 광역 버프를 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한 것이다.
정작 태현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뭘 했는데 악마들이 이래요?!”
“아, 아니. 그냥 빨리 죽지 말라고 말 한마디 한 건데…….”
“대체 화술 스킬을 얼마나 올린 거예요?!”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이 상황은 태현의 예상 밖!
콰콰쾅!
비행 기능이 달린 악마들부터 공격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며 요새 위로 지옥화염탄을 퍼붓는 악마들!
흔히 이 주변 필드에서 볼 수 있는 무질서한 공격이 아니었다.
1열, 2열, 3열로 나뉘어져서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는 폭풍 같은 연속 공격!
요새 위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달라진 악마들의 공격에 기겁해서 몸을 숙였다.
쾅! 콰콰쾅!
“쉴드 좀 더 주세요! 요새 위에 난리 났어!”
“궁수들! 날아다니는 놈들부터 먼저 쏴! 이러다가 설치해 놓은 거 다 날아가겠어!”
“지금 악마들 버프해 주는 거 누구야?! 왜 아무도 못 찾아?!”
설마 이 상황이 화술 스킬과 관련되어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고급 화술 스킬과 각종 관련 칭호들을 합치면 이렇게 무서운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그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요새에 있던 사람 중 정답을 맞춘 사람이 있기는 했다.
“김태현 아냐?”
“김태현 저기 있잖아! 뭘 쓴 거 아닐까?”
일단 수상하면 김태현을 의심해라!
케인이나 제카스가 듣는다면 ‘그거참 좋은 방법이다’ 하고 박수를 쳤겠지만, 아직 요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상식이 남아 있었다.
“김태현이 마법사냐?! 마법 쓰는 놈 찾으라고!”
“마법 쓰는 악마는 방어력이나 체력이 낮을 테니 분명 은신 같은 걸 쓰고 있을 거야! 스크롤 전부 찢어! 찾아내야 해!”
있지도 않은 마법사 악마를 찾는 플레이어들!
그러는 사이 악마들은 차근차근 요새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악!
하늘 위에서는 비행 악마들이 연달아 공격을 퍼붓고.
크르릉, 크르릉!
요새의 벽 밑에서는 땅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악마들이 흙 밑으로 잠수를 시도했다.
동시에 덩치 큰 악마들은 벽에 달라붙어서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정신없는 연속 공격!
요새의 플레이어들은 악마들이 퍼붓는 이런 완벽한 공격을 처음 겪어 보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가자! 가즈아! 쑤닝 놈들도 우리와 똑같은 꼴로 만들어 주자!”
우드스탁 길마의 외침이 떨어지자 우드스탁 길드원들도 신이 나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야! 그냥 시간만 끌어도 돼! 오바하지 마!”
그러나 태현의 말은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들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우드스탁 길마는 길드원에게 물었다.
“김태현이 뭐라고 한 거냐?”
“이번에는 제대로 힘내서 요새를 점령하라고 한 거 아닐까요?”
“그래? 좋아! 이번에 우리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 김태현에게 제대로 보여주자!”
더욱 기세가 오른 우드스탁 길드원들!
그 모습에 태현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런 X대가리들이…….”
시간 좀 끌다가 악마들이 녹아내리면 갈그랄이나 불러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쓸데없이 잘 싸운단 말인가!
악마들도 우드스탁 길드도 둘 다 평소 자기 능력을 100% 넘게 발휘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저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요새에서 버티면 상황은 달라진다!’
악마들이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것 같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요새 쪽도 승산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요새에서 버틴다면 분명 그들이 유리한 위치!
그러나 요새의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기대를 배반했다.
“이런 곳에서 더 어떻게 싸우냐! 난 튄다!”
“같이 가!”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바로 도망치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
처음에는 아무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한두 명의 플레이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들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악마들 사이에 버프를 걸고 있는 놈들이 있어! 잡으러 간다!”
“분명 김태현 때문이야! 저놈을 공격하면 버프도 끊길 거야!”
요새에서 버티고 있어야 할 때에 오히려 공격을 하려는 플레이어들!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물론 원인은 정확하게 맞췄지만!
“뭐라는 거야! 말려! 지금 나가면 박살 난다!”
“말, 말려도 안 듣습니다!”
다른 길드원들이 말리는 걸 무시하고, 몇몇 플레이어들은 성문을 열고 돌진했다.
타타탕! 타탕!
기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가장 앞에서 <위대한 가호의 돌격>을 사용하자 주변 악마들이 튕겨 날아갔다.
“김태현!”
“애들아! 좀 진정……?!”
태현은 성문이 열리는 걸 보고 눈을 깜박였다.
‘미쳤나?’
이 상황에서 왜 성문을 열고 돌격을?
이해가 가지 않고 혼란스러웠지만, 나온 플레이어들은 태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그림자 잠수, 강격, 폭탄 사용, 질주하는 질풍의 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스킬 콤보!
머리와는 별개로 태현의 몸은 정직했다.
적을 보자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크아아아악!”
기사의 방어력을 믿고 덤벼들던 플레이어 하나가 그대로 무너졌다.
태현은 쓰러지는 기사의 어깨를 밟고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사디크의 화염 화살!
빠르게 날아가는 화염 화살.
거리가 있어서 안심하고 있던 플레이어가 치명타가 떴다는 메시지에 비명을 질렀다.
“김태현! 이 XXX야! 대체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아발랍에서부터 이러는 거냐!”
한이 맺힌 쑤닝 길드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 태현도 살짝 미안해졌다.
아발랍 시에서 에다오르를 속여서 악마 군세를 이끌고 쑤닝 길드와 다른 길드를 쳤었다.
그런데 또 오스턴 왕국에서 갈그랄을 속여 악마 군세로 쑤닝 길드를 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당해도 가슴을 치고 평생 이불을 뻥뻥 찰 일을 두 번이나 당한 쑤닝 길드!
“아니, 나도 이번에는 그냥 시늉만 하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진짜야!”
태현은 말하면서 또 한 명의 플레이어를 PK했다.
“그걸 말이라고…… 크아악!”
입으로는 변명하면서 손으로는 PK!
그 모습에 케인과 이다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냥 조용히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상대 더 열 받으라고 저러는 게 분명해!”
잘 버텼으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는 성문을 열고 나와서 싸우는 바람에 요새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열린 성문으로 들어간 악마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점점 도망치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졌다.
결국…….
[제난 요새를 함락했습니다. 군세 내에서 공적치 포인트가 오릅니다.]
[악마들 사이에서 당신의 소문이 퍼집니다.]
[갈그랄이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악마의 기운> 스킬을 받습니다. 악마 군세에 소속되어 있을 때만 쓸 수 있습니다.]
[보상으로 <악마화> 스킬을 받습니다. 악마 군세에 소속되어 있을 때만 쓸 수 있습니다.]
<악마의 기운>
갈그랄의 기운을 받아 능력을 증폭시킨다. 사용할 경우 악명이 올라간다.
<악마화>
갈그랄의 기운을 받아 악마로 변신한다. 사용할 경우 악명이 올라간다.
-악마화!
-악마화!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냉큼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이 불끈불끈해지며 종족이 악마로 변했다.
“이거 봐! 능력치 쫙 올랐어!”
“악마 종족 능력치 장난 아니다!”
그걸 보고 태현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생각 좀 하고 스킬을 써라!”
“예?”
“어, 악마가 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악명 페널티가 있긴 한데 이미 군세에 들어왔으니…… 차라리 능력치가 더 높아지는 게 좋지 않습니까?”
“갈그랄하고 싸울 때 악마 종족이면 무슨 페널티를 입을 줄 알고? 군세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잖아. 갈그랄하고 바로 싸울 수도 있는데.”
“아……!”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는 우드스탁 길드원들!
태현은 우드스탁 길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 길드원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부족…….”
“…….”
우드스탁 길마는 어색하게 태현을 쳐다보았다.
가장 먼저 악마로 변한 우드스탁 길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