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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78화 (378/1,826)

§ 나는 될놈이다 378화

서로 지금 우선시해야 할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결판을 낼 수도 없었으니까.

둘이 싸우지 않자 이다비는 놀란 목소리로 태현에게 물었다.

“더 안 싸우세요?”

“……넌 내가 싸우기를 원했냐?”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싸울 줄 알았어요.”

이다비가 본 태현의 성격이라면 보통 여기서 끝까지 날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둘 다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선 것이다.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아, 이세연 씨하고 실제로 만나서 그런 거군요! 아, 아야! 아야야!”

“시끄러.”

태현은 더 이상 떠드는 걸 멈추고 진지하게 갈그랄 레이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김철수의 방송 채팅창에 나온 질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5명 중 가장 도움이 안 된다 싶은 멤버는요?

“도동수!”

“야!”

이세연은 화들짝 놀라서 태현을 말리려 들었지만 이미 태현은 말한 상태였다.

“싸움 만들지 말자니까!”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사실이라도 그걸 대놓고 말하면 안 되지!”

“저, 저기. 두 분 대화 다 들리는데…….”

김철수의 말에 이세연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도동수가 팀 내에서 불만이 많은 멤버인데, 실수로 이세연까지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태현은 웃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엔 네가 말했다?”

“……너 진짜!”

* * *

“괜찮아. 도동수 없어도 이길 수 있을 거야.”

“…….”

이세연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김태현, 이세연 둘 다 ‘도동수가 가장 멤버 중 떨어지는 전력’…….

-김태현, ‘도동수 같은 놈이 뽑힌 게 이해가 안 된다. 방송국 놈들이 머리가 없는 거 같다’.

-이세연, ‘도동수는 구멍이다.’

안 했던 말까지 덧붙여져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중!

이걸 도동수가 못 들을 리 없었다.

태현은 살이 덧붙여진 헛소문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네들은 내 속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시끄럽고! 갈그랄 이야기로 돌아오자. 자!”

이세연은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갈그랄은 일단 정보가 엄청나게 부족해. 갈그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태현에게 모이는 눈빛!

“왜 날 쳐다봐?”

“여기서 마계 갔다 온 건 너밖에 없잖아. 아는 거 없어?”

“음…….”

아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사기를 쳤지만…….

그걸 여기서 말하면 ‘저 갈그랄이 나온 게 너 때문이었냐!’까지 이어질 테니 말할 수 없었다.

“마계에서 돌아다닐 때 정보를 좀 들었지. 일단 머리가 안 좋은 놈이야.”

“머리가 나쁜 보스 몬스터인가.”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정보를 정리했다.

보스 몬스터라고 꼭 지능이 높고 교활한 놈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예 지능이 없거나 멍청한 보스 몬스터들도 많았다.

초보자들은 지능이 없으면 좀 공략이 쉽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강함은 지능과 상관이 없었다.

“머리가 나쁜 만큼 육체 능력은 셀 테고, 악마 군세를 이끌고 있으니까 마법 쓰는 악마들도 있을 거고…….”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태현은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이세연의 언데드 군단과 악마 군세가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이세연이 권능 스킬을 쓸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전면전 거는 건 너무 손해 보는 짓이야.”

“쳇.”

“응?”

“아무것도 아니야.”

“우드스탁 길드원들도 있고 하니, 견제용으로 잠깐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적들의 전력도 파악할 겸.”

현재 카달타 성은 갈그랄과 악마 군세에게 점령된 상태.

그 주변에 얼쩡거리는 간 큰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기껏해야 떨어진 곳에서 악마 무리를 사냥하는 정도.

“원래 이런 거 잘하는 직업이 도적인데.”

이세연의 말에 김철수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도동수 씨를 부를…….”

“아니요.”

“그건 좀 아닌 거 같네요.”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니다.”

“앗, 네…….”

모두가 고개를 젓는 도동수!

그나마 도동수를 챙겨주려던 김철수는 멋쩍어져서 손을 내렸다.

“그러면 잠깐 갔다 와볼까. 같이 갈래?”

“네크로맨서가 정찰에 뭐 하러 나가?”

이세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본격적으로 싸우는 게 아닌데 굳이 같이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쯧.”

“……???”

* * *

“이야, 진짜 대단하네! 이세연이나 김철수까지 오다니. 정말 대단해! 역시 김태현이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길, 길마님…….”

우드스탁 길마가 태현 옆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노골적인 아부를 하자, 길드원들은 얼굴을 붉혔다.

“왜 그래?”

“너, 너무 노골적이지 않…….”

아부를 해도 세련되게 해야지, 저렇게 대놓고 하는 아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실제로 케인과 이다비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뒤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드스탁 길마는 당당했다.

자기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아부를 하고 있는지 못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냐! 이 정도는 해야지! 정말 대단하잖아!”

“내가 좀 대단하지.”

그들은 지금 카달타 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크르르릉…….

카달타 성의 근처에는 악마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오면 싸움 날 거 같은데. 어떻게 할 거지?”

“내가 끌고 오마!”

유 회장은 기다리느라 좀이 쑤신다는 표정으로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아까 젊은 놈들이 떠드는 동안에는 끼어들지 못해서 기다리느라 심심했던 것이다.

“아니, 아니. 좀 잠깐만요.”

태현은 유 회장을 붙잡아 말렸다.

아직 발견 안 된 상황에서 굳이 싸움을 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왜 말리는 거냐! 난 저놈들과 싸우고 싶단 말이다!”

“어르신 언제부터 그렇게 변하셨…….”

태현은 황당한 눈빛으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고고하게 낚시만을 하겠다고 하던 유 회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보다 지금 싸우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은데. 어차피 싸워서 간 좀 봐야 하잖아. 근처에 악마들도 별로 없으니까 지금 잡아서 반응을 보는 게 좋지 않나?”

“으음…… 그게 좀…….”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적들이 점령한 곳을 공략할 때는 저런 식의 방법이 정석적이기는 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약한 적부터 하나씩 잡으면서 반응을 보는 것!

그러나 태현은 갈그랄이 어떤 악마인지 알고 있었다.

저런 식의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엇! 저기!”

“뭐야? 누구야?”

반대쪽 평원에서 파티 하나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파티였다.

그걸 본 우드스탁 길마가 분노해서 말했다.

“이런 치사한 놈들이……! 김태현이 레이드 준비한다는 걸 듣고서 주워 먹으러 왔네!”

태현이 랭커들을 모아 갈그랄 레이드를 준비한다는 건 이미 퍼진 사실이었다.

그걸 들은 플레이어들이 ‘어? 그러면 지금 파티 짜서 붙으면 우리도 좀 챙겨 먹을 수 있지 않아?’ 하며 파티를 짜온 것이다.

케인은 그걸 듣고서 ‘저런 미친놈들이 있나’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저기 악마들 정도는 처리할 수 있지 않나?”

“아니, 김태현한테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소리였는데…….”

“…….”

케인에게 말을 건넸던 우드스탁 길드원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잡으러 가냐? 잡으러 갈 거지?”

“응? 내버려 두자고.”

“?!?!”

케인은 깜짝 놀라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야, 야! 네가 레이드 하려는데 붙어서 날로 먹으려는 놈들이라니까?!”

“날로 못 먹으니까 이러지. 알아서 먼저 나서준다는데 감사히 지켜보자.”

태현 파티는 잠시 멈춰서 멀리서 움직이는 파티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평원에서 돌아다니는 악마 몇 마리에게 싸움을 걸고, 이겼다.

그걸 본 케인이 불평했다.

“봐봐. 저 정도는 이긴다니까? 저런 치사한 놈들을 내버려 두면…… 어?”

쿠르릉-

카달타 성의 성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악마가 전력 질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

갈그랄이었다.

“어어어어어?!?!?!”

케인도, 우드스탁 길마도 당황했지만, 평원에서 갈그랄과 마주친 파티만큼 당황한 건 아니었다.

시작하자마자 보스 몬스터가 직접 달려오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갈그랄이 여기 왜 나와?!?!”

“도망쳐! 도망!!”

-내 주인께서 명령하셨다, 침입자는 죽이라고!

[갈그랄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

콰직!

갈그랄은 멈춘 플레이어들을 일격으로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회색으로 변해서 사라지는 플레이어들!

“미친…….”

“저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성안의 보스 몬스터가 저렇게 반응하면, 탐색이고 견제고 뭐고 불가능했던 것이다.

먼저 접근했던 파티가 아니었다면 그들도 저 꼴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

태현만이 혼자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저렇게 나오나.”

“알고 있었냐?!”

“아니.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워낙 단순무식한 악마다 보니까 괜히 견제다 뭐다 건드리면 바로 반격하지 않을까 싶었지…… 저렇게 본인이 나올 줄은 몰랐고.”

평원에 있던 파티 하나를 눈 깜박할 사이에 갈아버리고 돌아가는 갈그랄.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어떻게 하지?”

“이동 속도 빠르고 바로 몸 뺄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가보는 건?”

“네가 가볼래?”

“나, 나는 좀…… 자신이 없어서…….”

“좋아. 잠입한다.”

“……!”

태현의 말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멈추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잠입?”

“은신을 하고 들어가려는 건가?”

“은신 스킬 높은 플레이어들을 모을까요?”

“아냐. 필요 없어.”

“혼자서…… 들어가겠다고? 역시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겁먹었던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태현의 말에 환호했다.

혼자서 들어가다니, 역시 김태현이야!

그러나 태현은 그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응? 나 혼자서 갈 생각 없는데?”

태현의 말에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어, 어? 우리도 같이 가나?”

“저희는 은신 스킬이 낮아서 방해만 될 거에요!”

“얘는 은신 스킬이 그나마 높아요! 저는 아닙니다!”

“너 이 자식!”

태현은 다투고 있는 그들을 말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하하. 괜찮아. 싸울 필요 없다.”

“……?”

“다 같이 가면 되니까.”

“…….”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 * *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

“길마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닥쳐.”

우드스탁 길마는 길드원들의 아우성을 무시했다.

이제 와서 태현의 말을 듣지 않기에는 너무 멀리 왔던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간다!

그들의 눈앞에서, 태현은 걸어가고 있었다.

카달타 성의 정문으로 당당하게.

날개 악마들과 함께!

그 모습을 본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다시 난리를 쳤다.

“아니, 아니, 아니! 진짜 이건 좀 아니죠!”

“시끄럽다!”

뒤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갔다.

판온의 몬스터는 각자 특성이 달랐다.

그중 하나가 ‘대화가 가능한가’였다.

어떤 몬스터는 지능이 너무 낮아서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어떤 몬스터는 지능이 높아도 대화가 불가능했다.

악마 계열 몬스터는 후자에 속했다.

플레이어를 하찮게 취급하기에 대화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악마와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대화가 불가능한 몬스터는 없다!

그저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악마에게는 악마에게 맞는 방법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갈그랄 님의 군세에 들어가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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