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77화
-아니, 이 자식들은 머리가 없나?! 애초에 갈그랄 나타난 게 김태현 때문이잖아!!
사고는 태현이 치고 욕은 다른 길드들이 먹는 이 상황에, 쑤닝은 분노했다.
그러나 여론이라는 것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한 번 기세를 타면 뭘 해도 잘 되는 수준!
평소 영지의 발전을 위해 세금을 빡세게 걷느라 다른 플레이어들의 원한이 쌓인 대형 길드.
그에 비해 대형 길드들을 엿 먹이고, 다른 길드들이 망설이는 동안 갈그랄 레이드를 바로 준비하는 태현.
둘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쩔 거야? 내가 이 꼴을 계속 봐야 하나?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 카달타 성을 저놈들이 날려 먹었는데 참으라는 거냐?!
쑤닝 길드가 확보한 영지 중, 카달타 성은 가장 알짜배기 영지였다.
그런 성이 통째로 박살 난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뻥뻥 차는 쑤닝!
-왜 나쁜 짓은 김태현 저놈이 했는데 욕은 우리가 다 먹는 거냐고!!
울분에 찬 울부짖음!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놈들을 방해하는 건? 만약 갈그랄을 저놈들이 잡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방해하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세연도 있고 김철수에…… 게다가 방해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나 길드들이 우리를 곱게 안 볼 텐데요…….
갈그랄 레이드는 다들 망설이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빨리 누군가 잡아줬으면’ 하고 있는 상태였다.
갈그랄 같은 악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사실 아키서스를 찾아 여기에 온 것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에 그 레이드를 방해하면 다른 길드들이 쑤닝에게 항의를 해올 수 있었다.
-네가 잡을 것도 아닌데 왜 방해냐!
-네가 방해했으니까 네가 잡아라!
이번 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길드 연합이라고 하지만, 결국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얄팍한 동맹!
우드스탁 길드와 쑤닝 길드만 봐도 확실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합 내에서도 얼마든지 서로 붙을 수 있는 것이다.
쑤닝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이놈들은 김태현 같은 적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안 돼. 자기들한테 방해되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으니…….’
자기한테 피해만 안 끼친다면 다른 길드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오히려 속으로 좋아하는 게 대형 길드들!
게다가 태현은 얄밉게도 대형 길드들 전부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닌, 쑤닝처럼 이미 확실하게 적인 놈들만 공격하고 있었다.
태현이 이렇게 나오니 길드 연합의 힘을 전부 동원해서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도움이 필요하신가 봅니다?”
“뭐야?”
쑤닝은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 보였다.
“뭐 하는 놈이야? 저놈 누가 들여보냈어?”
“아, 길마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제카스입니다. 모르십니까?”
제카스.
유명한 모험가 플레이어.
그리고 역병 저주 퀘스트를 깨다가 태현의 정체가 판온 1의 태현이라고 확신한 플레이어!
물론 태현은 그 소문을 파워 워리어 길드로 잠재우고, 찾아온 암살자들은 강제 퀘스트를 걸어서 제카스한테 돌려보냈다.
-김태현!!! 용서하지 않겠다!!!!
판온 1의 증오에 추가로 증오를 얹어주는 태현!
덕분에 제카스는 지금 방송도 잠깐 멈추고 숨어다니고 있었다.
“제카스라면 들어본 적 있지. 여기는 무슨 일로? 모험가면 지금 저 멀리 가야 하지 않나?”
“김태현 때문에 왔습니다.”
“……!”
쑤닝은 눈을 크게 떴다.
“김태현 때문에 왔다?”
“쑤닝 님, 우리 둘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뭐일 거 같습니까?”
“……김태현을 싫어하는 거?”
“바로 그겁니다!”
사람은 서로 싫어하는 게 있으면 빠르게 친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면에서 쑤닝과 제카스는 눈빛만 봐도 통했다.
“그 새끼가 진짜! 어! 투기장에 악마 나오고 뭘 했는지 아냐?”
“저는 더합니다! 사디크의 화염 퀘스트를 깨러 갔는데…….”
1시간 동안 태현의 욕만 주야장천 한 그들!
대화가 끝나자 그들은 뜨거운 우정을 갖게 되었다.
덥석!
서로 강하게 악수한 그들!
“지금 김태현이 또 오스턴 왕국에서 날뛰고 있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그래. 그랬지. 아주 진짜 바퀴벌레 같은…….”
쑤닝은 이를 갈았다.
특히 카달타 성 안에 악마를 숨겨놓고 이제까지 기다린 그 끈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런 방법에 당하니 화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생겨났다.
솔직히 상대할 자신이 없어졌다!
“김태현이 왜 강한지 아십니까?”
“……?”
“상대의 약점을, 상대가 싫어하는 걸 정확하게 읽어내고 노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우리도 놈이 싫어하는 곳을 노려야 합니다.”
“놈의 영지?”
“아뇨. 한 번 찔러봤는데 무리더군요. 그건 놈도 이미 알고 있어서 무리일 겁니다.”
제카스는 태현의 영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스턴 왕국에 있는 길드들의 영지에 비교한다면, 태현의 영지는 부족한 게 많았다.
아키서스의 교단에 특화된 영지!
그런 주제에 방어력은 어마어마했다.
저번 습격 때 나타난 귀족의 기사단이 아직도 영지에 있다는 걸 확인하자, 제카스는 습격을 포기했다.
저 귀족 기사단은 플레이어들 몇으로 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놈이 싫어하는 건 소문입니다. 판온 1 때의 소문!”
“아, 나도 그건 들었는데…… 그거 진짜 맞나?”
태현이 판온 1의 랭커 사냥꾼 김태현이라는 소문.
그 소문은 이제 하도 많이 퍼지고 반박당해서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쑤닝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이 맞습니다! 제가 확신합니다!”
박력 넘치게 화를 내는 제카스!
“어, 어…… 그래…….”
쑤닝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제카스의 기세가 무서웠던 것이다.
“이 소문은 이상할 정도로 묻혔습니다. 분명 놈이 손을 쓴 겁니다.”
‘……그놈이 그럴 능력이 되나?’
쑤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의 뒤에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까지는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 소문이 뭐라고 그렇게 겁을 내?”
“판온 1때 김태현이 밟고 뭉갠 적들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 그때 플레이어 중 판온 2를 하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플레이어들이 절반만 쫓아와도 김태현은 판온을 접어야 할 겁니다.”
제카스의 말은 과장된 감이 있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으음…… 그래. 그건 확실히 겁이 날 만하겠군. 그런데 진짜 그놈들이 다 김태현을 쫓아올까?”
쑤닝은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대형 길드 연합도 ‘우리의 적을 같이 밟아버리자!’라며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적이 생기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자기만 빠져나가려고 들었다.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게 사람!
아무리 원한이 있더라도, 굳이 태현 같은 강한 적과 싸우려고 할까?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데?
“쫓아옵니다.”
제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진, 진짜?”
“당한 사람들은 압니다. 쑤닝 님이 지금 당한 것의 열 배를 당해 보십시오. 기분이 어떠실 거 같습니까?”
“어…… 음…….”
생각만 해도 끔찍!
쑤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게임에 김태현이 나타났습니다. 안 쫓아가실 겁니까?”
“……쫓아갈 거 같군.”
“바로 그겁니다.”
쑤닝은 속으로 어이없어했다.
그가 당한 것도 지금 솔직히 <판온의 호구 TOP 10>을 만들면 상위권에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열 배를 당한 놈들이 그렇게 많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되나?’
“그 소문을 진짜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후후……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 * *
멀리서 흉흉한 계획이 세워지는 것도 모르는 채, 태현은 김철수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태현 님! 여기 질문에도 대답을 해주실 수 있나요?”
김철수는 개인 방송을 켜놓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김철수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태현을 발견하고 맹렬하게 질문을 날려 오고 있던 것!
다른 유명 플레이어들과 달리, 태현은 말을 걸거나 궁금한 걸 물어볼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곳이 파워 워리어 길드뿐!
파워 워리어의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태현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건 거의 방법이 없다고 봐야 했다.
-역병 저주 퀘스트는 어떻게 깬 건가요?
-직업이 라제단 대장장이 맞나요?
-대장장이인데, 기계공학 위주로 키워도 될까요? 솔직히 태현 님 말고 기계공학 제대로 한 대장장이를 본 적이 없어서…….
우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태현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와준 김철수를 생각한다면 안 해주기도 뭐했던 것이다.
“잠깐, 잠깐만요! 태현 님은 저희 길드 쪽에서 질문을 받으시는데요!”
‘잘한다, 이다비!’
태현은 이다비를 속으로 응원했다.
역시 이럴 때 나서주는 게 이다비!
김철수는 그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그걸 모르고…….”
“괜찮아요! 모르고 하신 일인데요. 다음에 저희 길드 방송에 나와 주시는 걸로 퉁치도록 해요!”
“그거면 되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다비?!”
알아서 막으려는 줄 알았더니 거래를 하고 돌아오는 이다비!
“네?”
“난 네가 막아주려는 줄 알았는데…….”
“……아하하…….”
이다비는 그제야 태현이 뭘 기대했는지 깨닫고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
“늦었어. 인마.”
태현은 이다비를 붙잡아서 못 도망치게 한 다음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역병 저주 퀘스트 어떻게 깼냐고? 잘. 제카스 그놈은 도움이 진짜 안 되더라. 방해만 한 걸 내가 억지로 깼다. 그런 주제에 퀘스트 뺏겼다고 가짜 소문이나 퍼뜨리고 다니고 아주 나쁜 놈이야. 그치?
-라제단 대장장이 아님.
-기계공학 위주로? 별로 추천은 안 해. 할 거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가는 게 좋을걸. 그나마 거기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많으니까.
태현이 대답할 때마다 채팅창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일시적으로 렉이 걸릴 수준!
하도 질문이 많이 나와서 김철수가 고르기 힘들 정도였다.
“으, 으으……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질문이 많이 나와서…… 이상한 건 또 걸러야 하고요.”
“이상한 거? 에이, 그런 게 재미있지.”
상식인인 김철수와 달리, 태현은 불을 지르는 걸 좋아했다.
“어떤 게 있는데? 나도 좀 보자.”
“앗. 그건…….”
-지금 프리카 투기장 대회에 나가는 5명 팀원 중에 누가 가장 강해요?
“……!”
“!!!”
그 질문을 본 순간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멈칫했다.
이 무슨 싸움 나기 좋은 질문!
게다가 플레이어의 강함은 누가 강하다, 딱 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김철수는 그냥 넘어가려고 한 것이었지만…….
태현은 바로 대답했다.
-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태현 “내가 제일 세다”고 밝혀…….
-지금 1초도 고민 안 하지 않았냐?
케인과 김철수 모두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니, 무슨 저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준단 말인가!
“야, 뭐 하러 저런 거에 대답을 해줘?”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
“……그건…… 그렇지만……!”
케인은 반박 못 할 사실로 명치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네.”
“?!”
“제일 강한 건 나야.”
-이세연이다!
-이세연이다!!!
-와! 이세연!
김철수의 방송 화면에 이세연이 나타나자 채팅창은 다시 한번 끓어올랐다.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두 눈빛!
그리고 둘은 동시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지금 가릴 수는 없으니까.”
“나중에 결판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