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75화
분명 잘생기긴 했지만 느끼하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 주제에 이름이 ‘이동팔’이라니.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 이동팔이라고 쓰여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프랑스 이름이 써져 있으면 차라리 안 어색했을 것 같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터져 버리는 주인공의 인성!
“내 명패를 보고 있군. 어떻게 생각하나?”
“뭐가 말입니까?”
“이름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지? 솔직하게 말이야.”
이동팔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상대방은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특하고 좋은 이름이네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어쨌든 대표였고 상대방은 그와 계약하러 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이동팔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요?”
“…….”
정준식도 경악해서 태현을 쳐다볼 정도의 솔직한 대답!
쿡, 쿡-
정준식이 팔꿈치로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프하하하핫!”
이동팔은 폭소를 터뜨리며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촌, 촌스럽…… 그런 대답을 한 사람은 그쪽이 처음이야!”
“화가 나고 모욕적이지는 않으세요?”
태현은 기대하듯이 물었다.
그 눈빛은 ‘이런 무례한 놈과 계약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동팔도 태현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데? 솔직해서 좋군. 말로는 다들 ‘나는 솔직해’, ‘저는 솔직한 성격이에요’라고 하지만 실제로 정말 솔직한지 따져보면, 솔직한 사람은 찾기 힘들거든. 그런 면에서 그쪽은 정말 솔직해서 좋군.”
태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1차 계획 실패!
“내가 계약을 할 때 뭘 가장 우선시하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느낌이야!”
“어, 가장 나오면 안 되는 대답 아닌가요, 그거?”
“알 게 뭐야! 난 이렇게 해서 성공해왔는데!”
이동팔은 연극배우처럼 두 팔을 벌렸다.
태현은 슬그머니 의자를 뒤로 뺐다.
약간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
“그런 내가 그쪽을 보니 딱 느낌이 왔어. 흥할 거 같다고. 통할 거 같다고!”
태현은 정준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저씨, 이거 약간 사짜 느낌 나지 않아요?”
“태현아,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으렴.”
둘의 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팔은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내 느낌은 틀린 적이 없지.”
“정말 없나요? 착각이 아닐까요?”
“으, 으윽. 틀린 적이 조금은 있을지도…….”
“바로 그겁니다. 오늘 판단도 틀렸을 수 있…….”
뭔가 주객이 바뀐 것 같은 대화!
“아냐! 오늘 느낌은 정확해!”
이동팔은 태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진정한 의미에서의 솔직함, 여유로운 태도까지…… 난 그쪽이 통할 거라고 확신해. 이종국 국장님이 추천을 하긴 했지만 직접 보니 더 확실해지네!”
“뭔 국장? 누굽니까 그거?”
“MBS 국장, 모르나? MBS 쪽에서 게임 방송 좀 했다고 들었는데?”
“MBS에는 별로 안 가봤으니 모르죠.”
태현은 마음속에 ‘이종국’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놓았다.
나중에 만나면 두고 보자!
“뭐 어쨌든 간에! 나는 확신했고 그게 중요한 거지.”
정준식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이의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느낌 말고요. 저는 얘가 방송에서 잘나갈지 확신이 안 섭니다만.”
“음, 느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동팔은 자리에 앉았다. 방금까지의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침착한 사업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약간 아프신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동팔은 침착하게 설명에 들어갔다.
“일단 판온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라는 게 큽니다. 지금 판온 2의 인기는 현재 나온 게임을 모두 압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커질 전망입니다. 향후 10년간은 적대할 게임이 안 보일 수준이죠. 그런 판온의 최상위권 플레이어라는 건 아주 큰 요소에요. 일단 판온에 관심 있는 층은 모두 알 거 아닙니까.”
정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산한테 귀에 딱지가 듣도록 들어서 태현이 얼마나 판온을 잘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사실 판온의 인기는 진작 프로게이머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기입니다. 판온 1때 프로 리그가 처참하게 망하고, 개인 방송 위주로 판이 형성되어서 그렇죠. 하지만 지금 보니 2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 프로 리그가 형성됩니다. 몇몇 관계자한테 들어보니 벌써 접촉을 해오는 기업들도 있더군요. 팀이 생길 거예요.”
이동팔은 종이에 슥슥 그려가며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지금 MBS가 주도하는 대회는 사실 이벤트성이 강한, 단발성 대회죠. 그런데도 해외에서 벌써 뜨겁게 관심을 보여 오고 있어요. 이 대회가 끝나면 분명 제대로 된 프로 리그가 열립니다. 판온 회사 측에서 주최하는 프로 리그. 그런 프로 리그가 시작되면? 이제 판온 프로게이머들의 시대가 오는 거죠. 그런 시대가 오면 누가 가장 뜰 거 같습니까?”
“뛰어난 판온 플레이어?”
“예!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저는 김태현 씨가 그런 축에 속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실력도 되고, 방송에 맞는 캐릭터도 되거든요. 맞다. 김태현. 대회는 우승할 수 있지?”
“누가 들으면 맡겨 놓은 줄…….”
“에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 정도는 해야 해. 내가 짠 계획이 대회 우승을 전제로 하고 있단 말이야.”
“……??”
“먼저 간단한 방송에 나가서 이미지를 살짝 쌓은 다음, 대회에서 우승하는 걸로 화제를 확실하게 모으는 거지. 그걸 기반으로 방송에서 착실하게 키워 나가는 거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 벌써 북 치고 장구 치고 미래 계획까지 다 짜놓은 이동팔!
태현은 최대한 저항하려고 애썼다.
“저 게임해야 해서 방송은 많이 못 나가는데요.”
“걱정 마. 다 같이 하면 되니까. 스케줄 조절하고서 하면 불가능이란 없더라.”
“아니, 뭔…….”
태현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 보내고 이동팔은 정준식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이거 한 번 보고 뭐 이상한 점 있으면 말해주시죠.”
“……이거 정말 괜찮은데요?”
“그렇죠? 저희 회사가 좋다니까요.”
“정말 좋네요. 이 정도로 조건이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탑급 연예인들을 어떻게 모았나 싶었는데…….”
“하하. 아무나 들여보내 주지 않아요.”
갑자기 느껴지는 소외감!
결국 태현은 흐름에 휘말려 아무 방해도 하지 못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태현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 이동팔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어, 그래. 그래! 그럼~ 물론이지! 잘됐어! 들어와도 되냐고? 물론! 들어와도 된단다!”
“?”
“??”
친근감 넘치는 태도로 통화하는 이동팔을 보고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랑 통화하길래?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이세연이었다.
“…….”
“아, 이분이 김태현? 와! 게임이랑 그대로야!”
“……함, 함정?”
“사람을 보고 함정이라고 하는 건 좀 심하지 않아?”
이세연은 태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실제로는 처음 만나는 둘이었다.
둘 다 게임에서 외모 커스텀을 거의 안 하다 보니, 딱 봐도 서로란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양아ㅊ…… 아니, 날카롭게 생겼네!’
속으로 생각할 때도 예의를 지키는 이세연!
‘정말 사악하게 생겼군.’
다른 모든 사람이 예쁘다고 환호를 해도 혼자 꿋꿋하게 사악하게 생겼다고 우기는 태현!
“네가 여기에는 왜 있는 거지?”
“그야 난 여기 소속 연예인이니까?”
“그리고 내 조카지.”
이동팔은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정준식이 장식했다.
“아. 아까 말한 롤모델이 저 이세연 씨다!”
“……앞으로는 좀 빨리 말합시다.”
정준식은 태현을 위해 이것저것 찾다가 발견한 것이다.
SI 엔터 소속.
판온 1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연예인!
바로 이세연이었다.
아까 듣지 못한 롤모델이 이세연이었다니. 태현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왜 이러는 거지?”
“이 사람은 가끔 이러니까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삼촌.”
이세연은 고개를 숙인 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반가워. 앞으로는 자주 보겠네?”
“…….”
“내가 선배니까 어려운 거 있으면 말해.”
“난 죽음을 택하겠다!”
“헛소리하지 말고. 방송 보통 어려운 거 아니다?”
이세연은 가볍게 말했지만, 실제로 방송계는 살벌한 곳이었다.
이세연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정준식은 그걸 알기에 속으로 생각했다.
‘잘됐군. 태현이에게 저런 좋은 선배가 생기다니.’
이세연은 이른바 완성형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약점 없는,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도 대응할 수 있는 전천후 연예인!
그런 사람이 저렇게 친절하게 도와준다고 하니 보통 행운이 아니었다.
물론 태현에게는 전혀 행운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후…….”
태현은 오랜만에 김태산에게 제대로 패배감을 느꼈다.
연속 공격 후 마무리 일격까지!
이동팔은 태현이 좌절하거나 말거나 계약서를 탁탁 정리해서 파일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추후 스케줄은 매니저를 통해 연락을 주지. 내가 좋게 평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리한 걸 시킬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고. 일단은 대회에나 좀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대회 우승할 수 있지? 우승해라.”
“삼촌, 이게 5:5라서 저 혼자 잘하거나 김태현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몰라. 너랑 김태현이 있는데 잘 하겠지. 믿는다, 조카야! 우승컵을 따와! 둘이 같이 나올 인터뷰 프로 잡아줄 테니까!”
“그건 좀 많이 끌리네요. 생각해 볼게요.”
이세연은 태현 앞으로 다가가서 멈췄다. 그리고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거 같기도 한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태현은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실제로 얼굴 한번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다시 한번 보고 있었어.”
“감상이라도 들려주려고?”
“날카로운 거 빼고는 인상 괜찮은데?”
“괜찮다고?”
“정말로?”
이동팔과 정준식이 동시에 반응했다. 태현은 정준식을 쳐다보았다.
“아저씨, 아저씨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알았습니다.”
“흠흠. 태현아. 내가 널 많이 아끼지만 변호사로서 덕목은 사실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거라…….”
이동팔은 정준식보다 더 솔직했다.
“무섭게 생기지 않았나?”
“저는 자주 봐서 그런지 별로요?”
“내 조카의 단점이 하나 나오네. 눈이 너무 낮아. 나처럼 좀 눈을 높게 하고 다니렴.”
“저, 눈 높은데요?”
둘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약도 끝냈고, 앞으로의 지시 사항은 따로 연락을 받을 테니 이 자리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냥 떠나고 싶기도 했고!
“가려고?”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려고.”
“와, 분명 당연히 해야 하는 거긴 한데, 저렇게 들으니까 뭔가 되게 인생 폐인처럼 사는 그런 느낌이야.”
“프로게이머하고 게임 폐인하고 좀 아슬아슬한 영역에 있긴 하지. 오스턴 왕국에서 보자.”
“응. 오스턴 왕국에서 봐.”
태현과 정준식은 곧바로 떠났다. 둘만 남자, 이동팔은 이세연에게 물었다.
“저 친구 잘할 거 같아?”
“삼촌의 감을 믿는다면서요?”
“믿지. 그래서 언제나 불안해하잖아.”
이세연은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김태현은…… 뭐든 잘하겠죠. 뭘 못하는 게 상상이 잘 안 가네요.”
“그 정도야? 방송 만만하지 않은 거 알지?”
“그걸 감안하고서 말하는 거예요.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 친구한테 약간 감정이 있는 거 같은데? 나중에 잘되면 둘이 같이 광고 찍게 해줄까? 물론 네가 많이 아깝겠지만.”
“글쎄요. 금세 따라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세연은 작게 말끝을 흐렸다. 덕분에 이동팔은 듣지 못한 듯했다.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