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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74화 (374/1,826)

§ 나는 될놈이다 374화

캡슐을 열고 나왔을 때, 태현은 저택이 묘하게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마치 태풍 전의 고요 같은 조용함!

‘……뭐지?’

1층으로 내려갔을 때, 거실에 아버지 김태산이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

그걸 본 태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큰일 났다!

저 웃음은 분명 사악한 계획을 이미 다 꾸며놓고 짓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

태현한테 오토바이로 치었으니 당연히 쪼잔하게 복수에 나서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랐던 것이다.

“하하! 태현아! 여기로 잠깐 와보렴!”

태현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김태산은 이미 그걸 눈치채고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탁!

“왜 그러니. 아들아?”

“갑자기 운동이 하고 싶어져서 달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라! 조금만 이야기하고 가렴!”

질질질.

김태산은 태현을 질질 끌어서 소파에 앉혔다.

소파 앞에는 정윤희 여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머니!”

“왜 그러니?”

“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하셨든 간에 그 소리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

김태산은 짜게 식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물론 그가 태현을 괴롭히기 위해 이걸 꾸미기는 했지만, 말도 듣기 전에 이렇게 나오다니.

“그래?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예? 뭐가요?”

김태산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정윤희가 괜찮다고 말을 하니 보통 무서운 게 아니었다.

“네가 연예인을 한다며?”

“……예?”

태현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뭐라고?

“네???”

“흠흠. 내가 설명을 해주마.”

김태산은 기분 좋은 얼굴로 손짓했다.

아주 기분 좋아 죽겠다는 표정!

“자, 태현이 지금 너를 봐라. 게임 방송으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고 대회에도 출전했으니 또 한 번 화제가 되겠지.”

“…….”

태현은 말없이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체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단 말인가!

태현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김태산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그런 인기는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꾸준히 인기가 있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해. ‘너’라는 상품을 조금 더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어필을 해야 한다 이 말이야. 지금 게이머 아닌 사람 중에서 네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

김태산은 무릎을 탁 치며 분하다는 듯이 외쳤다.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아니, 왜 일반인들이 제 이름을 알아야 합니까?”

“인마!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개인 방송이나 그런 것도 연예인과 비슷한 거 아니겠냐! 똑같은 방송이잖아!”

“말이 똑같지 전혀 다르거든요?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방송계는 장난이 아니었다.

자기만의 방송국에서 개인 방송을 잘 진행하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사람 중에서 공중파 방송에, 아니, 케이블 방송에라도 나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판온 붐이 일어나자 게임 방송으로 흥한 스트리머 중 몇몇이 방송국의 제안을 받고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처참하게 실패!

“어쨌든 너는 지금 정체되어 있다. 대회에 나간다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 대회에서 우승해도 써먹기 아까울 뿐! 더 크게 판을 벌이고 더 사람들에게 네 이름을 알려라!”

“아버지 지금 제가 하기 싫어하는 거 알고 이러시는 거잖습니까!”

“하하! 안 들린다, 요놈! 그러게 날 치고 가지 말았어야지!”

태현은 침착을 잃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방송은 아무나 합니까? 나가고 싶어도 기회가 없으면 못 나가는 게 방송인데. 제가 판온에서나 유명하지 공중파 방송에 나간다고 하면 방송국에서 잘도 OK 하겠습니다.”

“하하! 그 문제도 해결했지, 요놈!”

김태산은 좋아 죽기 직전이었다.

“해, 해결했다고요?”

“그래. SI 엔터에서 먼저 연락이 왔지. 너와 계약하고 싶다고.”

“아니, 어떤 미친놈들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뭐 세상에는 미친 놈들이 많지 않냐? 아마 그런 놈들인가 보지.”

SI 엔터 입장에서 들으면 기가 막힐 소리였다.

이종국 국장에게 진지하게 추천을 받아서 나름 고민하고 고민해서 태현을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네가 말했잖니? 이 게임으로 네가 갈 길을 보여주겠다고. 그렇다면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야지. 나도 좀 찾아봤는데, 예전에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방송인이 된 사람들이 좀 있더구나.”

자식의 일이라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정윤희 여사께서 사전 조사를 좀 한 모양이었다.

판온 이전의 프로게이머들이 연예인으로 전환을 한 경우를 들고 온 것!

물론 태현에게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몇백분의 일을 뚫은 거고요!”

“너라면 할 수 있지 않겠니? 그리고 실패하면 뭐 어떠니. 우리가 있는데. 부끄러운 건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는 거란다.”

그냥 판온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태현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오랜 게이머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함정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후. 알겠습니다.”

빠져나갈 수 없다면 받아들일 뿐.

태현은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고 받아들였다. 그걸 본 김태산은 입맛을 다셨다.

‘내 아들이지만 참 이런 거 보면 무섭다니까.’

안 되는 걸 알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 전략을 고민한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질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 아들아. 잘 생각했다. SI 엔터와 약속을 잡자!”

“……근데 SI 엔터가 뭐 하는 곳이죠? 제가 그런 쪽은 잘 몰라서.”

“음. 나도 잘…….”

방송에 관심 없는 두 부자!

오히려 정윤희가 SI 엔터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돌이나 배우 데리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잖니.”

“어머니는 어떻게 아셨어요?”

“보는 방송에 나오는 배우가 거기 소속이거든.”

“아하.”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걸 보고서도 계약을 해야 할까요? SI 엔터가 뭔지도 모르는 제가?”

“난 모르겠다. SI 엔터도 생각이 있으니까 너한테 접촉을 해온 거겠지.”

“쯧…….”

태현은 혀를 찼다. 김태산은 씩 웃으며 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 마라! 내가 좋은 친구 소개시켜 줄 테니까. 같이 가면 될 거야.”

“누구요?”

“정준식이.”

“변호사는 왜?”

정준식. 김태산의 친구로 국내 대형 로펌 B&A 소속 변호사였다.

“그래야 사기를 안 당하지!”

“SI 엔터가 그런 곳이었어요?”

“아, 아니. 내가 알아보니까 아주 멀쩡하고 좋은 곳이더라고.”

태현이 무슨 핑계를 댈지 몰라 김태산은 급히 말했다.

“그렇지만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고 이런 건 변호사 한 명 데리고 가야 좋은 거니까 말이야.”

“준식이 아저씨가 참 좋아하시겠네요.”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김태산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예전부터 김태산은 쓸데없는 걸로 정준식을 괴롭혔던 것이다.

-준식아! 내가 지금 경찰서인데! 어! 아니! 술 먹고 진상 부리는 놈들하고 싸웠거든! 많이 맞았냐고? 아니! 나는 안 맞았는데! 상대는 몇 명이냐고? 다섯 명! 응? 상태가 어떠냐고? 다 쓰러져 있어서 물어볼 수가 없는데!

-준식아! 혹시 PC방 랜선 끊고 도망치면 법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되냐?

-준식아! 소매치기 잡았는데 얘가 숨을 안 쉬는 거 같아! 아니다! 숨을 다시 쉰다! 이런, 경찰이다! 준식아! 경찰서로 좀 와줘라!

주로 김태산이 사고를 치면 정준식을 부르는 식!

태현이 보기에, 정준식이 김태산과 아직도 친하게 지낸다는 건 불가사의였다.

“어쨌든 같이 가겠습니다. 저야 뭐 손해 볼 거 없으니.”

“그래라! 크핫핫.”

김태산은 기뻐하며 태현의 등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악마를 더 뿌려 버려야겠어.”

“너 방금 뭐라고?”

* * *

건물은 회사의 얼굴이었다.

그런 면에서 강남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SI 엔터의 현대식 건물은 SI 엔터가 어떤 회사인지 바로 말해주고 있었다.

나 이렇게 잘나간다!

“건물 좋네요?”

“저 건물보다 네 아버지 건물이 더 비싸다.”

“에이, 기분 푸세요.”

“그래…… 네가 뭔 잘못이겠냐.”

정준식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할 일 많아 바빠 죽겠는 사람한테…….”

“그러면 혹시 판ㅇ…….”

“판온의 ‘판’ 자라도 꺼내면 너를 고소해 버릴 거다.”

“…….”

“네 아버지가 맨날 연락해서 ‘준식아! 판온하자!’ 이러는 걸 내가 얼마나…… 아니다. 됐다.”

정준식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감이 가득해 보였다.

태현은 저런 얼굴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왜 갑자기 케인이 떠오르지?’

“어쨌든 오기 전에 잠깐 확인해 봤다. SI 엔터는 괜찮은 회사야. 아니, 괜찮다는 표현은 좀 부족하겠군. 탑급 배우나 가수 데리고 있고 적어도 내가 파악한 수준에서는 계약 관련해서 불만이나 문제 사항도 없었어. 그래서 이렇게 잘나가는 거일 수도 있겠군. 게다가 네 롤모델 비슷한 사람도 있고…….”

“제 롤모델이요? 누구요?”

정준식이 태현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태현 씨 맞으시죠?”

“예.”

“이쪽 분은?”

“변호사요.”

“……네?”

“처음 만나는데 변호사를 데리고 오다니 좀 특이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 어쨌든 따라오시죠.”

남자는 핸드폰을 들어 태현이 왔다고 위로 연락한 다음 카드를 댔다.

문이 열리고 건물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면서 몇몇 눈에 띄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반인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

딱 봐도 연예인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태현은 휘파람을 불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라도 봤냐?”

“아뇨.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서요.”

“…….”

정준식은 태현을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방금 지나오면서 본 연예인 중에서는 정준식도 아는 연예인이 있었다.

그런데 젊은 놈이 모르다니.

‘아버지고 아들이고 진짜 부자가 게임 폐인이야…….’

김태산이 한다니 도와준다지만, 정말 태현이 방송에서 잘해 나갈 수 있을까?

정준식은 불안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김태현. 방송에서 욕설 파문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밖으로 나와 XX야!’

-김태현, 동료 연예인 김 모 씨와 주먹다짐…… 몇 번째 폭행 사건인가?

‘아, 아니야. 태현이 저놈은 태산이보다는 낫겠지!’

셋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자는 사장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들어오게.”

남자는 문을 열고 비켜섰다. 태현과 정준식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게, 김태현…… 이 아니잖아. 옆의 분은 누구시지?”

“변호사십니다.”

“……내가 뭔 잘못이라도 했나?”

천하의 SI 엔터 대표도 첫 만남에 변호사를 데리고 오는 모습에 당황한 것 같았다.

정준식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말했다.

“친구 아들이라, 부탁을 받고 같이 왔습니다. 얘가 법적인 문제는 잘 모를 것 같기도 해서. 여기 명함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준식의 명함을 받은 대표는 눈을 크게 떴다.

명함에 적혀진 신분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다시, 어서 오시게. 김태현 선수. 내가 SI 엔터 대표 이동팔이야.”

이동팔은 잘생긴 중년 남성이었다. 잘생긴 것도 여러 종류가 있다지만, 이동팔은 좀…….

‘느끼한데?’

처음 만나자마자 외모를 평가하며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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