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72화
“MBS?”
김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한 번, 태현을 골려주기 위해서 게임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실제 모습이 아닌 게임 캐릭터가 나가는 거니 거부감이 좀 적었던 것이다.
그때 고른 곳이 SBC 쪽의 게임 방송이었다.
MBS와는 연이 없었던 김태산.
“MBS가 나한테는 무슨 일로? 아니, 그보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태현이한테 들었나?”
“아, 그…… 배미나한테 들었습니다.”
배미나.
배장욱의 동생. SBC의 PD였다. 한창 태현이 돌풍을 일으킬 때 그걸 보고 김태산을 섭외한 PD!
“음? 둘이 친한 사이인가?”
“제 동생입니다.”
“흥. 나는 배미나 PD를 별로 좋아하지 않네.”
“?!”
김태산은 배미나 PD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태현을 골려주기 위해서 나간 방송이었다.
그런데 배미나 PD는 훈훈한 부자(父子)로 컨셉을 잡고 방송을 진행한 것이다.
덕분에 김태산은 나와서 아들 자랑하는 팔불출 이미지를 획득!
실제로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뭐야, 사이 좋잖아?
-아들 자랑하려고 나온 건가? 그냥 말로만 사이 안 좋다는 거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이좋게 보일 수밖에 없는 둘의 모습!
어쨌든 방송의 반응은 좋았다. 시청률도 SBC에서 진행한 게임 프로 중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당연히 배미나는 계속 방송을 진행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뭐하러 태현이 놈 좋은 짓을 해! 안 해!
-출, 출연료를 올려드릴…….
-필요 없어!
김태산에게는 돈이고 뭐고 아무 의미 없었다.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는 최강의 상대!
결국 배미나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배장욱은 동생을 간신히 설득해 김태산의 번호를 얻어낸 상태였다.
목적은 바로…….
태현을 설득하는 것!
김태현이라는 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해자부터 공략해야 했다.
배장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 시작부터 배미나 PD한테 불만이 있다니.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 어째서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혹시 동생이 무슨 무례라도…….”
“그런 건 아니고. 태현이 그놈을 너무 훈훈하게 만들어놨어.”
“…….”
배장욱은 순간 김태산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만약 배장욱이 그 프로를 담당했어도 배미나처럼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그만큼 완성도 높았던 방송!
‘겉으로는 아웅다웅하지만 사실 사이좋은 가족’은 잘 먹히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아, 그, 그렇군요.”
배장욱은 당황한 마음을 수습했다. 일단은 김태산에게 동의를 해줘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내 번호까지 알아냈나?”
“그…….”
배장욱은 말끝을 흐렸다.
원래 김태산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눈 다음, 바로 태현에 대한 화제로 들어가려고 했다.
김태산의 도움을 받아서 태현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를 보니 김태산이 별로 협조를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미나 때문에 협조를 못 받을 줄은 몰랐지!’
“뭐지? 왜 말끝을 흐리나? 나는 말을 돌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네.”
‘에이, 모르겠다.’
배장욱은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최소한 김태산의 분노만 사지 말자.
최대한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있었던 일들을 말하자!
“……그래서 연락을 드렸던 것입니다.”
배장욱의 말을 들은 김태산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태현이를 방송에 내보내고 싶다.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얼굴로 방송에?”
“예. 김태현 씨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서 가족분들의 설득과 도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김태산 씨께서 별로 내키시지 않으시다면 도와주지 않으셔도…….”
“무쓴 소리!”
“?!”
발음이 틀릴 정도로 화끈한 김태산의 반응!
“내가 도와주겠네. 우리 지금 당장 만나지!”
“?!?!”
* * *
배장욱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김태산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이야.
“자. 앉게. 커피?”
“아, 감사합니다.”
김태산의 서재로 들어온 배장욱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태현과 상대해 보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집안은 정말 잘사는 집안이었다.
서울 안에 이런 대저택을 갖고 있다니.
배미나가 실패한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사람이라면 출연료는 거의 취미였겠군…….’
“커피 맛은 어떤가? 내가 직접 탔는데.”
“맛있습니다! 평소 먹던 거랑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맛…….”
“그거 인스턴트인데…….”
“…….”
김태산은 측은한 눈빛으로 배장욱을 쳐다보았다.
‘평소에 뭘 먹고 다니길래’하는 눈빛!
배장욱은 얼굴을 붉혔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대저택에, 중후한 분위기의 서재.
그런 자리에서 고급스러운 잔에 주는 커피라면 당연히 뭔가 좀 고급스러운 커피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
“방송국이 사람을 험하게 다루는 거 같군. 이런 커피라도 좋으면 더 타주겠네.”
방송국 일이 힘들긴 하지만 배장욱이 인스턴트커피도 못 얻어먹을 위치는 아니었다.
“그…… 저는 드립 커피인 줄…….”
“난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저, 저기 게임 캡슐이 있군요! 두 개라니. 부자께서 같이하시는 건가요?”
배장욱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저건 아내하고 같이 하려고 놓은 거야.”
“아, 그렇군요. 두 분이 같이 하시면 즐겁겠네요.”
“아니…… 같이 하지는 않고 있지.”
“……?”
“아내한테 길드원들 보이기가 좀 부끄러워서…… 그리고 아내가 들어오면…….”
김태산은 말끝을 흐렸다.
오크 아저씨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남의 요새 부수고 다니는 걸 윤희한테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
“흠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태현이 그놈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태현이 그놈은 분명 방송에 나가라고 하면 싫어할 테지.”
“예…….”
“그러면 꼭 내보내 줘야지.”
주먹을 불끈 쥐는 김태산!
그 모습에 배장욱은 어이가 가출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대체 이 가족은 뭘까?
“아, 아니. 방금 태현 씨가 나오기 싫어한다고…….”
“그래. 나오기 싫어한다고. 들었네.”
“그런데 도와주신다는 겁니까?”
김태산이 도와준다는데도 배장욱은 얼떨떨했다.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 맞지?
“당연하지. 저번에 태현이 놈이 뭘 했는지 아나? 나를 오토바이로 치고 튀었어!”
“괜찮으십니까?!?!”
배장욱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오토바이로 치였다면 여기서 이렇게 대화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병원에 가야 했다.
“아니, 게임에서.”
“…….”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는데 저 정도는 해줘야지.”
“그,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배장욱이 보기에 김태산이 말해봤자 태현은 들을 것 같지 않았다.
“후후. 놈에게도 약점이 있지.”
말하는 걸 보면 무슨 자식이 아닌 원수를 대하는 것 같은 모습!
“그게…… 뭡니까?”
“바로…… 내 아내지!”
쿠궁!
엄청 비장하게 말했지만 별거 아닌 대답!
배장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윤희를 불러서 잘 말해보게. 그러면 한 방이야.”
“……정말요?”
“그래. 내가 보장하지. 아, 그리고 태현이한테는 자네가 윤희를 만나서 설득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게. 그걸 알게 되면 태현이가 자네를 잡아먹으려고 할 테니까.”
“하하, 농담도…… 농담 아니시군요.”
“그래. 음…… 자네, 생방송에서 태현이가 ‘배장욱 PD XXX가 사람 속여서 강제로 계약시켰다!’라고 외치는 걸 상상해보게.”
오싹!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왠지 태현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현이 그놈이 눈 돌아가면 무섭거든. 내 아들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얘가 한 번 찍으면…….”
“아, 알겠습니다. 절대 침묵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네는 태현이를 만나러 왔다가 나를 만난 거고, 내가 윤희를 부른 거지.”
“그런데 아내분께서는 괜찮으실까요? 태현 씨를 방송에 내보내는 걸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잖습니까.”
“뭐, 그거야 자네가 잘 설득해야지.”
지금 태현은 게임 방송에서 활약을 보이는 것으로 정윤희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휴학을 했어도 정윤희는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정윤희는 속으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가?
계속 일생을 걸 만큼 저 게임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서 배장욱이 태현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 준다면?
무엇이든 간에 정윤희는 하라고 태현의 등을 떠밀 가능성이 충분했다.
‘크핫핫핫핫핫핫! 태현이 네 이놈! 감히 하늘 같은 아버지를 오토바이로 치고 간 벌을 받아라!’
김태산은 속으로 웃어대며 커피를 마셨다.
오늘 커피 맛은 정말 달았다.
* * *
“나 방금 오싹했는데. 뭐지?”
“누가 너 욕하는 거 아냐?”
“누가 태현 님 죽이려고 계획을 짜는 거 아닐까요?”
“어떤 놈이…… 아니, 너무 많아서 추측할 수가 없네. 에잉.”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어쨌든 간에 우드스탁 길드와 헤어진 상태였다.
우드스탁 길마는 마치 예전에 사귀었던 연인처럼 한 시간에 한 번씩 귓속말을 보내오고 있기는 했지만…….
-저기,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우리 연합할 수 있는 거지?
원래라면 차단했겠지만 태현은 인내했다.
아직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권능부터 까고 보자.’
타르카 신의 권능이 담긴 스크롤:
타르카 신의 권능이 담겨 있는 스크롤이다. 사용할 경우 타르카 신의 권능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사용.
[신성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현재 타르카 신전의 세력이 일정 수준 미만입니다. 타르카 관련 NPC들이 아키서스 교단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타르카 신의 권능 – <권능 복사>를 얻었습니다.]
<권능 복사>
다른 사람이 사용한 권능을 선택합니다. <권능 복사> 스킬이 그 권능으로 변합니다. 한 번 사용하면 다시 바꿀 수 없습니다.
“……!!!!”
권능은 꽝도 있었기에 태현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사용했다.
그렇지만 나온 것은…….
‘굉장하다!’
남의 권능을 그냥 하나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
권능을 얻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이 권능이 얼마나 좋은 권능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사용한 권능을 봐야지 쓸 수 있다는 것과, 한 번 사용하면 그 권능으로 고정이 되니 두 번 사용은 못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 단점은 단점도 아니었다.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이 스킬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사디크 교단은 제외였다.
어차피 사디크 교단은 계속 싸우고 박살 내다 보면 권능을 얻게 되어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도 물론 제외였다.
왜냐하면 아키서스 교단의 권능을 쓰는 플레이어는 태현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베끼려고 해도 베낄 곳이 없었다.
‘음, 좀 찾아볼까?’
태현이 사디크 교단이나 아키서스 교단처럼 마이너하고 이단으로 취급받는 교단만 만나서 그렇지, 대륙에는 멀쩡하고 잘나가는 교단들이 많았다.
데메르 교단이나 타이란 교단처럼 플레이어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교단들!
[데메르 고위 성기사 제논의 권능 사용 영상! 언데드 상대로 1:100!]
[파이토스의 권능 대공개! 대장장이 루카스의 장비 축복! 경매장에서 10억에 팔린 바로 그 장비!]
<교단>하고 <권능>만 검색해도 우르르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태현은 딸깍딸깍하며 뭐 확 끌리는 게 없나 찾아다녔다.
“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