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69화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말하실 때가 아니에요!”
“괜찮아, 괜찮아. 다 거리 봐가면서 하고 있다고.”
태현은 뒤에서 점점 늘어나는 악마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여차하면 케인을 던져줘도 되고, 아직 여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거 하시려는 거 아니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아마 네가 생각하는 거 맞을걸.”
몬스터 몰이!
몬스터들을 한 번에 잡지 않고 주의를 끌어서 계속 따라다니게 한다.
그리고 이제 이걸 싫어하는 놈한테 끌고 가면……!
상대방은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 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몬스터 몰이를 하는 사람이 판온에는 별로 없었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먼저 자기가 몬스터 몰이를 하다 죽을 수 있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몬스터 대군이라면, 자칫 따라잡힐 경우 제대로 망하는 것!
그러나 태현에게는 새로 만든 탈것이 있었다.
태현은 빠른 이동속도와 강력한 지구력을 가진 오토바이 탈것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즉, 몬스터 몰이에 최적화된 탈것이라는 것!
‘여기 평원에 나온 악마들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몬스터 몰이를 할 상황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몬스터 몰이를 하려면 필드도 좀 넓고, 몬스터들이 느리고 많이 나와야 하고…….
필요한 조건이 많았다.
마지막 문제점은 그렇게까지 해서 몬스터를 몰아다 줘도 효과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강력한 몬스터들을 많이 모아서 상대방에게 데리고 가다 보면, 상대방은 벌써 눈치채기 마련!
어지간하면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만만한 몬스터들을 데리고 가면 상대방이 오히려 사냥해 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를 방해하거나 괴롭히고 싶다면, 그냥 PVP에 자신 있는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맺고 공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안 쓰이는 방법에는 안 쓰이는 이유가 있는 법!
그러나 태현은 판온 1 때부터 이 방법을 선호했다.
혼자서 단체를 상대하려면 이런 방법이 필수였던 것이다.
상대 길드가 들어간 던전에 몰래 들어가서 지형지물 바꿔서 도망칠 길을 막은 다음 몬스터 드랍해 버리기!
보스 몬스터 공략하느라 치열할 상황에 뒤에서 몬스터 몰아서 가져다주기!
길드들끼리 붙을 때 몬스터 끌고 와서 드랍해 버리기!
남들이 싫어하는 짓이란 짓은 다 했었던 태현이었다.
판온 1 태현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플레이어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아. 추억 돋네.’
태현은 평원 주변에 나타난 악마가 보이면 일단 뭐든 한 대 치고 보았다.
안 맞을 거리면 다가가서 놈의 주의를 끌었다.
다행히 태현이 눈빛만 보내줘도 악마는 발작하며 덤벼들었다.
[악마가 당신의 기운을 느낍니다. 당신을 죽이기 위해 덤벼듭니다.]
-아키서스! 아키서스!! 아키서스!!!!
정말 원수 부르듯이 울부짖는 그 이름!
“지금 저 악마 전사가 아키서스 이름 부르지 않았나요?”
“착각이겠지.”
어느새 뒤를 쫓아오는 악마들은 군세 수준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쯤 되자 주변에 있던 전원에게 퀘스트창이 떴다.
<악마 군세를 토벌하라-오스턴 왕국 돌발 퀘스트>
차원문을 뚫고 오스턴 왕국에 나타나기 시작한 악마들!
그 악마들이 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악마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악마 군세가 더 커지기 전에 토벌하라. 빨리 토벌하지 않으면 상황은 어떻게 악화될지 알 수 없으니.
보상:?, ???
뒤를 쫓던 쑤닝 길드도 그걸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저놈들 뭐 하는 거냐? 왜 일부러 악마들을 더 끌고 오는 거지?”
“저희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저러는 거 아닙니까?”
“정신 나간 놈이 아니라면 어떤 놈이 저런 짓을 해?!”
쫓아오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악마 군세를 만들어서 쫓아오게 한다니.
정신 나간 놈도 저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쑤닝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쫓기고 있던 김태현 놈과 우드스탁 길드를 습격해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것이었다.
김태현을 잡으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잡는 건 무리겠지. 놈이 도망칠 테니까.’
어쨌든 간에 쑤닝은 태현을 고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재수 없고 싫어도 실력은 진짜!
이 자리에서 김태현의 편을 든 우드스탁 길마와 길드원들을 공격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연합에 있는 길드들도 이걸 본다면 나중에라도 김태현과 손을 잡을 생각은 들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태현이 요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쑤닝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우드스탁 길마가 갈 수 있는 길은 막고 있지?”
“네! 저놈들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우리가 먼저 막을 수 있습니다!”
우드스탁 길마가 갈 만한 요새나 마을은 미리 파악해 둔 상태.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거기로 갈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쑤닝은 침을 삼켰다. 오히려 저렇게 나오니 더 수상해 보였다.
분명 저렇게 주의를 돌리다가 어느 순간 파고들 것이다!
쑤닝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놈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한계가 왔겠지! 어디로 가냐?”
“놈이 가는 방향에 있는 곳은…… 어…… 카달타 성입니다!”
“카달타 성?”
쑤닝은 처음에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당연했다.
쑤닝 길드가 점령한 곳이었으니까!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성문을 열고 나갔다가 태현 파티에게 성을 일시적으로 뺏겼던 걸 포함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궤도에 오른 영지였다.
“어, 어? 카달타 성? 걔네들이 왜 거기로 가?”
“어…… 그게…….”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깨달았다.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저 XX-XXX-XXX들이?!?!?!”
쑤닝이 비명을 질렀다.
* * *
“멈춰라, 김태현! 멈춰라!!!”
뒤에서 마법을 사용해 증폭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예?”
“증폭 마법 스크롤 내놔. 있을 거 아니야.”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마법 스크롤은 가격이 쌌다.
대형 길드까지 안 가더라도 파티 많이 하는 플레이어라면 몇 개 정도는 갖고 다니는 아이템!
그걸 또 태현은 우드스탁 길드에서 뜯어서 썼다.
‘남의 걸 자기 것처럼 쓰는 데에는 정말 도가 텄다!’
케인은 그걸 보며 감탄했다. 자기도 있는데 그걸 또 남한테서 뜯다니…….
[음성 증폭 마법 스크롤을 사용했습니다. 잠시 동안 목소리가 커집니다.]
“뭐냐, 쑤닝? 나 지금 운전하느라 바쁜데.”
“당장 멈춰라!”
“네가 멈추라고 하면 멈추겠냐?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건 아니지? 뭐지? 자기과시?”
태현의 말에 수레에 타고 있던 길드원들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쑤닝은 얼굴이 붉어져서 외쳤다.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 줄 아냐?”
“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내가 한 번 점령한 적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쑤닝은 확신했다.
태현은 애초에 이러려고 했던 것이다.
몬스터들을 잔뜩 모아서 쑤닝 길드의 영지에 뿌려 버린다!
“멈춰라, 김태현! 협상을 하자!”
“협상?”
“그래! 방향을 틀어라!”
“넌 협상의 뜻을 모르냐? 서로 이득이 있어야 협상이지. 너만 좋잖아!”
“방향을 틀면 거기 있는 다른 놈들을 안 건드리겠다!”
쑤닝은 이를 갈며 말했다.
태현은 여기서 빠져나갈 자신이 있더라도, 지금 여기에는 우드스탁 길드원들과 파워 워리어 길드원까지 있었다.
그들까지 지키면서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도면 받겠지!
“건드려!”
“……뭐?”
“건드리라고! 난 이놈들 별로 신경 안 써!”
“…….”
쑤닝을 포함해서 수레에 타고 있던 모두가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얘네들 살린다고 나한테 경험치 하나 들어오는 거 아닌데 뭐하러 그러냐? 다른 협상을 해봐! 좀 있으면 도착한다!”
“김태현!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이 양보한 거다! 카달타 성에 도착하면 뭐가 달라질 거 같냐?”
“달라질 거 같은데?”
성질을 긁는 태현의 말에 쑤닝은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때와는 절대 다르다!”
“네가 성문 열고 나와서 뺏겼던 그때?”
쑤닝 길드원들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 이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한둘이 아닌데, 아주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악마 군세들을 데리고 가봤자 넌 성 앞에서 막힌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방향을 틀어라! 너는 몰라도 다른 놈들은 다 죽는다!”
“난 산다고? 그러면 됐네!”
“야, 야! 야!!!”
태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속력을 올렸다.
저 멀리 카달타 성이 눈에 들어왔다.
쑤닝이 귓속말을 보냈는지 성문이 닫히고 성벽 위에는 길드원들이 황급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우드스탁 길마는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쑤닝이 저렇게 양보할 때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네가 그러니까 우드스탁 길마인 거지. 이 케인보다 못한 놈아.”
“…….”
영문을 모를 욕이지만 뜻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남이 불리할 때 더 밟아줘야 하는 거야. 진화타겁 모르냐?”
“아니, 그래도…… 저놈 말도 맞잖아. 카달타 성은 만만한 곳 아니라고. 거기서 막고 버티면 우리가 오히려 포위당할 수도 있어!”
카달타 성은 예전의 부서지고 망가진 폐허가 아니었다.
이미 보강을 끝낸 상태!
그런 성에서 태현을 막고 버티면, 뒤에서 쫓아오는 악마들한테 역으로 포위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참사!
“성문을 깨뜨리면 되지.”
“뭐? 성문을 뭐로 깨뜨리려고? 아, 폭탄?”
“폭탄으로 박살 내면 너희들은 무사할 거 같냐?”
“…….”
“보고나 있어.”
가까워지자 쑤닝 길드원들이 성벽 위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파파파파파팍!
쏟아지는 화살들과 마법 공격.
태현은 바로 맞받아쳤다.
-아키서스의 축복!
짧은 시간 동안 태현의 행운을 공유하는, 사기적인 단체 버프 스킬.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으아…… 어?”
비명을 지르던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공격이 다 빗나갔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바로 지금!’
태현은 오토바이에서 빠르게 뛰쳐나갔다.
그림자 도약 스킬을 사용한 곡예!
전속력으로 달리는 탈 것에서 뛰쳐나가는 건 목숨을 건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태현은 스스로를 믿었다.
손에 든 것은 고대의 망치.
이제까지 수많은 오브젝트들을 박살 낸 공성병기였다.
‘자, 가자…… 어?’
태현은 멈칫했다.
성문 주변이 슬라임으로 뒤덮여 있던 것이다.
‘이게 뭔……?!’
꽝!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요란하게 들린 소리가 민망하게 느껴지는 메시지창이 떴다.
뒤의 수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아직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성문이 흔들렸어!”
“한 방만 더 때리면 깨질 거야!”
“…….”
태현은 당황했다.
설마 이런 성문을 해놓을 줄이야!
요즘 건축가 플레이어들에게 유행하는, 성문의 물리 공격 내성을 올리기 위한 슬라임을 사용한 건축법이었지만, 그걸 태현이 알 리 없었다.
“음, 얘들아.”
“……?”
“미안.”
이렇게 된 이상 우드스탁 길드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
“뭐, 뭐라는 거야? 농담이지?”
“아니…… 나도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태현!
폭탄을 설치하거나, <살아 움직이는 폭탄> 스킬을 쓰거나, 뭘 하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너무 아슬아슬하게 악마 군세를 몰아온 게 탈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수레를 끊고 하늘로 튈 수밖에!
덜커덩!
그 순간 성문이 열렸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