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68화
“막아! 처리해!”
우드스탁 길마가 외치자 길드원들은 허겁지겁 수레 안에서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성수에, 축복 관련된 소모품들을 꺼내는 길드원들!
아무리 봐도 악마들과의 싸움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너희들은 왜 이렇게 태연하냐?”
“여기에 악마가 나타난 게 오늘인 줄 아십니까? 꽤 됐다고요!”
우드스탁 길드원은 태연한 태현의 모습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기는 가슴 떨려 죽겠는데 뭐 저런 태연한 모습이란 말인가!
“음, 내 잘못은 아니겠지?”
“태현 님 잘못 맞는 거 같은데요.”
마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이다비와 케인이었기에 태현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건 네가 오스턴 왕국을 말해서 일어난 퀘스트 같다!
그러나 태현은 굴복하지 않았다.
“아니, 악마는 언제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고. 대륙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게 악마잖아. 돌발 퀘스트도 그래서 생기는 거고. 저번 아발랍 시 기억 안 나? 거기 총독도 악마였잖아. 딱히 내 탓은 아니라니까?”
“일단 그런 악마들은 돌발 퀘스트로 끝나는데 여기 오스턴 왕국 주변 악마들은 돌발 퀘스트로 안 끝났고요, 주기적으로 마계로 차원문이 열리고요, 그리고 가장 큰 건 저기 악마들이 태현 님한테만 달려오고 있어요.”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개 형태의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태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싸우다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저 악마들은 김태현만 쫓는 거지? 다른 플레이어들도 있는데?
“나 때문이 아니라 아키서스 때문일 거야. 케인을 한 번 던져보면 알 수 있을 텐데.”
“뭔 개소리야?!”
다른 오토바이를 몰던 케인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여기서 던져진다면 무조건 집중 공격!
뒤에서 쫓아오는 오크들과 악마들이 사이좋게 공격을 해올 것이다.
“진정하세요. 태현 님이 농담을…… 농담이 아니군요?”
“음. 사실 반쯤 진지하게 말한 건데 저렇게 반응하니까 대답하기 뭐하군. 어쨌든 아직 그렇게 나쁜 상황 같지는 않은데?”
우드스탁 길드원들이 악마들에게 견제 공격을 퍼붓는 동안, 뒤에서 쫓아오던 오크 아저씨들은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들도 악마가 나타난 걸 발견한 것이다.
“속력 줄여! 악마다!”
“아오, 이 오스턴 왕국은 진짜 저주받은 땅이라니까! 내가 예전에 형님한테 부동산 사기당한 땅도 이 정도로 개떡 같지는 않았다!”
“너는 왜 또 그 이야기를 하고 그래?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 그래서 물어줬잖아!”
“물어줬어도 제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둘 다 시끄러워 이것들아!”
데리고 왔더니 예전 일들로 아웅다웅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에 김태산이 열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스턴 왕국에서 돌아다니는 그들은 악마들의 위험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보통 필드의 몬스터보다 몇 배는 강한 수준!
게다가 한두 마리 보인다고 방심을 하면 안 됐다.
싸움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주변에서 다른 악마들이 끼어드는 것이다.
보통 몬스터와 달리 차원문이 열리고 마계에서 튀어나오는 악마였기에 가능한 일!
오스턴 왕국에서 악마가 나타난 지 꽤 됐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악마들에게 죽어 나가는 플레이어들이 꽤 있으니,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
“봐. 저쪽도 속도 줄이잖아.”
“그렇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닌 것 같아요.”
“……?”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오크 아저씨들, 왼쪽 언덕 위에서 나타난 악마들.
또 뭐가 있나?
오른쪽 언덕 위에서 어딘가 많이 본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누구였더라?”
“쑤닝, 쑤닝! 인마! 그렇게 엿을 먹여놓고 까먹냐?!”
케인이 기가 막혀서 외쳤다.
“아. 맞다. 쑤닝.”
쑤닝이 길드원들을 데리고 쫓아 나온 것이다.
우드스탁 길마가 그걸 보고 이를 갈며 외쳤다.
“쑤닝!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배신한 놈을 처리하러 왔을 뿐이다.”
“배신은 무슨! 너한테나 배신이겠지. 다른 길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만 안 했을 뿐 속으로는 네놈을 배신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김태현하고 붙어먹다니!”
쑤닝의 비난에 태현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거, 안 도와준 놈이 말이 너무 심하네.”
“닥쳐라! 이 자식!”
쑤닝은 방방 뛰었다.
사실, 오늘 이 공격은 쑤닝에게 이익이 없었다.
우드스탁 길드원들을 잡아서 아이템을 얻을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는 잃는 게 더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길드원들을 이끌고 나타난 건 단 하나 때문!
바로 태현을 향한 원한 때문이었다.
“저놈도 아주 징글징글한 놈이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글쎄. 난 사실 다른 놈들이 안 끼어들 거라고 생각하고 여기로 온 거였거든.”
태현은 달려드는 악마 사냥개를 향해 머스킷을 한 방 먹여줬다. <행운 부여> 스킬 덕분에 추가로 신성 데미지가 들어갔다.
파지직! 파지지지직!
용용이가 덩치를 부풀리며 주변에 벼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마 사냥개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주춤했다.
-주인이여, 시간을 벌었다!
-음. 뭐 그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잘 했다.
-…….
“그러게 쑤닝하고 좀 친하게 지내지 그랬어.”
“저놈이 온 건 너 때문이라고!!”
책임을 그한테 돌리는 태현의 모습에 우드스탁 길마는 가슴을 치며 외쳤다.
“원래 따돌린 다음에 어디로 가려고 했었지?”
“일단 친구가 점령한 요새로 갈 생각이었지.”
손해가 겁나서 우드스탁 길마를 도와주러 오지는 않았지만, 추적을 따돌리고 온다면 안으로 들어오게는 해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친구, 진짜 친구 맞지? 너 혼자만 친구로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아, 아니거든?!”
“그런 놈이 도와주러 안 오냐? 확실하게 확인해. 거기까지 갔는데 걔가 문 닫으면 나는 안 죽겠지만 네 길드원들은 여럿 죽을걸.”
“그런…… 잠깐만. 여기는 네가 데리고 온 길드원들도 있잖아.”
“쟤네는 죽어도 상관없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태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헤헤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우드스탁 길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놈……!’
태현이야 어지간한 포위가 있어도 몸을 빼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케인이나 이다비까지 포함해서!
“아까 물어봤다. 오기만 하면 들여보낸다고 했어. 저 무식한 오크 새끼들하고 쑤닝 놈도 미치지 않고서야 저 인원으로 갑자기 요새 공성전을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러면 따돌리는 걸 포기하고 네 친구 요새로 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지?”
“……저기.”
우드스탁 길마가 가리킨 곳은 쑤닝 길드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태현은 그걸 보고 감탄했다.
우드스탁 길마를 도와줄 만한 길드를 미리 알아내서, 그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은 것이다.
“이야, 쑤닝. 많이 성장했네.”
“지금 칭찬할 때냐!”
“뭐 어떡하겠어. 저기로는 못 가겠네.”
태현은 볼을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 요새에 찾아온 건 오리하르콘 화살의 제조법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목적은 달성한 상황!
우드스탁 길드를 도와준 건 6층 던전의 보상이 탐났을 뿐. 보상도 다 챙겼으니 튀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수레를 떼어버리고 이다비, 케인만 데리고 날라 버리면…….
태현이 그런 흉악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김태현이라면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고민하는 사이, 언덕에 모인 악마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악마 사냥개들뿐만 아니라 야생 악마 전사들까지 추가되고 있었다.
그 흉흉한 모습에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쑤닝 길드 모두 표정을 찡그렸다.
“저거 저렇게 많이 모이면 귀찮은데.”
“괜히 자극하지 말아야겠다. 더 많아지면 몬스터 습격 퀘스트까지 뜨겠네.”
초조해하는 건 우드스탁 길마도 마찬가지였다.
“야, 야! 그냥 빨리 튀자! 저 두 놈도 지켜만 보고 있잖아! 여기서 괜히 있다가 습격 퀘스트까지 뜨면 어쩌려고!”
“저 인간들이 지켜보는 건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거든? 우리가 움직이면 쟤네들이 퍽이나 가만히 있겠다. 그보다 습격 퀘스트는 뭐냐?”
몬스터 습격 퀘스트.
오스턴 왕국에 악마들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생긴 돌발 퀘스트 중 하나였다.
규모가 좀 클 뿐!
필드에 갑자기 나타나서 돌아다니던 악마들이 하나둘씩 뭉치고, 그런 상태에서 안 잡히고 계속 숫자가 늘어나면…….
주변 플레이어들에게 메시지창이 떴다.
악마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서 군세가 되어 주변을 습격하러 온다고!
이때 처리를 못 하면 주변 요새, 마을, 도시, 성을 차례대로 습격을 해댔다.
때문에 이런 퀘스트가 뜨면 주변 길드나 플레이어들은 기를 쓰고 사냥에 나섰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긴 설명을 다 들은 태현은 무릎을 쳤다.
“그런 좋은 퀘스트가!”
“뭐? 너 제대로 들은 거 맞냐? 여기 계속 있다가는 악마가 늘어나서…….”
“가자!”
“???”
태현은 오토바이를 다시 밟았다.
네 방향 중 비어 있는 곳이 아닌, 악마들이 있는 곳으로!
“야, 야! 저기 악마들 있어!”
“보인다! 적당히 견제만 해!”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대체 태현이 왜 이러나 싶었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갖고 있는 아이템들을 사용해서 악마들에게 공격!
각종 신성 속성이 담긴 공격이 날아오자 악마들은 거친 소리를 내며 피했다.
덕분에 포위망에 구멍이 뚫렸다.
“에이! 비켜!”
케인은 오토바이를 탄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다.
곡예에 가까운 묘기였지만 케인은 정확히 명중시켰다. 공격을 맞은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대단해!”
“역시 케인 님!”
“케인! 케인! 케인!”
길드원들이 케인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자 케인이 살짝 기쁜 표정을 지었다.
참 오랜만에 듣는 칭찬!
“케인 이 자식아! 악마를 잡으면 어떻게 해!”
“잡, 잡아야 하는 거 아냐?”
“잡지 말고 견제만 하라니까!”
“???”
그렇게 태현이 포위망에 있던 악마들을 데리고 뚫고 나가는 동안, 다른 추격자들도 쫓을 준비를 했다.
“쫓아! 쫓아!! 반드시 쫓으라고! 어차피 저 자식들은 갈 곳도 없어! 쫓다 보면 잡는다!”
쑤닝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출발했다.
그 와중에도 우드스탁 길드가 갈 만한 요새의 방향을 막으며 쫓는 걸 보니, 정말 대단한 집념이었다.
그러나 김태산은 멈칫했다.
“……잠깐만. 뭔가 이상하지 않냐?”
“네?”
“태현이 저놈이 왜 저기로 튀었지? 저기 빈 곳으로 튀는 게 낫지 않나? 굳이 악마들한테 얻어맞으면서…….”
“우리도 악마들을 상대하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아냐. 오토바이 속력이라면 그냥 더 빠르게 뚫고 나가는 게 나. 태현이 놈이 그런 걸 모를 리가 없는데…….”
김태산은 직감을 믿었다.
아들놈이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으으음…… 으으음…….”
김태산은 갈등했다.
불안했지만 놓치고 싶지 않다!
그걸 깨달은 양성규가 옆에서 말했다.
“형님, 저기 쑤닝 놈들도 끼어들었는데 그냥 여기까지만 하시죠. 원래 계획대로 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태현이 저놈은…….”
“태현이는 따로 혼을 내시면 되잖습니까.”
“그렇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양성규의 말에 김태산은 손을 들었다.
“우리는 이만 돌아간다!”
우드스탁 길드의 요새를 꿀꺽 삼켰으니 원하는 건 이미 얻은 셈이었다. 김태산과 오크 아저씨들은 늑대의 머리를 돌렸다.
“응? 안 쫓아오시나?”
태현은 뒤에서 김태산이 안 쫓아오는 걸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차라리 잘됐네. 이거까지 당하셨으면 진짜 2단계 갔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