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67화
이다비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아버지하고 이렇게 게임에서 싸우시면 집에서 안 불편해요?”
“응? 맨날 싸워서 이제 별로…….”
“…….”
“그보다 아버지가 어떻게 눈치채셨는지 모르겠네.”
“가족의 감이죠.”
“흠, 확실히 아버지가 그런 감이 좀 뛰어나긴 하지.”
“가족이니까요.”
“내가 순댓국집에서 뒷담 까니까 바로 내가 한 걸 알아차리시더라.”
“…….”
“아버지가 먼저 했거든?”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거 맞아요?”
“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저 정도는 삐짐 단계로 보면 1단계 정도거든.”
“1…… 1단계?”
“1단계는 내가 아버지를 게임에서 골려 먹거나, 스파링에서 안 봐주고 이기거나, 그러면 나오는 삐짐 단계지.”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밥을 먹을 때 내 앞에 놓인 반찬을 가져가신다거나, 스파링할 때 나를 안 부르고 친구분 체육관에서 선수를 부르거나, 내가 씻을 때 밖에서 불을 끄시거나 하시지.”
‘……쪼잔해!!’
이다비는 환상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뭐 저런 부자가 있단 말인가!
“2단계는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2단계는 내가 방송에 나와서 전국적으로 놀려먹거나, 아버지 단골집에 가서 뒷담을 하다 걸렸을 경우 발동되는 단계인데.”
태현과 이다비가 운전을 하며 떠드는 걸 본 길드원들은 궁금해졌다.
과연 저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저렇게 진지하게 떠드는 걸까!
“지금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고 있을 게 분명해!”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는 우드스탁 길드원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한가롭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럴 경우에는 아버지가 좀 직접적인 복수에 나서지.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찾아서 나한테 시키거나 하거든.”
“주로 어떤 일들이요?”
“예전에는 자기 게임 계정 대신 하라고 했었는데, 내가 하도 잘하니까 이제는 그런 거 안 시키고 그때그때 고민하시는 거 같아. 저번에는 방송에 나오시더라고. 원래 그런 거 안 좋아하시는 분인데…….”
이다비도 기억하고 있었다.
태현을 험담하려고 나왔다가 졸지에 훈훈한 부자(父子) 사이로 이미지를 만들게 된 김태산을!
그다음부터 김태산은 방송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기에 방송국 측에서는 ‘한 번 더 나와 주시죠’라며 이것저것 제안을 해왔지만, 김태산은 부끄러워서 거절했다.
“그, 그렇군요. 설마 3단계도 있나요?”
“3단계는 정말 삐지실 때인데, 내가 가라는 대학은 안 가고 다른 대학을 갔을 때 겪어봤지. 이럴 때 아버지는 치사하게 어머니를 동원하시는데…….”
쉭-!
쾅!
[목표를 쫓아다니는 마법 투창을 회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운전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아니, 뭘 이런 걸 던지시고 그래요?”
“시끄러, 인마!”
수레 옆으로 빗겨 지나가는 투창.
강력한 스킬이 걸려 있어서 박히는 순간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놈이 감히 하늘 같은 아버지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아?!”
“음,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둘의 대화를 듣던 오크 아저씨들이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태현이 네가 잘못했어!”
“맞아! 형님께서 얼마나 섭섭하시겠니!”
듣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참견!
앞에서 쫓던 김태산이 호통을 내질렀다.
“모두 조용히 해!”
“모두들 조용히 하란다!”
“형님께서 조용히 하시란다!”
“형님께서 태현이하고 혼자서 말싸움하고 싶다고 하시니까 모두 조용히 하란다!”
“…….”
김태산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 눈치 없고 도움 안 되는 징글징글한 놈들!
둘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오스턴 왕국의 평야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뭐? 우드스탁 길마 놈이 빠져나왔다고? 용케 빠져나왔군.”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추격전을 벌이고 있답니다.”
“그래? 내버려 둬. 그 재수 없는 놈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쑤닝은 아직도 원한을 갖고 있었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연합이라고 해도 그들은 서로 경쟁자였다. 상대가 세력을 잃는다면 그만큼 이득이었다.
“그, 그런데 그게…….”
“……?”
“김태현하고 같이 도망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그게 뭔 개소리야!”
쑤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못된 정보가 분명했다. 우드스탁 길마가 김태현하고 같이 도망치고 있다니!
“그게 말이 돼?!”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로 말이 안 되는 말!
일단 김태현 그놈이 우드스탁 길마를 도와준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두 번째로 김태현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걸 우드스탁 길마가 덥석 받아들일 리 없었다.
‘머리가 있는 이상, 수상하게 생각을 해야지!’
그러나 연달아서 정보가 들어왔다.
들판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신나는 추격전을 벌이는 영상을 찍어서 올리자, 쑤닝은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우드스탁 길마가 김태현하고 같이 있는 것이다!
겉모습이야 변장했지만 저렇게 오토바이를 만들 수준의 기계공학 플레이어도 얼마 없었고, 김태산이 김태현의 이름을 외치며 달리는 것도 영상에 잡혔다.
게다가 동영상을 본 쑤닝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저런 짓을 할 놈은 김태현밖에 없다고!
-미쳤냐!? 김태현하고 같이 손을 잡다니!
쑤닝은 바로 우드스탁 길마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안 미쳤는데?
그러나 날아오는 건 냉정한 대답이었다.
-너 이 자식! 김태현이 널 속이는 거야! 멍청한 놈아! 당장 그놈을 공격해!
-개소리하고 있네. 그래서 김태현은 날 도와주고 넌 거기서 짖고 있냐?
-……!
쑤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우드스탁 길마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쑤닝은 결국 안 도와주고, 도와주러 온 건 태현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의 검은 속셈에 몇 번이고 당한 쑤닝에게 우드스탁 길마는 답답해 보일 뿐이었다.
-이 멍청한 놈아! 그게 속임수라고! 김태현이 그냥 도와주는 거 같냐!
-아, 그러시겠지. 도와주는 게 속임수고 안 도와주는 건 날 위한 거냐? 개소리는 거기까지만 해라. 쑤닝.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걸로 확실해지는군. 네가 김태현한테 먼저 시비를 털었다가 져서 이러는 거지?
-뭔 XX 같은 소리야!? 너 미쳤냐!?
-미친 건 네가 미친 거겠지. 김태현한테 진 거 때문에 아주 미쳐 버렸군. 어쨌든 쑤닝, 이번에 도와주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당연히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데 네 말 따위를 들을 필요도 없지. 꺼져!
띠링-
마지막 귓속말과 함께, 우드스탁 길마가 쑤닝을 차단했다는 메시지창이 떴다.
쑤닝은 부들부들 떨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이 상황 그 자체였다.
이렇게 된 이상 우드스탁 길마는 어떤 설득도 듣지 않을 테니까!
그 같아도 그럴 것이다.
한 명은 도와달라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고, 한 명은 찾아와서 도와줬으니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후자가 예뻐 보일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개 같은! 우드스탁 길드 놈들을 도와줬어야 했어!”
“진정하십시오. 우리를 돕지 않은 놈들을 도울 수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그 김태현 놈이 그사이 우드스탁 길마하고 붙어먹었단 말이다! 이 더럽게 잔머리 잘 굴리는 치사한 놈! 프리카 대륙에서 투기장 대회나 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쑤닝은 이를 박박 갈았다.
남들이 투기장 대회다, 세계 최고 고수를 가린다, 이러는 동안 쑤닝은 힘을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투기장 대회를 하다 보면, 원래 캐릭터의 성장은 느려지게 되어 있었으니까.
태현도 그 대회에 나간다는 걸 알고 아주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 나타나다니.
“일단 길드 연합에 말하시는 게 어떨까요?”
“길드 연합에?”
“예. 우드스탁 길마가 김태현하고 붙은 건 확실하잖습니까. 증거도 많으니. 우드스탁 길마를 궁지에 몰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건 그렇지.”
쑤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한 건 분한 것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드스탁 길마를 공격하는 것!
태현과 붙은 이상 그도 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정도는 태현도 예측하고 있었다.
-우드스탁 길마가 김태현하고 붙었다! 배신이다!
-그게 왜 배신이지? 김태현이 나를 도와준다고 해서 도움을 받은 것뿐인데?
-뭐, 뭐라고? 우리 연합이 생길 때 일이 기억 안 나나? 김태현한테 당해서…….
-그건 네 사정이고. 여기 길드 중에 김태현한테 안 당한 길드가 더 많은 거 모르나?
-!
-뭐, 그러면 물어보지. 여기 길마 중에서 김태현과 붙은 나를 용서 못 하고 선전포고를 할 사람 있습니까?
-흠흠, 뭐 그런 것까지…….
-맞아. 도움 정도 받을 수 있지.
-이번 일은 쑤닝이 좀 예민한 거 같은데. 우드스탁 길마가 이해해 줘. 쑤닝이 좀 호되게 당했잖아.
-하하. 이해합니다.
길마들의 말을 보고 쑤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 새끼들이……!
* * *
“정, 정말 대단한데? 네 말대로 될 줄이야.”
“아, 그렇다니까. 너 도와주기 싫어서 미적거린 놈들이 너 공격하려고 움직일 거 같냐? 그런 건 쑤닝이나 할 짓이고. 다들 자기 영역 관리하느라 바쁘다고. 영지 관리가 그렇게 다른 곳에 힘쓸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거든.”
다른 길드들은 지금 한 조각을 떼어 잡은 영지를 관리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길드를 도와주는 것도, 다른 길드와 싸움을 만드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특히 그 길드에 태현이 붙었다면 더더욱!
당연히 쑤닝의 제안을 받아줄 길드는 없었다.
“그런데 그러면…….”
“……?”
“저 뒤에 오크들은 어떻게 떨어뜨려 낼 생각이지?”
그랬다.
태현과 우드스탁 길마가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동안에도, 오크 아저씨들은 아직도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 시간 넘게 쫓아오고 있는 근성!
“아니, 나는 사실 저 오크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줄 알았거든?”
기계공학 탈것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생물형 탈것보다 지구력이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이런 추격전에서는 압도적인 장점!
그런데 저 늑대들은 대체 뭘 먹었길래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안 나가떨어진다! 저게 얼마짜리 늑대인 줄 아나!”
“아, 그랬냐? 그래서 이다비가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군. 음…… 뭐 안 되면 싸워야지.”
“그런데 여기가 어디인 줄은 아나?”
“오스턴 왕국이잖아. 응?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언덕인데. 색이 좀 다르다는 거 빼고는.”
“여기 네가 사디크 화염을 끈 곳이잖아…….”
우드스탁 길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남들은 한 번 깨면 한 몇 년은 자랑할 대형 퀘스트를 깨놓고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기억 못 하는 모습이라니!
“아, 그곳이었나? 하도 넓은 곳에 불이 나가지고…… 그때 내가 좀 정신이 없기도 했고. 오스턴 왕국에 와서 좋은 꼴을 본 적이 별로 없다니까.”
사디크의 화염이 펼쳐졌던 초원이라니.
태현은 갑자기 감상에 젖었다.
왕자들끼리 싸움 붙이고 오스턴 왕국의 도시에서 얼마나 쏙쏙 잘 빼먹었던가!
“그거 딱히 그렇게 애틋한 표정을 지어야 할 기억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남의 기억에 왜 참견이야?”
“그야 저기서 우리를 많이 노려보니까요.”
“……?”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평화로웠던 평원은 어두운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사디크의 화염이 스치고 지나가서 그런 줄 알았는데…….
-크르릉……!
-신성한 힘이 느껴진다…… 특히 저주받은 신성한 힘이……!
언덕 위에 네 발로 걷는 거대한 개처럼 생긴 악마들이 빠르게 달리는 태현 파티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태현은 그걸 보고 손바닥을 쳤다.
“아, 오스턴 왕국에 악마들이 자꾸 나타난다더니 저거였군!”
-크왕!
태현의 말과 함께 악마들까지 위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