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63화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선배님. 이런 생각을 하실 줄이야.”
현실성이 있든 없든, 이 정도로 미래를 보고 있는 이종국의 시야에 배장욱은 감탄했다.
“뭘, 자네도 나이 들면 이 정도는 하게 될 거야.”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적으로 문제가 좀 많아 보이는데요.”
“말해보게.”
“일단 지금 김태현은 계약한 회사가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녹화한 게임 영상을 보내주면 우리가 편집해서 내보내는 형식이었으니 우리하고만 계약해도 됐습니다. 그렇지만 정식으로 방송을 뛰려면 든든한 회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방송국만 상대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이미 SI 엔터 대표와 이야기를 끝내놨지. 그쪽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더군.”
배장욱의 입이 벌어졌다.
차원이 다른 이종국의 활동력!
“S, SI 엔터라면…….”
중소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이미 뛰어난 가수나 배우들을 데리고 있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였다.
뒤를 받쳐줄 회사로는 충분하다 못해 과분할 정도!
“SI 엔터가 그 정도로 김태현을 고평가한 겁니까?”
게임에서야 온갖 칭송을 다 듣지만, 방송계 쪽에서 아무것도 한 적 없는 태현을 저렇게 고평가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하고 친하잖나. 내가 잘 말하기도 했지. 가능성이 보이는 원석이라고.”
“그, 그래도 좀 신기하군요.”
“하긴. 그 까다로운 대표가 이야기를 듣더니 좀 빠르게 수긍하기는 했지. 미리 알고 있던 거 아닐까?”
“그분이 게임도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조카가 나오는데 관심이 없지는 않았겠지. 어쨌든 회사는 됐나?”
“예, 예.”
“또 남은 문제는?”
“그…….”
배장욱은 말끝을 흐렸다.
어쩌면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김태현이 방송에 관심이 없습니다.”
“……뭐라고?”
“게임 영상도 거의 손이 안 가니까 하는 거지, 제가 했던 제안들은 다 거절했었습니다.”
예전에 배장욱이 태현에게 슬쩍 말을 꺼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게임 프로에 좀 나가볼 생각이 없냐고.
태현만 나가준다면 게임 쪽에서는 특급 게스트 아닌가.
그러나 태현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단지 귀찮아서!
“자네가 제대로 설명했나?”
“근데도 귀찮다고…….”
“허…….”
이종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라니.
젊은 게이머의 꿈 아닌가!
게이머들 사이에서만 알려지는 게 아닌, 공중파 방송으로의 진출!
“집이 워낙 잘사니 아쉬운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이종국은 배장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정말이십니까?!”
배장욱은 놀란 눈으로 이종국을 쳐다보았다.
역시 대선배의 경력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이런 문제의 해결책도 갖고 있다니!
“그래. 자네가 가서 설득하게.”
“……예??”
“자네가 가서 설득하게.”
“아, 아니. 제 말을 안 듣는…….”
“그렇다면 들어줄 때까지 설득하게.”
“…….”
잊고 있었다.
온화해 보이지만, 이종국 이 사람도 만만치 않게 열혈이라는 것을!
까라면 까라!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배장욱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자리에서 일어서며 배장욱은 속으로 의문을 가졌다.
이종국은 태현의 뭘 보고 저렇게 확신하는 걸까? 그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일까?
* * *
“흠흠, 그래서…… 그렇군.”
“그렇습니다! 어이구, 정말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오스턴 왕가에서 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미친 소리는 하지 말고.”
“…….”
태현은 오스턴 왕궁에는 한참 후에 갈 생각이었다.
그만큼 찔리는 게 많았던 것이다.
[대장장이 곤르도에게 <왕가의 오리하르콘 화살> 제작법을 직접 지도받습니다.]
[제작 시 대장장이 곤르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주괴로 만들 수 있는 <왕가의 오리하르콘 화살>은 한 개 반입니다.]
“아니 뭔 한 개 반?!”
태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더 어이가 없었다.
던전의 6층을 깨자고 해놓고 대장장이 NPC와 앉아서 이것저것 만들고 있는 태현!
게다가 대장장이 곤르도의 <조립식 강력 용광로> 아이템까지 사용해서 자리를 깔고 있었다.
“야! 그걸 네가 왜 써!”
만약을 위해 아껴둔 소모 아이템, 조립식 강력 용광로!
사용하면 자리에 일시적으로 작은 용광로가 생겨났다.
장비 수리, 강화에 추가 버프를 주는 강력한 아이템!
그런 걸 태현이 써버리니 우드스탁 길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태현이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곤르도가 나섰다.
“김태현 백작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나섰는데 그게 무슨 무례입니까! 어서 사과하십시오!”
“…….”
우드스탁 길드원들의 눈빛이 멍해졌다.
그렇게 연계 퀘스트를 고생고생해서 깨 가며 데려왔더니 뭐라고?
세상에 믿을 NPC 하나 없다!
“진정해, 곤르도. 쟤네들이 뭘 알겠어.”
“김태현 백작님!”
“이래서 대장장이들은 힘들다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호흡이 척척 맞는 둘!
“이거 만드는 거나 도와줘. 자.”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왕가의 오리하르콘 화살>을 제작합니다.]
[제작 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땅, 땅, 땅-
‘?!’
태현은 깜짝 놀라서 메시지창을 쳐다보았다.
막대한 행운 스탯 덕분에 저런 실패 관련 메시지창과는 거리가 멀었던 태현이었다.
저런 게 뜨다니!
여유 있게 망치를 휘두르던 태현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윽, 판온 1때 아픈 기억이…….’
판온 1때 대장장이로 했던 태현은 행운도 뭐도 없었다.
그때는 정말 만들다가 망하고 만들다가 망하고의 연속 반복!
지금은 행운 스탯이 있어서 그런 짓을 안 해도 됐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차이였다.
“김태현이 대장장이 스킬이 높다더니…….”
“어느 정도지?”
“중급 정도는 찍지 않았을까?”
“야, 전투 계열 스킬 찍기도 바쁜데 대장장이 스킬을 중급 찍었을까?”
태현이 가차 없이 망치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자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이 상황이 어이없기는 해도, 태현 같은 랭커가 스킬을 쓰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건 드문 기회였던 것이다.
[<왕가의 오리하르콘 화살> 제작에 성공합니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변합니다.]
[칭호:경지에 오른 기계공학 대장장이를 얻었습니다.]
[중급 <날카롭게 갈기> 스킬이 고급 <날카롭게 갈기> 스킬로 변합니다.]
[…….]
[…….]
[라제단 대장장이의 비전 스킬, <불안정한 강화> 스킬을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됐다!’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계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오리하르콘 화살을 만든다면 거의 끝에 오른 중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고급까지 올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
덕분에 레벨 업까지 성공했다.
이름 : 김태현
레벨 : 77
직업 : 아키서스의 화신
HP : 22,540
MP : 22,090
힘 : 478
민첩 : 493
체력 : 548
지혜 : 524
행운 : 3,870
정말 간신히 70대 후반까지 찍은 레벨.
남들은 100을 돌파하고 100 후반을 넘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70 후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끔 울컥할 때가 있었다.
어쨌든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인해 추가 보너스까지.
엄청난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비전 스킬이 <불안정한 강화>지?’
라제단 대장장이.
<장비 위조>나 <장비 강제 착용>이나 <불안정한 장비 제작> 같은 이상하고 독특한 대장장이 스킬을 사용하는 대장장이 직업!
태현은 이 직업의 스킬을 몇 개 얻어서 잘 쓰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비전 스킬 보상을 이런 종류로 받고 싶은 건 아니었다.
기껏 얻는 비전 스킬인데, 다른 좋은 것도 많지 않은가!
고급 마법검 제작부터 시작해서 온갖 게 있는데 왜 하필 라제단 대장장이 스킬?
<불안정한 강화>
‘불안정’ 속성이 달린 장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불안정’ 속성이 달린 장비가 강화될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파괴됩니다.
태현의 얼굴이 X 씹은 얼굴로 변했다.
이게 뭔 극단적인 스킬이란 말인가.
‘이거 쓸 수 있나?’
아마 <불안정한 장비 제작>도 그렇고, 라제단 대장장이의 특징이 이 ‘불안정’ 속성 같은데…….
태현의 속마음도 모르고, 대장장이 곤르도는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김태현 백작님! 고급 대장장이 기술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
“??”
“????”
우드스탁 길드원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방금 뭐라고?
“고급???”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니, 분명 고급이라고 했는데…….”
지금 대장장이 플레이어 중 랭킹 상위권의 플레이어들이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었다.
전투 계열 직업을 가진 태현이 그런 대장장이 플레이어들과 같은 급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는 것!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정말 고급이라고?”
“내가 고급이면 안 되냐?”
“아,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진짜 어떻게 한 거냐?”
우드스탁 길마는 자존심도 버리고 은근슬쩍 다가가서 캐묻기 시작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궁금한 것이다.
대체 어떤 직업이길래 저런 스킬 트리를 찍는 거지?
“간단해.”
“……?”
“열심히 만들고 열심히 쓰면 되지.”
“…….”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해라 같은 소리를 들은 기분!
우드스탁 길마가 따지려는 순간 태현이 말을 막았다.
“그보다 이제 곧 던전 돌아야 하는데 다들 장비 좀 맡겨봐라. 내가 추가로 버프 좀 해줄게.”
“곤르도가 이미 했는데?”
“두 명이서 하면 더 좋잖아. 쟤가 쓰는 버프 스킬이랑 내가 쓰는 버프 스킬이랑 다를 거고.”
“그렇긴 하네.”
우드스탁 길마는 순순히 장비들을 앞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두 대장장이한테 버프를 받으면 좋기도 하고, 태현이 어떤 류의 버프 스킬을 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그걸 보고 있던 케인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저거!’
“야, 너희들도 와서 받아라.”
“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쫄래쫄래 와서 줄을 섰다. 그걸 본 케인은 은근슬쩍 옆으로 거리를 벌렸다.
“케인 씨는 줄 안 서십니까?”
“나, 나는 배가 아파서…….”
“……?”
* * *
“행운? 이건 뭔 효과지?”
“처음 보는 버프인데?”
태현의 버프 스킬을 받은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까지 만나왔던 대장장이들과는 전혀 다른 버프 스킬이었던 것이다.
케인은 우드스탁 길마의 등을 두드렸다.
“힘내라, 짜식.”
“??”
우드스탁 길마는 불쾌하다는 듯이 케인의 손을 쳐냈다.
그로서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케인의 행동!
그러는 동안 태현은 모두 작업을 끝냈다.
사실 케인의 오해와 달리 태현은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인원들은 여차하면 ‘인간 폭탄’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들과 벌써부터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좀 친하게 지내도 됐다.
그들의 장비를 받은 건 스킬 경험치도 쌓고, 우드스탁 정도 되는 길드는 어떤 장비를 쓰나 궁금해서였다.
‘괜찮은 거 쓰네. 물리 방어보다 마법 방어 우선시에, HP 회복 옵션보다 MP 회복 옵션…….’
대형 길드의 길드원들은 보통 공식을 따랐다.
가장 잘나가는, 정석적인 방법!
이것만 봐도 다른 대형 길드원들이 어떤 식의 옵션을 달고 다닐지 대충 예상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