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362화 (362/1,826)

§ 나는 될놈이다 362화

“뭐 하는 거냐?!”

우드스탁 길마가 항의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뭐 하냐니. 같이 손잡은 기념으로 사진 한 방 못 찍어?”

“분명 꿍꿍이가 있잖아!”

우드스탁 길마는 이를 갈며 말했다.

그가 바보도 아니고, 지금 이렇게 사진을 찍는 이유는 뻔했다.

그와 태현이 저렇게 같이 있는 사진을 연합의 다른 길마들이 본다면?

그가 배신을 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황도 그럴듯했다. 다른 길마들이 모두 지원을 거절한 상태니…….

“꿍꿍이라니. 나 참. 그냥 반가워서 사진 찍은 건데? 나 기분 상했어.”

“태현 님, 참으십시오. 태현 님처럼 관대하신 분이 참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현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같잖은 연기를 보자 더 화가 났다.

우드스탁 길마는 짜증을 꾹 참고 말했다.

“이 사진은 절대 공개하지 마라.”

“기분 상해서 공개해 버릴지도 모르겠네.”

“……내가 잘못했으니 공개하지 마라!”

“알겠어. 알겠어. 자. 모두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자고.”

“걸었습니다!”

“봤지? 다들 새끼손가락 걸었네. 믿어도 좋아.”

“…….”

자리에 있던 태현의 파티원들은 모두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우드스탁 길마에게는 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러나 더 할 말이 없었다.

말해봤자 자기 무덤만 파게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알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음, 일단 던전을 마저 깨지?”

“???”

우드스탁 길마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뭐라고?”

“여기 6층을 마저 깨자고. 여기 아직 한 번도 못 깬 지하 던전이라며? 보상이 쏠쏠할 거 아냐.”

“아, 아니…… 지금 위에 상황이…….”

탁-

태현은 우드스탁 길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상황이 위급할수록 침착하게 생각해야 해.”

“네놈…… 설마 네 길드 아니라고…….”

“사람이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네. 야, 지금 내가 너희들을 밖으로 잘 빼돌리면? 여기 던전에 다시 올 수 있을 거 같냐? 다음부터는 최강지존무쌍 길드가 지키고 있을 텐데?”

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탈출하는 데 성공하면, 요새를 탈환하기 전까지는 이 던전을 공략하러 오기 힘들 것이다.

즉, 깨려면 지금이 기회!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렇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마저 공략을 해야 했다.

“어차피 위의 상황은 끝났어. 도망칠 놈들은 도망치고 죽을 놈들은 죽었고. 괜히 위로 빨리 올라가 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니까?”

“윽, 으윽…….”

악마의 속삭임!

옆에서 듣던 케인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야, 근데 왜 쟤네 좋은 일 해주냐?

-무슨 소리야? 던전 보상 같이 먹으려고 하는 건데.

-…….

케인은 감탄했다.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뼛속 깊숙이까지 빼먹는 태현!

우드스탁 정도 되는 길드가 이렇게 공을 들여서 깨려고 하는 던전이라면, 나오는 보상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걸 또 어떻게든 뺏어 먹으려고 저러다니!

“던전을 깨는 동안 위의 놈들이 내려올 수도 있지 않나?”

“그래 주면 우리야 편하지. 시간이 지나서 내려올 테니 몬스터도 다시 생겨 있을 거고, 여기 지형은 숨어서 싸우기 좋은 데다가 아직 다 클리어도 안 됐잖아? 내려오면 쉽게 이길 수 있어.”

“으, 으음, 으음…….”

“나 정도 되는 랭커가 같이 깨준다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잖아?”

“……좋다! 던전을 깨자!”

“잘 생각했어!”

태현은 길마의 등을 두들겼다.

이다비는 길마의 위에 보이지 않는 실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아, 맞다. 던전 깨기 전에 너희 대장장이한테 말 좀 걸어도 되겠지?”

태현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원하던 목적을 손도 안 대고 달성할 생각!

우드스탁 길마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가.”

‘멍청한 놈. 곤르도 성격을 아직 몰라서 저러는군.’

우드스탁 길마가 선선히 양보해 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모시고 있는 대장장이 NPC, 곤르도의 성격이 엄청나게 까다롭고 괴팍했던 것이다.

왕궁 출신인 만큼 실력은 대단했지만,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우드스탁 길드가 관련 퀘스트를 얼마나 깼는지…….

태현처럼 처음 보는 플레이어가 가서 버프 좀 걸어달라고 말을 걸면 욕부터 할 게 분명!

‘크크. 김태현 놈. 기계공학에 대장장이 기술도 좀 한다고 했었지? 망신 좀 당해봐라.’

우드스탁 길마는 기대되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곤르도에게 다가갔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곤르도를 상대할 때 보너스를 받습니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곤르도를 상대할 때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성한 대장장이 칭호를 갖고 있습니다. 곤르도가 당신을 존경심을 갖고 대합니다.]

[사디크의 화염을 막아낸 자 칭호를 갖고 있습니다. 오스턴 왕국의 위기를 막아낸 당신에게 곤르도가 경외를 표합니다.]

[…….]

주르륵 뜨는 메시지창.

그 결과…….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김태현 백작님!”

덥석!

곤르도는 무릎부터 꿇고 태현의 손을 붙잡았다.

“!?!?!?!?”

우드스탁 길마와 길드원들은 그 모습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저 아저씨가 사람 차별하나?!?!

* * *

배장욱은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국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잘 지냈나?”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난 중년 남자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종국 국장.

MBS에서 배장욱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하늘 같은 대선배였다.

“듣자 하니 이번에 기획한 투기장 대회, 아주 잘 나가고 있다며?”

“하하…….”

배장욱은 쑥스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실제로 지금 투기장 대회는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다만…….

“그리고 장욱이 자네가 MBS 소속 팀 멤버에 불만이 있다는 말도 좀 들었지.”

“그, 그건…….”

“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닙니다. 이번 멤버는 좀…… 불안합니다. 물론 화제성이나 인기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5명이 같이 싸우는 게임 아닙니까? 궁합도 생각 안 하고 무작정 붙여만 놓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

하늘 같은 대선배가 그의 말에 동의해 주자, 배장욱은 매우 기뻤다.

“게임 전문 방송국이지만 의외로 게임 자체에 관심을 안 가지는 사람들도 있지. 이번 결정도 그런 사람들이 내린 거고. 그렇게 붙여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닌데…… 그래서, 문제가 심각한가? 장욱이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설마 1회전 탈락이라도 할 거 같나?”

“그건 아닙니다.”

배장욱은 단호하게 말했다.

불안 불안해도, 배장욱은 태현과 이세연이 있는 팀이 1회전에서 바로 탈락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군그래. 우리야 주최 측이긴 하지만 우리 이름을 달고 나가는 팀이 1회전 탈락하면 좀 망신이지 않겠어?”

“그렇습니다.”

“자네가 자신 있어 하니 다행이야. 이봐, 장욱이.”

“예?”

“내가 보기에, 이번 대회는 잘될 것 같아.”

“감,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자네도 좀 귀찮아지겠지.”

“……?”

“계속 PD로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자네도 위를 바라봐야지.”

“……!”

배장욱은 놀란 눈으로 이종국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종국은 승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성공시킨 프로그램이 몇 갠데, 자네가 인맥만 좀 더 있었어도 바로 올라갔을 거야. 이번 대회까지 성공시키면 자네가 싫다고 해도 올라가겠지. 본부장 정도는…….”

“저는 현장에 있고 싶습니다만.”

“이 사람아. 자네가 그러고 싶어도 안 된다니까. 회사도 눈치가 보이는데. 안 그래도 자네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수완과 능력을 보여주는 배장욱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어린놈이, 언제 한 번 잘못 걸려서 망해봐라, 이런 생각을 하는 속 좁은 놈들이지. 이번에 팀원을 구성하는데 입김을 불어 넣은 것도 그쪽이야.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어보겠다는 심산이지.”

“그런…….”

“장욱이, 더 크게 되게.”

“……?”

“이번 대회는 분명 만족스러운 성과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어째서…… 입니까?”

“너무 흥행했거든. 지금 내가 물밑으로 제안을 받은 곳이 몇 군데인지 아나? 심지어 유성그룹 같은 곳에서도 제안이 왔어. 프로게이머 팀을 만든다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할 생각이 있다고.”

“유성그룹은 예전 일 때문에 E 스포츠에는 관심을 끊은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나야 모르지. 그쪽에서는 진지하게 말했으니 믿어도 될 거야.”

“그런…….”

E 스포츠에 학을 뗀 유성그룹까지 다시 제안을 할 정도라니.

“그러면 좋은 거 아닙니까?”

“아니지. 이 정도로 크면 다음 대회부터는 우리가 주관할 수 없을 거야. 아마 판온 회사에서 직접 주최하겠지. 전 세계 규모로.”

“아……!”

너무 흥행했기에, 다음 대회부터는 MBS가 주최하기 힘들다.

배장욱은 바로 이해했다.

“물론 그렇게 되도 자네의 성과는 기록에 남겠지만…… 그 이후도 생각해야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부른 건 제안이 있어서네.”

“무슨…… 제안이십니까?”

“김태현 그 친구, 방송에 내보낼 생각은 없는가?”

“??”

배장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태현이라면 이미 방송에 나오고 있잖습니까?”

“그건 게임 방송이지.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방송도 아니야. 게임 플레이 영상을 편집해서 틀어주는 거잖나.”

“아…….”

“국내 수많은 게이머 중에서 왜 이세연이 특별한 줄 아나?”

“다른 방송을 뚫었기 때문입니까?”

“바로 그렇지. 다른 게이머들은 그걸 못 해. 게임 할 때나 자기 개인 방송할 때는 말을 좀 해도 공중파, 아니 케이블 방송만 나가도 말을 버벅이고 당황한단 말이야.”

“아무래도 방송인이 아니라 게이머다 보니…….”

“변명은 통하지 않네. 물론 판온이 이제까지 나왔던 게임 중 압도적인 게임이기는 하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게임이지. 판온을 아는 사람에게 ‘김태현’, ‘이세연’물어 보면 다 알 거야. 그렇지만 판온을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세연은 알지만 김태현은 모르겠죠.”

이세연은 판온 1때부터 꾸준히 쌓은 인지도로 공중파 방송도 출연을 하는 인기인이었다.

게임을 모르는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나는 그 김태현이라는 친구도 저 정도는 됐으면 하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야 있지. 우리 MBS가 현재 잘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결국 게임 전문이야. 그에 비해 SBC 같은 곳은 워낙 덩치가 크잖나.”

MBS는 특유의 수완으로 판온 관련 방송 대부분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SBC 같은 기존 대형 방송사의 덩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 잘나가고 있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게임 부분만 지키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지. 게이머들만 보는 방송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보게 하는 방송.”

“어떻게 말입니까?”

“아이콘. 아이콘이 필요해. 일반인들도 보면 ‘아, 저 사람!’ 하고 알 사람. 그런 아이콘이 있으면 우리가 게임 관련 방송이 아닌 새로운 방송을 시도해도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너무…… 앞서나가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물론 지금이야 허황되고 가능성 없는 이야기지. 그렇지만 이렇게 가정해 보게. 김태현이 지금 이세연처럼, 아니, 이세연보다 더 인기 좋은 스타가 된다면? 그런 김태현이 있다면 어떤 시도를 할 수 있을 거 같나?”

꿀꺽-

배장욱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경험 많은 PD답게, 순식간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이종국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때, 이제 좀 구미가 동하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