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360화 (360/1,826)

§ 나는 될놈이다 360화

“예? 무슨 소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태현이 주변을 확인했다.

폭발음과 고함 소리, 무기 부딪히는 소리까지.

확실히 어딘가에서 PVP가 벌어지고 있었다.

“플레이어들끼리 싸움 붙은 걸까요?”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 안이라고 싸움이 붙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바깥보다 사소한 다툼 같은 건 더 자주 일어났다.

던전에서 좋은 사냥터나 명당으로 알려진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거기를 차지하려는 플레이어들의 다툼도 치열했던 것이다.

서로가 사냥하는 몬스터를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싸움이 붙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

태현은 소리만 듣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리들.

이건 던전 사냥을 하다가 다툼이 일어난 게 아니었다.

이 익숙한 소리.

이건…….

누군가가 이 던전을 습격하고 있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우드스탁 길드를 공격하고 있네.”

태현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판온 1에서 지겹게 많이 봤고, 태현도 종종 했던 일 중 하나.

길드가 소유한 던전을 공격하는 것!

이유야 다양했다.

길드를 견제한다거나, 길드와 싸움이 붙었다거나, 길드가 소유한 던전 안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필요하다거나…….

아니면 그냥 상대 길드원과 어깨가 부딪혔는데 길드원이 시비를 걸어와서 기분이 나빴다던가!

마지막 이유는 사실 태현 같은 사람이나 쓰는 이유였다.

저런 이유를 대며 공격했다가는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은 것!

“쳐라! 우드스탁 길드 놈들을 밟아버려!”

“차근차근 점령해서 들어간다!”

“눈 깔아! 눈 깔라고!”

“너희들한테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우드스탁 길드 놈들뿐이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건드릴 생각 없다! 얌전히 구석으로 찌그러져!”

때마침 멀리서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걸 들은 태현은 감탄했다.

“이야, 잘하네.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데?”

“그,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그럼. 남의 길드를 습격하는 놈들의 수준에는 상, 중, 하가 있는데…….”

태현은 옛날 추억이 떠올라 신나게 떠들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그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들!

‘넌 뭘 하고 다녔는데 그런 걸 잘 아는 거냐?’ 하는 눈빛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케인이 수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쨌든 저놈들이 솜씨가 좋다는 게 중요한 거지. 덕분에 우리도 쉽게 가겠는데?”

“솜씨가 좋다는 건 어떤 부분에서 좋다는 겁니까?”

길드원 중 한 명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원래 대규모 PVP면 눈 돌아가서 일단 보이는 대로 공격하는 놈들이 있거든. 그런데 저놈들은 안 그러잖아. 들어와서 자기 힘 보여주고, 다른 플레이어들한테 ‘가만히 있으면 안 건드린다’고 말하고, 구역별로 점령하면서 들어가고 있지. 침착하게 잘하고 있는 거야.”

“그, 그런…….”

그 말을 하는 태현에게서는 길드 던전 수십 개는 털어본 것 같은 사람의 품격이 풍겼다.

어쨌든 태현 파티에게는 행운이었다.

다른 습격자들이 시선을 끌어주고 있었으니까!

‘어떤 놈들이려나?’

“그런데 우리하고 부딪히지는 않겠죠?”

“부딪히면 자기들 손해지.”

태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누구든 간에 방해하면 같이 치울 뿐!

-몬스터 조종.

태현은 구석을 돌아다니는 쥐 몬스터 하나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엄청나게 약한 몬스터한테만 사용 가능한 스킬이지만, 어차피 태현은 이 스킬을 전투용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

-가서 보고 와라!

지금 던전을 습격하고 있는 놈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샤샤샥-

쥐 몇 마리가 바닥을 재빨리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

“왜 그러세요?”

태현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본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저런 표정을 잘 보여주지 않는 태현!

“……아버지네…….”

“?!?!”

* * *

“핫핫하! 제대로 돌려줘라!”

김태산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적을 완벽하게 쓰러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오크 전사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취익! 취익! 취익!”

길드원들이 아닌, 오크 전사 NPC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지금 칼레포 요새를 습격하고 있는 것은 김태산과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었다.

<고대 정령의 오크 지휘관> 직업을 가진데다가, 따로 골드를 주고 고용한 오크 용병들까지.

확실하게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전력!

“성규야, 예전 생각난다. 그렇지 않냐?”

“그러네요.”

두 아저씨는 흐뭇하게 칼레포 요새를 둘러보았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우드스탁> 길드가 분쟁이 일어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오스턴 왕국에 길드들이 영지를 만들기 위해 온 순간부터 일어난 분쟁!

오스턴 왕국에 자리를 잡은 길드들은 대체로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

-여기는 우리가 먼저 자리 잡은 사냥터다! 꺼져!

-뭔 헛소리냐! 하루 먼저 왔다고 너희 사냥터라는 게 말이 되냐?

틈만 나면 싸움이 일어나는 곳.

<최강지존무쌍> 길드원인 아저씨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물 만난 물고기!

리X지에서 놀던 폼이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아니, 나는 얌전하게 내 영지만 가꾸려고 했는데~ 건방진 놈들이 자꾸 시비를 걸잖아~

전혀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는 김태산의 말!

최강지존무쌍 길드는 마찰이 생긴 길드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오스턴 왕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길드 중 하나!

누군가가 널 싫어한다면, 더 확실하게 싫어하게 만들어줘라!

바깥인 사냥터면 모를까, 설마 본거지인 요새까지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우드스탁 길드는 제대로 허를 찔린 셈이었다.

“어, 어떤 놈들이야?!”

요새에 있던 길드원들이 튀어나왔지만, 이미 기세를 탄 아저씨들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나다!”

“우리다!”

“요 녀석들. 우리 사냥터에 와서 부수고 튀면 멀쩡할 줄 알았냐!”

살기등등한 오크들!

그들을 알아본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기겁했다.

“당, 당신들! 미쳤어?!”

“제정신이다, 요놈들아!”

“사냥터에서 마찰 좀 생겼다고 요새를 습격해? 우리가, 다른 길드가 가만히 있을 거 같냐?!”

기겁한 길드원의 협박에도 아저씨들은 굴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거 같은데?”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데?”

“하하, 형님도 참! 하하하!”

“크하하하하!”

“……으아아!”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더 이상 아저씨 개그를 듣기 싫어 용감하게 돌격했다.

* * *

던전 바깥의 요새에서, 오크 아저씨들은 알짜배기 시설들만 골라서 부쉈다.

난폭하고 거칠게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미리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치밀하게 짠 것이었다.

리X지 때부터 같이 움직였던 아저씨들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많은 혈맹을 부수고 군림했던 실력!

“북쪽 문으로 몇 명 도망치는데, 쫓을까요?”

“요새 안쪽에 창고에서 몇 명이 문 닫고 버티는데요.”

“내버려 둬라. 어차피 내버려 둬도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도망치고 숨는 길드원들을 하나하나 쫓으면 끝이 없었다.

비싼 곳을 부수고 중요한 곳을 점령한다.

그것만으로 요새의 기능은 마비!

뒤늦게 접속한 길드원들이 모여서 덤벼든다고 하더라도 오크 아저씨들이 먼저 점령하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

“좋아. 그러면 길마 놈을 잡으러 가볼까.”

김태산은 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을 폈다.

애초에 여기를 습격한 건 우드스탁 길마가 이 요새 지하 던전을 공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적이 약할 때 쳐라!

지금쯤 소식을 들은 길마가 황급히 던전에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나가야 할지, 버텨야 할지 고민이 많겠지. 그 고민을 덜어주자고!”

한번 시작한 이상 화끈하게 끝을 낸다!

김태산은 핵심 길드원들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리고 지금.

태현 파티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는 알겠다.”

우드스탁 길드와 영역이 겹치니 시비가 붙었다->공격한다!

‘이 양반은 리X지 때랑 달라진 게 없어!’

한 번 시비가 붙으면 아예 짓밟으려고 덤벼든다.

사실 태현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부전자전!

“그러면 괜찮지 않나요? 목적도 똑같고. 아는 사람이고.”

“넌 아버지를 모르니까 그렇지.”

태현은 김태산을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이라서 손을 잡는, 그런 미지근한 행동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

‘뭐? 우드스탁 길드가 데리고 있는 대장장이를 데리러 왔다고? 하하! 내가 데려가 주마! 넌 손가락이나 빨면서 보고 있어!’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일단 우리도 움직이자고. 기회는 기회니까.”

태현은 아저씨들에게 들키지 않고 던전 심층에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굳이 지금 만나 봤자 좋을 일이 없을 테니까!

“야, 그냥 말하고 같이 싸우는 게 낫지 않냐?”

“아니라니까.”

케인은 모처럼 같이 싸울 사람이 생겼는데 그 기회를 날려 버린 게 아쉬워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태현은 확신했다.

아버지에게 말하면 분명 방해한다!

습격 때문에 던전을 돌던 파티들도 잠시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한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빨리 가자! 아버지보다 먼저 들어가야 해!”

“……가족 아니었습니까?”

* * *

“이 미친 오크들이 진짜!!”

우드스탁 길마는 방방 뛰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던전의 지하 6층!

아직까지 클리어한 파티가 없는 던전이었다.

당연히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고, 이번 던전 공략을 위해 우드스탁 길드는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었다.

던전을 조사하고, 소모 아이템을 모으고, 던전에 맞춰서 장비를 바꾸고…….

그리고 도전한 것이 오늘!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우드스탁 길마 입장에서는 목덜미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 XX들은 아무 말도 없나?”

“그게…….”

“……?”

“요새를 놓고 꺼지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고…….”

쾅!

우드스탁 길마는 던전의 벽을 꽝 내리쳤다.

저건 협상도 아니었다.

그냥 협박!

“내가 이 XX들을 그냥!”

“진정하세요!”

“지금 나가시면 안 됩니다!”

분노해서 뛰쳐나가려는 우드스탁 길마를, 다른 길드원들이 황급히 말렸다.

그들은 길드 채팅으로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이미 밖은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이 장악을 끝낸 상황!

흩어지고 깨진 우드스탁 길드원들로는 현재 상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지금 던전 밖으로 나가봤자 포위당해서 공격당할 가능성이 100%!

길드원들이 말리자, 길마도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린다. 나가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동맹을 맺은 길드들한테 연락 돌려! 당장 여기로 오라고!”

대형 길드 연합.

우드스탁 길드는 다른 길드들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도우러 와야 했다.

“그, 그게…….”

“……?”

“다들…… 지금 도와줄 상황이 안 된다고…….”

“!!”

결국 동맹이라고 해도 얄팍한 관계였다.

이 주변에서 최강지존무쌍 길드가 강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요하면 미친 듯이 쏟아붓는 현질!

아침저녁으로 캡슐 안에 앉아서 쏟아붓는 시간!

그 두 가지를 갖고 있는 아저씨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최강지존무쌍 길드였다.

당연히 우드스탁 길드를 위해 최강지존무쌍 길드와 정면 승부를 할 길드는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