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59화
셋은 요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길드지?”
“우드스탁 길드요. 미국 쪽 길드죠.”
“오, 미국 길드면 중국 길드하고 사이가 좋지는 않을 테니까 괜찮지 않을까?”
태현은 살짝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이다비는 냉정했다.
“쑤닝 길드하고 사이가 안 좋아도 태현 님을 좋아하지는 않을걸요…….”
“…….”
냉정한 현실!
이다비는 팩트로 태현의 명치를 아프게 때렸다.
“그, 그래도 쑤닝 길드나 성기사 이즈 킹 길드 같은 놈들보다는 낫지. 직접적인 원한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이다비는 말끝을 흐렸다.
“왜 그래?”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태현 님한테 ‘이 자식! 내 원한을 받아라!’ 하면서 달려들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니?”
“아니, 그냥 현실을 말씀드린 거잖아요!”
이다비는 당황하며 말했다.
사방팔방에 원한을 쌓고 다닌 게 태현이라서 현실을 말해준 것뿐인데!
“요즘 자꾸 나한테 원한을 가진 놈들만 만나서 그러는데, 그건 착각이야. 원래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고. 싸웠지만 화해한 사람도 꽤 있어.”
“진짜요?”
“당장 여기 케인만 해도 싸웠다가 화해했잖아?”
태현은 케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그걸 화해라고 할 수 있나?’
괜히 말해봤자 스스로만 부끄러워질 테니 케인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까 벌써부터 걱정은 하지 말자고. 날 안 싫어할 수도 있잖아?”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하실지 생각은 하셨어요?”
“흠. 일단 요새에 들어가서 대장장이 어디 있나 파악한 다음 대충 다 때려 부수면 빈틈이 생기지 않을까?”
“…….”
방금 한 말이 전혀 설득력 없게 느껴지는 태현이었다.
* * *
칼레포 요새.
우드스탁 길드가 소유한 오스턴 왕국의 요새 중 하나였다.
길드의 투자로 다양한 시설과 NPC들을 확보!
거기에다가 낮은 세금까지!
현재 오스턴 왕국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 중 하나였다.
게다가 칼레포 요새에는 지하 던전이 있었다.
다양한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도전 가능한 <칼레포 요새 지하 던전>!
지하 1층, 2층, 3층…….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은 지하 1층. 더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은 2층.
이런 식으로 다양한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은 놓칠 수 없는 보물이었다.
당연히 우드스탁 길드가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그들은 요새를 세우고 던전을 관리하고 있었다.
던전 입장료를 받고 심층으로 입장은 사람을 가려서 받아주는 식으로.
불만이 나올 법도 했지만 사람들은 많이들 몰렸다.
이러는 길드가 한두 개도 아니고, 입장료를 감당할 만큼 <칼레포 요새 지하 던전>은 괜찮은 던전이었던 것이다.
“지하 1층 공략할 파티원 구합니다! 무조건 경험자! 탱커 구해요! 탱커! 딜러는 필요 없습니다!”
“레벨 62 도적이 파티 구합니다! 힐 필요 없어요! 혼자서 붕대 감습니다!”
“지하 4층 클리어팟 구해봅니다! 레벨, 장비 확인 필수! 길드 허가 받았습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자 광장에서 떠들썩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들!
파티를 구하고 던전을 깨려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였다.
뜨겁고, 건전한 열기였다.
태현의 영지에서 들리는 ‘룬 강화 마법검 강화 간다! 가즈아아아아!’, ‘상자깡 40개 간다! 축복받았다! 안 뜨면 접는다!’ 같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태현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깊게 생각하면 슬퍼질 테니까!
“흠, 대장장이를 어디다 숨겨놨을까?”
태현은 요새 안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새 가운데에는 길드 건물이 몇 개 있었다.
길드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건물!
‘신의 예지는 너무 여러 개 나와서 안 되겠고.’
신의 예지가 가르쳐준 길들이 여러 개가 나온 상황. 그중 뭐가 대장장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다비, 대장장이 찾을 방법이 없을까?”
태현은 고개를 돌려 이다비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다비는 그 자리에 없었다.
“저기요, 대장장이 곤르도가 어디 있는 줄 아세요?”
“!?”
광장 옆, 우드스탁 길드원이 돌아다니는 곳으로 가서 당당하게 물어보는 이다비!
태현과 케인은 기겁해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
그러나 질문을 받은 길드원은 별 의심도 하지 않고 손쉽게 말했다.
“아, 곤르도요? 지하 던전 안에 있어요.”
“네? 왜 지하 던전에 있어요?”
“길드원들이 지하 던전 밑에 깨려고 데리고 갔을걸요?”
고렙 대장장이 NPC는 파티에 넣는 순간 전력이 급상승했다.
특히 저런 깊은 던전에서는 더더욱!
즉석에서 각종 장비가 수리와 버프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어차피 곤르도 나올 때까지 기다려봤자 곤르도한테서는 아이템 못 살 거예요. 우리 길드원들한테 우선으로 돌려서요. 원하시면 길드 가입 신청서 내세요.”
“그래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다비는 고개를 숙인 다음 돌아왔다.
“의, 의심을 안 하네?”
“상인 직업의 특권이죠.”
설마 상인 플레이어가 사악한 꿍꿍이를 갖고 물어봤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길드원이었다.
그냥 대장장이에게 질 좋은 아이템을 사려는 상인 플레이어인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
“너나 내가 물어봤으면 의심했을 거 같은데…….”
“꼬우면 상인 직업을 했어야지. 어쨌든 위치는 알아냈고. 그러면 던전에 들어갈까?”
“던전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려고?”
“빈틈 봐서 협박한 다음 곤르도한테 제작법 뜯고 튀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오는 명료한 대답!
우드스탁 길드와 ‘대화’하거나 ‘협상’한다는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태현!
‘저러니까 원한이 쌓이지…….’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 내 욕했지?”
“?!”
* * *
던전 1층에 들어가는 건 쉬웠다.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됐으니까.
워낙 사람들이 많았기에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우리 사람이 너무 적다는 거지.”
보통 셋이서 던전을 공략하지는 않았다. 없지는 않았지만 보이면 눈에 뜨일 게 분명!
던전 심층으로 내려가 깽판을 치려면 그 전까지는 눈에 띄어서는 안 됐다.
“사람 부를까요?”
“응? 누구?”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면 지금 당장 부를 수 있는데요.”
“너희 길드원들은 시간이 남아도니?”
“네!”
해맑은 대답!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르라고 말했다. 이다비는 길드 채팅으로 말했다.
-오스턴 왕국에서 파티할 사람?
그러자 냉정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아, 안 속아요, 안 속아.
-애들아! 자기가 호구라고 생각하면 저기 가도 된다! 길마님이 또 사기 치신다!
-아니, 길마님. 우리 좀 상도덕은 지킵시다! 길드원들한테 사기 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뿌리 깊은 불신!
이제까지 이다비가 길드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길마를 믿고 따라갔다가 속은 길드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
쫄래쫄래 쫓아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노가다 작업을 질리도록 해야 했다.
-……태현 님하고 같이 하는데. 싫으면 말고.
-!
-진, 진짜요?
-야, 속지 마! 저것도 함정일 수 있어!
-그, 그렇지만……! 같이 따라다니면…… 떨어지는 골드가……!
-선착순이다. 올 사람 많으니 오기 싫으면 안 와도 괜찮아.
5분 후…….
다그닥, 다그닥-
순식간에 도착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헉, 헉! 안 늦었죠?!”
“응.”
“태현 님은 어디 있습니까? 진짜 있는 거 맞죠?”
길드원들은 태현부터 확인하려고 했다. 그걸 본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쟤네들은 왜 저래?”
“글, 글쎄요?”
“너 설마 평소에도 나 있다고 사기 친 건 아니…….”
“자! 여기 태현 님! 봐!”
이다비는 재빨리 말을 끊고 태현을 가리켰다.
“오오! 진짜였어!”
“길마님이 거짓말을 안 할 때도 있구나!”
“나 길드에 들어와서 길마님이 거짓말 안 하는 거 처음 봐!”
태현이 이다비를 쳐다보는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이다비는 고개를 흔들며 변명했다.
“쟤는 뉴비라서 그래요!”
* * *
어찌 되었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덕분에 8인 팟이 완성되었다.
“저희는 뭘 하면 될까요?!”
“음, 평범한 파티인 척하다가…….”
“하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나하고 케인이 싸울 테니까 전리품이나 챙겨라.”
“!”
“그, 그런……!”
“저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씀이십니까?”
생각과 다른 길드원들의 반응.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무 무신경하게 말했나?’
하긴, 여기 길드원들도 사람인데 같이 싸우고 경험치를 더 먹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누가 짐 취급받는 걸 좋아하겠는가.
“싫냐? 싫으면 같이…….”
“아뇨! 최고입니다!”
“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같이 싸워도 되는데.”
“아뇨! 저희는 싸우기 싫은데요!”
“저희는 싸울 자신이 없는데요! PVP로 이겨본 적이 별로 없는데요!”
이다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확실히 알고 있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길드원들의 부끄러움!
그러나 태현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솔직해서 좋다. 허세 부리는 것보다는 낫지.”
“역시! 태현 님!”
대화를 듣던 케인이 물었다.
“야, 그러면 싸움은 우리들만으로 해야 하는 거냐?”
“그렇겠지.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이런 지하 던전은 치고 빠지기 좋은 데다가…….”
태현은 길드원들을 훑어보았다.
사망 페널티를 신경 쓰지 않는 플레이어들!
즉, 인간 폭탄으로 쓰기 좋은 플레이어들!
갑자기 길드원들은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 뭐지?’
“너하고 나면 충분하잖아.”
“그, 그런가?”
케인과 태현을 보던 길드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이분이 ‘그’ 케인 씨군요.”
“‘그’ 케인 씨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길마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케인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반응들!
“뭐, 뭔데 이 자식들아?! 뭔 이야기를 들었는데?!”
“태현 님에게 괴롭힘 받는 걸 즐기신다고…….”
“뭔 미친 개소리야?!?!”
“쉿. 사람들 많으니까 소리 크게 내지 말고. 이제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야! 지금 오해가 쌓이고 있어!”
“나중에 풀어.”
“이걸 왜 나중에 풀어!”
케인에게 별 관심이 없는 태현은 케인이 방방 뛰건 말건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다비, 입장료 내.”
“여기요.”
“……?”
꽉-
이다비가 내민 골드를 받으려던 우드스탁 길드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방이 골드를 꽉 쥐고서 놓지 않는 것이다.
“저기요? 이거 놓으셔야죠.”
“야, 뭐해?”
“아차, 본능적으로 잡아버렸어요……!”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고개를 연신 숙여서 사과한 다음에야 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 골드 받은 길드원 기억해 놨으니 이따가 PVP 할 때 꼭 쳐서 다시 뺏죠.”
“내가 죽이면 골드 대신 다른 게 나올 거 같은데.”
지하 1층은 전체적으로 레벨이 낮은 던전이었다.
보이는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저렙!
밑으로 내려가려는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길을 따라 움직였다.
“지하 3층에서 4층 가는 입구부터 우드스탁 길드원들 있단다.”
“그럼 대장장이하고 파티원들은 5층이나 6층쯤에 있겠죠?”
“그렇겠지. 5층에 있기를 빌자고.”
태현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주변 지형을 눈에 새겨두었다.
언제 어느 곳을 폭발시켜야 가장 잘 폭발시켰다고 소문이 날까?
콰콰쾅!
폭발음이 들려왔다.
태현은 감탄했다.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정교해졌으면 실제로 폭발음이 들릴 수준이란 말인가!
“싸움 났나 봅니다!”
“뭐? 내 상상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