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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54화 (354/1,826)

§ 나는 될놈이다 354화

“할아버지?”

“…….”

태현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상황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다음 연습 경기 하러 가야겠네요.”

탁-

유 회장, 유지수가 동시에 태현을 붙잡았다.

심지어 이다비까지!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어디 혼자 내빼려고!

“할, 할아버지가 왜 판온에? 게임 안 좋아하셨잖아요?”

유 회장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재계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위엄 넘치는 모습을 자랑하던 유 회장!

말 한마디로 수많은 중역과 임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유 회장!

그런 유 회장이 지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좀 도와줘라!

그걸 보자 천하의 태현도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화도 못 내고 저런단 말인가.

“그건 내가 설명해 줄게.”

결국 태현이 나섰다.

“저번에 어르신을 만났을 때 판온 이야기가 나왔어. 너도 하는 게임이라고 하니까 흥미를 좀 보이시더라. 그런데 지수 너한테 직접 가르쳐달라고 하는 건 좀 쑥스러우셨나 봐. 그래서 나한테 부탁을 하신 거지.”

태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내가 고생 좀 해보라고 타이럼 시에 보냈는데…….”

이건 진실!

유 회장은 속으로 분노했다.

저놈 저거 분명히 진심이다!

“거기서 널 만날 줄은 나도 몰랐지. 쑥스러우셔서 자기인 걸 숨기셨대.”

태현이 계속해서 말해 나가자 유 회장의 얼굴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다!

적어도 유지수가 ‘할아버지 정말 미워!’, ‘할아버지가 날 속이고 감시하려고 했어!’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듣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 그런 건가요?”

“그래. 그런 거야!”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태현이 저렇게 말하자 유지수는 당황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야기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 같은 기분이지만…… 기분 탓이겠지!’

이야기의 구멍을 덮어주는 콩깍지!

덕분에 유 회장은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후…….’

이렇게 식은땀을 흘려본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 나이에 판온에서 정말 새로운 경험만 하는 기분!

“그런데 형.”

“형?” “?” “???”

유지수가 실수로 말한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유지수를 쳐다보았다.

유지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다비가 궁금하다는 듯이 태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게 이야기하면 길고 복잡한 이야기인데…….”

“아, 그런가요? 저는 그냥 태현 님이 저기 유지수 씨를 처음 보고 남자애로 오해하셔가지고 유지수 씨도 민망해서 그냥 남자인 척하시느라 태현 님을 형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입에 붙어서 이번에도 실수로 형이라고 부른 줄 알았어요.”

이다비는 별생각 없이 말한 것 같지만…….

완벽한 설명!

“…….”

“……설마 이거에요?”

“아, 아니거든?”

“……이거 맞군요.”

이다비는 ‘사람이 눈이 달려 있으면 어떻게 저런 걸 착각하냐’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태현은 괴로워했다.

이다비가 저런 태도를 취하는 건 정말 드문 모습!

“망토로 온몸 감싸고 지나가는 사람이 끼고 있는 속옷 아이템은 뭔지도 알아맞히시면서! 어떻게 저런 걸 헷갈려요?”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저번에 하는 거 봤어요! 사람이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관찰력을 좀 다른 데에도 쓰셔야 한다니까요!”

이다비와 태현이 속닥거리는 걸 본 유지수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그걸 본 주가연이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태현 씨.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아. 안녕하세요.”

절묘하게 이다비와의 대화를 끊으면서 인사를 하는 수법!

태현은 주가연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상윤이 본 지도 좀 된 거 같은데, 걔는 요즘 뭐하고 있죠?”

“걔는 지금 직업 퀘스트 깨느라 바빠요. ‘상위 랭커에 이름을 올리겠다!’면서 바쁘던데.”

주가연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친구인 최상윤한테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태현도 꽤 예의 바르게 대했다.

겉에서 보면 선남선녀의 대화 모습!

유지수의 볼이 더 부풀어졌다.

‘아차!’

주가연은 황급히 대화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에서 활약하신 거 봤어요. 대단하시던데요.”

“어? 참가하셨어요?”

“네. 지수가 참가하자고 해서…….”

“그래? 고마워. 이야, 이렇게 도와주러 와줄 줄이야…….”

태현은 유지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마워했다.

금세 쑥스러워하는 유지수의 모습에 주가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쉬운 거 아니야?’

고맙다고 한마디 했다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이, 이세연 씨하고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

“넌 그게 사이가 좋아 보이냐? 내가 걔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

불평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아무래도 이세연과 그의 관계를 말하려면 판온 1부터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듣게 될 것이고!

“……어쨌든 사이좋은 거 아니야! 사이좋은 거 아니라고!”

‘사이 좋은 거 같은데?’

‘사이 좋아 보이는데?’

‘사이 좋네.’

태현이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확신하게 되는 역효과!

다들 믿어주지 않는 것 같자, 태현은 이다비를 보며 말했다.

“이다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시켜서 나하고 이세연이 사이 안 좋다는 소문 좀 퍼뜨려줘.”

“그거야 상관없는데 안 먹힐 거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이 아마 ‘질투하는 놈들이 저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겠지’라고 하지 않을까요?”

“…….”

사방이 적!

태현은 얼굴을 감쌌다.

‘이세연……! 이 치사하고 비열한……!’

딱히 이세연이 한 짓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태현 씨는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연습 경기 끝내고 아탈리 왕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요.”

“앗!”

유지수는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맞아요! 좀 더 하세요!”

이다비가 손에 빵빵하게 찬 골드 주머니를 들고 말했다. 태현은 이다비를 가볍게 무시하고 대답했다.

“퀘스트 깨던 게 있어서 갔다 와야 해. 그리고 여기서 연습 경기 해봤자 별로 얻는 것도 없고.”

여기서 얻는 경험치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태현한테는 너무 적었다!!

‘이 경험치로 뭐 해보려는 게 멍청한 짓이지…….’

빨리 연습 경기를 끝내고 움직이려는 게 태현의 계획이었다.

아쉬워하는 유지수를 보고 주가연이 속삭였다.

“괜찮아? 왕국 같이 갈래?”

“아뇨, 괜찮아요. 저희도 대회 준비해야죠. 본선 시작하면 어차피 여기 다시 올 거고…….”

유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같이 온 사람들은 같이 온 사람들이었다.

유지수를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것!

그 모습에 유 회장은 감동했다.

‘저렇게 성실하다니……!’

다음 연습 경기를 준비하기 전, 케인이 태현에게 물었다.

“야, 근데 아까 이세연이 나한테 숨겨놓은 콤보가 뭔지 힌트만 달라고 물어보던데 그게 뭔 소리냐?”

“…….”

* * *

정지용.

유성 그룹의 비서실장.

그냥 비서실장이라고 하면 가볍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비서실장이 유성 그룹의 비서실장이라면 의미가 달랐다.

회장에게 확고한 신뢰를 받으며, 유성우 사장과 같이 그룹의 미래 전략을 짜는 브레인 중 하나!

어지간한 중소기업의 사장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유성 그룹의 이사들도 정지용을 대할 때에는 조심했다.

그 유 회장에게 바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저 정지용인 것이다.

그런 정지용이 당황하며 허둥대고 있었다.

“실장님,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자택으로 직접 오라고 하셨어! 무슨 중대한 일이 있는 게 분명해.”

“그, 그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그럴 가능성도 있지.”

정지용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위기에 부하 직원들 모두의 분위기도 긴장 가득하게 변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음!”

유 회장을 만날 때는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 했다.

어설프게 준비를 하고 갔다가는 호되게 떨어지는 불호령!

유 회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정지용이 철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유 회장의 저택에 도착한 정지용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응?’

유 회장의 서재에 들어선 정지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못 보던 물건이 새로 들어선 것이다.

‘저건 분명, 가상현실을 체험할 때 사용하는 캡슐…….’

“왔나?”

“예!”

“잘 지내는 걸 보니 기분이 좋군. 자. 여기 앉게.”

유 회장의 말에 정지용은 자세를 바로잡고 앞에 앉았다. 물론 긴장은 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내가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는 말이야…….”

두근, 두근-

정지용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네하고 판온을 같이 하려고 불렀네.”

“……예?”

정지용은 멍청하게 되물었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말!

유 회장의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자 정지용은 당황했다.

‘내, 내가 이런 실수를……!’

유 회장이 아무 이유 없이 불러서 게임을 같이 하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정지용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유 회장이 왜 같이 판온을 하자고 했을까?

“그, 그렇군요! 회장님. 지금 세계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판타지 온라인 2. 그 판타지 온라인 2의 가상현실캡슐에 들어가는 E램은 유성 전자가 압도적인 분야. 판타지 온라인이 흥행하면 흥행할수록 유성 전자에게도 이익이니, 직접 판타지 온라인을 해보면서 어떤 식으로 손을 잡을지 생각을 해보라는 뜻이셨군요! 그쪽에도 이익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

잠시 말문이 막혀서 침묵했던 유 회장은 정지용에게 감탄했다.

이 기특한 녀석!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저 이유를 쓰면 되겠군!’

사실 정지용을 부른 이유는 하나였다.

같이 판온을 할 사람이 없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부려먹을 사람이 없어서였다.

처음 판온을 시작했을 때, 유 회장은 이런 게임에 왜 현질을 하나 싶었다.

그러나 유 회장은 현질의 맛에 눈을 떠버렸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현질을 하는구나!

원래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장비들을 손에 넣는 즐거움!

그 즐거움에 눈을 떠버린 유 회장은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현질만으로는 뭔가 좀 아쉬운데. 더 없으려나, 음. 판온에서 나를 좀 도와줄…….’

태현같이 뒤통수를 치는 놈이 아닌, 헌신적으로 도와줄 그런 플레이어!

유 회장은 금세 그런 사람을 떠올렸다.

‘지용이를 부르면 되겠군!’

충실한 그의 수족인 정지용!

그런 유 회장의 속셈도 모르고 정지용은 감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평소에 유 회장을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 번 접속해 보겠습니다!”

“음. 자네 레벨이 몇이지?”

“예? 저는 판온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쳇. 뉴비인가.”

“예??”

정지용은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겠지?

“혹시 자네 부하 직원 중에서 판온 잘하는 애들은 더 없나?”

“……?”

정지용은 슬슬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다.

* * *

다음 날, 비서실에는 정지용의 이름으로 공문이 내려왔다.

-판온 2, 레벨 100 이상 되는 사람은 바로 나한테 말하도록!

“????”

“??????”

비교적 젊은 사원들은 다 판온을 해본 적이 있거나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당연히 계정이 있었지만…….

근데 회사에서 대체 왜?

“뭐, 뭐야? 이거 말해도 되는 거야?”

“회사에서 게임 레벨 높다고 말하면 안 좋은 거 아닌가? 유성 그룹은 예전에도 프로게이머 팀 하나 말아먹었고…….”

“에이, 설마 회사에서 게임 레벨 높다고 구박하겠어? 회사에서 뭔가 쓸 일이 있으니까 찾는 거겠지. 나는 지원할래! 마침 자격도 되겠다.”

“그러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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