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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53화 (353/1,826)

§ 나는 될놈이다 353화

태현은 이세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이번 연습 경기는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엉망진창인 경기였던 것이다.

먼저 도동수는 다른 넷과 전혀 호흡을 맞추지 않고 멋대로 움직였다.

어떤 지시도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

남들이 밖에서 보면 2명, 2명, 1명으로 나뉘어서 움직인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다.

도동수가 멋대로 행동하니까 다른 팀원들이 맞춰줬을 뿐!

“이번이야 워낙 실력 차이가 났고 상대방이 전혀 대응을 못 해서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었지만, 본선에서 우리를 상대할 팀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나올 거야. 당연히 너를 상대할 방법도 생각하고 나오겠지.”

“그러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우리 전략도 눈치를 챌 거라고 생각해. ‘쟤네들은 왜 매번 2명, 2명, 1명으로 나눠서 움직이지?’처럼.”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나? 도동수가 말을 안 듣잖아.”

“듣게 해야지.”

“나보고 설득하라는 거야?”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이세연은 ‘어떻게 네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가서 말했다가는 도동수와의 사이만 더더욱 멀어질 뿐!

“나하고 김철수 씨가 같이 설득을 해보려고 해.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가만히 있어!”

이세연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강조를 해서 말했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그만 도발하고!

그런 이세연의 속도 모르고 태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거, 속 좁은 놈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하네.”

“네가 너무 패서 그렇잖아……!”

“아니, 판온에서 PVP 한두 번 해봐? 도동수 그놈은 도적 직업이면서 되게 뻔뻔하네. 자기도 PVP 꽤 해봤을 텐데. 자기가 하면 정정당당이고 자기가 당하면 원수냐?”

“…….”

이세연은 미묘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판온 1에서 태현의 관련 영상은 모조리 찾아본 그녀였다.

그런 그녀였기에, 태현을 죽도록 싫어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럴 법도 하다!

한 번 시비가 붙으면 그냥 PVP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 길드 쪽 사냥터에 가서 깽판을 치고, 상대가 부활하면 거기 가서 다시 PVP를 걸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그게 바로 태현이었다.

도동수도 도적 플레이어였고, 도적 플레이어는 보통 PVP 하는 일이 많기는 했다.

그러나 대장장이 플레이어였던 태현이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질과 양 모두 차원이 다른 수준!

‘……라고 말해봤자 듣지도 않겠지!’

이세연은 태현을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말해봤자 의미도 없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상황을 잘 통제해서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할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알겠어. 가만히 있는 건 내가 가장 잘 하는 거지.”

“……그리고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오늘 경기 괜찮았어.”

“뭐야. 갑자기. 너 원하는 거 있냐?”

태현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에 이세연은 살짝 울컥했다.

뿌리 깊은 불신의 모습!

‘칭찬을 해줘도……!’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친절을 베풀면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태현은 ‘너 뭔 속셈 있지’부터 나왔다.

이세연은 한 번 심호흡을 했다.

태현을 상대할 때 언제나 필요한 건

“정말 괜찮았으니까 그렇지. 도동수 문제만 해결되면 충분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

이세연의 말은 진심이었다.

급조된 팀이라서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지만 그녀의 생각보다 팀이 강했던 것이다.

특히 태현이 데리고 온 케인과 태현의 조합이 상당했다.

그냥 태현을 따라다니는 부하 1 정도로 생각했던 케인이, 태현과 함께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정도였나?”

태현은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남한테 ‘강하다’,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이세연이라면 별개였다.

태현이 한 번 졌던 상대 아닌가.

그런 상대한테 듣는 칭찬은 좀 특별했다.

“응. 특히 그 쇠사슬 스킬 연계가 대단하더라.”

케인이 쇠사슬로 끌어오고, 폭딜로 데미지를 끌어올린 태현이 데미지를 넣고.

단순하지만 무시무시한 콤보였다.

잘못 걸리면 한 명이 그대로 아웃!

5:5에서 5:4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케인이 들으면 기뻐서 날뛰겠군.”

“뭐, 다른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 오늘 보고 어떻게 상대할지 대책을 세우겠지만…… 그래도 별 상관없겠지.”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세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네가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썼을 리는 없을 테니까. 오늘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건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콤보지? 실제 대회에서 쓸 건 따로 있고.”

“……물론이지!”

물론 그런 건 없었다. 태현은 등에서 땀이 나는 걸 느꼈다.

‘별생각 없이 쓴 건데!’

이세연과 달리 태현은 이 대회에서 꼭 우승하겠다 같은 야심이 없었다.

그냥 이세연한테 끌려서 왔으니, 이렇게 된 이상 보이는 놈을 다 패서 이기겠다 정도의 결심!

그래서 별생각 없이 연습 경기에서도 상대방에게 평소에 잘 쓰던 콤보를 넣은 것이었는데……

태현을 고평가하는 이세연이 알아서 오해해준 것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일부러 본선에서 쓸 스킬들은 연습 경기에서 안 보여줬지.”

“…….”

점점 말하기 힘들어지는 분위기!

태현은 본선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콤보나 몇 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음 연습 경기 준비하자.”

“몇 경기를 더 해야 하지?”

“세 경기. 세 경기 잡아놨거든.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거 해. 본선 경기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아탈리 왕국에 갔다 와야겠군.’

이번 사디크 교단 토벌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했다.

국왕을 암살하려고 한 세력을 잡음과 동시에 반역자까지 같이 잡은 것이다.

“좋아. 그러면 가볼까?”

* * *

유 회장은 경기가 끝나고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손을 펴보니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만큼 집중해서 경기를 본 것이다.

‘대단하다!’

실제 플레이어들의 PVP를 처음 본 유 회장이었다.

그런 유 회장에게 경기장에서 싸우는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태현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인기 있는 이유를 알겠군…….’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관중석 아래의 경기장에서, 태현은 스타였다.

다른 뛰어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은 태현에게만 시선을 던졌고, 태현의 이름만을 불렀다.

“……저씨, 아저씨! 제 말 안 들리세요?”

“어, 어? 미안하군. 무슨 일이지?”

“잠깐 아는 사람 좀 만나서 이야기하고 올 테니까 여기 자리 좀 맡아주세요.”

연습 경기인데도 관중석은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주가연의 인맥 덕분에 뒤늦게 온 그들이 앉을 수 있었던 것!

“알겠네.”

유지수와 주가연이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떠난 사이, 유 회장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방금 본 경기를 보니 그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그만큼 방금 경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유성 그룹 산하 팀을 다시 만들어? 아니, 아니야…… 내가 그때 화를 냈는데…… 으음…….’

예전 프로게이머 팀 붐 때, 성적이 너무 안 좋은 유성 그룹 팀 때문에 유 회장이 화를 냈던 것이다.

-뭔 애들 장난 같은 게임에 돈을 쓰면서 성적도 제대로 못 거두고, 이거 하자고 한 놈들 전부 시말서 써와!

그런 유 회장이 이제와서 다시 ‘크흠, 프로게이머 팀……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나?’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방법이…… 방법이 있을 텐데…….’

머리를 굴리는 유 회장의 귓가에 ‘팝콘 팔아요! 팝콘!’이란 소리가 들어왔다.

“팝콘도 파나? 정말 현실하고 똑같군.”

유 회장은 감탄했다.

이런 경기장에서 팝콘도 팔다니!

“어? 아저씨 아니세요? 태현 님하고 친한 아저씨…….”

“누가 그런 놈하고!”

유 회장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유 회장에게 말을 건 것은 이다비였다.

그랬다.

연습 경기를 한 번 뛴 태현은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예선, 본선은 MBS가 주관하지만 이 연습 경기는 아무도 주관하지 않는다!

-가라! 이다비! 여기 있는 놈들의 주머니를 모두 뜯어내라!

-제가 들어본 말 중 가장 감동적인 말이에요!

태현의 단호한 지시에 이다비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입장료부터 시작해서 팝콘까지.

급하게 달려온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골드를 긁어내고 있었다.

“크, 크흠. 그러고 보니 김태현 그 녀석을 만날 수는 없나?”

“네? 귓속말 하시면 되지 않아요?”

“……그놈이 나를 차단했네.”

“……지금 물어볼게요. 막 경기도 끝났고 쉬는 시간이니까.”

그랬다.

태현 덕분에 강제로 수련하게 된 유 회장이 분노의 귓속말을 연속으로 보내자, 귀찮아진 태현이 유 회장을 차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됐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그 할아버지 여기까지 오셨어? 근성도 대단하시네. 알겠어. 내가 간다.

연습 경기도 막 한 판 끝낸 태현은 잠시 나와서 관중석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도중, 유 회장이 안쓰러워진 이다비는 음료와 팝콘을 건넸다.

생각해 보니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면서 그냥 잊고 나온 것 아닌가!

“이거라도 드세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 중에서 나름 요리 스킬이 높은 플레이어들이 만든 요리들이었다.

엄청난 진미는 아니었다.

게다가 먹는 유 회장도 세상의 온갖 미식을 즐겨 본 사람.

그런 그에게는 수준에 맞지 않는 맛이었지만…….

‘맛있다!’

지하 던전에서 고생이란 고생을 하고 바로 달려와서 앉은 다음에 마시는 음료와 팝콘의 맛!

청량한 느낌이 목을 타고 내려가고, 달콤짭짤한 맛이 혀를 즐겁게 만들어줬다.

유 회장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나이를 먹고 팝콘과 음료수 때문에 눈물이 돌다니!

“자네는 참 착한 사람이군……!”

“헤헤…….”

이다비는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왜 김태현 같은 사악한 놈하고…….”

“어르신. 그 사악한 놈 뒤에 있습니다.”

“……!”

어느새 태현이 도착해 있었다.

* * *

“야, 이놈아! 날 차단해?!”

“자꾸 욕이 날아와서 스팸인 줄 알았어요.”

“헛소리하지 마라! 착각할 걸 착각해야지!”

태현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지만, 태현은 절대 잡혀주지 않았다.

그냥 잡혀줄 법도 했는데 절대 한 번을 잡혀주지 않는 태현!

유 회장은 스스로의 실력이 아직도 멀었다는 걸 통감했다.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은 대체!’

“날 두고 가?!”

“아니, 이세연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바람에…… 잊고 있었네요. 하하.”

“하하?! 하하로 끝낼 일이냐?!”

“그래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유 회장은 분노에 차서 있었던 일들을 좌르륵 털어놓았다.

그러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벨 업도 하고, 지수도 만나고, 좋은 거 아닙니까?”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말하던 유 회장은 멈칫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갔던 유지수와 주가연이 뒤에서 나타나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모르는 태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 지수한테 어르신인 건 언제 말하실 생각이십니까?”

“야, 야! 야!!!”

“……?”

“야!!!!!”

정말 간절한 감정이 담긴 ‘야!’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태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려던 유지수는 멈칫하더니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유 회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설, 설마……!”

유 회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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