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51화
윤주환은 최명성과의 내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
특히 게임 관련해서는 절대의 승률을 보장하는 최명성!
윤주환은 이제까지 최명성이 틀린 걸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됐어요. 팀장님하고 내기해서 이긴 적이 없다고요.”
“에이, 이번에는 이길 수도 있지 않냐?”
“윽…… 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네요. 도동수가 마음만 먹으면 김태현한테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는 상황 아닌가요?”
5:5로 붙는 투기장이었다.
게다가 레벨도 다 똑같이 맞춰지고 장비도 보통으로 교체되는 상황.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도동수가 태현을 방해한다면?
4:5, 아니 4:6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뭐, 그건 그렇지.”
“그렇죠?!”
“그렇지만 그래도 아니야.”
“?!”
윤주환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혹시 이런 건가요? 아무리 도동수라도 이런 커다란 대회에서 대놓고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거다! 이런 건가요?”
“넌 도동수가 그런 놈 같아 보이냐?”
“……아뇨…….”
윤주환이 보기에, 다른 건 몰라도 도동수는 확실하게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오늘 이렇게 망신을 당했으니 더더욱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대놓고는 안 하겠지만 분명 복수를 하려고 하겠지. 쪼잔하고 치사하게 말이야. 상황도 딱 좋고.”
“그러면 대체 왜 방해를 못 한다는 겁니까?”
“말했잖아. 그릇이 다르다니까.”
최명성은 씩 웃으며 화면을 클로즈업했다.
이세연한테 구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태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도동수가 시비를 걸어오는데 김태현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 * *
“정말 죄송합니다.”
“뭐 죄송하실 법하죠.”
“…….”
고개를 숙인 배장욱은 움찔했다.
언제나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주는 태현이었다.
지금 배장욱이 고개를 숙인 이유는 하나였다.
팀에 도동수가 선발된 것 때문!
투기장 주변에 있던 MBS 직원 중 한 명이 도동수와 태현이 험악하게 서로 다투는(물론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일방적으로 괴롭혔지만)것을 발견하고 보고를 한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알아차린 배장욱은 직접 사과하러 태현을 찾아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반대파였지만 윗선에서 그냥 도동수 씨로 하라고 말이 많아서…… 고를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뇨. 도동수를 고른 건 상관없는데요.”
“??”
“이세연하고 같은 팀을 하게 된 걸 죄송해하셔야…….”
“…….”
정말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주는 태현!
배장욱은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 그렇군요. 그러면 도동수 씨하고는 별문제가 없는 겁니까?”
“아뇨. 문제는 있는데 전 별로 신경 안 써서요.”
도동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태현의 모습!
실제로 태현은 도동수가 뭘 하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태현 안에서 도동수는 케인과 비슷한, 아니 케인보다 좀 더 밑에 있는 그런 사람!
‘갑자기 불안해진다……!’
그런 태현의 모습에 배장욱은 갑자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함!
‘아니겠지. 김태현이 저렇게 보여도 사실 생각이 깊고 그런…….’
“오. 경기 시작하네요.”
“네?”
태현이 핸드폰으로 투기장 예선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배장욱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예선 경기 중에서 챙겨보시는 팀이 있으신가요?”
“아는 사람이 예선에 도전하고 있거든요.”
“그러시군요.”
배장욱은 훈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고 사악해 보이는 태현에게도 저렇게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모습이 있었다.
‘그래. 김태현은 저렇게 속이 깊은 모습이 있단 말이지. 분명 괜찮을 거야.’
“방금 누가 제 욕을 한 기분이 들었는데.”
“……!”
“뭐, 기분 탓이겠죠. 아니, 도동수가 욕했나?”
“…….”
화면 속에서 정수혁과 그의 친구들이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투기장 관중석에서 구경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저번보다 숫자가 늘었다.
재미있는 예선 팀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플레이어들이 몰려온 것이다.
배장욱도 힐끗 태현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화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는 배장욱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은 경기!
10명의 플레이어 전원이 정수혁이 불러낸 마법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뭔?”
“얘가 좀 직업이 특이해서…….”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대방을 끌어들여서 마법 난사를 한다. 그다음은 운에 맡긴다.
정수혁과 그 친구들은 이 전략으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의외로 대단한 실력, 아니, 행운이었다.
덕분에 구경하는 플레이어들만 신났다. 매번 경기 때마다 저런 모습을 보여줬으니.
“아, 이 친구는 그 친구군요. 저번에 영상 올라온 거 봤습니다.”
“……?”
“자기한테 마법 박아서 상대를 쓰러뜨린 그 마법사 플레이어잖습니까. 저도 보면서 감탄했었죠.”
배장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아무리 봐도 실수던데…….’
정수혁이 그럴 실력이 됐다면 태현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
“실력이 예사롭지 않던데 태현 씨와 아는 사이였군요.”
“과 후배예요.”
“오! 그러고 보니 태현 씨는…….”
“국문학과죠.”
“……국, 국문학과는 생각해 보면 게임과 연관이 은근히 있…….”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는 배장욱!
그러나 태현은 그런 무리수를 받아주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없지 않나요?”
“……어쨌든 저분이 본선에 올라오신다면 정말 재밌겠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후배를 생각하는 태현의 모습!
물론 실상은 반대였다.
‘교단 명성치 좀 찍게 깨라!’
사실 마음 같아서는 태현이 가면 쓰고 팀으로 참가하고 싶었지만, 정수혁의 고집 때문에 그건 불가능!
* * *
“아, 아.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줘서 모두 고마워요.”
“끌고 와놓고 무슨…….”
태현이 중얼거렸지만 이세연은 무시했다.
“파티장을 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정할까요?”
“김태현은 안 돼.”
“할 생각도 없었어, 이 XXXX…….”
찰진 욕이 태현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이세연은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만 싸우라니까!
“……XXX-XXX…….”
다시 한번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도동수의 얼굴!
“다, 다 했냐?”
“아니. 아직 1절만 했는데. 2절은 좀 있다가 들려주지.”
도동수와 태현의 대화를 듣던 김철수가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이세연 님이 파티장을 하시는 게 가장 나을 거 같은데요.”
“저도 그게 나을 거 같습니다.”
케인도 손을 들고 동의했다.
“그러면 부족하지만 제가 맡도록 하죠.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한 번 연습 경기로 합을 맞춰보기 위해서인데요…….”
“나는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도동수의 말에 다른 넷은 도동수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도동수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겠다. 너희들은 너희가 알아서 움직이던가.”
태현은 손을 들었다.
아까와는 다른 얌전한 모습!
이세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말해봐. 왜?”
“이제 저거 패도 되냐?”
“…….”
이세연은 슬슬 골치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태현과 한 번 합을 맞춰 공식적인 자리에서 싸워보고 싶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는데…….
사실 이건 그냥 미친 짓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 * *
그러나 의외로 연습 경기에 들어간 이세연 팀은 선전했다.
워낙 기본 피지컬이 차이가 나는 것!
“이, 이건 말도 안 돼……!”
상대 팀원들은 밀리는 상황을 보며 당황해했다.
상대는 예선을 뚫고 있는 대형 길드의 팀이었다.
연습 경기를 하자는 이세연의 제안에 그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세연, 김태현, 도동수 같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팀과 붙는 건 이득이면 이득이었지 손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약간의 욕심도 있었다.
‘아무리 랭커들이라고 하지만 레벨도 맞춰지고 장비도 똑같아! 충분히 가능성 있어!’
‘게다가 저 팀은 인원 다 정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호흡도 안 맞을 거라고. 소문을 들어보니 사이도 안 좋다던데!’
확실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태현의 팀원들은 호흡이 맞지 않았고, 도동수와 태현은 사이도 안 좋았으니까.
찌를 곳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저 팀을 상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 우리도 유명해질 수 있다!’
지금 예선 경기에서는 반짝 유명세를 얻는 플레이어들이 나오고 있었다.
정수혁뿐만 아니라, 슈퍼 플레이를 보여준 플레이어들은 전부 영상으로 따로 나오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그 생각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바뀌었다.
“케인, 쇠사슬 써라.”
“오케이.”
“한 명 잘랐고.”
가운데 진영에서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한 명을 제거하고 시작하는 태현!
게다가 태현이 쓰러뜨린 플레이어는 팀의 탱커를 맡은 플레이어였다.
“A 진영으로 간 플레이어들에게 저주 걸었어. 데스 나이트들 소환해서 막아놨으니까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야.”
“골렘은? 골렘도 보내.”
“야, 여기서는 시간 걸리거든?”
“쯧쯧. 레벨이랑 장비 없으니까 너도…….”
“그런 사람한테 진 게 누구? 응?”
“다시 한번 붙어볼까?”
김철수는 당황해서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싸, 싸우지들 마세요!”
도동수도 따로 행동하고 있는데 태현과 이세연마저 저러면 정말 이 팀은 공중분해 된다!
“싸우는 거 아닌데?”
“싸우는 거 아닌데요?”
그러나 태현과 이세연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둘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
“그런데 도동수는 뭐하냐?”
“몰라. 여기는 없어.”
“혼자 갔다가 죽은 건 아니겠지?”
지금 그들은 파티 전용 대화창으로 말하고 있었다.
물론 도동수도 들을 수 있는 대화창!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B 진영으로는 태현, 케인.
A 진영으로는 이세연과 김철수.
C 진영으로 간 건 도동수 혼자였다.
2,2,1은 원래 한 명이 위험한 포지션이었지만 도동수는 운이 좋았다.
상대방이 2명, 3명으로 나뉘어져서 A, B에 간 덕분에 C를 혼자 차지한 것이다.
“도동수 말이 없는데? 얘 듣고 있는 거 맞지?”
“들리겠지.”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하는 건가? 야, 우리 도동수 강퇴시키고 새로 대화 팔까?”
“…….”
도동수 들으라고 도발을 하는 태현!
일부러 침묵을 지키던 도동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쿨하고 시니컬한 이미지를 지키려고 해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 태현!
이세연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너 지금 여유 있어 보이는데 상황 괜찮아?”
“어? 어. 두 명째 잘랐다. 한 명 튀네. 야! 이리 와! 튀어서 뭐해! 지금 다른 곳 가봤자 늦었어!”
“!!!”
몰래 듣던 도동수는 속으로 경악했다.
A로 2명, B로 3명 갔으면 지금 태현-케인은 3명을 상대하고 있어야 했다.
A에서 이세연-김철수는 상대방과 아직 팽팽하게 붙는 중.
그런데 2:3으로 붙는 태현이 지금 두 명째 자르고 있다고?
‘대체 뭘 어떻게……?!’
PVP에 특화된 도적이라면 저런 플레이가 가능하기는 했다.
일 대 다수로 싸울 때 빠르게 접근해 폭딜을 넣어서 상대방의 숫자를 줄이고 시작하는 것.
그러나 여기는 프리카 투기장이었다.
레벨, 장비는 의미가 없고 상대방도 방심하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빠르게 두 명을 잘랐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세 명째 잡았다. B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