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47화
토벌대들을 벗어난 대주교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연속으로 이어진 전투 때문에 MP도 바닥, 게다가 태현한테 받은 공격 때문에 HP도 바닥!
“크아악! 안 돼!”
* * *
[사디크 대주교가 쓰러졌습니다.]
[사디크 교단의 사기가 대하락합니다.]
갑자기 뜬 메시지창!
“…….”
대주교를 레이드하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
“이런 XXX!”
“어떤 XX가 이런 짓을 한 거야! XXXX!”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부터 튀어나오는 플레이어들!
당연했다. 고생이란 고생은 그들이 다 했는데 갑자기 어떤 놈이 나타나서 대주교를 먹튀한 것이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대, 대주교가 이 근처로 순간이동한 걸 누가 잡은 거 같은데?”
“어떤 개XX가 상도덕도 없이 그런 짓을 해?!”
“찾아!”
“잡아서 죽여!”
사실 지금 가장 분노한 건 태현이었다.
이들은 그저 아이템을 못 얻고 경험치나 손해를 보지만, 태현은 달랐던 것이다.
사디크의 권능을 하나 얻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린 것!
그런 것도 모르고 절벽을 기어오른 플레이어들은 기뻐서 날뛰고 있었다.
“야! 우리가 대주교를 잡았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흑흑, 그렇게 고생을 했더니 복이 오는구나! 역시 세상은 공평해!”
지금 근처에서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이를 갈고 있다는 건 상상치도 못하는 그들!
알았다면 당장 내뺐을 그들이었다.
“어? 저기서 사람들 오는데?”
“토벌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겠지. 인사나 해주자.”
그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살기로 가득 차 있던 것!
“??”
“저놈들 맞네!”
“저기 사제들 쓰러져 있잖아!”
대주교 레이드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그들을 빙 둘러쌌다.
일단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만든 것이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 왜 이러는 거지?”
“뭐야? 뭐야?”
당황한 플레이어에게 싸늘한 목소리의 질문이 들어왔다.
“지금 그쪽이 대주교 스틸한 거 맞죠?”
“!!!”
포위당한 플레이어들의 입이 벌어졌다. 저 질문에 무슨 상황인지 바로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남이 레이드하던 거 스틸했구나!’
‘그것도 거의 다 잡은 걸!’
대주교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가 저렇게 쉽게 죽을 리 없었다.
갑자기 떨어진 행운에 미처 못 떠올렸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것!
포위당한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야, 어떡하지?
-분위기 장난 아닌데?
원래 판온에서 남이 사냥하는 걸 스틸하는 건 PVP를 해달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도발!
물론 포위당한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착한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애초에 태현의 영지에 쳐들어갈 정도였으니까.
남의 사냥감을 스틸한다고 엄청나게 미안해하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과 비슷하거나, 그들보다 더 강한 플레이어들이 수십 명!
그런 플레이어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무기를 뽑을 것 같은 얼굴들!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말 잘못 하면 바로 로그아웃 당한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대주교 스틸한 거 맞아요 아니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닌데? 어? 뭐가 아닌데?”
“우리는 여기 올라왔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토벌대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우리가 대주교 레이드하는 거 다 알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야?”
“우리는 늦게 와서…… 그게…….”
“늦게 왔으면 마음대로 스틸해도 돼? 어?”
변명은 전혀 통하지 않을 분위기!
포위당한 플레이어들은 점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도망칠 곳은 없었다.
“……!”
그 순간 그들의 눈에 익숙한 플레이어가 들어왔다.
바로 태현이었다.
“김태현! 김태현!”
“우리야! 우리라고!”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은 태현이었지만, 궁지에 몰린 그들에게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태현은 이 상황에서 그들을 구해줄 유일한 사람으로 보일 뿐!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본 게 태현이라는 것을!
“너희가 누군데?”
“…….”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나온 차가운 대답! 플레이어들은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야! 네가 시켰잖아!”
“내가 시키긴 뭘 시켜. 내가 언제 내가 잡던 대주교 뺏어가라고 시켰냐?”
“……!”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태현이 왜 저렇게 냉정한지를.
지금 태현도 대주교를 잡다가 뺏긴 것이다!
“아니, 아니,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포위당한 플레이어들은 필사적으로 태현에게 매달렸다.
그들을 포위한 플레이어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일단 태현과 아는 사이 같으니 태현이 어떻게 하나 지켜보려고 한 것이다.
그 분위기를 포위당한 플레이어들도 눈치챘다.
‘이 토벌대에서 김태현의 위치가 생각보다 엄청 높다!’
‘김태현이 말만 잘 해주면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상황을 판단한 그들은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놔라. 이것들아.”
“김태현! 제발 우리 말 좀 하고 가자! 너 그냥 가면 우리는 죽어!”
“며칠 쉬고 재접속하면 되겠네. 잘 가라.”
“야! 제발! 네가 하라는 대로 했잖아!”
“아, 내가 언제 대주교를 잡으라고 했는데. 어? 너희들은 머리가 없냐? 너희 초보도 아니잖아. 갑자기 앞에 대주교가 나타났으면 ‘어? 저게 왜 갑자기 저기에 나타났지?’ 하는 생각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태현은 발목을 잡은 플레이어를 퍽퍽 걷어찼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끈질기게 놓지 않았다.
“뭐든지 할게! 우리 좀 도와줘라!”
“너 그냥 가면 우리 진짜 죽는다고!”
그걸 본 태현은 작게 말했다.
“사실 나도 너희들 공격할 때 낄 생각이었는데.”
“…….”
“농담이야.”
플레이어들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건 100% 진심!
“그래서…… 오늘 나한테 입힌 피해를 갚기 위해 내 밑에서 개처럼 일하겠다고?”
“아, 아니 그런 소리를 한 건 아닌데…….”
“그럼 죽던가.”
“일할게! 일하면 되잖아!”
“그래. 그런 너희들을 위한 퀘스트가 또 있지.”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태현이 주는 퀘스트라면…….
‘안 돼!’
‘또 아키서스 저주냐?!’
“너희들이 나름 고생했으니까 보상은 2골드로 올렸다. 받아라. 왜? 받기 싫어?”
“아, 아니야…….”
“받기 싫은 얼굴인데?”
“아니라니까! 받고 싶다고!”
* * *
“여러분. 용서해 줍시다.”
“……!”
토벌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충격받은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하, 하지만 태현 님. 저놈들이 우리가 그렇게 고생해서 잡은 걸 스틸했는데…… 태현 님도 제일 많이 고생하셨잖아요!”
“그렇죠. 저도 아쉽지 않은 건 아닌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잡은 건데. 이 사람들을 잡아봤자 대주교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이 사람들도 고의는 아니었을 테니까 용서해 줍시다.”
“……!”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저걸 용서해 주다니!
보통 그냥 두들겨 패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상황!
사람들은 태현의 넓은 마음과 자비심에 감탄했다.
‘소문으로 들었는데 훨씬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구나.’
‘누가 저런 착한 사람한테 헛소문을 퍼뜨린 거야? 성격 더럽고 깐깐하단 건 다 거짓말이었네.’
사람들이 감격하는 동안, 이세연은 더 놀라고 있었다.
-너 왜 그래?
-뭐가?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그래.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내가 예전에 했던 것들이 다 업보 같더라고. 그래서 좀 착하게 살 생각이야.
-……그걸 내가 믿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
-싫으면 믿지 말든가.
태현은 이세연의 귓속말을 깔끔하게 끊어버렸다.
오늘 이 토벌대를 상대하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이세연의 이미지가 너무 좋다는 것!
덕분에 이세연이 말 한마디 하면 사람들은 일단 믿고 보았다.
‘대체 왜 이세연의 말을 믿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말인데.’
태현 빼고는 모두가 좋아하는 이세연!
그런 이세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태현도 좀 좋은 이미지를 더 만들 필요가 있었다.
물론 지금 태현한테 새 퀘스트를 강제로 받은 플레이어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XXXXXXXX!’
‘XXXXXXXXXXXX!’
속으로 태현의 욕설만 1분 넘게 하는 그들!
간신히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라는 대형 퀘스트를 깨나 했더니, 바로 하나가 더 떨어진 것이다.
‘김태현 죽이고 싶다!’
‘정말로 죽이고 싶다!’
그러는 동안 케인은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사디크 교단 토벌은 다 끝난 거야?”
“대충 그렇다고 봐야지. 기사단장은 튀었지?”
“안 보인다던데.”
“대주교는 잡혔고 기사단장은 튀었고…… 그래.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대충 다 했다고 봐야겠네.”
본거지에 남은 사디크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토벌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착실하게 털어먹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들이 쓰러지고 사라진 이상 곧 무너질 그들!
[사디크 교단이 몰락합니다.]
[남은 사디크 교단의 NPC들은 지하로 숨어듭니다. 그들은 교단의 부활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사디크 교단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응?’
태현은 순간 메시지창을 잘못 본 줄 알았다.
뭘 할 수 있다고?
[사디크 교단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사디크의 권능을 더 모아야 합니다.]
[사디크 교단을 부활시킬 경우 예전 사디크 교단 NPC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렸다.
사디크 교단이 몰락한 상황에서 교단의 권능을 갖고 있으니, 부활시킬 자격을 얻은 것!
‘내가 무너뜨리고 내가 다시 짓는다니 이게 뭐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물론 태현은 사디크 교단을 다시 세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키서스 교단과 달리 교단을 세우는 즉시 공격이 들어올 테니까!
사디크의 권능만 더 얻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기사단장은 왜 도망친 거지? 대주교는 여기 있는데.”
“몰라. 살고 싶었나 보지.”
“뭐 하려는 게 있는 게 아니라?”
“하려는 거면…….”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복수밖에 할 게 없지 않나?
아까 성기사단장이 노려보던 건 태현도 섬뜩할 정도였다.
‘아, 여기서 잡았어야 했는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여기서 대주교하고 성기사단장까지 잡았다면 사디크의 권능 2개가 그냥 굴러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끝난 상황.
태현은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잘 풀린 셈이었으니까.
“안 돼!! 저주가 풀렸어!!!!!”
“……?”
저 멀리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사디크 대주교가 쓰러졌습니다. 사디크의 저주가 풀립니다.]
“안 돼!!!”
에반젤린은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슬금슬금-
그 모습에 거리를 은근슬쩍 벌리는 파티원들!
“애, 애들아? 우리 친구지? 친구잖아?”
“친구지!”
“그렇지만 좀 떨어져서 걷자!”
에반젤린은 여전히 좋은 친구였지만, 그렇다고 그녀 가까이에 붙어서 불운 페널티를 그대로 맞을 생각은 없었다.
경계심 가득한 파티원들!
“야! 너무한 거 아니야!?”
“너 가까이 있으면 내구도가 떨어지는데 어떻게 해!”
“으윽……!”
생각해 보니 사디크 대주교가 쓰러지면 그 저주도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에반젤린은 스스로 반성했다.
왜 이런 당연한 생각을 못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