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46화
“하하하하!”
“태현 님은 농담도 잘 하시네요!”
“아이고 배꼽이야!”
“…….”
진심으로 말한 거였는데 농담인 줄 아는 토벌대 플레이어들!
태현의 이마에 혈관 하나가 돋아났다.
그걸 눈치챈 이세연이 말을 돌렸다.
이미 원하는 건 얻어낸 상황.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증인이 되어준 것이다.
게다가 태현과 친하다는 소문이 퍼지는 건 덤!
생각지도 못한 덤을 받은 덕분에 이세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 있는 태현이 좌절한 표정을 짓는 걸 보자 더더욱 좋아지는 기분!
“이제 슬슬 잡으러 가죠.”
“예!”
“출발합시다!”
이세연이 말하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태현의 혈압을 다시 한번 올렸다.
“헉, 헉…… 안 늦었지?”
“저희 왔어요!”
그사이 케인과 이다비가 도착했다.
토벌대 플레이어들이 총공격을 한 덕분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늦게 온 건 아니…… 헉! 이세연!”
케인은 이세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세연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번에 한 번 봤었죠?”
“네, 넵! 봤었습니다!”
이세연이 케인을 알아봐 주자, 케인은 흥분해서 태현에게 외쳤다.
“이세연이 날 알아봤어! 날 기억했다고!”
“아, 어쩌라고. 죽이려고 기억한 거겠지.”
“아니야! 이세연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저번에 나 때문에 이세연이 결국 왕관 못 얻은 거 기억 안 나냐? 너라면 그 원한을 쉽게 잊을 거 같냐?”
“나, 나라면 안 잊겠지만…… 그래도 이세연이니까…….”
말하던 케인은 자신이 말하고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이세연을 방해하면 방해했지 도와준 적은 없었던 것!
그걸 잘 알았기에 태현은 케인을 괴롭혔다.
“너는 이미 나하고 같이 이세연의 살생부에 올라갔어 임마! 이세연이 너한테 잘해 준다고 속지 말라고! 기회만 생기면 너 죽인 다음 언데드로 부활시킬 테니까!”
“아니야! 이세연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흑흑! 투기장도 같이 팀 됐다구!”
태현이 케인을 괴롭히는 동안, 이세연은 이다비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말하면서 거리를 벌리는 이다비!
누가 봐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세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해치지 않으니까 안 도망치셔도 되는데요.”
“괜찮아요! 저는 여기가 편해요!”
태현이 이세연의 험담을 한 덕분에 이다비의 경계심은 최대치였다.
“파워 워리어 길마셨죠?”
“그건 어떻게……?”
“유명하시잖아요? 저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어요.”
“파워 워리어는 이세연 님 길드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
“아니에요. 파워 워리어처럼 사람 많은 길드 찾기 힘들잖아요. 초보자들도 차별 없이 받아들여서 평가가 좋다고 들었어요.”
성을 함락시키려면 주변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해자를 메워야 했다.
지금 이세연이 하려는 것도 비슷했다.
태현을 손에 넣으려면 주변 사람들부터 공략할 필요가 있는 법!
이세연이 유명하다고 해주자 이다비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파워 워리어 길드를 저렇게 말해주는 플레이어는 드물었고, 랭커는 더더욱 드물었다.
보통 파워 워리어 길드는 ‘그 길드’로 불려고 길드원들은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들’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파워 워리어 길드가 평가가 좋다는 건 처음 듣는…….”
“쉿. 지금 칭찬하잖아요.”
이다비가 팔을 뻗어 태현의 입을 막았다.
이다비가 넘어오는 것 같자, 이세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확실한 추가타를 넣었다.
“나중에 같이 방송이라도 같이 해요.”
“……!”
태현은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다비한테 저렇게 말하다니. 이다비가 완전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제안!
파워 워리어 방송을 돌리는 이다비에게 방송을 나가주겠다는 이세연의 제안은 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다비는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이미 약속이 꽉 차 있어서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
“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이세연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물러섰다.
더 놀란 건 태현이었다.
“너 왜 거절했어?”
“어라? 받아들여야 하는 거였어요?”
“그건 아니었지만…….”
“딱 봐도 흑심이 있는 거잖아요. 나가자고 했으면 태현 님도 같이 나가게 됐을 걸요.”
“이다비……!”
태현은 감동한 얼굴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저기서 ‘이세연 만세!’를 외치고 있는 케인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
“우리는 파트너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지.”
감동 받은 목소리로 대답하던 태현은 순간 이다비의 손이 꼭 쥐어진 채로 부르르 떨리는 걸 발견했다.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손!
“……너 아쉬워서 이러는 거야?”
“……네…….”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
태현은 이다비의 등을 토닥였다.
“내가 나중에 길드 방송에 나가줄게.”
“태현 님보다 이세연 님이 더 인기 좋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팩트로 패지 마…….”
태현과 이다비가 떠드는 동안 이세연도 자리로 돌아왔다.
김현아는 매서운 눈빛으로 태현 파티를 노려보았다.
살기 넘치는 눈빛!
“만만치 않네.”
“누가요?”
“저기 파워 워리어 길마.”
“저런 사람이 뭐가 대단하다고……!”
“현아야, 내가 다른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지?”
김현아가 볼을 부풀렸다. <파워 워리어>라는 길드 이름은 얕잡아볼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세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 하긴, 어떤 길드든 저 정도로 유지하려면 길마가 능력이 있어야지.”
“저런 건 아무나 해요!”
“아무나 못 해. 특히 파워 워리어 같은 길드는 더더욱. 저런 길드 중에 오래 간 다른 길드가 있어? 파워 워리어 길드 말고.”
파워 워리어처럼 일단 사람들을 많이 모아 무언가를 해보려는 길드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길드 중 오래 가는 길드는 거의 없었다.
길드란 건 제대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쉽게 무너져 내리기 마련!
그런 면에서 파워 워리어를 아직까지 이끌고 있는 이다비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다들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
길드가 파워 워리어만 아니었어도 이다비의 평가는 훨씬 더 올라갔을 것이다.
“흥. 이다비라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쳐요. 그래도 저 케인이라는 사람은 아니죠!”
“응. 나도 저 케인이라는 사람은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 안 하는데.”
의견이 일치한 둘!
“그냥 김태현 따라다녀서 저 정도 된 거 아닐까? 저 정도 플레이어는 흔하잖아. 특이한 게 있다면 좀 바보 같을 정도로 김태현을 따른다는 거 정도?”
“그렇게 챙겨줬는데 그렇게 따르는 게 당연하죠.”
“하긴, 그렇지?”
자기 욕을 하는 것도 모르고 케인은 신이 난 상태였다.
투기장 대회를 앞서고 이세연한테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대주교 잡으러 가자!”
“가즈아!”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김태현도, 이세연도 토벌대에 있었다. 아무리 대주교가 강한 보스 몬스터라도 두렵지 않았다.
* * *
콰콰쾅!
“커헉!”
굉음 소리와 함께 대주교가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주교 주변에 쳐 있던 몇 겹의 방어막들은 벌써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삼십 명 가까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대주교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숨 쉴 틈도 없는 연계 공격!
이 자리에 낀 플레이어들은 다들 기본적으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합을 맞추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이런 대규모 보스 레이드에 익숙한 플레이어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태현은 유난히 돋보였다.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력!
같이 싸우던 플레이어들도 감탄을 하며 혀를 내둘렀다.
“사디크의 이름이 내게 힘을 주시고…….”
그러는 도중 사디크 대주교와 사제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이 외쳤다.
“장판 깐다!”
“빠져!”
저렇게 주문을 외우는 건 사디크 대주교가 강력한 마법을 펼친다는 신호였다.
곧 대주교 주변으로 강력한 범위 공격이 가해질 것!
벌써 저 마법에 당해서 로그아웃당한 플레이어들이 몇몇 있었다.
워낙 데미지가 셌기에 잘못 휘말리면 사제들의 지원도 받기 전에 그냥 죽어버렸다.
그러나 한 명 제자리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태현 님!”
“빠지세요!”
플레이어들이 당황해서 외쳤다.
태현이 지금 빠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초보도 아니고,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저러시는 거지?”
“빠지셔야 한다니까요!”
쾅! 쾅쾅!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맹공을 퍼부었다.
대주교를 막고 있던 방어막이 거의 깨져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사제들이 계속해서 방어막을 쳐도 공격하는 속도가 앞섰던 것이다.
태현의 속셈은 하나였다.
‘대주교는 내가 잡는다!’
권능도 권능이지만, 보스 몬스터를 잡았을 때 경험치나 아이템 배분은 공로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부터 갖게 되어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파티를 짰다면 아이템 배분 방식을 따로 설정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모인 플레이어들은 그런 게 전혀 없는 플레이어들!
즉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을 세워야 했다.
‘데미지와 막타를 챙기면 어지간하면 1위 찍는다!’
흑심으로 가득!
그런 속셈도 모르고 플레이어들은 당황해서 걱정할 뿐이었다.
태현의 속마음을 눈치채기에는 태현의 이미지가 너무 고고했던 것!
“혹시 장판을 막으려고 저러는 거 아닐까?”
“응?”
“아까도 못 피해서 한 명 로그아웃 당했잖아. 그거 때문에 저러시는 거 아냐?”
“그런 거구나!”
“……?”
“쟤네 뭐라는 거냐?”
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작게 속닥였다.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 플레이어들!
“태현 님!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물러나셔도 괜찮아요!”
“맞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있습니다!”
‘뭐라는 거야?’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태현도 의아해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강격, 연타, 급소 공격, 마법 차단!
[마법 차단이 실패했습니다.]
[사디크 대주교의 마법이 계속해서 진행됩니다.]
순간 사디크 대주교가 눈을 부릅뜨고 태현을 노려보았다.
“김태현 백작! 우리의 원한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죽더라도 성기사단장이, 성기사단장이 죽더라도 그 뒤가 너를 쫓아 죽일 것이다!”
파직!
그 소리와 함께 태현은 대주교의 방어막을 박살 내는 데 성공했다.
“……!”
-치명타 폭발!
이제까지 치명타 스택을 쌓으면서 기회만 엿봤던 건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서였다.
무방비가 된 사디크 대주교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순간!
콰아아아앙!
태현의 손끝으로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굳이 메시지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대만 더 때리면 대주교는 끝난다!
‘추가타를…….’
파앗!
[마법이 완성됩니다.]
[사디크 대주교가 순간이동합니다.]
“?!?!”
아무리 태현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대주교와 사제들이 붉은빛에 휩싸여 사라진 것이다.
“뭐야?!?!”
* * *
“드디어 다 올라왔다!”
“야, 근데 지금 사이트 보니까 토벌 다 끝난 거 같은데…….”
“안 돼! 뭐라도 잡아야 해!”
가파른 절벽을 뚫고 올라온 플레이어들!
바로 태현한테 강제로 퀘스트를 받은 플레이어들이었다.
절벽에 설치된 함정 때문에 그들은 너덜너덜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멈췄다가는 저주를 풀 수 없었던 것이다.
“뭐라도 잡아야…… 어?”
“저거 사디크 사제들이다!”
“잡자!”
멀리서 붉은 빛과 함께 사디크 대주교와 사제들이 나타났다.
마법을 사용해 태현의 공격에서 벗어난 그들!
물론 절벽을 기어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저 뭐라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뿐!
“잡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