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41화
대폭발 속에서도 안토니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사단 중에서도 안토니오의 친위대원들이 안토니오를 감싸고 방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고위 기사 스킬에, 사디크 교단 스킬까지 사용하는 그들 덕분에 안토니오는 살아남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죽여! 저놈을 반드시 죽여!”
-케인, 도우러 올 수 있냐?
-무리야! 지금 이다비하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하다고!
신성 폭탄은 폭발보다 그 뒤의 여파가 더 강력했다.
폭탄에서 나온 화염이 그 넓은 본거지를 절반 넘게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덕분에 케인과 이다비도 도망치느라 아직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너 이 화염 안 맞아봤지?
-왜?
-이거 맞으면 이상한 효과도 따로 들어온다고! 아키서스의 불운으로! 이거 네가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니냐?!
[화염에 닿았습니다. HP가 내려갑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아키서스의 불운에 휘말렸습니다. 랜덤으로 저주에 걸립니다.]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사디크와 아키서스, 둘 다 권능을 얻었기에 만든 폭탄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아, 그런 거군. 그래서 이름이 <사디크와 아키서스의 신성 폭탄>인가?
-지금 그거 분석할 때냐!?
-너보다 내가 더 위험하거든?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태현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굳어지는 외침의 검!
-굳어지는 외침의 검!
사방에서 날아드는 기사들의 공격. 직격을 피해도 저주가 들어오는 귀찮은 공격이었다.
‘아직 저 방어 스킬 안 끝난 거 같은데. 일단 시간을 끌자.’
태현의 공격을 막은 걸 보면 강력한 대신 제한 시간이 긴 방어 스킬일 가능성이 높았다.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왔지만 태현은 회피와 방어에만 집중했다.
스택이 쌓이듯 차곡차곡 저주가 쌓여도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동속도 좀 내려가 봤자 상관없어. 피할 수 있다.’
태현은 스스로의 감각을 믿었다.
이동속도가 내려가면 상대방의 움직임을 먼저 읽고 피하면 된다!
남들이 들으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욕이 나올 비법이었다.
파앗-
버티는 사이 기사들의 몸에서 빛이 사라졌다. 방어막이 사라진 것이다.
‘용용이를 꺼낼까?’
태현은 순간 고민했다.
숫자가 팍 줄었어도 기사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은 기사들은 기사단 중에서도 강한 기사들이라고 봐야 했다.
하나하나가 준 보스 몬스터 수준!
그렇지만 사디크 교단의 본거지에서 용용이를 꺼내는 순간 더 이상 위장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사디크 교단이 멍청해도 용용이를 봤는데 속지는 않을 테니까!
태현이 괜히 용용이를 이제까지 숨기고 다닌 게 아니었다.
두두두두-
“?”
멀리서, 본거지를 뒤덮은 화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현도 기사들도 시선을 돌렸다.
누구지?
파아앗!
화염을 뚫고, 굳은 얼굴의 사디크 성기사들이 자리에 도착했다.
“성기사단장!”
“!!”
태현은 혀를 찼다.
‘젠장. 빠져나가야 하나?’
안토니오를 잡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아깝다고 버티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지원은 안 올 줄 알았는데……!’
성문 요새에서 싸움이 워낙 치열해서 지원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보다 왜 성기사단장이 오는 거야? 와도 성기사들이나 조금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성기사단장이 직접 오다니.
보스 몬스터 둘에, 준 보스 몬스터 여럿.
그에 비해 태현은 하나.
지금은 그냥 빠져야 했다.
“저놈이다! 성기사단장! 저놈을 잡아!”
안토니오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그럴 법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기사단이 도착하다니.
그러나 성기사단장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왜 잡아야 하지?”
“?”
“???”
안토니오도, 태현도 어리둥절했다.
성기사단장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미쳤나, 성기사단장? 저놈을 잡으라니까! 저놈이 나를 공격했어! 이 폭발도 저놈이 일으킨 거라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안토니오. 너무 추한 거 아닌가?”
성기사단장은 잘생긴 얼굴에 비웃음을 흘리며 안토니오를 노려보았다.
“????”
안토니오가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동안, 태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태현은 지금 사디크 성기사로 위장 중!
게다가 안토니오는 요즘 성기사단장과 대주교와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태현과 안토니오가 싸우는 모습을 목격하자, 성기사단장은 안토니오부터 의심한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이놈!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냐!”
“의심할 수밖에 없겠는데. 안토니오, 왜 성문 요새로 오지 않았지?”
“그, 그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 마차들은 뭐지? 이 주변에 흩뿌려진 잔해들은?”
“그, 그건…… 그게…….”
성기사단장은 점점 알아서 확신을 더해가고 있었다. 성기사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네놈은 우리가 싸우는 동안 우리를 배신하고 도망치려고 한 거다. 이 잔해들이 그 증거지. 우리의 보물을 챙기고 도망치려고 했군, 안토니오.”
여기까지는 정확하게 맞았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네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여기 이 용감한 내 부하가 너를 막은 거겠지!”
“?”
여기서부터 말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태현은 성기사단장을 쳐다봤지만 성기사단장은 태현에게는 눈도 주지 않았다.
안토니오만 노려볼 뿐!
“아니다! 이놈이 날 습격한 거다! 이놈이 배신자라니까!”
안토니오가 방방 뛰었지만 성기사단장의 귓가에는 닿지 않았다.
이제는 존재만으로도 둘을 이간질시키는 태현!
태현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둘의 대화를 쳐다보았다.
아무 말 안 해도 알아서 점점 격해지는 둘의 대화!
“내 부하가 이런 참사를 냈다는 걸 믿으라는 거냐?”
“정말이다, 이 멍청한 놈아!”
“하. 안토니오. 정말 추하구나. 아마 이렇게 된 거겠지. 네놈은 만약을 대비해 이 화염을 일으킬 방법을 준비한 게 분명하다. 도망치려다가 발목을 잡히자 이 화염을 터뜨린 거겠지.”
“내가 여기에 왜 화염을 지르겠냐! 정신 차려!”
“너라면 충분히 가능한 짓이지! 널 쫓지 못하도록!”
성기사단장은 더 이상 안토니오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성기사단장은 태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직접 묻겠다!
저 배신자를 상대하며 여기까지 버텨준 충성스러운 부하에게!
“어때, 내가 한 말이 틀리나?”
“……조금도 틀린 부분이 없군요!”
“역시!”
[사디크 성기사단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칭호:불화를 일으키는 자를 얻었습니다.]
* * *
더 이상 대화는 의미 없다!
성기사단장은 이끌고 온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비열한 배신자 놈을 잡아라. 내가 직접 사디크 님에게 바치겠다!”
즉 태워 죽이겠다는 뜻!
성기사단장이 데리고 온 부하들은 보통 성기사들과는 겉모습부터 달랐다.
전신에서 사디크의 화염을 내뿜는, 최고위 성기사들!
‘지금 성문 요새 쪽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길래 이런 전력을 따로 빼 온 거지?’
태현이 의아할 정도였다.
안토니오와 안토니오의 친위대 기사들vs성기사단장과 최고위 성기사들!
거물들끼리 부딪히는 빅 매치!
태현은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래서 이다비가 그렇게 팝콘을 만들어서 팔자고…….’
남들을 싸움 붙이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끝까지 짖어대는구나, 멍청한 놈! 오냐!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안토니오도 설득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는 이를 갈아대며 태현을 노려봤다.
아무리 봐도 저놈은 사디크 성기사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디크 성기사가 저런 폭탄을 왜 갖고 다닌단 말인가!
그런데 저 성기사단장 놈은 눈깔이 삐었는지 태현 편을 들어주고 있으니,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안토니오가 분노 상태에 빠집니다.]
[당신에 대한 적대도가 최대치에 달합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는 안토니오.
태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었다.
“!!!!”
안토니오는 목덜미를 붙잡았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놈이 저렇게 비웃다니.
“감히……! 반드시 네 놈은 죽여주마! 내 명예를 걸고!”
“내 부하에게 협박하지 마라, 안토니오!”
성기사단장은 안토니오의 살기를 보더니 태현 앞에 섰다.
고생한 부하를 지켜주려는, 이 시대의 참된 리더!
-사디크의 아홉 개의 가호!
-화염의 재생!
-뜨거운 대지의 축복!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성기사단장은 태현에게 닥치는 대로 버프를 걸어주기 시작했다.
사제와는 다른 종류의 버프였다.
아무래도 성기사는 다른 사람을 버프해 줄 때 사제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기사단장은 레벨로 그걸 무시해버렸다.
[화염 저항력이 오릅니다.]
[MP가 회복됩니다.]
[MP 회복 속도가 오릅니다.]
[물리 방어력이 오릅니다.]
[저주가 해제됩니다.]
[30초 동안 저주가 튕겨 나갑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버프 연속!
성기사들이 괜히 바퀴벌레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단장쯤 되자, 타인에게 걸어주는 버프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충성충성충성!”
“고생 많았다. 여기는 내게 맡겨라!”
“아닙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이곳을 불태운 저 사악하고 더러운 놈을 앞두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디크 님을 위하여!”
물론 속셈은 안토니오를 죽이고 권능을 먹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성기사단장은 알 방법이 없었다.
태현의 말에 성기사단장은 감격했다.
“보아라! 이게 사디크 성기사의 의지다! 어떤 적들이 찾아와도,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사디크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와아!”
[사디크 성기사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너무 말을 잘 한 덕분에 성기사들의 사기까지 올려버리는 태현이었다.
‘뭐, 상관없지.’
지금 중요한 건 안토니오를 잡는 것!
“……쳐라!”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와, 이건 좀…….”
이세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디크 대주교가 무언가 큰 거 한 방을 노리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저 주변을 통째로 태워버리다니.
“모두 후퇴! 후퇴해!”
“일단 물러서요! 회복시켜드릴 테니까!”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목청 높여 소리쳤다. 그러나 후퇴하고 싶어도 바로 후퇴할 수는 없었다.
사디크 대주교가 파괴된 성문 요새 주변에 대규모 화염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그냥 보통 화염 마법이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퍼지는 화염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다.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부족 전사들이나 다크 엘프 궁수들까지 같이 공격하는 무차별 마법!
덕분에 신이 나서 덤벼들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염에 한 번 휩싸이면 어지간한 플레이어들도 로그아웃을 각오해야 했다.
“보스 몬스터니까 저 정도는 하겠죠.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가요. 언니.”
김현아는 냉정했다.
아무리 사디크 대주교가 강력한 마법사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저런 마법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풀릴 테니, 그 후 다시 공격하면 됐다.
성문 요새가 파괴된 건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멍청하게 덤벼들었다가 로그아웃 당한 플레이어들만 손해를 본 셈이었다.
지금도 똑똑한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알아서 대처하고 있었다.
“저 뒤에 한 놈 더!”
“오케이. 확인했어! 쏜다!”
접근할 수 없다면 원거리 위주로!
토벌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는 걸 깨닫자 이세연은 안심했다.
“응? 저기 요새 뒤에 불 난 거 아냐?”
“에이, 언니. 저 정면 쪽의 화염이랑 착각하셨겠죠. 쟤네가 왜 자기네 본거지에 불을 지르겠어요?”
“그런가? 잠깐, 아닌데? 진짜 불이야!”
이세연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문 요새 뒤로 펼쳐진 사디크 교단 본거지를 화염이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