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40화
기사들이나 입는 중갑옷을 입고서 손짓하는 NPC들!
“빨리 오지 못해? 에이, 사디크 놈들은 정말…….”
“죄송합니다. 안토니오 님.”
안토니오의 불평에 기사들은 고개를 숙였다.
-안토니오?
-안토니오면…….
그 대화에 셋은 빠르게 깨달았다.
아탈리 국왕의 삼촌!
저번 국왕 암살 사건의 주모자!
태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놈 목 가져가면 아탈리 왕국에서도 상을 주겠지?’
사디크 교단의 권능도 포식하고, 아탈리 왕국의 보상도 추가로 받고.
마치 1+1 이벤트 같은 NPC, 안토니오!
<신의 예지> 스킬이 괜히 이곳을 가리킨 게 아니었다.
태현은 그 순간 목표를 정했다.
폭탄을 쓰더라도 여기서 안토니오를 잡고 가겠다고!
‘문제는 어떻게 잡느냐인데.’
안토니오는 본인도 기사 출신에 사디크 교단으로 들어갔으니 사디크 교단 스킬도 쓸 수 있는 강력한 NPC였다.
게다가 안토니오를 따라다니는 아탈리 왕국 출신 기사단!
판온에서 기사단은 보통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기 힘든 세력이었다.
현재 랭커들보다 레벨이 높은 기사들로 우글거리는 괴물들 집단!
저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왔던 플레이어들이 단체로 아농 백작의 기사단에게 쓸려나간 걸 생각해보면 기사단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정면 승부는 무리!
그러나 태현은 성급해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해결해오지 않았는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대규모 파티를 조직해 단체 레이드를 뛸 때 태현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었다.
‘기사단이면 함정도 잘 찾아낼 텐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려나…….’
“아까 그놈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정말 무슨 일 생긴 건 맞아?”
“아마 그럴 겁니다.”
“멍청한 놈들. 경비 하나 제대로 못 서서 침입자를 허락하다니. 아탈리 왕국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태현은 안토니오와 부하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다.
그러나 금세 짐작 가는 게 떠올랐다.
버포드와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싸움!
그 싸움 때문에 여기 있던 사디크 성기사들이 그쪽으로 달려간 게 분명했다.
‘고맙다, 버포드!’
버포드는 생각지도 못하게 태현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봐,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지금 당장 짐을 마차에 실어라!”
“……?”
안토니오는 태현 파티를 가리키며 성질을 부렸다.
-마차에 짐을 실으라고?
-무슨 비밀 계획이라도 있나?
-아니…… 저 자식 설마 그냥 튀려는 거 아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저 정도 되는 고위 NPC가 그냥 도망을 칠…….
“빨리 움직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꾸물거리지 마라! 빨리 떠나야 한단 말이다!”
-……맞네요?
-…….
-저놈 뭐냐?
셋은 어이없다는 듯이 안토니오를 쳐다보았다.
지금 다른 사디크 교단 NPC들은 성문 요새에서 죽어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강력한 전력인 부하 기사단을 데리고 그냥 도망치려고 하다니.
판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인성!
어이가 없었지만 셋은 일단 움직였다. 여기서 더 꾸물거렸다가는 들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태현과 달리 케인은 화술 스킬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말이라도 걸렸다가는 위험했다.
-이거 뭐 같냐?
-몰라. 왕족 놈이 마차에 실으라고 하는 거 보니까 좋은 거 아닐까?
원래라면 가장 직위가 낮은 사디크 성기사들이나 부족 전사들을 부려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에서 일어난 싸움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상황!
태현 파티는 물론이고 기사들도 불평을 하며 움직였다.
안토니오의 개인 창고에 있는 아이템이니만큼 뭐가 있는지 신경 쓰였지만, 다 상자 안에 있어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여, 여기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골드가 분명해요!
-이다비. 손 떼라. 지금 가방에 넣으면 걸리잖아.
-하지만, 하지만……!
[계속해서 무거운 짐을 날랐습니다. 힘이 오릅니다.]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지구력이 오릅니다.]
스탯이 올랐다는 메시지창은 덤!
태현은 이다비를 진정시키며 마차 안에 짐을 던져 넣었다.
‘어라? 잠깐만. 지금 폭탄을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태현은 점점 이 생각이 괜찮게 느껴졌다.
안토니오를 보니 도망치더라도 마차 주변에서 멀리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탁-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고민하고 고민했겠지만, 태현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결심한 순간 기회를 잡는다!
이런 빠른 결단력이 태현의 장점 중 하나였다.
‘이런 미친놈……!’
옆에서 짐을 나르던 케인은 경악했다.
태현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을 꺼내서 마차 안에 올려 넣은 것이다.
누가 보면 짐을 올린 줄 알 정도로 태연한 모습!
* * *
“다 끝났습니다!”
“좋아. 비밀 통로로 출발한다!”
‘그런 것도 있었나?’
태현은 슬슬 빠질까 생각했다.
이들은 지금 마차 안에 폭탄이 있다는 걸 모르니 멀리서도 터뜨리기 쉬울 테니까.
“따라와라! 제대로 호위를 서라!”
“어…….”
-야, 어떡할 거야? 우리는?!
-태현 님 회피 스킬로 괜찮을까요?
-나도 이거 터뜨려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는데…….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이 폭탄이 어느 정도로 오래 터질지 태현도 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태현이야 생존력 하나만큼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지만, 케인이나 이다비는 아니었다.
-내가 시선을 끌어볼게.
-?
“그렇게는 못 하겠다!”
“?!”
태현이 나서자 둘은 당황했다.
지금 서슬 퍼런 기사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위대한 사디크 님을 두고 도망친다니!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가서 싸워야겠다!”
태현은 말과 함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케인과 이다비는 허겁지겁 말을 보탰다.
“그, 그래!”
“우리는 가서 싸울게요!”
그러나 안토니오의 표정은 짜증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이런 미천한 것들이 어디서 감히…… 내 명령을 거절하는 건 사디크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는 것도 모르느냐?”
태현은 자기 멋대로 사디크를 이용하는 안토니오의 모습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저거 내가 했던 짓이잖아?’
-야, 무시하고 뛰어.
태현의 말에 케인과 이다비는 등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토니오는 분노했다.
“미천한 것들이 감히! 당장 저놈들을 데리고 와라! 내가 다시 교육을 시켜야겠다.”
“예!”
“동작 그만!”
태현은 폭탄을 넣은 마차에 가까이 다가섰다.
“……?”
“사디크 님의 이름을 더 이상 더럽힌다면 이 마차를 태워 버리겠다!”
“!!”
[안토니오를 협박합니다.]
[안토니오가 당신에게 매우 분노합니다. 더 이상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냐!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이길래 감히 나를 협박해!”
“앗. 저놈!”
기사 중 한 명이 태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태현은 순간 정체가 들킨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버포드와 같이 있던 놈입니다!”
“버포드하고? 감히!”
* * *
[안토니오가 당신에게 분노합니다.]
[친밀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안토니오의 기사단에게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뭐야?!?!?”
약탈자 플레이어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버포드는 깜짝 놀랐다.
왜 갑자기 이런 메시지창이?
안토니오가 시키는 퀘스트를 꼬박꼬박 깨왔던 버포드였다.
“어딜 한눈을 파냐!”
“이 자식이……!”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재빨리 찔러 들어왔다.
버포드는 바로 방어 스킬을 사용하며 물러섰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사디크 성기사들이 달려왔는데도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죽을 맛이었다.
-야, 포션 몇 개 남았냐?
-3개! 스크롤도 아까 쓴 게 끝이야!
-젠장! 여기 와서 더 손해 봤어! 이 자식들 다 잡아봤자 지금까지 쓴 것보다 안 나올 텐데!
-일단 싸우고 나서 생각해! 죽으면 진짜 수습 안 된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보통 플레이어들보다 PVP 대비 아이템들을 많이 들고 다녔다.
지금 예상에 없던 치열한 싸움 때문에 그들은 밑천을 다 털어가면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포션도, 스크롤도 이제 곧 다 떨어졌다.
적들도 많이 쓰러지기는 했지만, 여기서 더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콰콰콰콰콰콰콰쾅!
“?!?!?”
교단 본거지의 뒤편에서 거대한 화염이 둥그렇게 터지더니 파도로 변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잠시 멈추고 입을 벌렸다.
“저게 뭐야?!”
* * *
“그래! 버포드도 널 싫어할 거다!”
상대방이 알아서 오해를 해주니 태현은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슬슬 거리 벌렸군.’
-터뜨린다. 스킬 최대한 사용하고 달려!
둘에게 말을 한 후 태현은 <사디크의 초급 화염 화살> 스킬을 사용했다.
그 모습에 안토니오는 경악했다.
“안 돼! 내 보물!”
그러나 태현이 하려는 건 마차를 태우려는 게 아니라, 훨씬 더 과격한 짓이었다.
[사디크와 아키서스의 신성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칭호:신성한 대장장이를 얻었습니다.]
[칭호:사디크 교단의 토벌자를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다시 뜨는 메시지창.
-드디어 75……!
-뭐? 레벨 175 찍었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도망치던 케인이 반응했다. 물론 태현은 무시했다.
[사디크 교단의 신전 건물이 파괴됩니다.]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 훈련소가 파괴됩니다.]
[…….]
주르륵 뜨는 메시지창들.
다 읽는 건 지금 무리였고, 태현은 가장 필요한 메시지창을 찾으려고 했다.
사디크의 권능!
그러나 사디크의 권능을 얻었다는 메시지창은 뜨지 않았다.
‘어째서지?’
안토니오를 죽였다면 분명 사디크의 권능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권능 포식>이 있었으니…….
-으아악! HP 단다! HP 줄어든다!
-뛰어요! 뛰어!
케인과 이다비의 비명이 들렸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주변을 완전히 뒤덮은 화염 속에서 태현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권능이 뜨지 않았다는 건…….
‘안토니오가 안 죽었다는 거지!’
-신의 예지!
태현은 바로 스킬을 사용하고 움직였다.
카카캉!
앞을 뒤덮을 정도로 치솟은 화염 속에서, 날카로운 검이 찔러 들어왔다.
[굳어지는 외침의 검에 당했습니다.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직격을 피했는데도 들어오는 저주. 화염 속을 헤치며 기사 NPC가 덤벼들었다.
“너는 사디크 성기사가 아니다!”
“그걸 이제 알았냐?”
태현은 바로 기사의 옆으로 파고들며 공격을 날렸다.
원래라면 치명타가 터지고 연속으로 이어가야 할 공격이었지만…….
[태양의 기사 가호가 공격을 막아냅니다.]
기사 주변으로 빛나는 막이 생기더니 공격 자체를 막아버렸다.
‘기사도 아닌 놈들이 기사 스킬을 쓰는 건 치사하지 않나?’
기사 스킬도 쓰고, 사디크 교단 스킬도 쓰는 기사들!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물론 온갖 스킬을 사용하는 태현이 할 말은 아니었다.
‘몇 명이나 남은 거지?’
태현은 기사의 공격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폭탄의 위력은 굉장했다.
폭탄에서 나온 화염이 지금 사디크 교단의 본거지를 화끈하게 태우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여기 있는 기사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숫자를 보니 대부분은 폭발 때 쓰러졌고, 남은 건 기사단에서도 레벨 높은 놈들인가? 좋아. 은신 써서 하나씩…….’
지금 주변을 뒤덮은 맹렬한 화염은 태현에게 유리했다.
태현은 계속해서 회피할 수 있지만, 기사들은 그런 회피까지는 불가능했으니까.
방어 스킬로 버티고 있지만 계속해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게다가 태현은 이 화염 속에 숨는 것도 가능했다.
‘은신 후 치명타 스택을 쌓아서 한 번에 폭딜을…….’
그 순간,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디크의 화염 방어 가호!
-사디크의 화염 방어 가호!
그러자 주변을 태우던 화염들이 순식간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
화염 속에 숨으려던 태현은 모여 있는 기사들과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그 기사들 사이에 안토니오가 그을린 모습으로 서 있었다.
“잡아라!!”
“아, 진짜 스킬 하나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