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38화
“정말 다행이야……!”
“……?”
“살아 있었다니!”
“…….”
케인과 이다비마저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둘이 옆에 있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둘이 플레이어라는 걸 아예 눈치를 못 챈 것이다.
-쟤 바보냐?
-저런 호구인 줄은 몰랐어요!
-시끄럽고, 둘 다 조용히 사디크 교단 NPC인 척 하고 거리 벌려라.
가끔가다가 NPC와 플레이어를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착용한 장비나 겉모습이 NPC와 비슷하면 착각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오래 이야기하면 어지간히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차리게 되어 있었다.
사사삭-
케인과 이다비는 사디크 성기사 흉내를 내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날씨가 참 좋지? 사디크 님 덕분 아닐까?”
“하하! 그러네요! 사디크 님 만세!”
어색한 발연기!
“…….”
태현은 미친놈 보듯이 둘을 쳐다봤지만, 버포드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태현을 눈곱만큼도 의심 안 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 난리가 났어! 성문 요새가 아주 박살이 났다고!”
“예?! 아니, 어떻게요!? 누가 그런 짓을?!”
얼굴에 깐 철판이 이제 다이아몬드 판으로 변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자기가 저질러놓고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을 하는 태현!
버포드는 그것도 모르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마 이세연이 분명해. 이세연이 분명 숨겨 놓은 마법을 쓴 거야!”
이세연 입장에서는 억울한 소리였다.
태현이 말도 안 하고 날려 버린 덕분에 귀한 데스 나이트들만 날려버렸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미안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이세연을 욕하는 데 기세를 올렸다.
“저런! 이세연이라니! 하여튼 세상에 나쁜 짓은 모두 다 이세연이 하고 다니죠!”
“맞는 말이야! 대체 여기 왜 와가지고 난리인지 모르겠어. 사디크 교단하고 무슨 원수를 졌다고!”
“맞아요! 이세연이 인기만 많지, 알고 보면 속 좁고 성질 더럽고 집착 심하고 하여튼 세상 안 좋은 단점들은 모조리 다…….”
“아,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자기보다 훨씬 더 이세연을 욕하는 태현의 모습에 버포드는 당황했다.
이세연이 여기 쳐들어온 것 때문에 화가 나고 ‘대체 많은 곳 중에 왜 여기 왔냐!’ 싶기도 했지만, 일단 버포드도 이세연의 팬이었었다.
판온의 플레이어라면 선망하고 동경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
그러나 태현은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판온 모두가 이세연을 좋아해도 난 이세연을 까겠다!
따지고 보면 판온 1에서부터 유일하게 태현의 피해자가 아닌, 태현에게 가해자 입장인 게 이세연 아닌가!
“아니라니까요! 아주 사악한…….”
-저기, 태현 님?
“……?”
신나서 이세연을 욕하던 태현이 멈칫했다.
이다비가 귓속말을 보낸 것이다.
-왜?
-욕 그만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지금 한참 신났는데.
-…….
-너 설마, 너도 이세연 팬이었냐?
-아니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저는 태현 님이 이세연보다 더 좋아요.
-이다비……!
태현은 순간 감동을 받았다.
쉬운 말이지만, 은근히 듣기 어려운 말이었던 것이다.
판온에서 ‘이세연보다 태현이 더 좋다’는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소수파!
판온 1에서도 이상한 사람들 취급을 받았던 게 태현의 팬이었다.
판온 1에서 있었던 이세연과의 대결을 다 잊은 태현이었지만, 아직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마음에 남아 있었다.
자기가 패고 다니던 플레이어들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건 기억에서 지운 태현이었다.
태현이 한참 감동하려고 하는데, 이다비가 이어서 말했다.
-이세연 씨는 저희 방송에 안 나와 주잖아요.
-…….
태현의 감동이 순간 식었다.
-남의 집 큰 떡보다 우리 집 작은 떡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너 차단한다.
태현의 ‘차단한다’에서는 진심이 너무 팍팍 느껴졌다.
이다비는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차단하지 말아주세요!
태현은 정말 차단한다면 차단하는 사람!
-차단한 거 아니죠?
-…….
-정말 차단했어요?!
-차단 안 했다. 어쨌든 왜 욕하지 말라는 건데? 나중에 이세연 방송에 섭외하려면 욕하면 안 된다 이거냐? 응?
-…….
방금 있었던 대화를 마음에 담고 있는 모습!
평소에는 마음 넓은 게 분명한데, 이세연하고 관련된 일만 되면 이상하게 사람이 유치하게 변했다.
그러나 이다비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뇨. 어차피 이세연 씨는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 방송에는 섭외 못 하고요.
-너 요즘 은근히 나 괴롭힌다?
그냥 섭외 안 한다고 말하면 될 걸 굳이 저렇게 말하다니.
-오해예요. 오해. 그리고 욕하지 말라는 건 태현 님을 위해서라구요!
-왜?
-저기 있는 버포드는 아마 이번 퀘스트 끝나면 개인 방송으로 있었던 일 풀 텐데, 거기에 태현 님이 이세연 씨 욕하는 게 나올 거 아니에요.
-!!!!!
잊고 있었다.
이런 퀘스트는 원래 개인 방송으로 공개되는 게 보통!
지금이야 버포드가 사디크 교단의 위치가 공개되기 싫어서 방송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토벌전이 끝나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미 수많은 플레이어가 참가한 덕분에 위치가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것이다.
그러면 버포드는 있었던 일이라도 방송으로 내보낼 것이고…….
“나쁜 건 세상이죠! 이세연은 잘못이 없죠!”
-태현 님.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시꺼.
“?!?!?!”
이랬다저랬다 하는 태현의 모습에 버포드만 더욱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 * *
이세연을 욕하는 것도, 칭찬하는 것도 끝나자, 버포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같이 다녀야 해!”
“……?”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같이 다녀야 한다니.
도망치자가 아니라?
그러나 버포드는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갖고서 한 말이었다.
“성문 요새가 박살 났지만 아직 여기가 무너지지는 않았어. 우리도 아직 싸울 수 있다는 거지.”
“그렇군요!”
“지금 성문 요새 쪽에 가면 싸움에 합류할 수 있다! 그러면 토벌대에 모인 플레이어들을 처치할 수 있지. 거기 모인 놈 중 몇 명만 처리해도 공적치 포인트가 확확 오른다고. 아이템도 덤으로 얻을 수 있고!”
버포드는 태현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애썼다.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상대는 랭커 중의 랭커인 이세연이 이끄는 토벌대.
게다가 사디크 교단의 자랑이던 성문 요새도 박살이 난 상황이었다.
‘나야 익숙하지만 새로 들어온 놈은 이걸 보고 나갈지도 몰라!’
새로 들어온 사람이 사디크 교단에 대해 실망하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포드는 필사적으로 태현을 설득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 보이지만 사실 이건 은근히 기회다?”
“그래요?”
난생처음 듣는 기회였다.
그렇게 따지면 태현은 버포드를 위해 기회를 몇 번이나 만들어준 셈!
-이거 쟤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소리는 하지 마세요…….
태현과 이다비의 귓속말 대화는 눈치채지 못한 채, 버포드는 열을 올렸다.
“그래! 기회지! 캐릭터를 성장시킬 기회! 여기서 잘만 하면 레벨 10 정도는 우습게 올릴 수 있어!”
“우와아-”
순간 영혼 없는 반응이 나와 버렸다.
레벨 10이라니.
태현에게는 너무 어이없었던 것!
‘이 자식아, 레벨 2만 한 번에 올라도 소원이 없겠다.’
지금 태현은 레벨 2가 오른 것 때문에 아직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고급 기계공학 스킬까지.
조용한 곳에서 달라진 걸 확인하고 싶은데 워낙 상황이 정신없다 보니 아직까지 못 보고 있는 것!
“가자! 성문 요새 쪽으로!”
그러나 버포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약탈자 플레이어 파티였다.
“너희들도 살아 있었구나!”
“당연히 살아 있었지. 이 자식아.”
“저건 아직도 저러고 있네.”
“!?!?!”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드러내는 본색.
그러나 버포드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표정!
“너, 너희 왜 그래?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 야. 사디크 교단이 무슨 천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기껏 들어왔더니 토벌대가 앞까지 찾아왔다. 말이 되냐? 응? 이게 무슨 꿀을 빨 수 있는 곳이야? 안 그래도 우리 지금 죽으면 페널티 큰 상황인데.”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사망 시 페널티가 컸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PK 할 때마다 페널티가 더 커지는 것이다.
“이,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나도 몰랐어! 그리고 내가 거짓말한 건 없어! 이런 토벌만 빼면 내가 글에 쓴 건 다 사실…….”
“아. 시끄럽고.”
“우리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온 책임은 져야지.”
“맞아. 맞아.”
버포드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그 모습에 버포드는 좌절했다.
“저런 놈들일 줄은 몰랐는데……!”
“아니, 보통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않나?”
옆에서 태현이 중얼거렸다.
사디크 교단은 악 성향 교단.
그런 교단에 흘깃해서 들어오는 놈들은 보통 명성보다 악명이 높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뭘 어쩌겠다는 거냐!”
“일단 창고로 안내해. 교단에서 네 위치 정도면 들어갈 수 있는 창고가 있을 거 아니야.”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밖의 상황을 보니 이 교단은 이미 망한 것 같다. 괜히 남아 있다가 같이 죽지 말고,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거 챙기고 튀자!
그들은 원래 여기서 먹튀를 하려고 했다.
계획이 좀 많이 빨라진 것뿐!
“내가 안내할 거 같냐!”
“그러면 죽을래?”
“안내하겠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겨누자 버포드는 바로 굴복했다.
그걸 본 태현은 귓속말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게 얘는 볼 때마다 더 추락하는 거 같냐?
-원래 사람이 추락하면 밑바닥이 없는 법이지.
-역시 한 번 추락해 본 놈이라 다른 추락하는 놈을 잘 아는구나, 케인.
-뭐라는 거야, 이 자식아!
* * *
버포드는 협박당해서 끌려가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옆의 태현에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했던 걸 봤을 때 별로 없어 보이는데…….”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나서서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기다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전통 없고 역사 짧은 아키서스 교단과 달리, 사디크 교단처럼 역사가 좀 있는 멀쩡한 교단들은 창고도 여러 개 있었다.
공적치 포인트가 높은 플레이어들은 일정 창고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게 열쇠를 받았다.
엄청 대단한 아티팩트야 당연히 다른 비밀 창고에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노리는 건 돈이 되는 아이템들!
그냥 창고를 통째로 털 생각이었던 것이다.
탁-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지만, 버포드는 발걸음을 멈췄다.
“……?”
“야. 움직여.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멍청한 놈들. 너희 같은 놈들에게 내가 속을 줄 알았냐?”
“??”
“너희가 그런 놈들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너희는 내 함정에 빠진 거야!”
“……??”
버포드의 말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이 자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뭐라는 거야, 이 자식? 너 눈치 못 챘잖아. 좋아서 실실 웃던데.”
“그게 다 연기였다!”
“뭔 연기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버포드는 필사적이었다.
태현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오늘 태현 앞에서 너무 망신만 당했던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교단에 토벌대가 왔고, 먼저 들어왔던 플레이어들은 본색을 드러내서 배신을 하려고 하고…….
이제 플레이어 중에서 남은 건 태현뿐!
‘절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언제 끝나나?’
태현은 하품을 했다. 빨리 열쇠로 열어야 다음 일에 들어갈 텐데.
태현은 속으로 사디크 교단을 응원했다.
‘버텨라, 사디크 교단! 쉽게 무너지지 마! 내가 일을 끝낼 때까지는 버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