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33화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하하, 어르신. 세상일이 원래 다 그렇게 좋은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명당에서 낚시를 하려면 어느 정도는 참고 들어가야죠.
‘어느 정도’가 좀 심하기는 했지만, 태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니었으니까!
유 회장은 더 따져봤자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어르신,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런 페널티를 안고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면, 거기는 정말 좋은 곳이라는 거죠. 기회를 놓치지 마십쇼! 거기서 아주 제대로 뽕을 뽑으세요!
-……그래. 알았다.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태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페널티를 감수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정말 좋은 곳이 분명!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No pain, No gain!
태현한테 말로 휘둘려서 들어가게 된 것은 좀 찜찜했지만, 유 회장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낚시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유 회장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가 들어가게 될 곳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곳인지를!
화아악-
“……!”
걸어 내려가던 도중, 어두컴컴하던 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나타난 것은 거대한 용암 웅덩이!
이글거리는 용암 웅덩이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용암 웅덩이 위에 나 있는 좁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바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이게 뭐냐?!”
“쉿. 긴장하라고, 신입. 이제 곧 나올 테니까.”
부족 낚시꾼들은 위태위태한 좁은 길에서 자세를 낮추고 긴장했다.
퍼억!
“나왔다!”
“놈이다! 잡아!”
순간 끓어오르는 용암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붉은색으로 번쩍이는, 날렵하게 생긴 물고기였다.
“조심해! 놈이 용암을 쏜다!”
“으악! 나 맞았어!”
붉은 용암 물고기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용암을 쏘아댔다.
마치 물총으로 찍찍 쏴대는 것 같은 공격이었지만, 물고기가 쏘아대는 건 물이 아니라 용암이었다.
한 번 맞으면 그대로 피가 쭉쭉 깎이는 강력한 데미지!
“크악!”
부족 낚시꾼 중 하나가 용암을 피하다가 발을 헛디뎠다.
그는 허우적거렸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풍덩!
밑에서 끓어오르는 용암 웅덩이로 입수!
“으아아악!”
“저런 멍청한 놈!”
“신경 꺼! 저놈은 우리 낚시꾼 중 가장 약한 놈이었어!”
같이 온 사람이 빠졌는데도 낚시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물고기를 하나 낚아보기 위해 눈이 붉어진 그들이었다.
쉭! 쉭쉭!
“잡았다!”
허공을 가르던 물고기 하나가 낚싯바늘 끝에 걸렸다.
그러자 낚시꾼은 세상 모든 걸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아니야…… 이건 내가 생각한 낚시가 아니야……!”
유 회장은 비통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유 회장이 생각했던 낚시는 좀 더 점잖고, 고상하고, 예의 바른 것!
이렇게 서바이벌처럼 피하고 구르고 비명을 지르는 건 낚시가 아니었다.
“헉, 허억, 커헉……!”
유 회장은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히 게임인데도, 느껴지는 압박은 현실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뜨거운 화염을 견디며 계속해서 움직였습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날아오는 용암을 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민첩이 상승합니다.]
[붉은 용암 물고기를 낚는 데 성공했습니다. 낚시 스킬이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폭풍 성장!
쭉쭉 오르는 스탯들과 레벨.
스탯 성장 보너스에 특화된 <아키서스의 화신>과 비교될 정도로 오르는 스탯들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유 회장은 그런 걸 신경 쓸 시간도 없이 날아다니는 물고기를 피하느라 구르고 있었지만!
“이, 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시련은 플레이어를 성장시킨다.
그 말이 유 회장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서투른 풋내기 플레이어인 유 회장이었지만, 용암 광산에서의 사투는 유 회장을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몬스터의 특징을 파악하는 능력!
“저 물고기는 바위 뒤에서 튀어나오는 놈이다!”
자신의 스킬을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
“<돌아오는 낚싯바늘>스킬과 <나뉘어지는 미끼>스킬을 동시에 사용한 다음, <연속 낚시대 찌르기>스킬을 사용하면 더 효과가 좋구나!”
콤보가 뭔지, 스킬이 뭔지도 몰랐던 유 회장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필요하고 절박하면 배우게 되어 있었다.
[끓는 용암에 직격당했습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이동속도가 내려갑니다.]
[HP가 10% 미만으로 내려갑니다.]
“포, 포션……! 포션!”
유 회장은 황급하게 가방을 뒤졌다.
‘포션이란 걸 쓰면 HP를 회복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유 회장이 현질을 할 때, 이다비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필요한 장비나 유 회장이 쓸 법한 소비 아이템까지 전부.
그 조언이 지금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꿀꺽꿀꺽!
하나에 몇십만 원, 몇백만 원 하는 포션을 유 회장은 아낌없이 사용했다.
중요한 건 지금 살아서 버티는 것!
반드시 살아나가서 저 얄미운 김태현 놈의 낯짝을 낚싯대로 후려갈기리라!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
유 회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동안, 태현 파티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과연 어느 곳에 깽판을 쳐야 가장 효과적으로 깽판을 칠 수 있을까?
이제까지 한 짓만 보면 <남의 집에서 깽판치기>, <깽판학개론>같은 책을 내도 벌써 몇 권을 냈을 태현이었다.
“어? 저쪽에 있는 거,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들 같은데요?”
“뭐? 그 버…… 버 뭐였지?”
아직도 버포드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태현이었다.
“버포드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 버포드 말고도 사디크 교단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이 있었나?”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좀 신기하네요. 사디크 교단이 잘 나갈 때도 아니고, 망해서 도망쳤는데 가입하다니.”
둘의 대화를 듣던 케인이 끼어들었다.
“원래 세상에는 별놈들이 다 있는 법이잖아.”
케인의 말뜻은 이랬다.
<파워 워리어> 길드나,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는데 사디크 교단에 가입하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러나 이다비와 태현은 케인의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세상엔 별놈들이 많으니까.”
“꼭 이해득실로 움직이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죠. 참 신기해요. 그렇죠?”
‘니들 이야기야!!’
케인은 속으로 외쳤다.
가장 찔려야 할 둘이 전혀 자기 이야기인지 모르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교단을 무너뜨릴 사악한 놈들이 들어왔다는 것도 모르고, 버포드는 신이 나서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과 떠들고 있었다.
“……대충 이 정도가 사디크 교단에서 주의해야 할 정도지.”
“오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무슨 말을 한마디 해도 바로 좋게 반응해 주는 플레이어들.
그 모습에 버포드는 흐뭇해져서 코밑을 쓱 닦았다.
‘그래, 이게 게임 하는 맛이지!’
예전에 가졌던, ‘혼자 사디크 교단에 들어가서 독점한 다음 판온을 독주하겠다!’ 같은 야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야망은 태현에게 깨지고 토벌대에게 깨지고 에반젤린에게 깨지고 교단 내 다른 NPC들한테도 깨지고 나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 원하는 건 하나.
-사디크 교단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
매번 혼자서 비밀스럽게 퀘스트 깨봤자 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 서럽기만 했다.
차라리 다른 플레이어들이 좀 들어와서 쉽게 깨는 게 났겠다!
그래서 버포드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디크 교단, 너도 가입할 수 있다!
-사디크 교단 가입, 어렵다고요? 어렵지 않습니다.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원하시는 당신에게 사디크 교단을 추천!
-악명 높은 당신을 위한 직업! 오라, 사디크 교단으로!
프리카 대륙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프리카 대륙에 기반을 다진 사디크 교단은 나름 플레이어들에 관심을 끌었다.
중앙 대륙에서 그렇게 망했는데도 플레이어들이 모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그러나 버포드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사디크 교단은 악 성향의 교단. 즉, 가입하는 플레이어들은 보통 악명이 명성보다 높은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보통…….
-저 자식 조금 띄워주니까 좋아하는데?
-완전히 호구라니까. 영상 봤냐? 그냥 적당히 이용해 먹자고.
-여기 스킬이 쓸만하다며?
-쓸만하기도 하고, 악 성향 교단 가입해 놓으면 편할 거야. 적당히 해먹고 튀자.
그랬다.
버포드의 글을 보고 사디크 교단에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다들 꿍꿍이가 있는 플레이어들!
어떻게 뒤통수를 칠까, 어떻게 한탕하고 나갈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버포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런 기세라면 머지않아 보일 장밋빛 미래!
그 모습을 본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네 왜 저렇게 떠들면서 웃냐? 기분 나쁘게.”
“알 게 뭐야. 저 버뭐시기는 원래 좀 이상한 놈이었어.”
가차 없는 태현의 평가!
게다가 에반젤린한테 반지까지 뺏긴 이상, 더 이상 태현은 버포드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저 사람이 여기에 대해 제일 잘 알지 않을까요?”
“흠, 그것도 그렇긴 하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버포드를 무시하기는 했지만, 버포드의 경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름 판온에서 사디크 교단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플레이어!
“그러면 한번 가서 물어볼까?”
“……미쳤냐?”
“아냐. 은근히 통할 거 같아. 지금 보니까 저기 있는 놈들이 새로 사디크 교단에 가입한 플레이어들 같거든? 나도 저런 놈들인 척하면 되는 거지.”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 덕분에 태현은 어지간하면 걸릴 일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배짱!
“잠깐 갔다 올게.”
“야, 야! 그러다가 걸리면 어쩌려고!”
케인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태현은 당당하게 걸음을 옮긴 뒤였다.
* * *
“안녕하십니까!”
“?”
“???”
버포드도, 새로 들어온 약탈자 플레이어 파티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너 아는 놈이냐?
-아니? 모르는 놈인데.
-게시판 글 보고 온 거 아냐? 우리만 본 거 아니겠지.
-그거 보고 온 놈이 왜 저렇게 약해 보여?
-그냥 쪼렙이 프리카 대륙 왔다가 글 보고 호기심에 찾아왔겠지. 용케 안 죽고 들어왔네.
버포드는 내버려 두고, 약탈자 파티는 빠르게 대화를 나누었다.
사디크 교단에서 적당히 빼먹은 다음 나갈 생각이었던 그들이었다.
원래 태현처럼 새로 나타난 플레이어는 방해가 되니 막아야 했지만…….
-별로 상관없겠지.
-그래, 레벨도 안 높아 보이는데 무슨 일 생기면 같이 죽이자고.
경계하기에는 너무 약해 보이는 태현의 겉모습!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서는 태현에게서 신경을 껐다.
그나마 태현에게 신경을 써주는 건 버포드 정도였다.
“오오! 새로 가입하러 온 건가! 내 글을 읽었구나!”
‘그런 글도 썼었나?’
태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놈이 사람 없다고 게시판에 글까지 올렸구나!
“네! 버…… 뭐시기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버포드다.”
“아, 네. 버포드 님.”
“그, 그래. 헷갈릴 수도 있지. 어려운 이름이니까.”
딱히 어려운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버포드는 스스로를 속였다.
어려운 이름이니까 저렇게 헷갈릴 수도 있는 거지!
“딱히 어려운 이름은 아니잖아?”
“맞아.”
약탈자 파티가 수군거리는 건 무시하고, 태현은 기세 좋게 외쳤다.
“그런데 버포드 님!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뭡니까?”
“풉!”
멀리서 사디크 성기사인 척하고 어슬렁거리던 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저런 미친놈!’
원시인도 저것보다는 더 세련되게 묻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