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31화
이번 투기장 경기에서도 신세를 진 것이다.
정수혁은 어떻게든 태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특히 그의 직업인 <아키서스 교단 마법사>는 원래 1:1보다는 대규모 전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직업이었다.
물론 아군에게도 더 크게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정수혁과 친구들이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는 동안, 투기장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김태현이? 사디크 교단 퀘스트를 깬다고?”
“너 사디크 교단하고 많이 싸웠잖아. 아직도 관심 있어?”
“이제 더 싸울 필요가 없기는 한데…… 김태현한테 빚진 게 있기는 하지. 본선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가서 도와줄까?”
선선하게 말하는 에반젤린의 모습에, 팀원들은 수군거렸다.
“어라? 원래 김태현한테 되게 불만 많지 않았나? 김태현 이름만 나오면 투덜거렸던 것 같은데.”
“사디크 교단 덕분에 행운 마이너스 페널티 해결했잖아. 그러니까 불만도 사라진 거지. 고마움 반 얄미움 반 같은 거 아닐까?”
“그런데 고마움이야 알겠는데 얄미움은 왜? 이야기 들어보니까 딱히 김태현이 잘못한 거는 없던 것 같은데. 너무 쪼잔하지 않나?”
“사실 그것도 그래. 에반젤린이 겉으로 보면 되게 성격 좋아 보이지만 사실 은근히 쪼잔하다?”
“거기! 조용히 해!”
에반젤린은 수군거리는 팀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들은 바로 MBS에게 초대를 받은 캐나다 대표팀!
본선 경기를 대비해 미리 투기장 모여서 손발을 맞춰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수많은 플레이어 중 대표로 뽑히는 것이었으니, 언제나 실력 논란은 빠지질 않았다.
A가 잘한다!
아니다, B가 잘한다!
다 틀렸다, C가 잘한다! 너희들은 모두 눈을 폼으로 달고 다닌다!
그러나 에반젤린은 그런 실력 논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사디크 교단을 혼자 쫓아다니면서 도륙을 내버린 실적!
캐나다 대표팀에서도 압도적인 PVP 실력!
자타공인 모두가 인정해 주는 실력자였던 것이다.
캐나다 대표팀에 선발된 플레이어들은 처음에 에반젤린을 보고 감탄했다.
-와, 방송에서만 봤는데 정말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솔플만 하던데, 되게 고고하고 멋있지 않아? 나 사실 팬이었거든.
-에반젤린 씨. 반갑습니다! 팬이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에반젤린을 환영하는 캐나다 대표들!
그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개인 방송에서 보여준 것처럼 시크하고 차가운 모습?
아니면 그래도 공적인 자리니까 예의를 지키는 사회인의 모습?
무엇이든 간에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어, 어? 저, 저도 반…… 쿨럭! 쿨럭! 커헉! 죄, 죄송합니다. 말을 좀 더듬었…….
-…….
모두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
허둥지둥하며 손을 흔드는 에반젤린을 본 모두는 즉시 깨달았다.
에반젤린이 어떤 사람인지!
개인 방송에서 나온 고고하고 말 없는 이미지는 사실…….
그냥 대화 능력이 부족한 아싸여서 그랬던 것!
그래도 캐나다 대표팀은 빠르게 친해졌다.
서로 따로 선발된 것치고는 보기 드물게 화기애애한 팀!
한국 팀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어쨌든 캐나다 플레이어들은 에반젤린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어쩌다가 저런 저주받은 직업을 갖게 되었고, 그걸 어떤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그렇게 되니 왜 저런 안쓰러운 아싸가 됐는지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은 플레이어들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딱히 김태현한테 투덜거릴 게 아니지 않나?’
직접 태현을 상대해 본 게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안일한 생각들!
* * *
“에휴, 그래도 뭐…… 이게 어디냐.”
태현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세연은 강력한 전력이 되어줄 것이다.
일인군단인 네크로맨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플레이어 아닌가.
물론 그 사람이 이세연이지만!
‘아니, 아니.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이 정도면 엄청 좋게 끝난 편이지.’
단순히 고렙 네크로맨서여서가 아니라, 이세연은 퀘스트를 깨는 센스 자체가 대단했다.
온다면 퀘스트 진행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세연이지만!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잖아!’
이세연이란 단어가 들어가자 어떻게 생각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너희는 뭐하냐?”
이세연과의 치열한 귓속말을 끝낸 태현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풀이 죽은 이다비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는 케인과 유 회장!
“넌 왜 이다비를 괴롭히고 그러냐?”
“맞아. 이놈아. 저렇게 착한 애를 괴롭히면 안 되는 거야!”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뭘 했다고?”
“어…….”
“그러니까…….”
그들은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은 딱히 한 게 없었다.
셋이서 ‘귓속말하는 상대가 누구일까’하고 잔뜩 험담하다가 질문한 것에 대답해 줬을 뿐!
당황한 케인은 급히 말을 돌렸다.
“그, 그러니까…… 네가 우리 질문에 대답 안 해줘서 이러고 있었던 거잖아!”
“대답? 해줬잖아.”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냐고 물어서 이다비라고 대답해 줬다.
말이야 맞는 말!
“그게 그 뜻이냐!”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정확하게 물어봤어야지. 내가 국문학과 출신이거든?”
“?!”
케인과 유 회장은 동시에 놀란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놈이 국문학과 출신이라고?
‘국문학과가 저런 과였나?’
“뭐냐. 그 표정은? 뭔가 기분이 나쁜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또 속마음을 들킬 뻔한 케인은 급히 말을 돌렸다.
“쯧. 알겠어. 말해주지.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였는데…….”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셋은 생각했다.
정말 어지간히 싫은 상대인가 보구나!
“이세연이야.”
“…….”
“…….”
* * *
“……이세연이 누구지?”
케인과 이다비와 달리, 유 회장은 이세연의 이름이 낯설었다.
그러자 케인이 설명에 나섰다.
“이세연이 누구냐면…….”
외모도 좋고, 성격도 좋고, 게임도 잘하고, 집안도 좋고(아마 케인의 추측이었지만), 하여튼 모든 면에서 저 김태현과는 반대되는 이 시대의 참 인성!
“그, 그런 사람이 있다고? 누구 집안 딸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대단하군그래.”
퍽!
태현은 케인을 걷어찼다.
“이 자식이 어디서 헛소문을 퍼뜨려. 넌 예전부터 보면 이세연한테 이상하게 환상을 갖고 있단 말야. 좋아하냐? 응? 좋아하냐?”
“얼레리 꼴레리~ 케인은 이세연 좋아한대요~”
“아오, 진짜 너네 둘 좀 떨어져! 짜증이 몇 배야!”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놀리고 들어오는 이다비와 태현!
케인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둘을 떼어놓으려 들었다.
“그냥 팬일 뿐이라고! 판온 1 때부터!”
“하긴, 이세연 씨는 판온 1 때부터 유명하기는 했죠. 팬 아닌 사람이 더 적을 정도로.”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인의 말에 동의했다.
1위를 찍은 랭커에, 수많은 랭커들이 인성 논란이 생기는 와중에도 문제 하나 생기지 않았던 빛나는 인성.
게다가 판온 1 말기에 수많은 랭커들을 썰어버리며 올라온 김태현과의 정면 승부에서까지 이겼다.
‘아.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쓰려오는군.’
태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한테 하나 말해두겠는데, 이후 퀘스트에서 이세연을 만나더라도 너무 친하게 놀지 말라고. 이세연이 인성 좋아 보이지만 사실 이세연은…….”
“……?”
“나보다 더 성격이 꼬인 사람이야.”
“…….” “…….”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거북한 침묵!
“진짜라니까!”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평소에는 태현의 편을 들어주던 이다비마저도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놈아. 세상에 너보다 더 성격이 꼬인 놈이 어디 있냐?”
“아니, 진짜라니까요! 걔를 한 번 만나봐야 그런 소리를 안 하지!”
태현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해 봤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같은 파티원들한테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 슬픔!
‘내가 나쁜 건가? 내가 나쁜 건가?! 아니다. 나쁜 건 이세연이다!’
태현은 굽히지 않았다.
나쁜 건 분명 이세연!
“그런데 이세연 씨가 오면 확실히 편하기는 하겠네요. 이세연 씨 길드원들도 오나요?”
“몰라. 그건 안 물어봤는데. 그거 아니더라도 이세연 정도면 데리고 다니는 언데드 군사들만 해도 꽤 되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하긴, 그러네요.”
둘은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투기장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이세연을 따라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됐다. 폭탄도 다 만들었겠다. 슬슬 마을 사람들 불러서 출발 준비 하자고. 아. 그 전에 장비 좀 갈아입고.”
태현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찾는 것은 사디크 교단 성기사의 장비들!
예전 것은 다 팔아 치웠지만, 저번 영지에서의 싸움 덕분에 가방 안에 남은 장비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다.
‘사디크 교단이 있는 곳으로 가면 이런 장비를 입고 가는 게 낫겠지.’
“어? 우리 건?”
“여기 있지. 자. 위에 챙겨 입어.”
“……여기에 폭탄 넣어놓은 건 아니지?”
케인은 의심 섞인 눈빛을 태현에게 보냈다.
뿌리 깊은 불신!
이제까지 당한 걸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폭탄이라니? 무슨 소리냐?”
영문을 모르는 유 회장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 자식이 제 갑옷에 폭탄을 넣어놔서 자폭을 시켰었다고요.”
“무슨 농담도…… 농담이 아니냐?”
“진짜거든요?!”
“하하, 다 지나간 일이잖아?”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이 자식아!”
케인이 씩씩거리며 항의해 봤자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였다.
빠르게 갈아입은 넷!
유 회장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물었다.
“잠깐, 나도 가야 하나?”
“당연히 어르신도 같이 가야죠.”
“나, 나는 여기가 좋은데…….”
유 회장은 그냥 이 마을에서 평화롭게 낚시나 하고 싶었다.
타이럼 시나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와 달리, 이 마을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물론 사디크 교도의 광신도들이라 친절한 것이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유 회장은 처음 받아본 환영!
그냥 이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면서 낚시나 하자!
“하하. 제가 어르신 두고 갔다는 걸 알면 지수가 화낸다고요.”
“그, 그런가? 잠깐, 지수가 그걸 알 일이 없잖아?”
“타세요. 야, 케인. 어르신 마차 타시게 도와드려라.”
여차하면 미끼는 많을수록 좋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유 회장을 마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유 회장은 어어 하는 사이에 그대로 마차 안에 들어가 버렸다.
“어이, 촌장! 출발!”
“알겠습니다! 그런데 성기사님. 저 뒤의 짐은 뭡니까?”
“위대한 사디크 님께 바칠 공물이지.”
“역시! 사디크 님의 힘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런 거였군요!”
뒤에 폭탄을 가득 싣고서, 마차는 사디크 교단의 숨겨진 본거지로 향했다.
* * *
마차 안에서, 태현은 하품을 했다.
‘뭐…… 이세연도 불렀겠다, 이번 퀘스트는 어지간하면 쉽게 깨겠군.’
태현이 자신 있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사디크 교단은 중앙 대륙에서 크게 깨지고 프리카 대륙으로 도망친 교단이었다.
여기서 급하게 세력을 키웠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
본거지라고 해봤자 조그만 요새나 신전 몇 개를 끼고 있을 테니, 거기에 몰래 폭탄을 설치해서 날려 버리면…….
“저, 저, 저…….”
“……?”
“저게…… 다 사디크 교단 건물인 거 같은데요……?”
“……!”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마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믿을 수 없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