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29화
경기장 위로 쏟아지는 함성!
대회 진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당황해서 사람들을 말렸다.
“여, 여러분.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거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그러나 한 번 기세를 탄 사람들은 무서웠다.
정말 별거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벗어라!’를 계속 외치자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일단 재미있어 보이니까 하자!
“어차피 갑옷 벗어도 속옷 나오잖아! 그거 가지고 뭘 그래!”
“맞아! 아무 문제도 없다!”
“속옷으로 싸워라! 속옷으로 싸워라!”
“길드명을 지켜라! 이 비겁한 성기사 놈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반응에 성기사들은 당황했다.
판온에는 멀쩡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불을 질러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정작 갑옷을 벗으면 추하고 징그럽다고 야유를 하겠지만, 안 벗을 걸 알기에 쏟아지는 함성들!
“무시해! 이것들아! 어차피 경기 시작하면 들리지도 않아!”
“네…….”
길마의 단호한 외침에 길드원들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제발 길드 이름 좀 바꾸면 안 되나?’
* * *
“길드명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실력은 있는 거 같네.”
주가연은 아래,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요?”
“손발이 딱딱 맞잖아. 보통 저런 건 한 번에 안 나와. 그에 비해 저기는 좀…… 조잡하다?”
주가연은 정수혁 팀을 가리켰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수혁 팀은, 뭔가 엉성하고 조잡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초조, 당황, 긴장 그 자체!
“긴, 긴장하지 마. 저번처럼 하면 돼.”
“우리 저번에 다 졌다가 수혁이 때문에 역전했잖아…….”
“그러니까 저번처럼 하면 된다는 거지!”
“그거 너무 막장 같은데…….”
긴장한 친구들을 위해, 정수혁이 입을 열었다.
“애들아.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있어.”
“……?”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대 팀이 우리 계획을 따라줄 가능성이 높아.”
“……!”
그랬다.
관중들이 늘어날수록, 성기사 길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정수혁 팀과 달리 성기사들은 원하는 게 많았으니까!
둥둥둥-
준비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이제 10초 후면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각 팀은 투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 이후는 외부의 목소리는 완전히 차단된, 그들만의 공간!
“……시작!”
촤아악!
정수혁과 친구들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은 아쉬울 게 없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올인 전략!
“가자! 중앙으로!”
그러는 동안 성기사들은 자기네들 진지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길마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중앙 진지 앞까지 간다. 놈들이 다섯 명 다 나오면 우리도…… 약속대로 한 번 붙어주지. 아닐 경우 바로 나뉘어서 다른 진지로 가자.”
원래 상대가 올인하는 곳을 안다면 굳이 그걸 받아줄 필요는 없었다.
진지는 3개였고, 다른 진지 2개를 점령하고 버프를 받은 다음 합류하면 훨씬 이득이었던 것이다.
태현이 봤다면 ‘그러니까 나한테 당하는 거지 호구들아’라고 혀를 찼을 모습!
성기사들은 승리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있었다.
정정당당한 승부의 모습 때문에!
화아악!
“……!”
기다리던 성기사들의 눈에, 중앙 진지 언덕 위에 도착한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들어왔다.
“우리는 말한 대로 왔다! 어디 한번 싸워보고 싶으면 와라!”
“안 오면 쫀 거 인정? 어? 인정?”
“…….”
“저 XX들이……!”
때때로는 복잡한 말보다 단순한 말이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길마님, 그래도 놈들한테 너무 끌려가는 것 같은데…….”
길드원 중 한 명이 주저하며 말했다.
이 길드원은 아까부터 ‘그냥 나눠져서 진지를 점령하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던 길드원이었다.
물론 체면을 신경 쓰는 길마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 그러면 너는 여기에 있어라.”
“네?”
“저 중앙 진지에 다섯 명이 있는 게 거짓말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약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고 우리가 속은 거라면, 너는 즉시 바로 다른 진지로 가라. 빈 진지든, 아니면 다른 놈들이 있든, 네 실력이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기사 길마도 바보는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다섯 명 다 싸우자고 올라갔겠지만, 태현과의 싸움으로 그도 나름 성장한 것이다.
나름 만약을 대비하는 전략!
“가자! 우리도!”
쿵쿵쿵쿵-
네 명의 성기사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온다!”
“준비해!”
쉬익-
팍!
정수혁의 팀원 중 궁수가 있었다. 언덕에서 올라오는, 비교적 느린 성기사들은 좋은 타깃!
그러나 성기사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방패로 막아냈다.
“레벨 맞춰졌다고 이길 수 있을 거 같냐!”
“니들이랑 우리는 기본 실력이 달라!”
성기사들은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분하지만 정수혁 팀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렇게 달리면서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바로 막아내는 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저런 건 정말 실전에서 구르고 굴러야 익혀지는 컨트롤!
-발목을 느리게 하는…….
“……!”
“저주 온다. 튕겨낼 준비 해!”
-저주를 반사하는 작은 은빛 방패!
-신실함의 가호!
성기사들의 반응 속도는 놀라웠다.
언덕 위에 있는 정수혁이 마법을 시전하는 낌새를 보이자마자 바로 카운터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만약 정말 저주를 사용했다면, 정수혁 팀은 기껏 쓴 저주가 되돌아오는 상황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키서스의 혀 스킬로 스킬명과 다른 스킬을 사용합니다.]
[아키서스의 마법 스킬로 무작위 마법이 시전됩니다.]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이어지는 것은, 정수혁의 장기 마법 중 하나인 <카흘라단의 번개>!
다양한 마법을 빠르게 판단하고 유연하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마법 하나만 우직하게 파온 정수혁의 시전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MP가 쏟아질 때까지 퍼붓는 마법 세례!
“번개?!”
“저주가 아니잖아?!”
성기사들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는 건 하책이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들어가서 마법사를 공격해 마법을 끊어야 했다.
파직! 파지직!
[감전 상태에 빠집니다.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내가 탱킹한다! 너희들이 뚫어!”
-화려한 문장의 방패!
-퍼지는 문장의 가호!
성기사 길마의 방패가 눈부시게 빛나더니 크기가 커졌다. 앞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형 스킬!
거기에 빠르게 HP가 차오르는 회복형 스킬까지 걸었다.
지금 벌써 쓰는 게 아쉬웠지만, 길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레벨이 맞춰진 덕분에 저런 놈이 쓰는 마법도 얕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몇 방 맞았다가는 훅 간다!
“우오오…… 어?”
갑자기 위에서 그림자가 생겼다.
앞에서 날아오던 카흘라단의 번개만 신경 쓰던 성기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에 당황했다.
왜 지금 그림자가 생기지?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슈우욱-
쾅!
[대지 정령의 암석 낙하에 맞았습니다!]
[치명타를 당했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커허어억!”
한순간에 HP가 쭉쭉 깎여버리는 강력한 일격!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에, 성기사들은 생각지도 못하고 당해버렸다.
“뭐야?!?!?”
“이게 무슨…….”
그러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정수혁이 사용한 마법 횟수만큼 발동되는 무작위 마법 세례!
-사방에 울려 퍼지는 죽음의 노래!
-맹독성 수면 안개!
-쏟아지는 화염 화살비!
“으아아악! 으아아악!”
성기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수혁아!”
그리고 정수혁의 친구들도 비명을 질렀다.
사방팔방으로 공평하게 쏟아지는 무작위 마법!
“…….”
“…….”
이걸 지켜보던 관중들은 입을 벌리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죽여 버리겠다! 김태현!”
성기사 길마는 울부짖으며 달려 나갔다. 있지도 않은 태현을 찾으며.
대체 어떻게 이런 강력한 마법을 연사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발목이 묶여서 마법을 맞고 있어서는 승산이 없었다.
붙어서 싸워야 했다.
성기사 길마의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달리면서 가능한 버프는 모조리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 몇 방을 맞고서도 버티는 그 생존력은 바퀴벌레 그 자체!
“수혁아! 조심해!”
정수혁의 다른 팀원들이 그를 견제해야 했지만, 친구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염 화살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 어, 어?”
정수혁은 당황해서 손이 미끄러졌다. 그 마법 세례를 뚫고 접근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카흘라단의 번개!
길마를 노려야 할 번개가 손이 미끄러져서 스스로를 겨냥하고 발사됐다.
“으아아앗!”
“??”
길마는 순간 함정인가 싶었다. 대체 왜 자기 몸에다 마법을 박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고민하기에는 늦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상대방이 실수한 거다! 함정이더라도 실력으로 뚫겠다!’
“크아아앗!”
외침과 함께 길마는 검을 들고 정수혁에게 접근했다.
몇 걸음만 내디디면 닿는 거리. 남은 건 이제까지 당한 걸 그대로 퍼부어주는 것뿐이었다.
-마법 증폭 반사!
“!??!?!”
순간 정수혁의 몸에서 튕겨 나가 성기사 길마를 향해 제대로 꽂히는 카흘라단의 번개!
이미 마법을 뚫고 나오느라 너덜너덜해진 길마는 그 일격에 그대로 나뒹굴었다.
“저런 방법이!”
“대단해!”
관중석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들이 본 방금 싸움은 정말 수준 높은 싸움이었던 것이다.
“저 마법사 이름이 정수혁이라고?”
“진짜 대단한데? 이름이 더 안 알려진 게 신기할 정도야.”
“방금 봤냐? 진짜 생각지도 못했다. 저런 식으로 할 줄이야.”
그냥 달려오는 적을 공격했다면, 상대방은 다시 한번 막았을 것이다.
직업이 성기사인 데다가 아직 버프가 걸린 상태니, 정면에서 날아오는 마법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저 정수혁이라는 마법사는 일부러 마법을 자기 자신에게 박았다.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마법을 자기 자신에게 박으면, 상대방은 전력을 다해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방어는 약해졌다.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자기 자신한테 마법을 박아서 반사시킨 거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관중들이 경악한 건 저렇게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자기 자신에게 마법을 박는 배짱!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한 배짱이었다.
짝짝짝짝짝-
누군가 한 명이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멋진 장면을 보여준 정수혁에 대한 존경!
정작 정수혁은 밖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책하고 있었다.
‘왜 거기서 또 실수를…… 나는 이러니까 안 되는 거야!’
“커, 커헉…….”
쓰러진 성기사 길마가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대단한 놈…… 내가 졌다.”
“……?”
“어떻게 그런 짓을…… 내가 널 너무 얕봤군. 네 실력을 인정한다!”
“???”
갑자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성기사 길마. 정수혁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방금 한 실수를 보고 저런 반응을 보여주다니?
“아니…… 방금 건…….”
대답도 듣기 전에, 성기사 길마는 HP가 0이 되어 투기장에서 탈락해 버렸다.
언덕을 오르던 성기사 셋도 마법 폭풍에 탈락한 상황.
남은 건 밑에서 상황을 보려고 대기하던 성기사 한 명!
어, 어, 하던 사이에 남은 팀원들이 전멸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