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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28화 (328/1,826)

§ 나는 될놈이다 328화

“여러분?”

이세연의 말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가 우뚝 멈춰 서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한국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해외 플레이어들도 많이 아는 이세연!

판온 1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인기였다.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이세연의 노림수는 간단했다.

여기 투기장 주변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를 데리고 가서, 증인으로 삼을 셈이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태현이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간 다음 확답을 듣는다면, 어지간하면 어기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해!’

서로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

다행히 투기장 주변에는 할 일 없고 재밌는 걸 기대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이세연은 손쉽게 그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사디크 교단 토벌대가 순식간에 완성되어버렸다. 이세연을 설득한 태현도 예상치 못한 상황!

* * *

“정정당당하게 싸웁시다.”

“……!”

이세연이 투기장 건물 밖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플레이어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동안, 투기장 건물 안에서는 또 하나의 불꽃 튀기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기사 이즈 킹> 길드와 정수혁 팀의 싸움!

“정…… 정당당?”

“네! 정정당당!”

“……지금 너희들이 정정당당이라고 할 자격이 되냐? 이 XX들아!”

<성기사 이즈 킹> 길마는 분노해서 소리쳤다.

태현 한 명의 혓바닥에 넘어가서 나름 잘나가는 길드들이 처참하게 무너졌던 그 날!

그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불을 차고 주먹을 쥐었다.

그런 놈의 패거리가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말하다니.

마치 쫓기는 도둑놈이 경찰에게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

성기사 길마가 방방 뛰자 최진혁이 나섰다.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말도 못 합니까? 별다른 꼼수 부리지 말고 싸우자는 건데?”

“너희들은 못 해! 이 사기꾼 놈들아!”

“쳇. 쫄았나 봐. 됐다. 수혁아. 돌아가자.”

“……!”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도발!

정수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말발에 자신이 없는 그와 달리, 최진혁은 나름 재치가 있었다.

실제로 성기사 길마는 그 말을 듣고 이마에 혈관이 불끈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누…… 가 쫄아? 어?”

“귀찮게 잔수작 부리지 말고 중앙에서, 정면에서 한판 붙자는데 뭔 이것저것 말이 그렇게 많아요? 됐어요. 저러니까 김태현한테 지지.”

연속 도발!

태현한테 당한 게 많은 길마는 넘어갈 수밖에 없는 도발이었다.

“오냐, 상대해 주마!”

“길마님! 안 돼요!”

길마의 반응에 기겁하는 성기사 길드원들!

“저것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안 받아줄 거냐? 어?”

“저번에도 저렇게 속으셨잖아요!”

“…….”

치사하게 묵직한 사실로 때리는 길드원들.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길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정수혁은 얼른 끼어들었다.

상대방이 그들을 믿지 않으리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믿음을 줘야 했다.

“우리가 먼저 중앙 진지로 올라가죠. 그쪽은 그거 보고 움직이시면 됩니다.”

“……!”

위, 중앙, 아래에 각각 하나씩 있는 세 개의 진지는 들어간다고 해서 바로 점령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일정 시간을 거기에서 버텨야 점령이 되는 것!

상대 팀원들이 들어오면 점령이 진행되지 않았다.

즉 이 투기장에서 먼저 진지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까지 큰 이득이 아니었다.

물론 먼저 들어가면, 나중에 오는 적을 상대로 수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장점은 상대방의 스킬과 직업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판온!

특히 성기사들을 상대로 먼저 진지에 들어가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방어를 믿고 순식간에 밀고 들어올 테니까.

그런데 먼저 중앙 진지로 올라간다고?

“너희 다섯이 먼저 중앙 진지로 올라간다고? 그걸 어떻게 믿어?”

“아예 다섯 명이 있는 걸 밑에 보여드리죠.”

투기장 맵이 워낙 크고 넓다 보니, 숨을 만한 지형이 꽤 있었다.

중앙 진지도 언덕 위에 있었으니, 그 언덕 쪽의 수풀이나 바위 뒤에 숨어 있으면 밑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걸 없애기 위해 아예 다섯 명이 아래에서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어주겠다는 것!

“????”

정수혁의 이 말에는 성기사 길드원들도 놀랐다.

아예 전략을 다 보여주고 싸워주겠다는 것 아닌가.

“함, 함정 아니야? 중앙 진지에서 점령할 동안 버틸 방법이 있다든가…….”

“그럴 방법이 있으면 이렇게 말 안 하고 그냥 써먹지 않나?”

“그, 그러네.”

생각해 보니 맞는 말!

“아니야. 우리를 밑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뭔가 함정을…….”

“아, 의심 더럽게 많네.”

최진혁이 다시 정수혁과 교대했다.

“우리는 중앙 진지에 올라가서 다섯 명 있는 거 말해줄 테니까, 그쪽 알아서 해. 믿기 싫으면 믿지 말고, 올라오기 싫으면 올라오지 마.”

그렇게 말하고 최진혁은 돌아섰다.

원래 도발은 이 정도에서 끊어줘야 하는 것!

상대방이 ‘어라? 쟤네 진짜 진심인가 본데?’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정도가 딱 좋았다.

돌아선 최진혁은 친구들과 수군거렸다.

“저것들 동영상 찍어서 올려 버리자.”

“그래. 진짜 겁 많다니까. 다섯 명이 다 성기사면서 정면 승부 하자는 거 무서워서 못 하는 거 봐라.”

아주 대놓고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지만, 길마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

뭔가 굳게 결심한 것 같은 성기사 길마!

* * *

“야, 저기 좀 봐.”

“와…… 진짜 예쁘다.”

“예쁘긴 뭐가 예뻐? 저거 판온 빨이야. 현실에서는 별로일 거라고.”

“너 죽고 싶냐? 어디서 주가연 님을 까?”

“맞아, 주가연 님은 현실에서도 여신일 거라고!”

프리카 투기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유명 플레이어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애초에 절반은 그런 목적으로 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앞에서 걸어가는 주가연은 인기 많은 궁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딱히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방송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플레이어!

실력과 그 외모 덕분이었다.

“언니,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요.”

“앞으로 대회 참가하면 더 쳐다볼 거야. 익숙해져.”

주가연과 같이 다니는 것 때문에 유지수에게도 시선이 쏟아졌다.

언제나 사람 적은 곳을 주로 돌아다녔던 유지수에게는 불편한 관심!

그랬다. 주가연은 유지수가 들어간 <파이드> 길드 길마였던 것이다.

소수정예 길드, 파이드에서도 이번 투기장 대회에 참가해보기로 결정!

그리고 놀랍게도 그 멤버에 유지수가 참가하는 데 성공했다.

영웅 직업인 <타이럼 레인저>과, 본인의 노력으로 따낸 자리!

길드 내에서 유지수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김태현이라는 사람은 여기에 없어?”

“네. 태현이 형, 아니, 오빠는 평소에는 퀘스트 하느라 바쁘니까…….”

“저번에 오해 풀었다면서? 왜 아직도 형이야?”

“그, 그게 입에 붙어서…… 많이 이상한가요?”

“이상하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

“괜찮아요. 그 정도는!”

“그러면 그 김태현이라는 사람은 본선 전까지는 못 보는 건가. 한번 보고 싶었는데. 상윤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하도 칭찬을 해대서…….”

유지수는 안도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주가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안도하는 표정이지? 보통 여기서 못 만나서 아쉬워해야 하지 않나?’

“아쉽지 않아?”

“네?”

“여기서 못 만나서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아…… 어차피 밖에서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

“자꾸 사람들 많은 곳에 태현이 형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이 달라붙을 수도 있으니까…….”

“…….”

주가연은 황당함과 한심함이 동시에 섞인 눈빛으로 유지수를 쳐다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라고 말하지 않는 건, 주가연이 상냥하고, 유지수보다 언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얼마든지 멍청해질 수 있지!

그런 면에서 주가연은 그릇이 넓었다.

“그, 그러지는 않지 않을까?”

“아니에요! 얼마나 잘생겼는데!”

주가연이 보기에, 태현의 외모는 아무리 봐도 험상궂은 양아치를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그러나 유지수는 태현의 외모를 말할 때 한사코 ‘잘생겼다’, ‘선이 굵고 강렬하다’ 등 소수 의견을 고집했다.

눈에 단단히 쓰인 콩깍지!

“안 그래도 지금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 죽겠는데…….”

“그, 그래? 나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주가연이 보기에, 현재 태현 파티는 딱히 연애와는 연이 없어 보였다.

파티 내에서 연애하는 커플이 있다면 생기는, 연애하는 커플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태현 파티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것에 예민한 주가연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긴, 그 이다비라는 플레이어는 좀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다. 예쁘게 생겼으니까.”

<파워 워리어>라는 길드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이다비도 나름 인기가 있었다.

원래 인기는 외모와 비례하기 마련!

<파워 워리어>라는 악성 길드 때문에 보통 비난과 야유를 받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었던 것이다.

“네? 그 사람보다 케인이 더 신경 쓰이는데요.”

“그쪽?!?!”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주가연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아무리 양보해 줘도 그 케인이라는 사람은 아니지 않아? 이다비까지 아닐까?”

“언니는 몰라서 그래요! 분명 저하고 같이 다닐 때만 해도 적A, 노예A 취급이었는데 요즘 보면 이상하게 상냥하다고요! 이번 투기장 대회에 참가한 것도 그렇고! 예전부터 생각해 보면 오빠는 이상하게 남자들한테 친절해!”

“주변에 남자들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주가연의 의견은 매우 상식적이었지만, 유지수의 귓가에는 닿지 않았다.

“그 최상윤 씨도 그렇고!”

“둘이 좀 많이 친하긴 하지.”

“그 대학 후배도 그렇고!”

“…….”

주가연은 살짝 질린 눈으로 유지수를 쳐다보았다.

딱히 연애 관련으로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태현이 관심을 쏟아주는 걸로 질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러면 케인이나 태현의 대학 후배한테 저런 적대심을 보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야, 경기 시작한다. 빨리 가자.”

“예선인데 놓쳐도 되지 않아?”

대화하던 둘의 귓가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아냐. 이번 건 좀 볼만해. 성기사이즈킹 길드하고…….”

“뭐? 그런 음란한 놈들이 있어? 설마 갑옷 벗고 싸우는 건가?”

“들어보니까 그렇다던데? 길드명 봐. 그래가지고 붙은 길드명인가 봐. 안 그러면 어떤 미친놈들이 그런 길드명을 짓겠어?”

어딘가에서 이상하게 섞여서 퍼진 소문!

“상대도 들어봐. 무려 그 김태현하고 같이 다녔던 마법사가 낀 파티라던데. 요상한 마법을 쓰나 봐.”

“요상한 마법?”

수군거리던 플레이어들은 구경을 위해 움직였다.

마법사 관련 직업은 언제나 관심을 많이 사기 마련!

특이하고 변칙적인 마법사일 경우 더더욱 관심을 많이 사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수혁은 랜덤 마법사 그 자체!

사라진 플레이어들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고서, 주가연은 물었다.

“아까 말한 대학 후배도 대회 참가하나 본데? 구경 갈래?”

“물론이죠!”

유지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혁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보고 싶었다.

‘내가 더 강할 거야!’

이상한 곳에서 발동되는 경쟁심!

* * *

“예선치고는…….”

“이상하게 사람이 많은데?”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성기사 길드원들이 웅성거렸다.

명백히 평소보다 많은 관중!

원래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

당황하던 그들의 귓가에, 관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안 벗고 있어?”

“갑옷 벗고 싸우는 성기사들이라고 해서 구경 왔는데.”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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