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25화
“크로포드요? 마법사 랭커잖아요.”
“그래?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는 한데…….”
케인은 태현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사디크 마수 토벌 퀘스트 때 있었던 랭커잖아.”
“아. 그랬었나? 모를 수도 있지. 인마. 내가 랭커들 방송 다 챙겨봐야 해? 어?”
“맞아요. 모를 수도 있지!”
태현과 이다비의 협공에 케인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너희 둘 뭔가 더 친해진 거 아니냐?”
“그래요?”
“짜증이 두 배로 늘어난 거 같다.”
“에이, 아직 3케인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4케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제는 짜증스러움에도 쓰이는 단위!
케인은 두 콤비에게 반박하는 걸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저 둘에게 말려 들어간다!
그러는 사이 크로포드는 무언가 주섬주섬 아이템을 꺼내고 있었다.
“앗!”
“저, 저건……!”
“스크롤이다!”
크로포드가 뭔가 하나 할 때마다 반응을 보여주는 플레이어들.
그걸 본 태현은 중얼거렸다.
“저거 크로포드가 고용한 거 아니지?”
“네 팬들도 네가 말할 때 비슷한 반응이거든?”
“시끄러워. 팬 없는 놈.”
“나, 나도 팬 있어!”
“그보다 저거 무슨 스크롤이지?”
크로포드는 아깝다는 듯이 스크롤을 쳐다보았다. 원래 이 스크롤은 이럴 때 쓰려고 챙겨둔 게 아니었다.
단체 순간이동 스크롤!
판온에서 순간이동, 공간이동 관련 마법은 비싸고 희귀한 마법이었다.
거기에 단체가 붙고, 스크롤이 붙으면 가격은 몇 배로 뛰기 마련!
부르는 게 값이나 마찬가지인 스크롤이었다.
크로포드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배에 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아. 역시 이럴 때 써줘야지.’
착한 일도 하고, 인기도 얻고.
크로포도는 배에 타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스크롤을 쓸 생각을 했다.
“모두들 걱정 마라! 이 스크롤로 단체 순간이동을 할 테니까. 바로 프리카 대륙 항구로 순간이동한다!”
“오오! 크로포드! 오오!”
“크로포드 만세!”
크로포드의 말을 들은 태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저런 착한 사람도 있나?”
“저러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마 인기 때문에 그런 걸걸요.”
“뭐? 인기 때문에 저런 스크롤을 그냥 쓴다고? 대체 왜?”
“인기가 곧 돈이잖아요.”
“돈이 필요하면 그냥 다른 플레이어들을 잡아서 돈을 얻는 게 낫지 않나?”
“그러다 보면 지금 태현 님처럼 원수가 수십 명 넘게 쌓이는 거죠.”
“너 은근히 웃으면서 나 찌른다?”
이다비의 날카로운 지적에 태현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쾅! 콰앙!
-저 배를 가라앉혀라! 바다에 빠진 놈들을 전부 잡아내서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지금 사용해야 할 것 같군! 바로 사용하겠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묵직한 마법이 배 주변에 팍팍 꽂히자, 크로포드는 재빨리 스크롤을 붙잡았다.
그걸 본 유 회장이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도 궁금한 게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까 하늘로 날아가는 방법도 무리라고 했지? 그러면 마법으로 도망치는 것도 위험하지 않나? 막혔을 거 같은데.”
“그렇긴 하죠.”
“?!”
순순히 인정하는 태현의 모습에 유 회장은 당황했다.
“안 말리나?”
“뭐 제 스크롤 아니잖습니까.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제 스크롤 아닌데.”
“…….”
저기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해 스크롤을 꺼내는 크로포드와 너무 반대되는 모습!
‘이놈이 대체 왜 인기가 있는 거지?’
유 회장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기가 없을 것 같은데 인기가 있단다.
대체 왜??
‘요즘 유행이 바뀐 건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못된 남자가 유행인가?’
파지직!
그러는 사이, 크로포드가 스크롤을 찢었다. 태현은 기대되는 눈빛으로 크로포드를 지켜보았다.
믿는다! 크로포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너를 믿는다!
태현도 알고 있었다.
갈르두가 해적 마법사 군단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에스파 왕국 바다의 보스 몬스터, 대해적 갈르두에 관한 정보는 많이 퍼지지 않았지만 태현은 직접 만나봤던 것이다.
그렇기에 순간이동 마법도 재수 없으면 막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로포드도 랭커 마법사 플레이어. 운이 좋으면 방해를 뚫고 성공시킬 수도 있었다.
태현 생각에 확률은 반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포드에게 직접 말하거나 조언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 스크롤 아니니까!’
[중급 단체 순간이동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주변에 순간이동 방해 마법이 깔려 있습니다. 마법이 충돌합니다.]
[순간이동이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파지직, 파지지직!
“!?!”
크로포드는 깜짝 놀라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맞다, 해적들도 마법사가 있었지!’
해적 이미지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것!
[목적지와 다르게 랜덤으로 순간이동합니다.]
“!!”
“모여!”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자마자 빠르게 대응했다.
당황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 속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잡고 있어! 재수 없으면 다른 데로 날아간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그건 날아가 봐야 알겠지.”
“설마 마계로 가는 건 아니겠…… 읍읍!”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태현은 이다비의 입을 다물게 하고 순간이동을 대비했다.
스크롤에서 나온 거대한 빛이 함선을 감싸고, 점점 밝아지더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멀리서 갈르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들이 도망을 치고 있다! 잡아라! 김ㅌ…….
“김ㅌ?”
유 회장은 순간 고개를 돌려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잘못 들으신 것 같은데요?”
* * *
촤아악-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태현은 해변가의 땅바닥 위에 멋지게 착지했다.
이다비도, 유 회장도, 나름 추하지 않게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푸푸풉!”
케인만 혼자 바닥에 엎어져서 해변가에 얼굴을 박았을 뿐!
“풉, 푸웁…… 여기 어디야?”
“프리카 대륙 같기는 한데…….”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풍경이 에스파 왕국 같지는 않았다.
‘아마 프리카 대륙이겠지.’
태현은 스스로의 행운 스탯을 믿었다.
판온 1에서는 재수가 없었지만, 판온 2에서의 태현은 억세게 재수 좋은 남자!
당연히 이런 랜덤 순간이동도 최악의 경우는 안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여기가 어디냐가 중요한데…….’
태현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일단 갈르두를 피했으니까!
게다가 이 주변도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천천히 확인하고, 사디크 교단의 흔적을 찾아서 이동하면 될 일이었다.
“어? 저기 마을이다.”
“잘됐네. 마을 가서 위치 확인하고 지도 산 다음 움직이자.”
마을을 발견한 이상 일은 더 쉬워졌다.
지도를 구입하면 이 주변 지리도 자동으로 맵에 추가될 테니까!
태현 파티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활활-
“……?”
마을 가운데에는 거대한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뭔 불이야?”
“추운 날씨가 아닌데?”
지금 주변은 따뜻한, 아니 오히려 더운 축에 속하는 날씨였다.
그런 곳인데 저런 불꽃이라니!
“마을에서 이벤트 하는 거 아닌가?”
“그런가 본데?”
“저기 마을 사람들 나온다. 무슨 이벤트 하나 물어보자.”
슥슥-
-어서 옮기자!
-그래, XXX님을 위하여!
마을 사람들은 어깨에 거대한 나무 조각상을 짊어지고 나왔다.
그리고 마을 중앙의 화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누구를 위하여라고 하지 않았나?”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저기 조각상 갖고 나오네요.”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마을 사람들은 조각상을 땅 위에 올려놓았다.
“저 조각상 무슨 조각상이지? 이다비?”
“후, 또 제가 활약할 순간이네요!”
이다비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상인 직업은 이런 아이템 확인에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이다비가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 태현도 조각상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야, 저거 뭔가…….”
케인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소곤거렸다.
“……네 얼굴 같지 않냐?”
“아, 아니. 착각이겠지.”
아무리 봐도 저 조각상의 얼굴은 태현을 매우 많이 닮아 있었던 것!
“확인했어요! <조잡하게 만든 김태현 백작의 조각상>이라는데요?”
“너 맞잖아!”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저게 뭔?
“왜 여기 네 조각상이 있어?”
“뭐지?”
“혹시 아키서스 교단이 여기까지 퍼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믿으려고 조각상을 깎은 거죠.”
“아니…… 말이 안 되는데. 벌써 퍼졌을 리가 없잖아.”
“했던 업적들이 있으니까…… 앗.”
말하던 이다비는 입을 다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태현의 조각상을 들고 가더니, 마을 중앙의 화염에 집어 던진 것이다.
“…….”
“…….”
“…….”
셋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태현을 모시는 태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태현의 조각상을 화염 안에 던지더니,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위대한 사디크 님이시여! 스스로가 화염이 되신 님이시여!
-저 사악한 김태현 백작을 제물로 바치니 우리를 돌봐주십시오!
“아키서스 교단이 아니라…….”
“……사디크 교단이잖아!!!”
* * *
정확히 말하자면, 사디크 교단이 아닌 사디크 교단을 믿는 마을이었다.
뭐 별 차이는 없었지만!
태현은 갑자기 다시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행운 스탯 기껏 올려놨더니 순간이동을 이딴 마을로 하냐?’
하필 떠밀려서 온 곳이 프리카 대륙에서도 사디크 교단을 믿는 마을이라니.
태현이 고민하는 동안, 케인과 이다비는 옆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와, 사디크 교단이 진짜 많이 싫어하나 봐요. 다른 대륙에 있는 사디크 교도들이 태현 님 조각상을 태우다니.”
“그럴 만하지. 나는 저 마음 완벽하게 이해한다.”
“네? 태현 님을 불태우고 싶다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 진짜 김태현한테 뭐 받았지!”
태현도 살짝 반성하게 됐다.
처음 보는 사디크 교도들이 태현의 조각상을 태우며 기도할 줄이야.
이쯤 되면 교단의 원수, 교단의 최대 적 수준!
“가자.”
“응? 싸우자고?”
케인은 무기를 잡으려고 들었다. 보아하니 저 마을 사람들의 레벨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였다.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수준!
“뭘 싸워, 인마. 여기 주변에 사디크 놈들이 얼마나 있는 줄 알고 싸우자고 그래? 머리를 써야지. 머리는 폼이냐? 투구 걸이냐?”
“그, 그러면 어쩌려고?”
“날 잘 보면서 따라 해라.”
태현은 자신 있게 말하더니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
“누구냐!”
태현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태현은 말했다.
“사디크 만세! 위대한 사디크 님을 찬양하라!”
“…….”
“…….”
뒤에서 엎드려 있던 케인과 이다비, 유 회장은 입을 벌리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바로 들킬 거짓말을 하냐!”
“화술 스킬로는 커버가 불가능해요! 신성 스킬은 바로 들통이 나잖아요!”
아무리 변장을 하고,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어도 사디크 교단 관련 스킬을 사용하라고 하면 바로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종교 집단 상대로 사기 치는 게 어려운 것!
[사디크 교단의 신도들은 외부인을 극히 경계합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역시 마을 사람들은 태현의 말 한마디에 넘어가지 않고 경계를 굳혔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이런 멍청한 놈들. 봐라! 이 불꽃을!”
화르륵!
태현의 손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
<권능 포식>으로 얻은, <사디크의 화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