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323화 (323/1,826)

§ 나는 될놈이다 323화

“아아아! 그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최진혁은 눈치 없게 감탄하고 있었다.

마침 그 싸움이 일어났던 곳도 투기장 도시 아니었던가!

“거기도 투기장이었지! 김태현 선배님 정말 멋있었는데!”

“…….”

부들부들 떨리는 성기사 길마의 손!

“가자!”

“어, 어? 저기, 저 아직 자기소개도 안 했는데…… 저기요?”

최진혁은 길마의 등을 향해 불렀지만, 이미 단단히 화가 난 길마는 듣지도 않고 떠나 버렸다.

“왜 저러시는 거야?”

“선배님한테 당한 거 때문에 나한테 원한이 있나 봐.”

“아. 그런 거야? 와. 쪼잔하게. 괜찮아. 예선 참가 팀 많으니까 다른 놈들한테 떨어져 나가겠지.”

“……우리 다음 상대인데.”

“…….”

순식간에 질리는 최진혁의 얼굴!

“성기사 길드라고 하지 않았어?”

“응…….”

“안 돼! 성기사는 안 돼!”

최진혁이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성기사는 PVP 기피 직업 중 하나!

튼튼한 방어력, 높은 HP, 다양한 버프기와 회복기.

오죽하면 바퀴벌레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다섯 명이 싸우는 프리카 투기장에서 전원이 다 성기사라면, 숨이 턱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와…… 어쩌냐…….”

“선배님한테 물어보면 안 돼?”

“뭘 물어보라고?”

“성기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아실 수도 있잖아.”

“그래. 수혁아. 물어봐 주면 안 돼?”

“아니, 내가 옆에서 봤는데 그건 별로 참고 안 될 거 같은데…….”

정수혁은 태현의 싸움 방식을 떠올려보았다.

-맞기 전에 피한다!

-죽기 전에 죽인다!

정수혁은 거의 ‘발컨’ 수준의 컨트롤 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태현에게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런 식의 광역기가 들어오면 어떻게 피하나요?

-이런 식으로 전사가 돌진해서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어이가 없는 대답들뿐이었다.

-광역기가 써지기 전에 눈치채고 그 범위에서 벗어나.

-들어오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옆으로 몸 빼고 뒤에 카운터 날려.

-그, 그걸 어떻게 하냐니까요.

-잘?

-…….

아무리 들어도 참고가 안 되는 조언!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정수혁은 태현이 천재라는 걸 다시 한번 직감했다.

‘그리고 천재의 조언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정수혁은 친구들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날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한 번만!”

“맞아! 물어봐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궁지에 몰린 친구들은 썩은 밧줄이라도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결국 정수혁은 포기하고 태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선배님. 선배님.

-이것들이 배가 불러 가지고…… 10골드가 땅 파면 나오는 돈이냐? 사디크 교단도 치기 싫다, 제카스도 치기 싫다, 이래서 기껏 내가 새 퀘스트 내줬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지는 못하고, 어?

-……선배님?

-아. 수혁이냐? 미안. 지금 다른 놈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어서.

뭔가 무시무시한 대화가 오간 느낌!

정수혁은 침착하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어? 성기사들?

-누군지 기억나세요?

-아니, 하도 상대한 놈들이 많아서…….

-……성기사 이즈 킹이란 길드인데요.

-아아! 그 음란한 길드명 달고 다니던 놈들!

원래 사람 잘 기억 안 하고 다니던 태현이 기억하다니,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당사자들이 듣는다면 화를 내겠지만…….

-저희 다음 상대가 그 사람들이거든요.

-너희 아직도 탈락 안 했어??

-…….

진심으로 놀란 것 같은 태현의 목소리!

정수혁은 살짝 울컥했다.

-저, 저희도 지금 나름 선전하고 있거든요?

-아니, 너 말고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잘하는 친구들이 아니었잖아. 그래서 금방 탈락할 줄 알았지.

-어? 제 친구들 하는 거 보셨어요?

-아니. 판온 1때부터 했고, 잘 하는 친구들이었으면 보통 내가 쓰러뜨린 적이 있는 친구들이거든.

간단하고 명쾌한 태현의 논리!

판온 1부터 했고, 실력이 있는 랭커 출신 플레이어였다면 태현이 한 번쯤은 밟고 넘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이름만 들어도 발작하듯이 태현을 싫어했다.

정수혁의 친구들은 태현의 이름을 듣고 태현을 만나고 싶어 할 정도로 좋아했으니, 그런 출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뭐, 그런 출신이 아니더라도 잘 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 게다가 너도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 아직도 손 떨리지 않나?

-그래도 많이 고쳐진 편입니다. 복잡한 거 안 하고 하나만 하려고 해서 그런지…….

-성기사…… 다섯 명이 다 성기사면 좀 힘들 텐데. 프리카 투기장은 어떤 방식이냐?

-네? 설마 아직까지 투기장 방식도 안 보셨어요?

-투기장의 ‘투’자도 듣기 싫어서 피하고 있었지. 어차피 시작하면 알게 될 텐데.

정수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수많은 관중 앞에서 본선 게임을 치르게 될 사람이 아직까지 투기장 방식도 모르고 있다니!

-그, 투기장 방식이 대충…….

프리카 투기장은 점령 방식의 투기장이었다.

거대한 맵 좌우에서 각 팀이 입장하면 맵의 위, 가운데, 아래 각각 한 개씩 진지가 있었다.

총 세 개의 진지.

이 진지를 하나씩 점령할 때마다 점령 팀에는 강력한 버프 효과가 들어갔다.

버프가 하나 이상 차이 날 경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따라붙지 못할 정도기 때문에 각 팀은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게다가 프리카 투기장은 맵이 보통보다 더 넓었기에, 머리싸움도 치열했다.

위, 가운데, 아래 진지에 어떻게 사람을 나눠서 보낼 것인가!

참가 직업들도 다양했기에 온갖 기상천외한 전략들이 다 나오고 있었다.

5명 올인 메타 같은 건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을 들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식의 투기장이었군. 그러면 방법은 하나네.

-??

-잘 들어봐. 게임 시작하기 전에, 그 성기사이즈킹 놈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 정정당당하게 한 번 붙자고.

-네……?

-같잖은 수작 부리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가운데 진지에서 5:5로 한판 승부 벌여보자고 해. 그놈이면 분명 받아들일 거야. 만약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이면 당연히 위나 아래로 인원을 좀 빼겠지만, 그놈은 그럴 놈이 아니거든. 너희 상대로 그런 짓 하면 체면 깎일까 봐 못 할 거야.

-일, 일단 그렇다고 치고. 그다음에는요?

-그러면 가운데 진지에서 5명끼리 만나겠지. 그다음에는 네 스킬 <아키서스의 혀>를 써.

아키서스의 혀.

외친 스킬명과 다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정말 특이한, 아키서스 교단다운 스킬이었다.

-그걸 쓰라고요?

-그래. 그걸로 유명하고 빠른 저주 몇 개 이름 외워 가지고 외쳐. 그러면 성기사 놈들은 보통 자리 잡고 방어에 들어갈 거야.

성기사 같은 직업이 마법사를 상대할 때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마법사가 먼저 마법을 쓰고, 성기사는 버프와 방어로 그걸 견디면서 거리를 좁힌다.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거의 성기사의 승리나 마찬가지!

강한 마법이면 성기사들이 먼저 달려 나와서 마법을 차단하려고 할지도 모르지만, 약하고 빠른 저주 같은 건 그냥 방어 스킬로 막고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그다음은요?

-그다음에는 네 패시브 스킬 믿고 폭딜 퍼부어야지. MP 아끼지 말고 가능한 마법 모두 퍼부어라. 최대한 MP 적게 쓰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마법 위주로 퍼부어. 그래야 랜덤 효과 많이 나오지.

-…….

한마디로 태현의 전략은, 상대 플레이어들을 잘 꼬셔서 한곳에 몰아넣은 다음 아키서스의 마법 효과에 올인하라는 것!

-만, 만약 실패하면요?

-실패하면 지는 거지 뭘. 야, 양심이 있어 봐라. 너희보다 잘 하는 상대로 100%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원하냐? 보통 너희보다 잘하는 상대를 만나면 지는 거야.

반박할 수 없는 맞는 말!

태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잘못 봤거나, 놈들이 머리 좀 굴리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는 한데, 한 번 정도는 통할 것 같아. 어차피 다른 전략은 떠오르지도 않으니까 한 번 이걸로 해봐. 싫으면 말던가.

-……해보겠습니다!

정수혁은 즉답했다.

태현의 말을 들으니까 알 수 있었다. 다른 방법보다 그나마 승산이 있는 게 이 방법이라는 것을!

-선배님.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어? 퀘스트? 뭔 퀘스트?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입니다. 프리카 투기장에서 연승할 때마다 교단 보상이 들어오는 퀘스트요.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수혁아!

듣자마자 달라지는 태현의 태도!

-그런 이판사판 전략 말고 더 좋은 전략이 있을 거야!

-선, 선배님이 방금 이것밖에 없다고…….

-그거야 고민하는 데 5초밖에 안 썼으니까 그렇지. 더 고민하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올 거야. 음…… 으음…… 내가 지금 거기로 가서 성기사 놈들을 전부 PK해 버리면 페널티 때문에 참가 못 할 거야.

-좀 있으면 시작인데요.

-젠장! 수혁아! 포기하지 마라! 최선을 다해!

이렇게 태현이 열렬하게 응원해 준 건 또 처음인 것 같았다.

정수혁은 고마움과 떨떠름함을 동시에 느꼈다.

-파이팅이다! 수혁!

-아, 네…… 선배님…….

귓속말을 끊자, 친구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셔?”

“음…… 방법을 조언받기는 했어.”

“진짜?!?!”

* * *

“아니, 이 자식은 왜 미리미리 말을 안 해가지고!”

“미리 말했어도 방법이 없지 않나요?”

“왜 없어!”

“……?”

“내가 걔네 중 한 명으로 몰래 참가하면 되지.”

“…….”

이다비는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케인은 쳐다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들키면 들키는 거지. 왜 그래?”

“본선 참가권 날아가면 어쩌려고!”

“날아가면 좋…… 그보다 날아가는 거 규정에 없던데.”

“뭐?”

“규정 보니까 초대팀에 초청받은 선수가 예선에 따로 참가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딱히 안 나와 있더라.”

“그건 당연히 그럴 사람이 없으니까 굳이 안 넣을 거 아닌가요?”

“그래! 저게 맞는 말이지!”

“아. 시끄러. 안 들키면 그만이야. 수혁이 이 자식은 왜 미리 말 안 해가지고……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는데…….”

태현이 계속 투덜대는 걸 본 유 회장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보네. 그렇게 아끼는 후배인가?”

“아뇨, 그냥 태현 님 관련 퀘스트도 걸려 있어서 저런 거 같은데요.”

“어허. 어디서 사람의 선의를.”

“읍읍!”

태현은 이다비의 입을 막고 유 회장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겉모습만 보면 ‘아, 이 사람 레벨 좀 높겠구나!’ 싶은 겉모습이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에스파 왕국 항구까지 움직이는 사이에 이미 현질을 다 마친 유 회장!

“어르신 잘 어울리십니다?”

“크흠, 크흐흠.”

태현의 시선을 느낀 유 회장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현질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그걸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 옷도 참 좋군. 매끈매끈한 게…….’

<왕국 낚시꾼의 조끼>를 매만지며, 유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웃으신 거 같은데?”

“누, 누가? 나는 낚시 하러 갈 테니 방해하지 말게.”

“그럼 저도 옆에서 뭐 하나 낚아보죠.”

“흥, 낚시가 그렇게 쉬워 보이나?”

유 회장은 자부심 섞인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게임이면 모를까, 낚시에서는 그가 태현보다 위다!

“아. 낚였다.”

“?!!?”

무슨 넣자마자 건져 올리는 태현을 본 유 회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체면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입!

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폭음이 들렸다.

콰콰콰콰쾅!

-해적! 해적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