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21화
“세월을 낚는 낚시꾼이요?! 정말요?!”
반응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옆에서 듣던 이다비가 깜짝 놀란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태현에게 상처를 입은 유 회장은 사람을 믿지 않게 된 상태!
유 회장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네. 그렇게 속일 필요 없어. 이미 다 알았으니까.”
“네? 아, 아니. 진짜 알아서 말한 건데…….”
“알긴 뭘 알아! 또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누가 저놈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 아니랄까 봐!”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저희 길드원 중에서 낚시에 미쳐 사는 플레이어들 몇 명 있는데, 물어보니까 <세월을 낚는 낚시꾼>은 자기들도 전직하려고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못 찾아본 엄청나게 희귀한 직업이래요.”
“그, 그래?”
사람인 이상, 자기가 갖고 있는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기분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살짝 좋아지는 유 회장의 기분!
“자네는 저 놈팽이하고는 좀 다르군그래. 왜 저런 놈하고 같이 다니는지…….”
“골드를 많이 주시거든요.”
“저, 저런 못된 놈…… 사람을 돈으로 부려먹다니!”
둘의 대화를 듣던 태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르신께서 하실 소리가 아닐 텐데요. 과징금 낸 게 누구?”
“그, 그건 내가 아니라 내 아들놈이……!”
“그보다 다들 전직 못 했는데 이 어르신이 전직했다고? 그건 좀 신기한데.”
“그러게요?”
태현과 이다비는 둘 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전직 조건이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 영웅 직업 같은 건 초보자가 전직하기 힘들었다.
괜히 희귀, 영웅 직업이 아닌 것!
“어르신 뭐 하셨습니까?”
“그냥 한자리에서 계속 낚시만 한 것밖에 없는데…….”
“엄청 오래 하셨나 본데? 그보다 타이럼 주변에서 낚시할 곳이 있었나?”
“야, 이놈아. 그걸 알면서……!”
유 회장은 다시 태현의 멱살을 잡으려 들었다.
“호수에서 했다. 토끼한테 맞아가면서!”
“아, 그 토끼. 추억 돋네요. 그 토끼 잡느라 고생 좀 했었는데.”
“그렇지?! 거기 있던 놈들은 전부 다 이상한 놈들밖에 없더라고. 무슨 토끼 씨를 말린 놈이 있다고…….”
“아, 그거 전데요.”
“……진짜로?”
“이 칭호 보시죠.”
[칭호:토끼 학살자]
“?!”
유 회장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 토끼를 그렇게까지 잡은 놈이 진짜로 있는 놈이었다니?!
그렇게 놀라는 도중, 이다비가 다시 한번 길드원들과 대화하고 말했다.
“어라? 이상하네요? 저희 길드원들도 한자리에서 계속 앉아서 낚시하는 건 충분히 해봤다는데요. 삼 일 넘게 한 사람도 있고…….”
“나도 그거 말고는 딱히 한 게 없는데…….”
유 회장도 더 이상 아는 게 없었다.
그러자 태현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그거밖에 없네.”
“……?”
“타이럼에서 낚시를 하는 게 전직 조건이었던 게 분명해. 이야, 어르신. 저 덕분에 레어한 직업 얻으신 거네요.”
“…….”
뻔뻔하게 잘도 말하는 태현의 모습에, 유 회장은 다시 한번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 회장은 김태산이 태현에 대해 말할 때 했던 말들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였구나!
닳고 닳은, 노회하고 능수능란한 유 회장도 화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태현이었다.
유 회장은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더 이상 화내 봤자 의미가 없었다.
“후우, 후우…… 그래. 그렇지만 너도 이건 몰랐을 거다.”
“……?”
“네놈의 사악한 속셈 때문에 나는 오히려 손녀하고 만나서 친해질 수 있었거든.”
“아. 지수요? 하긴, 걔야 타이럼 레인저니까. 타이럼 시 주변에서 만날 수 있었겠네요.”
“!?!?!?!?!?!?!?!??!?!!”
유 회장은 들고 있던 낚싯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충격받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어, 어, 어…….”
“어?”
“어떻게 네가 지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유 회장은 혼란 와중에도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태현과 유지수가 어떻게 서로 알고 있는 것인가?
‘그때 생일잔치에서 만난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만났는데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나? 그게 말이 되나? 판온 때문인가? 요즘 젊은 놈들은 다 그런 건가? 이 사악하고 음란한 판온을 폐지시켜 버려야…….’
“어르신? 어르신?”
태현은 유 회장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딘가 다른 세계로 떠나버린 것 같은 표정!
“어, 어?”
“어떻게 지수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으셨잖습니까.”
“그, 그랬지……?”
“게임에서 만났는데요.”
“……!”
“타이럼 시에서 같이 시작했어요. 거기 아시죠? 초보자들은 파티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래서 지수랑 같이 돌아다녔는데…….”
“지수랑 같이 손잡고 돌아다녔다고?”
“……손의 ㅅ 자도 안 꺼냈는데요?”
“지수랑 미래를 약속했다고??”
“야, 누가 사제 좀 불러와 봐. 귀에 저주 걸렸나 봐.”
“이놈! 이노옴!”
[완벽한 자세로 낚싯대를 다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낚시 스킬이 오릅니다.]
분노로 인한 완벽한 자세!
유 회장의 낚싯대는 고렙 창병의 창처럼 태현을 쭉쭉 찔러 들어갔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전부 다 빗나갔지만.
* * *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유 회장은 진정할 수 있었다.
태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지수와 어떤 사이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 회장은 확신했다.
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녀딸이 요즘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저놈 때문이라고!
‘게임을 시작한 시기를 따져보면 저놈이 맞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내 생일이 끝나고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었지. 저놈 때문이었구나! 아이고! 내가 눈이 어두워서 호랑이 새끼를 집으로 불러들였다니!’
유 회장은 순진하게도 유지수가 할아버지의 생신이라고 그렇게 좋아해 준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무리 봐도 태현 때문이었다.
“어르신, 낚시 연습은 끝나셨습니까?”
태현은 하품을 하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유 회장이 낚싯대를 태현에게 휘두른 걸 ‘낚시 연습’이라고 부르는 태연한 모습에, 유 회장은 다시 한번 울컥했다.
‘저놈을 한 대 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게임에 관심도 없던 유 회장에게 게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태현!
유 회장 입장에서 더 화가 나는 건, 태현은 유지수를 딱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냥 아는 동생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 모습!
이건 또 다른 이유로 기분이 나빴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
유 회장은 스스로 인내했다.
괜히 유지수 관련으로 입방정을 떨었다가 손녀딸이 영원히 삐질 수 있었다.
“그래. 끝났다, 이놈아!”
“지수랑 만나서 잘됐네요. 지수한테 할아버지란 거 말 하셨습니까?”
“…….”
“말 못 하셨군요.”
태현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유 회장은 울컥했다.
“말, 말하면 분명 피했을 거라고!”
“뭐 그거야 그렇지만 그건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 못한 어르신 잘못이죠.”
“끙…….”
“근데 지수한테 할아버지인 거 말 안 했으면 왜 갈라진 겁니까? 계속 같이 다녀도 됐을 텐데. 지수 걔가 착해서 저렙이어도 같이 다녀줄걸요.”
“자기 길드원들이랑 프리카 대륙으로 간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 거기를 또 어떻게 따라가나.”
“왜요, 따라가면 되지.”
“레벨도 안 되고, 눈치도 보일 것 같아서 그냥 나왔네.”
“확실히 어르신은 사냥을 안 하니 레벨 쪽에서는 불리하기는 하겠죠. 그렇지만 어차피 낚시꾼 계열 직업은 전투 포기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어르신은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고.”
“뭔 방법?”
태현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현질이요.”
“게, 게임에 돈을 쓰라고?”
“캡슐은 뭐 공짜로 사셨습니까?”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게임에 돈을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자네 아버지가 알면 비웃을 것 같아서 겁나는군.”
김태산이 추천할 때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가, 이제 와서 현질하면 김태산이 비웃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러나 그건 김태산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였다.
“네? 아버지가요? 현질했다고 비웃는다고요?”
“왜, 왜 그러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현질 많이 한 사람이 저희 아버지인데…….”
“…….”
“어르신은 모르고 계셨구나. 하긴, 아버지가 은근히 체면을 신경 쓰니까 그랬겠죠.”
기회를 잡은 태현은 신이 나서 김태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제일 재밌는 게 김태산이 숨기고 싶은 과거를 퍼뜨리는 것!
“예전에 리X지부터 시작해서, 다른 게임도 몇 번 하셨거든요? 명절 때마다 게임 회사 직원들이 따로 인사를 오더라고요. 우리 게임 이용해줘서 고맙다고.”
“…….”
게임 하나를 거의 혼자서 먹여 살릴 정도의 현질 액수!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이 게임에 빠지면 얼마까지 투자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껴지는 일화였다.
“언제 한 번 게임 몇 주일 동안 안 들어가니까 직원들이 직접 선물 들고 찾아오더라고요. 자기네들 게임에 불만 있으면 고치겠다고…….”
“……그 양반 겉모습하고는 아주 다르군그래.”
“원래 밖에서는 폼을 좀 잡으시는 분이죠. 어쨌든 어르신, 쉽고 빠르게 강해지고 싶으시면 현질하세요. 현질. 현실에서도 낚시꾼들은 좋은 장비만 보이면 팍팍 사지 않나요?”
“그렇기는 하지…….”
유 회장은 솔깃한 걸 느꼈다. 지금 입고 있는 장비도 초보자 때 입고 있던 장비에 비하면 나름 멋이 느껴지는 장비였다.
제법 판타지 세계의 낚시꾼 같은 모습!
만약 현질을 한다면 얼마나 더 좋은 장비를 구할 수 있을까?
“어르신이 지금 장비만 좋은 걸로 갖춰 입으면 프리카 대륙 가서도 나름 잘 버틸 수 있을걸요.”
“……그 현질 방법 좀 알려주게.”
결국 유혹에 넘어간 유 회장이었다.
* * *
경매장의 방법을 다 설명해 주고 나서, 태현은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어 물었다.
“그런데 지수랑 헤어진 건 헤어진 건데, 왜 여기로 오셨습니까?”
“응? 아, 낚시꾼 NPC 한 놈이 아키서스를 추천해 주더군. 아키서스를 믿으라고. 여기에서 아키서스를 믿을 수 있다고 하던데. 맞나?”
탁-
태현은 유 회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잘 오셨습니다, 어르신. 아키서스야말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교단 중 하나죠. 낚시꾼한테 이렇게 좋은 교단이 없어요.”
“역시 그런가?”
게임에 관해서는, 유 회장은 순진무구한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자, 그러면 바로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시켜드리겠습니다. 메시지창 뜰 테니까 수락 누르세요.”
“음? 사제 같은 NPC 만나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키서스 교단은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런가?”
유 회장은 순진무구하게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겠습니까’ 메시지창을 수락했다.
그러자 아키서스 교단 관련된 설명 창들이 주르륵 나왔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가입시킬 경우 추가 공적치 포인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가능한 교단 퀘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전 주변에서 기도를 올릴 경우 다양한 버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던 유 회장은 태현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도 아키서스를 믿는 건가? 이렇게 잘 아는 거 보니…….”
“정확히 말하자면 믿는 건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 캐릭터 직업이 아키서스입니다.”
“……뭐라고?”
“이 교단이 제 교단이라고요.”
“…….”
유 회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허공에 뜬 메시지창을 향해 다급하게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뭐 찾으십니까, 어르신?”
“교단 탈퇴는 어디서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