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16화
유 회장은 투덜거리면서 길을 찾아 헤맸다.
“저, 휴본이라는 낚시꾼은 어디 있나?”
“그런 비리비리한 놈은 뭐하러 찾아? 자고로 사람은 직접 뛰어다니면서 사냥을 해야지!”
“…….”
유 회장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이 타이럼 시는 정말 겪어도 겪어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NPC들이 전부 다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워낙 타이럼 사냥꾼들의 도시에 특화되었다 보니, 유 회장처럼 낚시꾼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놈 이거 일부러 알고 추천한 건 아니겠지.’
다시 고개를 드는 태현에 대한 불신감!
“그래도 위치라도…….”
“위치를 알고 싶으면 저기 밖에 나가서 토끼를 10마리 잡아 오게!”
<토끼를 잡아 와라-타이럼 사냥꾼 퀘스트>
타이럼 사냥꾼들은 초보 모험가들의 실력을 토끼 사냥으로…….
유 회장은 메시지창을 다 읽지도 않고 꺼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저렇게 강한 놈을 어떻게 10마리나 잡으라는 거야?”
유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사냥꾼에게 되물었다.
이제 조금 요령이 생겨서 토끼를 보고 겁을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토끼는 만만찮은 상대였다.
보이기만 하면 달려와서 들이박는 사나움!
피하려고 달려도 빠르게 따라오는 신속함!
계속 도망쳐도 끝까지 따라오는 끈질김!
온갖 강한 요소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강한 몬스터, 그게 바로 토끼였다.
“저거 잡으려면 다른 사람들도 몇 명씩 모여서 파티 짜서 잡는데, 이런 퀘스트를 주면 안 되지!”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타이럼 사냥꾼이다. 이런 토끼 하나 잡는 것에 징징대는 놈은 필요 없어!”
“난 타이럼 사냥꾼 할 생각도 없네! 이 퀘스트 난이도가 너무 이상하다는 거 아닌가!”
“예전에 여기 있던 모험가 중에서는 혼자서 이 주변의 토끼의 씨를 말린 모험가도 있었지. 불평할 시간에 잡을 방법을 생각해보는 게 낫겠군!”
타이럼 사냥꾼은 그렇게 말하고서 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본 유 회장은 기막혀했다.
‘어이가 없구나! 인공지능이 사람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저기 밖에 있는 토끼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잡을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괘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 회장은 그 뒤로도 몇 번이고 묻고 물었다. 계속 구박만 듣다가, 간신히 휴본의 위치를 들을 수 있었다.
‘진짜 이 도시를 뜨든가 해야지…….’
낚싯대와, 낚싯대를 드리울 곳만 있으면 어디든 좋았지만, 이곳은 정말 사람의 성질을 박박 긁어놓는 곳이었다.
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휴본 있나?”
“누구냐?”
“낚시꾼일세. 배움을 받으려고 찾아왔는데…….”
“낚시꾼? 이 주변에도 낚시꾼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무식한 놈들밖에 없어가지고…….”
오두막 안에는 늙은 낚시꾼이 있었다.
보자마자 타이럼 사냥꾼의 욕을 하는 휴본의 모습에 유 회장은 기뻐했다.
사람은 언제나 같은 적을 욕할 때 친해지는 법!
“그렇지! 아주 무식한 놈들이야!”
“보아하니 자네도 낚시꾼 같은데…… 하나 조언을 해주지. 이곳은 낚시꾼으로 대성하기 힘들어. 진정한 낚시꾼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지. 낚시꾼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 기다릴 줄 아는 마음?”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지.”
“……?”
“죽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야.”
휴본의 말에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낚시를 하기 위해 호수까지 가는데도 토끼한테 괴롭힘을 당한 유 회장이었다.
어디든 가서 낚시를 하려면, 몸을 지킬 능력은 필수!
“자네에게서 뛰어난 낚시꾼의 자질이 보이니, 내가 몇 가지 스킬을 가르쳐주지.”
[<같은 몬스터인 척 하기> 스킬을 얻었습니다.]
[<미끼 던지기> 스킬을 얻었습니다.]
[<사람 낚시> 스킬을 얻었습니다.]
‘……?’
뭔가 이상한 스킬명에 유 회장은 당황했지만, 휴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주는 스킬들만 잘 익혀도 어디 가서 죽지 않을 정도는 될 거야.”
“고, 고맙군.”
“그리고 이것도 받게.”
“……!”
[<은퇴한 낚시꾼의 외투>를 얻었습니다.]
[<은퇴한 낚시꾼의 장화>를 얻었습니다.]
[…….]
휴본이 건네준 건 은퇴한 낚시꾼의 세트 장비였다.
이제까지 허름한 장비만 입고 있던 유 회장은 신기한 마음으로 장비를 갈아입어 보았다.
“제법 잘 어울리는군.”
‘멋, 멋있잖아?’
나이에 맞지 않게, 유 회장은 스스로의 모습에 감탄했다.
이제까지 거지처럼 하고 다니다가 좀 전문 장비를 입으니, 그럴듯한 낚시꾼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종족까지 엘프였으니…….
“내 말 듣고 있나?”
“어, 어? 뭐라고 했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네. 이제 이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낚시꾼으로서 경험을 쌓게나.”
“그런…… 좋아. 열심히 해보겠네!”
유 회장은 의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한곳에서만 낚시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기회가 생긴 김에 돌아다니는 것도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다른 낚시터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교단에 들어가는 게 좋겠군.”
“교단?”
“그래. 신을 믿으면 낚시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
“신이라…….”
현실에서도 딱히 종교를 믿지 않는 유 회장은 얼떨떨해져서 중얼거렸다.
“어떤 신이 있지?”
“으음…… 신이야 많지만, 낚시꾼에게 추천해 줄 만한 신은…… 바다의 신 포드세나, 행운의 신 아키서스 정도인가.”
“행운의 신? 그런 신도 있나?”
“한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교단이 생겼다고들 하더군.”
행운이라. 뭔가 끌리는 단어였다.
낚시에서 행운이 얼마나 중요한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재수가 없으면 물고기 구경도 못 하는 게 낚시였다.
유 회장은 고민하다가 아키서스 교단을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어디로 가면 믿을 수 있지?”
“여기로 가면 되네.”
[지도가 추가됩니다.]
휴본은 친절하게 지도까지 찍어주었다. 유 회장의 지도에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위치가 찍혔다.
“마차를 타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자네 실력에 걸어갔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유 회장은 휴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휴본은 몇 가지 조언을 더 해주었다.
새로 전직한 낚시꾼을 위한 초보적인 팁들이었지만, 유 회장에게는 꼭 필요한 조언들이었다.
원래 직업으로 전직하면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는 NPC들이 나타나는 게 보통이었다.
유지수에게는 타이럼 사냥꾼이 있었고, 유 회장에게는 휴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안 도와주는 아키서스의 화신이 특이 케이스인 것!
유 회장은 부푼 마음을 안고 마차에 탑승했다.
그 영지에서 아는 얼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 * *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그놈 맞냐?”
태현은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케인과 이다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돌아가 다음 권능 퀘스트 계획을 짜려고 했던 태현이었다.
그러나 영지 가까이 도착하자, 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
가브리엘과 기계공학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었다.
“태현 님!”
가브리엘이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자, 태현은 케인을 앞으로 밀었다.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한 방패!
“읍읍읍!”
케인과 부딪힌 가브리엘은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케인은 짜증스럽게 가브리엘을 밀어냈다.
“뭐냐, 너희들은? 기습이라도 하려고 여기 있었냐?”
“기습이라뇨!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브리엘은 태현의 말에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저희는 태현 님을 도와드리고 싶어서 여기 온 겁니다!”
“됐거든? 도움 필요 없거든? 애초에 역병 저주도 내가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네가 도와준다고 퍼뜨린 거라며? 그게 어떻게 도와준 거냐?”
옆에서 이다비가 그 말을 듣고 작게 말했다.
“그런데 그걸로 보상 얻은 거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는 도움을 준 게 맞지 않나요?”
“너 누구 편이니?”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멋쩍게 웃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가브리엘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런…… 역병 저주는 태현 님의 말씀을 따른 겁니다. 레벨이 높다고, 장비가 좋다고, 직업이 좋다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플레이어들을 없애기 위해서…….”
가브리엘의 말을 듣던 케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야, 그런 놈 중의 최고가 김태현이거든? 뭐라는 거야?”
“어, 어디서 막말을…… 당신이 태현 님을 따라다니면서 속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었나 보군!”
“뭐, 뭐? 야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한 줄 알아? 역병 저주 걸려가지고 맨날 쇠사슬로…….”
케인은 울컥해서 가브리엘을 노려보았다.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억울한, 지난날의 인간 방패 역할!
화가 나서 떠들기 시작한 케인을 옆으로 밀어내고, 태현은 다시 말했다.
“난 역병 저주 같은 거 하라고 한 적도 없어. 그러니까 나 도와준다는 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좀 있어라. 난 역병 저주랑 상관도 없는데 나하고 상관있는 거 아니냐고 헛소문까지 돌았다고. 내가 이미지를 얼마나 신경 쓰는데.”
“……?”
“……?”
이다비와 케인이 동시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태현은 당당했다.
“그, 그런…… 죄송합니다. 태현 님. 제가 태현 님의 마음을 모르고 실수를…… 이 실수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래. 갚…… 잠깐만. 아니다. 그냥 갚지 마라.”
태현은 뭔가 불길함을 눈치챘다.
갚는다는 명목으로 또 사고를 칠 것 같은 가브리엘!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기다린 거지?”
태현은 보통 어디로 가는지 위치를 말하지 않고 다녔다.
판온 1을 빼더라도 원한을 산 플레이어가 워낙 많았기 때문!
그런 태현의 위치를 알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니.
“예? 사루온 님이 곧 오실 거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렸다.
원래 영지에 가브리엘 쪽 기계공학 플레이어들이 몇 명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갑자기 찾아온 대장장이 NPC인 사루온을 보고 관심을 보였을 것이고…….
사루온은 눈치 없이 ‘곧 김태현이 여기 올 것이다’라고 말한 것!
“너희 여기서 스킬 올리고 있었냐?”
“네.”
바로 대답하는 대장장이들!
가브리엘과 달리 다른 플레이어들은 얼굴이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태현은 점점 두려워지는 걸 느꼈다.
왜 영지에 자꾸 이상한 놈들만 꼬인단 말인가?
머릿속에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지만, 태현은 애써 부정했다.
“애들아.”
“……?”
태현의 말 한마디에, 모든 플레이어가 집중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 영지는 사실 기계공학을 익히기에는 별로 안 좋아.”
“…….”
“그러니까 다른 곳에 가지 않을래? 오스턴 왕국에 플레이어들이 점령한 성이 있는데 거기 괜찮더라. 거기 가라.”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태현의 말이었다. 옆에서 듣던 케인과 이다비도 질색할 정도로.
그러나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대장장이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희는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 영지를 더 좋게 만들겠습니다!”
“…….”
태현은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까놓고 말해서 영지에 해만 될 것 같은 놈들!
그런데 저렇게 저자세로, 진심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하니 거절하기가 뭐한 것이다.
언제나 이런 타입에 약한 태현!
콰콰콰쾅!
“?!”
멀리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영지 쪽이었다.
“설마…….”
“저, 저희가 한 짓 아닙니다!”
바로 대장장이들부터 의심하는 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