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14화
악마가 또 태현을 고평가하는 메시지창을 보자, 태현은 슬슬 진심으로 적성을 고민했다.
그냥 아키서스의 화신 같은 신성 관련 직업이 아닌, 악마 관련 직업으로 가는 게 더 적성에 맞지 않았을까?
숨만 쉬어도 오르는 악마들의 호감도!
“그런데 모험가.”
“……?”
“이 역병 저주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혹시 이 저주를 해결할 때 악마를 보지 못했나?”
“……!”
태현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게 무슨 소리?
[악마 사루온이 퀘스트의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합니다.]
[진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사루온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퀘스트 메시지창.
여기서 진실을 말하느냐, 거짓을 말하느냐에 따라 사루온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메시지창이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사루온이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 대장장이 같아 보였지만, 정체는 분명히 악마였다.
수틀리면 정체 드러내고 ‘크하하 죽여 버리겠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종족이 바로 악마!
판온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종족 중 하나가 악마였다.
즉, 이 질문도 그냥 별생각 없이 대답할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건 애매하게 대답하는 것!
“악마를 보기는 봤지.”
태현은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제 아쉬운 건 없었다. 보상도 받았으니까, 사루온이 죽이겠다고 덤비기라도 한다면 그냥 도망칠 생각이었다.
“뭐! 정말인가!”
“그래.”
태현은 말하면서 사루온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혹시 그 악마가 에슬라 님인가?”
“……!”
바로 에슬라의 이름을 맞춰버리는 사루온!
‘뭐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악마들끼리는 은근히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 사루온이 에슬라를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주목해야 할 건 에슬라 뒤에 ‘님’을 붙여서 말했다는 것!
그렇다면 적대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에슬라를 만났는데.”
“역시! 이런 저주를 만들 수 있는 건 에슬라 님밖에 없지!”
사루온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태현을 의심 가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너는 에슬라 님을 어떻게 만나게 된 거지? 그분의 행적은 나도 찾지 못했는데.”
“저주를 풀 방법을 찾다 보니 만났는데. 그보다 너는 에슬라하고 무슨 관계인데?”
“나는 그분의 심복이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사루온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즉 에슬라의 심복이라는 뜻!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나?’
생각해 보니 에슬라도, 사루온도 꽤나 대단한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었다. 둘이 관련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만나게 해다오!”
“잠깐, 에슬라는 지금 봉인되어 있어.”
“역시……! 그래서 찾을 수 없었던 거였나! 어떤 놈들이 봉인했지?”
“고대 드워프하고 다른 악마들이…… 이름이 다는 기억 안 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에다오르하고 아다드란 놈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 와중에 은근슬쩍 자기의 원수를 끼워 넣는 태현! 정말 재빠르고 대담한 솜씨였다.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사루온이 당신의 말을 완전히 믿습니다.]
“그놈들이! 감히!”
사루온은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태현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싫은 놈들끼리 서로 싸움 붙일 때야말로 언제나 가장 즐거운 순간!
태현은 쐐기를 박을 생각으로 말했다.
“나는 에슬라에게서 부탁을 받았지.”
“무슨 부탁을 받았나!”
“에슬라를 봉인에서 풀어달라는 부탁.”
<악마의 봉인을 풀어라-에슬라 퀘스트>
고대 드워프의 미궁에 봉인된 에슬라는 강력한 악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봉인에서 풀려날 수 없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강력한 악마의 징표 세 개가 필요하다.
그는 당신에게 봉인을 풀어주는 대가로 힘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에슬라를 봉인에서 풀어낼 수 있다면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악마의 세 징표:
-에다오르의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 (1/1)
-? (0/1)
-? (0/1)
보상:?, ??, 에슬라와의 동맹.
강력한 악마가 갖고 있는 주무기를 한 개도 아니라 세 개는 모아야 봉인을 풀 수 있었다.
이 퀘스트를 받았을 때, 태현은 생각했다.
‘급한 거 아니니까 내버려 둬야지.’
갇혀 있는 건 에슬라지 태현이 아니니 미뤄두겠다는 생각!
에슬라가 알면 기가 막혀 하겠지만, 태현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에슬라와 손을 잡은 이유가 태현을 싫어하는 악마들이 많아서였는데, 그 에슬라를 꺼내기 위해서 악마들과 다시 상대해야 한다니.
불에 기름을 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예상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갑자기 자기가 에슬라의 부하라고 말하는 사루온!
사루온은 태현의 눈에 굴러 들어온 호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놈을 어떻게 다뤄야 잘 다뤘다고 소문이 날까…….’
말하면서도 태현의 머리는 바쁘게 굴러갔다.
“내가 도와주겠다. 에슬라 님의 봉인을 풀 수 있도록!”
아주 제 발로 태현의 손아귀 위로 굴러들어오는 사루온! 태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같이 힘을 합쳐서 사악한 악마 놈들을 물리치고 에슬라 님의 봉인을 풀어내자고!”
사루온 정도 NPC라면 매우 든든했다.
종족도 악마고, 기계공학과 대장장이 스킬을 갖고 있는 NPC니 어디 싫어하는 놈의 영지로 보내놓으면…….
상상만 해도 기대되는 결과!
‘오스턴 왕국에 나 싫어하는 놈들이 많았었지? 거기로 보내놓을까?’
“좋아. 언제 마계로 갈 생각이지?”
“어? 아, 지금은 힘을 모으고 있어서. 준비되면 말해줄게.”
태현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물론 마계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사루온을 달래서 써먹기 위한 겉치레였다.
“그래. 그러면 나도 이 가게는 접고 너를 도와주겠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 영지로 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뭐?”
태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준비가 끝날 경우 바로 가려면 네 영지가 가장 가깝지 않겠나? 네 영지에서 준비를 하고 있겠다.”
“아, 아니…….”
아키서스 교단 총본산에 악마가 들어가겠다니. 아무리 태현이 막 나간다고 하지만 쉽게 ‘그래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보통 악마가 도시에 숨어 있으면, 그 도시에서 깽판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루온 같은 경우는 태현에게 협조적인 NPC였다. 깽판을 치지는 않을 테지만…….
‘……미친 듯이 불안해!’
안 그래도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는 이상한 놈들투성이인데, 사루온이 거기로 갈 경우 어떻게 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뭐지?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아, 아니…….”
태현이 머뭇거리는 사이, 사루온은 결정을 내리고 짐을 쌀 준비를 시작했다.
태현은 그 모습을 아연실색한 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팀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김태현이 이번 투기장 프로 리그에…….”
“들었어.”
“아,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최명성 팀장의 모습에, 윤주환은 민망해서 말끝을 흐렸다.
“쯧쯧. 그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나는 제일 먼저 알았다. 뉴비팬 티 내냐?”
“…….”
올드팬으로서 자부심을 가득 부리는 최명성 팀장!
평소에는 언제나 팀장을 존경하는 윤주환이었지만, 이럴 때 보면 참…… 기분이 묘했다.
‘아, 아니야. 그래도 평소에는 언제나 친절한 상사니까…….’
“어…… 어쨌든 반응 보셨어요? 이번 투기장 리그는 흥할 것 같지 않나요?”
최명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흠…… 확신은 못 하지만, 1하고 달리 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판온 1에서 있었던 약점들을 고치고,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흥행에 관련된 홍보를 적절하게 하고 있었다.
이세연과 김태현이 참전한다는 게 특히 좋았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 소식만 듣고서 벌써 환호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해외의 유명 플레이어 팀까지 초대하고, 예선을 뚫은 실력파 팀까지 붙여 놓는다면 일단 흥행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MBS 쪽에서 야심이 큰 거 같은데, 벌써부터 전 세계 리그를 꿈꾸고 있더라고.”
“벌써요? 국내 대회인데?”
“섣부르긴 한데 그래도 턱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해외 관심이 만만치 않거든. 대회 참가하겠다고 러브콜 보내는 해외 팀들이 벌써 쌓였어.”
“우와…….”
“우리에게도 좋은 이야기지.”
판온 2의 위치는 이미 단단해서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었다.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가상현실 게임!
그러나 최명성은 알고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면 뭐든지 나태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지금 잘 나가더라도 꾸준히 발전하고 개선해 나가야 했다.
그런 면에서 투기장 프로 리그는 매우 적절한 기회였다.
외부 회사들과 협력해서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기회!
최명성은 게시판들의 글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태현하고 이세연이 한 팀이라니! 완전 드림팀 아니냐? 벌써 우승팀 정해진 거 아님?
-아, 밸런스 좀 맞춰 주셈. 재미없게 뭐임.
-해외 팀들 불러서 한국 팀이 압살해버리면 좀 미안하지 않냐? 서비스 좀 해줘라.
-미친놈들. 착각 좀 작작해라. 프리카 투기장에서 뛰어보기나 했냐? 거기서 한 번 뛰어봤으면 평소 실력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레벨 맞춰지는데 무슨 실력이야? 김태현이고 이세연이고 평소 레벨하고 장비 거품 다 드러나는 거지. 해외 팀한테 발리고 정신승리나 하지 마라. ㅉㅉ.
-위에 놈은 뭐라는 거야?
-그래서 님 레벨은?
-이세연은 판온 1 탑 랭커였거든요? 장비 벗고 레벨 내려도 이길 수 있거든요?
-너 같은 놈은 그냥 바르겠다. 입만 살아가지고.
-그런데 진짜 너무 한국팀 과신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세연하고 김태현 실력 좋은 건 아는데, 프리카 투기장은 레벨하고 장비 다 치우고 싸우는 곳이잖아. 한 명이서 무쌍하기는 힘들지.
-맞아. 게다가 아직 한국 초대팀은 멤버도 안 정해졌잖아.
-남은 두 명 누가 하냐?
-야, 그보다 케인 그놈은 왜 거기 끼냐? 거기 급이 돼?
-김태현하고 친해서 들어간 거 아닌가?
-와, 인맥 개쩌네요. 김태현하고 친하다고 들어가나.
-김태현이 착하니까 챙겨준 거겠지. 케인 그놈 레드존 길마였다며? 김태현처럼 착한 사람한테 붙어가지고 단물 쪽쪽 빨아먹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진짜 의심되더라. 김태현 지금 속고 있는 거 아니냐?
-니들이 김태현 몰라서 그러는데 김태현 인성이 생각보다 아주 개XX…….
-응 김태현 안티 또 왔냐?
-저건 지겹지도 않나 봐. 매번 와가지고 김태현 욕하고 케인이 당하고 있대. 미친놈 아닌가?
-저거 케인 아니냐?
-아, 아니거든?
-저놈은 무시하고 남은 두 자리나 예측해 보자. 누가 들어갈 거 같냐?
-이세연 길드에 현아 아냐? 나 걔 좋아하는데. 걔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에이, 그래도 급이 좀…….
-케인도 들어왔는데 뭐 어때서!
-도동수 어떠냐? 요즘 제대로 물올랐던데.
-사유가 최고지.
-난 진지하게 김태산 밀어본다.
-아니, 팀에 김태현, 김태현 아빠, 김태현 친구 구성되면 그게 한국 팀이냐 김태현 팀이냐?
-뭐 어떠냐! 팀만 강하면 그만이지!
“상황을 파악 못 한 사람들이 많군.”
최명성은 고개를 저었다. 일반인들은 지금 다들 착각을 하고 있었다.
유명한 국내 플레이어들은 모두 다 김태현과 이세연이 들어가 있는 한국 초대 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