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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12화 (312/1,826)

§ 나는 될놈이다 312화

“하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딱히 이세연하고 같이 팀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네? 이세연 씨가…….”

“뭐 착각했나 보죠.”

“착각치고는 너무 확고하게 말하셨는데…….”

“그러면 그 여자가 미친 게 아닐까요?”

“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같지가 않은데……?’

배장욱은 이마에서 나오는 땀을 닦았다. 아무리 봐도 태현의 눈빛은 100% 진심이었던 것이다.

“어, 어쨌든 참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건……?”

“네. 여기 있는 이 김덕수…….”

꼬박꼬박 김덕수라고 본명을 불러주는 태현에게 울컥한 케인이 옆에서 말했다.

“케인, 케인!”

“알겠어. 자식아. 김덕수(케인)을 팀에 넣고 싶은데요.”

“야!”

태현과 케인의 대화에, 배장욱은 다시 한번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가볍게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투기장 프로 리그의 치열한 예선을 건너뛰고, 바로 본선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특혜 아니냐’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였다.

“태현 씨. 이건 그렇게 제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

“케인을 넣지 못한다면 저도 안 나갈 생각입니다.”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발 안 된다고 말해줘라!

그러면 나도 당신 핑계 대고서 이세연한테 못 나간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태현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그 눈빛을 본 배장욱은 움찔했다. 저 눈빛은 단단히 결심을 한 남자의 눈빛!

‘정, 정말 크게 각오를 하고 왔군!’

사실 배장욱은 케인을 꼭 넣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태현과 이세연에 비하면 케인의 급은 꽤 떨어지는 편이었으니까.

나름 인기가 있는 플레이어기는 했지만, 국내 플레이어 중 케인보다 인기 많은 플레이어는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케인을 넣는다니.

아무리 태현이 말을 꺼냈다고 하지만, 배장욱은 자기가 잘 말하면 태현도 이해를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지금 직접 만나서 본 태현의 태도는 보통이 아니었다.

일체의 협상도 없이 바로 찔러 들어오는 단호함!

이건 정말 Yes or NO의 문제였다.

‘김태현이 자기 사람들은 정말 잘 챙긴다고 하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진짜였구나. 저 케인을 팀에 넣기 위해서 자기가 빠질 정도의 각오를 하다니!’

‘제발 거절해라, 이거 핑계 대고 나도 빠지게. 이세연하고 같이 팀 하기 싫다고!’

‘김태현 너 이 자식…… 나를 위해서 이렇게…… 잠깐, 뭔가 이상한데?’

조용한 회의실.

그러나 세 명의 생각은 시끄러울 정도로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배장욱은 침을 삼켰다.

지금 중요한 건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니,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생각해보니 간단한 문제야.’

케인을 그냥 넣는 걸 감수할 정도로 김태현의 이름에 무게가 있는가?

단순한 문제였다.

그리고 배장욱은…….

“알겠습니다, 태현 씨.”

“그래요. 어쩔 수 없겠죠.”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저 케인 씨까지 같이 넣겠습니다. 팀의 자리가 하나 줄겠지만, 이세연 씨는 납득해 줄 테니 어떻게든 설득이 될 겁니다.”

“?!?!”

“!?!?!?!?”

태현과 케인은 깜짝 놀랐다. 물론 놀란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그게 뭔 소립니까!”

“정말요? 잠깐, 야, 넌 반응이 왜 그래?”

케인이 뭔가 이상한 걸 깨닫고 태현을 타박했지만, 당황한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장욱에게 따졌다.

“아니, 정당한 심사도 하지 않고 그냥 넣겠다는데 OK를 하시다니. 이러시면 안 되죠!”

“태현 씨, 저희들만 있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태현 씨가 안 나오시면 이세연 씨도 안 나옵니다. 저희가 그런 위험을 어떻게 감수하겠습니까?”

“…….”

여기서도 발목을 잡는 이세연!

태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정말 거미처럼 치밀하고 교묘한 수법!

사실 이건 이세연이 한 짓과는 전혀 상관없는, 태현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에 가까웠지만…….

태현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절망한 태현을 내버려 두고, 케인은 신이 나서 배장욱과 계약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 * *

“드, 드디어 나도 백수 탈출이야……! 집에 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

“내가 원래 이런 소리를 잘 안 하는데, 고, 고, 고마…….”

퍽!

“커헉!”

“이 자식은 사람이 옆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혼자 신이 나가지고. 좋냐? 응? 좋냐?”

“당, 당연히 좋지! 너는 왜 아까부터 그렇게 화가 나 있는데!”

“됐어, 인마. 집에 가.”

“자식이 괜히 화만 내고 말이야…….”

케인은 얼얼한 등짝을 만지며 투덜거렸다. 불평을 해도 즐거운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투기장 프로 리그 초대 팀의 티켓을 잡은 것이다.

남들이 안다면 욕하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케인에게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천금 같은 기회!

“근데 이다비는 왜 안 보이냐?”

“그러게? 방송국 앞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아직까지 안 왔네.”

“이제까지 안 온 거 보면 무슨 일 있나 본데? 그러면 나 먼저 가본다.”

“이런 치사한 자식…… 사람을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가?”

“……그, 그러면 기다릴게.”

“이런 미련한 자식. 약속 시간이 지난 지가 언젠데,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야 이 자식아!”

케인은 한참을 태현과 투닥거리다가 먼저 집에 가겠다고 떠났다.

혼자 남은 태현은 시계를 확인하고 방송국 앞 벤치에 앉았다.

‘얘 진짜 무슨 일 있나?’

핸드폰으로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헉, 헉, 헉헉헉…….”

“?”

멀리서 자전거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 위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여자가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태현 님?”

“밖에서 님이라고 붙이는 건 그만둬줄래? 다른 사람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뭐 어때요!”

이다비는 풀쩍 자전거 위에서 뛰어내렸다.

약간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운동하기 편하도록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

누가 봐도 미녀라고 생각할 모습이었다. 판온 2의 캐릭터와 헤어스타일 말고는 거의 다른 점이 없었다.

“그나저나 태현 님은 판온 캐릭터랑 정말 그대로…….”

“네가 할 소리냐? 그보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아, 계산을 잘못했어요.”

“집이 가깝나? 자전거 타고 올 정도면?”

태현은 이다비가 끌고 온 자전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다비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10분?”

“한 시간이요.”

“……그 정도면 그냥 버스를 타고 오지 그랬어? 버스 노선이 없나?”

“교통비 아까워서요!”

당당하게 말하는 이다비!

태현은 골치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보아하니 땀을 흠뻑 흘린 상태였다.

전력으로 밟아서 한 시간이라니.

보통 그 정도면 버스를 타고 오지 않나?

“그런데 케인 씨는 어디 갔죠?”

“걔야 아까 갔지.”

“태현 님을 두고 먼저 가다니, 치사하네요!”

“그치? 치사하지?”

자리에 없다는 이유 때문에 공격받는 케인!

“그러면 오늘 약속은 다 끝난 건가요?”

“네가 온 시간을 볼래?”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멋쩍게 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늦게 온 것이다.

“타라. 데려다줄게.”

“?”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페라리의 차 문.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페라리를 향해 손가락을 뻗고, 다시 태현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내 거냐고?”

끄덕끄덕-

“아버지 건데.”

“그게 그거죠!”

“그런가? 우리 아버지는 좀 다르게 생각하시던데.”

“그보다 이렇게 돈이 많으셨으면 미리 말하시지 그랬어요!”

이다비는 태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미리 말했으면 뭐가 달라졌나?”

“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을 거 아니에요!”

“……너는 참 솔직해서 좋다.”

“칭찬이죠?”

“칭찬이야. 데려다줄 테니까 타라.”

“자전거 갖고 왔는데요.”

“설마 한 시간 다시 밟아서 집에 갈 건 아니지? 여기다 세워놓고 가. 저기 보관소 있어.”

“만약 누가 가져가면…….”

이다비의 자전거는 누가 가져가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하고 낡아 보였다.

도둑도 안 건드릴 것 같은 자전거!

“내가 새로 사줄게.”

“그러면 탈게요!”

바로 자전거를 보관하고 옆에 타는 이다비! 옆에 앉은 이다비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앗. 그러고 보니 땀 냄새 나지 않나요?”

“괜찮아. 내 차 아니거든.”

“…….”

* * *

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다비가 찍어준 주소로 차를 끌고 오자, 나온 곳이 달동네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차는 너무 안 어울리는데. 괜히 이걸 끌고 왔군.’

이다비가 판온에서 돈, 돈 거리며 현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하고 있다는 건 태현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돈이 풍족하지 않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정작 이다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여기요. 여기서 내려주세요.”

“그래.”

“아무 말도 안 하시네요?”

“뭐가?”

“보통 제 주변 사람들은 여기 오면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하던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이다비는 태현을 보고 살짝 웃었다.

그녀가 어디 사는지 본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동정하는 눈빛으로 말을 더듬곤 했다.

이렇게 가난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다비에게 그런 반응은 지겨운 반응이었다.

-내가 가난한 건 가난한 거야. 왜 그쪽이 그렇게 쳐다보는데?

스스로 가난한 걸 받아들이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다비에게 저런 동정의 시선은 불쾌할 뿐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아무런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할 뿐!

그게 오히려 이다비에게는 고마웠다. 태현이 괜히 어색하게 말하거나,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속으로 화가 좀 났을 것이다.

“나중에 내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네? 무슨 뜻이에요?”

이다비의 목소리는 살짝 날카로웠다.

“설마 여기 사는 거 보고 가엾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거든? 우리 집 가훈 중 하나가 ‘남을 함부로 동정하지 마라’야.”

“무슨 가훈이 그래요? 그보다 그러면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건 네가 가여워서가 아니라, 순전히 날 위해서 한 말이야. 네가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판온을 접거나 하면 내가 좀 곤란하거든.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서로 이득이잖아.”

“……에이, 저야 그래도 태현 님이 뭐가 아쉬워서요?”

이다비의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평소처럼 쾌활하고 친근한 목소리.

“아냐. 다른 놈들은 다 파워 워리어를 무시하지만, 나는 높게 평가하고 있어. 정예 길드보다는 오히려 그런 식의 길드가 훨씬 더 쓰기 좋거든. 멍청이들이나 그걸 모르는 법이지.”

태현은 진심으로 파워 워리어 길드를 고평가하고 있었다. 그걸 본 이다비는 살짝 당황했다.

길마인 그녀도 하지 않는 고평가를 하다니.

“그, 그렇게 고평가할 길드는 아닌데…….”

“그리고 그런 길드를 만든 건 너니까, 너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요?”

이다비는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남의 입으로 그녀가 만든 길드의 칭찬을 듣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약간 개방 같은 곳이잖아.”

“개방? 그게 뭐예요?”

“무협지 안 읽어봤나? 무협지 보면 나오는 조직인데. 거지들의 모임이야.”

“…….”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이다비의 눈빛!

“거지요?”

“아, 아니. 거지는 거지인데 정의롭고 강한 거지들의 모임이라고.”

“어쨌든 거지란 거잖아요!”

“아, 무늬만 거지라니까! 보통 걔네들 숨겨놓은 돈하고 보물들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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