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10화
셋이 그렇게 떠드는 사이, 멀리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서 우글거리는 사람들!
“어라? 플레이어들이 많은데요?”
“펠마스한테 맡겨 놓은 영지 운영이 성공적이라서 저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긴 한데…….”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없는 사이 영지가 번영했다면, 그 영지를 맡긴 NPC가 잘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태현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없는 사이 영지가 번영하면 오히려 더 불안한 게 펠마스!
‘이 자식 또 뭐 저지른 거 아니야?’
가까이 다가가자 플레이어들이 말하는 게 들렸다.
“야, 진짜로 역병 저주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거 맞아?”
“맞다니까. 내가 분명히 들었어. 여기 영주 대리 NPC가 저주 해결할 수 있는 샘물을 판다고 했다고. 게다가 여기 김태현 영지잖아. 그런 곳에서 거짓말을 하겠어?”
“근데 왜 게시판에서는 못 봤지?”
“세상은 게시판 밖에 있다, 친구야. 진짜 정보는 이렇게 발로 뛰어야 얻는 거야. 여기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굳이 경쟁자를 늘리겠어.”
“아, 거 좀 빨리빨리 갑시다! 지금 사람도 많은데!”
“어차피 영지에서 공적치 포인트 안 쌓은 사람은 샘물 받지도 못해요!”
“…….”
옆에서 보던 이다비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NPC한테서 배우는 오늘의 장사 비법!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뭐야? 줄 서서 들어가! 여기 안 보여?”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짜증 나게…… 어? 김태현이다!”
“뭐?! 김태현?!”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 사이로 태현이 왔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태현 님! 저 샘물좀요!”
“앞으로 여기서 부활하고 여기서 사냥할 테니까 샘물 좀 주세요! 역병 저주 때문에 못 하겠어요!”
“김태현! 이쪽 좀 봐줘! 왜 무시하고 가는 거야!”
* * *
쾅!
“펠마스!”
“돌아오셨습니까, 태현 님!”
펠마스는 당당하고 반가운 얼굴로 태현을 맞이했다.
그게 더 태현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넌 뭔 샘물을 팔고 있는 거냐!”
“컥, 컥컥…… 거,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저는 저주가 나을 수도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영주 대리 NPC가 그런 소리를 하면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믿지 이 자식아!”
뒷골목에서 나타나는 도적 NPC가 그런 소리를 한다면 플레이어들도 의심을 할 테지만, 영주 자리에 앉아 있는 NPC가 ‘이 샘물을 마시면 역병 저주가 풀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하면 플레이어들은 믿게 되어 있었다.
목이 졸린 펠마스는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며 외쳤다.
“저,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
“너는 왜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는데!”
“그렇게 말하셔도…… 이거 다 다른 놈들도 하는 겁니다!”
“어디의 다른 놈들?”
“카지노 주변 상점들 보면 행운 올려주는 부적들이 다 이런 거 아닙니까……!”
“이 자식이 입은 살아가지고……!”
에드안이 펠마스를 손가락질하며 쯧쯧거렸다.
“저놈이 저런 놈입니다. 태현 님.”
“이 치사한 놈! 우리 우정이 그것밖에 안 되냐?!”
“어디서 친한 척이야? 태현 님 명성에 해가 될 짓을 해놓고!”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냥 너희들 모두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
“…….”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진짜로 저주를 풀 수 있는 걸 갖고 왔다는 거지.”
“!”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태현 님!”
“넌 좀 닥치고 있어.”
태현이 갖고 왔으니 망정이지, 이대로 쭉 갔다가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어? 왜 아무도 풀렸다는 사람이 안 나오지? 이상한데?’라고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이세연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지금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영지 관리를 끝내고, 사루온에게 돌아가서 역병 저주를 보여주고 기계공학 비전 스킬을 보상으로 받아야 했다.
투기장 프로 리그가 아니었다면 좀 더 여유가 있었을지도 몰랐겠지만, 약속이 잡힌 이상 그 전에 서둘러서 일을 끝내야 했다.
“일단 이것부터 광장 분수에 풀어라. 그러면 역병 저주 해독의 물이 될 테니까. 그리고…… 여기 영지에 소속된 플레이어나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한 플레이어만 물을 나눠줘.”
“훌륭하신 방법입니다!”
“시꺼.”
-교단 상태 확인.
[현재 데메르 교단과 우호 상태입니다.]
[영지에 아키서스 교단 축복 판매소가 완료되었습니다. 신앙심이 더 빠르게 퍼집니다.]
[영지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키서스 조각상의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 오스턴 왕국에서 아키서스 교단의 세력이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기도 성소를 짓는다면 사제들의 사기가 오를 것입니다.]
[투기장의 건설은 50% 이상 완료되었습니다.]
우르르 뜨는 메시지창들.
교단 하나를 통째로 관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키서스 교단 축복 판매소>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키서스 조각상> 같은 건 명백히 태현이 없는 사이 펠마스가 지어 올린 건축물들!
‘축복 판매소는 아무리 봐도 복권 같은데…… 더 깊게 생각하지 말자.’
태현은 깊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일단 골드는 골드대로 쌓이고, 영지는 영지대로 개발되어가고 있으며, 아키서스 교단도 나름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늘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만 터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래도 긍정적!
‘물론 문제가 안 생길 리는 없고…….’
세상일은 언제나 공평했다.
일을 저지르면 나중에 뒷감당을 하게 되어 있었다.
지금 태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악마들이었다. 에다오르부터 시작해서 마계에서 새로 만나 속인 아다드까지.
진실을 알게 되면 바로 여기로 쳐들어와도 놀랍지 않았다.
오기 전에 최대한 준비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상황!
‘아, 진짜 영지나 교단이 골드 잡아먹는 하마라니까.’
태현이 딱히 골드로 낭비를 하지도 않는데도 골드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간단한 건물 하나 짓는 데도 몇만 골드가 가볍게 사라졌다.
펠마스가 영지 내에서 온갖 사악한 방법으로 골드를 긁어내고 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많이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괜히 다른 사람들이 영지를 운영할 때 길드 단위로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역병 저주를 푸는 분수는 광장 앞에 깔고, 에랑스 왕국에서 챙겨온 것도 깔아야지.’
태현은 주섬주섬 아이템을 꺼냈다.
에랑스 국왕에게 미식가로 칭찬받으며 선물받은 아이템!
물론 그 과정에 약간의 사기가 있었지만…….
에랑스 왕가의 구리 솥:
에랑스 왕가의 보물 창고에 있던 거대한 솥이다. 설치하고 요리를 할 경우 특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람 몇 명은 그냥 들어가도 될 정도의 거대한 솥!
들고 다니면 무게 제한도 만만치 않고, 설치하는데 시간도 걸리기 때문에 자리를 잡고 설치를 해야 했다.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알면 눈독을 들일 희귀한 아이템이지만…….
태현은 이걸 광장 앞에 그냥 깔아버릴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좀 영지 특성을 만들어놔야지.’
다른 거대한 도시에 비해 태현의 영지는 작고 부족한 게 많았다.
그래도 플레이어들이 여기 자주 오게 만들고, 여기서 뭔가를 하게 만들려면 다른 도시에는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그건 아키서스 교단밖에 없었다.
어떤 직업 하나에 특화되어서 밀어주지는 못하지만, 행운이라는 스탯은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많이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지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뭔가 만들어보겠다고 자리를 잡고 있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도 은근히 있었던 것이다.
즉,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영지 컨셉은…….
-스킬 레벨이나 실력과 상관없이 행운으로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영지!
‘생각해 보니 이거 복권 좋아하는 사람들 마인드 아닌가?’
어쩌다가 영지가 이렇게 됐나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태현은 다시 생각을 멈추었다.
* * *
“역, 역병 저주가 풀렸다!!”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었어?!”
“내가 말했잖아, 저런 NPC는 거짓말 안 한다니까!”
“…….”
양심이 찔리는 걸 느끼며, 태현은 묵묵히 솥을 설치했다.
원래라면 태현에게 관심이 쏟아졌겠지만, 역병 저주가 워낙 지긋지긋했는지 플레이어들은 분수에만 관심을 가졌다.
“야! 빨리 가! 빨리!”
“밀지 마요! 지금 사람 있잖아요!”
솥을 설치할 곳은 분수 옆!
설치만 하고 물러서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저기 분수 물로 요리를 하면 내 요리 스킬도 오르지 않나?’
새로운 아이템도 생겼겠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무조건 먹어야 하는 상황이니…….
중급 요리 3 (53%)
-초급 괴식 요리 8 (33%)
태현의 눈빛이 번쩍였다. 지금 이건 좋은 기회였다.
저주도 풀고 스킬도 올리고!
* * *
“뭘 하는 거야……?”
이세연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동영상을 지켜보았다.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건 태현의 영지에 간 플레이어들이 올리는 영상이었다.
-역병 저주, 드디어 해결 방법이 나왔다!
-김태현의 영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있는 분수에서 물을 마시면 풀림!
-이거 가짜 아니지?
-믿기 싫으면 믿지 마셈. 아, 그리고 이거 여기서 얻으려면 영지로 귀환지 설정하거나 아키서스 교단 가입해야 함.
-뭐? 둘 다 못 하는 사람들은?
-한 명당 이 인분씩 요리를 팔긴 파는데, 남는 사람한테 팔아달라고 해봐.
-아, 지금 아탈리 왕국까지 가기 힘든데…….
“진짜 한결같다.”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태현이 투기장에 강제로 참여하게 된 것 때문에 좀 다른 반응을 보이나 궁금해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 하나 없이 광장에서 묵묵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내일 서버 종료를 하더라도 나는 오늘 요리 스킬을 올리겠다는 담대한 태도!
‘판온 1이랑 달라진 게 없어.’
보통 저 정도 위치에 오르면 저런 단순 작업은 귀찮아서 안 하게 되는데, 태현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스킬 레벨을 꼬박꼬박 올리는 철저함!
‘그런데 왜 요리 먹은 사람들 표정이 저렇게 X 씹은 표정이지? 김태현 요리 스킬은 괜찮을 텐데? 저주 해제용 요리라서 그런가?’
정답은 괴식 요리 스킬 때문이었다.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희생해서 괴식 요리 스킬을 팍팍 올리려는 태현!
* * *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저주를 해결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에스파 왕국, 아탈리 왕국, 오스턴 왕국에 당신의 이름이 퍼집니다. 왕가의 사람들을 만날 때 이번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칭호:저주의 종결자를 얻었습니다.]
칭호:저주의 종결자
저주의 종결자:당신은 대륙을 뒤덮은 저주를 해결했습니다.
저주 관련 데미지 감소 보너스, 스킬 <저주 이동> 사용 가능.
“!”
행운을 기반으로 한 회피를 믿고 있는 태현에게 저주는 약점 중 하나였다.
그런 약점을 줄여주는 칭호!
‘그래,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는 줘야지!’
앞으로 투기장 리그에서 맞붙어야 할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칭호였다.
“태현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역병 저주 풀고 가요!”
“그런데 제카스라는 플레이어가 태현 님이 판온 1의 김태현이라고 하던데 진짠가요?”
태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놈이 이 역병 저주 해결 퀘스트 뺏겨서 음해하는 거야. 그런 놈 말 믿지 말라고.”
“역시 그렇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