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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306화 (306/1,826)

§ 나는 될놈이다 306화

“어, 어떻게?”

제카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무리 태현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의 친구들을 다 뚫고 여기까지 도착할 수는 없었다.

그의 친구들이라면 분명 랭커를 상대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까 습격했을 때 성공적으로 파티원들을 쓸어버렸다고 들었는데…….

“그건 네 친구들한테 물어봐.”

태현의 표정은 어쩐지 피곤해 보였다. 도저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할 수 없는 표정!

태현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 없어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내는 능력!

제카스만큼이나 태현도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였다.

“저 악마가 정답이었나 보군.”

-눈치가 좋구나, 모험가.

“하하, 악마님. 곧 이놈을 끝내 버리고 구해드리겠습니다! 충성충성충성!”

“…….”

태현이 에슬라에게 아부를 하는 걸 보고, 제카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악마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파악한 에슬라의 성격이라면, 저런 아부는 오히려 역효과일 가능성이 컸다.

-크핫핫. 듣기 좋은 소리구나. 인간 주제에 마음에 든다.

“!??!”

“왜 그래? 악마하고 친한 사람 처음 보냐?”

“윽…….”

태현은 제카스가 당황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비웃었다. 그 모습에 제카스는 그의 속마음을 들킨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한 거지? 설마 화술 스킬이 나보다 높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되는데…….’

탐험가는 퀘스트를 전문적으로 깨는 직업. 당연히 다른 직업보다 화술 스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태현의 직업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직업이라고 해도, 제카스보다 화술 스킬이 높을 수는 없었다.

-신기한 모험가구나. 여러 기운이 느껴져…… 심지어 악마의 기운까지 느껴지다니.

“제가 사실 그 악마 에다오르와 절친한 사이입니다.”

“말도 안 돼! 믿지 마라, 에슬라! 저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아아니, 지금 위대한 악마 에슬라 님을 건방지게 뭐라고 부르는 거냐? 에슬라 님! 저놈 건방진 거 보십쇼! 이 검, 이 검 에다오르의 검입니다. 에슬라 님도 아십니까?”

“이, 이 자식이…….”

순식간에 바쁘게 돌아가는 태현의 혀! 제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가 불리한 상황이라는 건 확실했다.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제카스가 상황을 벗어나게 해준 것은 에슬라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

-에다오르는 절대로 인간과 친해질 수 없는 놈이다. 성격이 더럽고 쪼잔하고 치사한 놈이거든. 그놈은 악마하고도 친해질 수 없는 놈이야. 게다가 그 검, 아무리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놈이 누군가에게 자기 검을 줄 놈이 아니지. 그렇다면 네가 에다오르를 쓰러뜨리고 검을 뺏은 거로군. 맞나?

정확한 분석!

태현은 혀를 찼다. 이제까지 하도 악마들을 많이 속여 오다 보니, 너무 방심한 것이다.

에슬라가 어떤 악마인지 간도 안 보고 사기를 치다니. 실수였다.

“역시! 믿지 말라고 한 내 말이 맞지 않았나, 에슬라! 저놈은 거짓말쟁이라고!”

태현의 실수에 제카스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평소에 보여주던 근엄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폴짝폴짝 뛰며 경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만큼 태현한테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거 더럽게 신났네. 좋냐?”

“크하하, 좋다! 당연히 좋지! 에슬라! 저 거짓말쟁이 놈은 시험을 통과할 자격이 없지 않나?”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드는군.

“…….”

갑자기 반전되는 분위기!

“하하, 악마 앞에서는 당연히 거짓말 잘하는 놈이 더 귀염받는 거 모르냐?”

“말, 말도 안 되는…… 저런 거짓말하는 놈이 왜!”

-기계공학 스킬도, 대장장이 기술 스킬도 없고, 악마와도 관련된 게 없는 너는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에 비해 저 모험가는 재미있군. 여러 신의 기운에, 악마와도 관계가 있으니.

“제가 에다오르와 사이가 엄청 안 좋습니다.”

순식간에 태도가 변하는 태현.

에슬라와 에다오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채고 입을 연 것이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아다드란 놈하고도 싸웠었죠.”

-아다드까지? 정말로 대단하군.

에슬라가 점점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이자 제카스는 초조해했다.

퀘스트를 깨오면서 이렇게까지 밀렸던 적은 처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굴욕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끝인가?’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모험가. 저 모험가가 더 마음에 들지만, 나는 공평하니까. 시험은 오로지 한 명만이 통과할 것이다. 나한테서 원하는 걸 얻는 것도 한 명이 될 것이고.

“……!”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둘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콰콰쾅!

-하하, 좋구나! 그래. 그래야지!

서로를 아웃시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눈치가 빠른데? 그냥 당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 기습을! 이 짜증 나는 자식!”

제카스는 태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채찍을 꺼냈다.

탐험가라고 하면 얼핏 전투로는 강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저렙 탐험가의 이야기였다.

랭커인 제카스의 전투력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태현 상대로는 더 까다로울 수 있었다.

탐험가란 직업은 한 가지 스킬만 특화로 키우는 게 아닌, 여러 스킬을 갖추고 다양하게 싸울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채찍, 고대의 석상 소환, 앞을 가리는 몽환의 안개!

쿠르르릉-

던전 심층부의 바닥을 뚫고, 바위로 된 거대한 조각상들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쿠왕! 쿠와앙!

[몽환의 안개가 펼쳐집니다. 방향 감각이 흐려집니다.]

[고대의 석상이 감시를 시작합니다.]

고수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방금 제카스가 사용한 스킬들의 목록을 보고, 태현은 깨달았다.

‘내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알고 있군.’

태현이야 한국에서 워낙 유명하니, 원한다면 바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방송에 나온 영상만 해도 몇 개였으니까.

그래도 해외 플레이어니까 혹시 모를 수도 있다고 기대를 했지만, 역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좀 각오를 해야 했다.

쉬잇-

-방어의 원!

카캉!

“……!”

뒤에서 안개를 뚫고 날카롭게 채찍이 치고 들어왔다. 태현은 번개같이 몸을 돌려 채찍을 후려갈겼다.

‘맞아도 되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다 튕겨내야 하나?’

석상 사이에서 채찍을 조종하던 제카스는 움찔했다. 완벽한 기습이었는데 실패하다니.

제카스는 석상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슬슬 공격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비싼 값을 주고 산 마법이니 값을 해야지!’

콰쾅! 콰콰콰쾅!

석상들이 입에서 불길한 색의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입니다. 반격의 원이 성공합니다!]

몇 개는 흘려보내고, 몇 개는 행운으로 회피하고, 몇 개는 반격의 원으로 되돌려 보낸다.

‘뭐 저런 놈이 있냐?’

석상 사이를 움직이며 태현을 관찰하던 제카스는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고렙 플레이어는 그대로 녹아버릴 정도의 마법 함정이었는데, 태현은 순식간에 몇 개를 부수며 뚫어나가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채찍!

다시 날아 들어오는 채찍 공격. 태현은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회피를 보고도 다시 공격한다는 건…….’

태현의 회피를 뚫고 공격할 자신이 있다는 뜻!

태현은 바로 그림자 도약 스킬을 사용해 위로 뛰어올랐다. 방금까지 태현이 있던 자리에 채찍이 꽂히고,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치치칙-

[화염 데미지를 입습니다.]

제대로 닿지도 않았는데도 들어오는 데미지.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어느 정도 데미지가 들어왔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쯧. 탐험가 직업은 까다롭다니까. 다른 직업이랑 달리 스킬 갖고 있는 게 많아서 안심을 할 수가 없으니…….’

태현은 거리를 벌리면서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했다.

제카스가 저 안개 속에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예지 스킬이라면 길을 가르쳐줄 게 분명!

‘잠깐,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태현은 갑자기 데자뷔를 느꼈다.

뭔가 이런 상황이 예전에도 한 번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판온 1의 랭커들을 썰고 다녔을 때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태현이야 ‘그런 미미한 랭커들 하나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있나?’라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젠장! 한국인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제카스는 욕을 퍼부으며 채찍을 휘둘렀다.

판온 1 때도 그렇고, 판온 2에서도 한국인한테 이렇게 발목을 잡히니 짜증이 폭발했다.

“뭐? 너 인종차별주의자였냐? 이거 동영상 캡처해서 올리면 되나?”

안개 너머에서 태현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찾았다.”

“……!”

탕!

태현은 급조한 머스킷을 꺼내 들고 바로 쏴버렸다. 일회용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큭!”

제카스는 치명타가 떴다는 메시지창을 보고 이를 갈았다.

머스킷이라니. 이런 잘 보이지도 않는 무기를 쓰는 놈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기껏해야 드워프 몬스터나 쓰는 무기를…….

‘잠깐……? 이건 분명…….’

제카스는 판온 1 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분명 이런 식으로 싸우던 플레이어가 있었다.

“으읏! 가타콰의 방패!”

제카스는 급히 스킬을 사용했다. 기억은 나중에 생각해도 됐다.

중요한 건 지금 막아내는 것!

어떻게 그의 위치를 찾아냈는지는 몰라도, 더 이상 공격은 위험했다. 저 머스킷의 데미지도 만만치 않았다.

‘김태현의 가장 위험한 무기는 폭딜이라고 들었다. 접근을 허용하면 위험하지만…….’

제카스 앞에 펼쳐진 방벽.

태현은 곧바로 무기를 스위치해 고대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부우웅-

꽈꽝!

이런 공격은 틈을 주면 안 됐다. 태현은 바로 거리를 좁혀 폭딜을 넣을 준비를 했다.

치명타 스택, 충분히 쌓였다.

행운의 일격도 마찬가지.

쉬이이익!

제카스가 스킬을 사용하자, 들고 있던 채찍이 네 갈래로 나뉘며 태현을 찔러 들어왔다.

두 개는 피하고, 나머지 하나는 반격의 원으로 돌려보내서 다른 하나와 상쇄.

이걸로 제카스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몇 걸음만 좁히면 이제 사정거리!

‘……?’

태현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상대방이 일부러 그를 끌어들이는 것 같은 느낌.

‘아, 왜 자꾸 데자뷔가 느껴지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 거 같은…….’

쉭!

다시 들어오는 제카스의 공격. 태현은 손쉽게 머리를 젖혀 피했다.

이걸로 적의 공격은 전부 끝났다. 남은 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태현의 공격뿐.

“적이 원하는 건…….”

“……?”

“해주지 마라!”

태현은 검을 들어 공격하려는 척을 하다가, 재빨리 몸을 돌려 뒤로 뛰었다.

폭딜 대신 태현이 선택한 건 견제용 마법이었다.

-어둠의 화살!

빠르게 날아가는 마법!

그걸 본 제카스의 눈이 크게 떨렸다. 태현은 스스로 맞게 판단했다는 걸 깨달았다.

‘함정 팠구나!’

파지지직-

콰확!

어둠의 화살이 제카스에게 적중했다.

그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제카스 주변에 검보라색 촉수가 사방으로 솟구쳐 나갔다.

엄청난 속도!

태현이 그 근처에 있었다면 반응도 하지 못했을 정도의 속도였다.

“이, 이, 이…….”

“함정 잘 봤다.”

“이건…… 분명…….”

“……?”

“본 적이 있…….”

“뭐라는 거야? 야, 안 막냐?”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서 중얼거리는 제카스를 보며, 태현은 접근했다.

“……알았다.”

“네가 곧 죽을 거라는 걸?”

“네가 누군지 알았다! 김태현!”

“어…… 그래. 내 이름이 좀 알아내기 힘든 이름이지?”

태현은 제카스가 발악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판온 1의 김태현!!”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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