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02화
“네. 사실 참가라고 하기는 했지만 구경이 더 크긴 해요.”
플레이어, 김준수는 멋쩍게 웃었다. 그걸 본 유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지. 뭐든 간에 할 거면 진지하게 도전을 해야지.”
“그렇긴 한데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 참가 많이 해서요. 그 경쟁률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니까…….”
“그 투기장 프로 리그라는 게 그렇게 힘든 건가?”
“힘들죠. 일단 자기 혼자 잘해서 이기는 건 무리고, 팀이 중요해요. 프리카 대륙 투기장은 5인 팀이거든요. 그러면 이제 다섯 명 모아서 다른 잘하는 팀들 다 뚫고 본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휴, 무리죠. 기대도 안 하고 있어요.”
김준수의 말에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 있게 도전하라고 했지만, 현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네들은 진지하게 도전하는 거지?”
“네? 네. 한 번 해보려고요.”
“좋은 자세야. 음. 아주 좋은 자세야. 젊은이들은 그래야지.”
“……?”
김준수와 김준형은 뭔가 많이 늙어 보이는 유 회장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원래 성격이 좋았기에 굳이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거기에서 우승을 하면 뭐가 좋은 거지?”
“어…… 일단 사람들 눈에 들어오는 거죠?”
“그리고 아마 스폰서도 붙을 거고요? 그게 제일 크지?”
이번 투기장 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의 꿈 중 하나는 바로 저거였다.
제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기업을 스폰서로 받는 것!
판온의 투기장 리그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이고, 기업의 투자를 받아 정식으로 운영되는 팀이 된다.
모든 사람이 그리고 있는 꿈이었다.
“으음…….”
둘의 말을 들은 유 회장은 작게 신음했다.
스멀스멀 떠오른 아픈 옛 기억!
‘비싼 돈 주고 팀 운영했더니 연패만 해왔다고 난리가 났었지…….’
유성 그룹의 이름이 E스포츠 쪽에서는 최약체, 연패의 이미지로 잡혔던 게 기억이 났다.
그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기획을 시작할 때 담당자가 ‘E스포츠는 다른 스포츠 마케팅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라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것에 속은 것이다.
“그건 그거고 일단 다른 잘하는 플레이어들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맞아. 김태현이나 이세연 온다는 소문 있는데 꼭 보고 싶지 않냐? 해외 팀들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지 궁금해.”
“야, 해외 팀은 급이 안 맞아. 김태현이나 이세연이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한국이 이긴다.”
꿈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름을 들은 유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그 김태현이라는 친구가 그렇게 유명한가?”
“유명하죠?”
“국내 판온 플레이어 중에서는 거의 탑급?”
“…….”
유 회장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다.
김태산의 아들놈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라는 사실에 좀 기분이 좋아졌고, 동시에 그를 속인 놈이 저런 고평가를 받는다는 게 얄미워진 것이다.
“인성 같은 건 어때?”
“예?”
“인성이요?”
유 회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둘은 당황했다.
“어…… 인성 좋죠?”
“김태현 정도면 인성 좋은 편이죠. 판온 플레이어 중에 게임 개같이 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맞아, 맞아.”
태현의 인성을 물어뜯으려고 했던 유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성 좋을 거 같은 놈은 아닌데……!’
“정말로 인성이 좋다고? 뭐 안 좋은 소문이라도 없나?”
“막 다른 사람 부려먹는다는 소문 있긴 한데 헛소문이겠죠. 원래 그 정도로 유명하면 이상한 놈들 끌리잖아요.”
“김태현은 그런 놈들 고소 안 하고 뭐하는지 몰라? 저번에 보니까 아주 악질적으로 꾸준하게 댓글 다는 IP 있더라고. 막 김태현이 케인을 엄청나게 협박하고 괴롭힌다고 말이야. 뭐하는 놈일까?”
케인의 눈물겨운 호소는 사람들의 무시 속에 묻혀 버렸다.
“그, 그렇군. 김태현이 그렇게 대단하다…….”
유 회장은 말끝을 흐렸다.
“아저씨도 같이 구경 가실래요? 혼자라면 가기 위험하시겠지만 저희랑 같이 가면 괜찮으실 텐데.”
“아냐, 난 여기서 낚시나 더 하겠어.”
“낚시를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저희 없으시면 산에서 마을 가기 좀 힘드시지 않겠어요?”
“이제 토끼 정도는 피해서 움직일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가게.”
유 회장은 손을 흔들며 둘을 보내려고 했다.
도움이 고맙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토끼 피하자고 둘의 도움을 받으면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솔직히 민망했던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봬요.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둘은 인사와 함께 떠났다. 혼자 남은 유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E스포츠 스폰서라…….’
예전에 한 번 쓴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유성 그룹이 E스포츠 쪽에 얼씬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판온을 직접 경험해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직접 해보고 애정을 갖게 된 게임과, 전혀 모르는 게임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새로 팀을 만들어 볼까? 아니, 저번에 그렇게 구박을 했는데…….’
예전 실패 때 유 회장이 화를 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직접 다시 ‘E스포츠 한 번 해볼까?’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했다.
‘아들놈을 시켜서…….’
역시 이럴 때 만만한 게 아들!
“어? 거기서 뭐 하세요?”
그 순간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유 회장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누가 보면 목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속도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뒤에 서 있었다. 외모를 좀 바꿨다고 해도 못 알아볼 유 회장이 아니었다.
‘!!!!!’
“초보자 같으신데 여기 위험해요. 토끼만 있는 게 아니라 늑대도 가끔 나오거든요.”
유지수는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태현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유지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려고 했다.
물론 그 상대가 자기 할아버지라는 건 꿈에도 모르는 채로!
유 회장은 눈을 깜박였다. 여기 왜 유지수가 있지?
정답은 유지수가 타이럼 레인저 직업을 갖고 있어서, 타이럼 시 근처에서 퀘스트를 계속 깨고 있는 것이지만…….
‘김태현 이 녀석! 이거 때문에 타이럼에서 시작하라고 한 거였나! 이런 기특한 녀석!’
얄미운 놈에서 기특한 녀석으로, 180도 바뀌는 평가!
물론 태현이 그런 걸 생각하고 추천한 건 아니었다. 태현은 그냥 ‘나도 타이럼에서 고생했으니 다른 사람도 좀 고생해 봤으면 좋겠네’ 하는 마음으로 보낸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서로 오해하게 된 상황!
유 회장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런 좋은 상황을 놓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지수가 자기 속내를 안 털어놓는데, 이번 기회에……!’
친해져서 유지수의 속마음을 들어보려는 얄팍한 속셈!
유 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런 건가? 나는 게임을 처음 하는 거라 뭐가 뭔지 잘…….”
“제가 좀 도와드려요?”
유 회장이 파놓은 함정에 그냥 들어오는 유지수! 유 회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야 고맙지!”
“따라오세요. 일단 안내해 드릴게요.”
유 회장은 벌떡 일어섰다.
이제까지 신념을 갖고 한 자리에서 했던 낚시는 바로 내팽개치는 재빠름!
낚시와 손녀를 비교한다면 낚시는 비교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유 회장은 유지수의 뒤를 따라가면서 슬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 남자 친구는 있나?”
“????”
유지수의 눈빛이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변하자, 유 회장은 급히 변명했다.
“내,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자네 얼굴에 좀 연애운이 가득해서 말이야.”
“네? 진짜요?”
유지수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대충 변명한 유 회장이 당황할 정도로.
“잠깐만요, 판온 내 얼굴인데 관상이 의미가 있나?”
기뻐하던 유지수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밀리면 들킨다!
유 회장은 다급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관상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 어떻게 얼굴을 바꾸든 간에 통하는 법이야.”
“그럼 오크 종족을 고른 사람도 관상을 볼 수 있어요?”
“……물, 물론!”
“그건 좀 신기한데요?”
원래라면 수상히 여겼을 테지만, 연애운이 좋다는 말에 유지수는 넘어간 상태였다.
“제가 어떻게 연애운이 좋죠? 앞으로 찾아올 일이 있나요? 어떤 식으로 하면 더 좋아질까요?”
순식간에 구체적으로 쏟아내는 질문들!
그걸 본 유 회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건 아무리 봐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고!
‘어떤 놈의 XX가……!’
유 회장은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지금 중요한 건 상대방의 정체였다.
알아내야 한다!
“상대방의 외모를 말해주면 내가 좀 점을 쳐줄 수 있지.”
“저, 정말요? 일단 눈매가 좀 매섭고요, 약간 험상궂은 느낌이 있긴 한데 되게 잘생겼어요.”
유 회장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이미 유지수는 눈에 단단히 콩깍지가 쓰여 있다는 것을!
태현을 아는 다른 사람들이 저 평가를 듣는다면 ‘?????’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것이다.
“흐음, 흐음, 그래. 다른 건? 혹시 이름이나 주소, 주민등록번호 같은 건 모르나?”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너무 티를 낸 바람에 갑자기 유지수의 경계심이 다시 치솟았다. 유 회장은 일단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콜록, 콜록! 그게 다 관상을 보는 방법 중 하나라네.”
“흐으응…….”
유지수는 약간 수상쩍다는 눈빛을 보냈다. 유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저걸 보니 더 이상 말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방금 말한 놈이 누굴까?’
유 회장은 유지수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뒷조사로 만들어진 명단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정도는 쉬웠다.
그러나 방금 말한 생김새에 맞는 사람은 없었다.
‘뭐지? 뭔가…… 내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놓치고 있는 게 있나? 누구지?’
* * *
“김태현이잖아!!!!”
김병국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최은철이 이어서 울부짖었다.
“야! 이 멍청한 XX들아! 너희들은 정신이 나갔냐! 대체 왜 건드릴 게 없어서 저딴 놈을 건드리는 거냐!”
한이 맺힌 외침!
어떻게 ‘재수 없으니까 김태현 이야기 하지 말자’ 하고 들어온 던전에 있는 게 태현이란 말인가!
누가 꾸민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김태현?”
“누가 김태현이라고?”
둘의 비명에 두 파티 모두 다 당황했다. 갑자기 왜 김태현이 여기사 나오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김태현이 왜 여기 커허허헉!”
말하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태현의 맹공격을 받고 그대로 쓰러졌다.
하던 말도 끝내지 못하고 회색빛으로 변하는 플레이어!
[레벨 업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뜨는 창!
마계에서의 그 고생을 하고, 퀘스트 완료를 하고, 온갖 경험치란 경험치는 다 받고서 뚫은 레벨 업의 벽!
물론 아직도 레벨 100이 안 됐지만…….
-주인이여! 축하한다!
태현은 용용이의 말은 못 들은 척하고 다른 남은 플레이어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방금 레벨 업을 했어도 눈앞의 경험치는 놓치지 않는 플레이어의 귀감!
털썩-
“??”
검을 휘둘러서 <치명타 폭발>로 데미지를 넣던 태현은 갑자기 무릎을 꿇는 두 명을 보고 의아해했다.
지금 한참 싸우는데 이게 뭐하는 짓?
“항복! 무조건 항복입니다!”
“저희는 태현 님인 줄 몰랐습니다!”
“…….”
보는 사람이 어이가 없어질 정도의 뻔뻔함!
자기 동료들이 썰려 나가는데도 바로 항복을 외치는 모습에 이다비는 감탄했다.
“저 사람들 파워 워리어에 잘 적응할 거 같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김병국과 최은철은 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더 이상의 사망 페널티는 받을 수 없다는 결연한 각오!
“정말 몰랐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한 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까불지 않겠습니다!”
저번과는 너무 다른,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비굴한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