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01화
이다비가 소곤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왜 그래?”
“지금 던전 입구 쪽에 플레이어들 모여 있다는데요?”
“아까 그놈들? 아직도 있다고?”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위기를 봤을 때 분명 서로 싸우고 헤어졌어야 정상인 분위기!
“아니요, 새로 모인 사람들이요. 근데 우리 파티 욕을 엄청 하고서 대기 타고 있다는데요?”
“아까 그놈이 친구 불러왔네.”
아까 케인한테 붙잡혀서 강제로 역병 저주를 받게 된 그 친구!
당연히 파티장이 그 모양이 됐을 테니, 파티도 강제로 해산이 됐을 테고…….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속 좁은 놈이네. 그치?”
“네. 속 좁은 놈이네요.”
“…….”
이다비와 태현의 대화를 들은 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쁜 일 할 때 호흡이 너무 잘 맞는 저 둘!
“어? 이제 들어온다는데요?”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냥 안에서 싸우려는 건가 보지. 근데 넌 어떻게 밖의 일을 아냐?”
“저희 길드원이 지금 밖에서 보고 있거든요.”
“너희 길드원은 왜 없는 데가 없냐?”
무슨 길 가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보이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어느 도시든 어느 마을에든 ‘파워 워리어 길드원 있냐?’ 하면 꼭 한 명은 나오는 수준이었다.
“안으로 들어오면 나야 좋지.”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레벨 업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알아서 경험치를 올려줄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들어와 준다는데 고마울 뿐!
태현에게 들킨 줄도 모르고 밖의 플레이어들은 흉계를 세우고 있었다.
“그중 한 놈이 이상한 스킬을 쓴다니까. 쇠사슬로 걸어서 거리 줄이는 스킬인데, 회피가 불가능해. 걸리면 무조건 접촉이니까 조심하라고. 역병 저주 걸려.”
“특이한 놈이네? 유명한 플레이어인가?”
“어떻게 생긴 놈인데?”
“이런 장비에, 대충 이렇게 생겼는데.”
“처음 보는 놈인데? 별거 아닌가 보다.”
“그러니까 역병 저주 걸린 걸로 협박을 했겠지. 자폭으로 협박했잖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
“병국아. 할 거냐?”
“해야지. 역병 저주 걸렸을 때 바짝 벌어놔야 해.”
김병국과 최은철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병 저주는 어떤 플레이어에게는 기회였다. 특히 PVP를 통해 아이템을 뜯어내려는 플레이어에게는 더더욱!
“야, 근데 역병 저주 김태현이 퍼뜨렸다는데 진짜인가?”
“김태현 이야기는 하지 말라니까! 재수 없게!”
“미, 미안…….”
김병국이 화를 내자 최은철은 움찔했다.
둘은 예전에 얌전히 퀘스트를 깨던 태현을 만만하게 보고 PVP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탈탈 털렸지만!
물론 지금 태현의 명성을 생각해 본다면, 과거의 자신들을 때려서라도 말리고 싶을 정도로 무모했던 짓이었다.
복수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우리는 우리 할 거만 하자고.”
둘 다 나름 PVP에는 자신이 있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상대방이 역병 저주에 걸려 있다면 더더욱 쉬워졌다.
비싼 장비들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
* * *
“그런데…….”
“뭔가 좀…….”
“이 사람들 길 못 찾는 거 아냐?”
태현과 이다비가 망설이는 말을 케인이 꺼냈다.
그랬다.
에스파 왕국의 지하 던전을 다 뒤져서 역병 저주와 관련된 던전을 찾아야 하는 이상,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번 방, 2번 방을 전부 다 클리어하고 들어왔는데도 딱히 성과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찾아봤는데 잘 안 나오네요…….”
파티의 탐험가 플레이어는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한 번에 찾을 거란 기대는 안 했으니까.”
“맞아요!”
그런 탐험가 플레이어를 응원해 주는 다른 파티원들!
눈물이 날 것 같은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였다.
“…….”
“…….”
그러나 태현, 이다비, 케인 이 셋에게는 너무 낯설고 먼 분위기였다.
“얘네 왜 이렇게 훈훈하게 놀지?”
“저는 좀 더 살벌하게 치고받고 욕심을 부리는 분위기가 맞는데요…….”
“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다른 파티는 너희 받아주지도 않았어.”
“그건 태현 님도 마찬가ㅈ…… 읍읍!”
“안 되겠다. 스킬 좀 써봐야지.”
밖이면 모를까, 던전 안에 들어왔으니 <신의 예지>스킬도 나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근데 여기 파티 탐험가 있는데 네 말을 들을까?”
“야. 분위기 봐라. 내가 뭘 하자고 해도 들어줄 분위기다.”
“그, 그렇긴 하네.”
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슨 화기애애하고 따뜻한 분위기란 말인가!
PK 플레이어 출신인 케인!
파워 워리어 길마인 이다비!
판온 1 원조 PK 플레이어 태현까지!
그들에게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쪽으로 돌아보죠.”
“네!”
“이번에는 이쪽입니다.”
“그렇게 하죠!”
“이번에는 저쪽으로 돌아볼까요?”
“좋습니다!”
“……거기는 왔던 곳인데?”
“하하,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죠!”
“…….”
태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가장 약한 부류가 이렇게 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딱히 스킬 설명 안 하고 길을 안내해도 뭐라고 반발하는 사람 없는 파티!
사실 파티원들은 아까 태현의 실력을 보고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녹여댔으니, ‘아 랭커가 저주 잘못 걸려서 여기 들어왔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중!
랭커가 맞긴 맞았다.
저주는 안 걸렸지만…….
그러는 도중에도 파티장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 케인, 이다비를 보니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쇠사슬 스킬에, 레벨 100 안 되고…… 어? 왜 어디서 본 거 같지? 레벨 100 안 되는 유명 플레이어 중에 저런 플레이어가 있었나?’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안 떠오르는 간지러운 감각!
그러는 사이 태현은 빠르게 던전을 돌고 있었다.
“이쪽에서, 여기로 꺾어서 들어가면……!”
신의 예지 스킬이 명백하게 가리키는 길!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던전 안의 입구를 열었다.
두둥-
그러자 나오는 청동 보물상자!
“…….”
태현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물론 청동 보물상자 같은 건 던전의 보상 중 하나였고, 평소 던전을 공략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태현이 찾는 건 퀘스트의 단서였지, 이런 보물상자가 아니었다.
“와! 보물상자다!”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진짜 대단하시다!”
태현의 속마음도 모르고 신나 하는 파티원들!
“MP 회복 속도 올려주는 옵션 달린 귀걸이 나왔어!”
“주사위 굴릴까요?”
“좋아요!”
훈훈한 분위기 속 태현의 질주는 계속되었다.
연신 들어가는 곳마다 보물상자를 찾아내는 귀신같은 능력!
‘이 던전, 아무 단서도 없는 던전 아냐?’
태현은 슬슬 던전이 의심 가기 시작했다. 태현이 그러거나 말거나 이다비는 신이 나서 싱글벙글이었다.
“태현 님, 다음에 날 잡고 던전 탐사 한 번 같이 해요!”
“좋냐? 응? 좋냐?”
“아야야! 골드 나오는데 당연히 좋죠! 이 보석이 얼마짜린데! 현실 보석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상인 직업 특전으로 알짜배기만 보물상자에서 건진 이다비였다.
“그놈들은 언제 오는 거야? 응? 차라리 싸우고 싶다고.”
“그, 그건 저도 잘…… 던전 안에 들어온 걸 알 수는 없잖아요.”
“지금 저기 분위기 훈훈한 거 보이지? 나 숨 막히고 답답해서 못 해먹겠다. 그냥 이 던전 빨리 끝내고 나가야…….”
콰콰쾅!
그 순간 그들이 있던 넓은 방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요리조리 피하면 못 찾을 줄 알았냐! 죽어라, 이 XX들…… 컥!”
“고맙다, 애들아!”
보자마자 냉큼 머스킷을 꺼내서 쏴버리는 태현!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펑 하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행운 부여 스킬로 인해 상대방이 아군 공격 상태에 빠집니다.]
“뭐, 뭐…….”
“뭐긴 뭐야 이 자식들아! 싸우러 왔잖아! 싸우자고!”
태현은 신이 나서 바로 덤벼들었다.
오히려 당황한 건 습격한 상대방 쪽!
문을 부수고 당황한 파티를 향해 준비한 대사를 말하려고 했는데, 문을 부수자마자 바로 숨 쉴 틈도 없이 공격이 들어왔다.
적은 모두 입구 밖에 있는 상황. 태현은 굳이 적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용용아, 나와라!”
에스파 왕국에 들어올 때는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이유로 집어넣고 다녔던 용용이!
물론 용용이는 ‘주인이여, 경험치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겠지’라고 반박했지만 태현은 당당하게 우겼다.
신분은 숨겨야 하지 않겠는가!
“뭐? 용용…….”
파지지지직!
마계에서 태현이 먹을 경험치까지 대신 먹어버린 용용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쓰는 광역기가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수준!
“이런 미ㅊ…….”
태현의 머스킷에 맞아 스턴 상태에 빠진 플레이어는 용용이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고 쓰러졌다.
그 쓰러진 플레이어를 밟고 올라선 다음, 태현은 검을 뽑아 들었다.
“저, 저, 저거…….”
“??”
“김태현이잖아!!!!”
김병국과 최은철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하게 울렸다.
* * *
“허, 참 좋군.”
유 회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호숫가를 쳐다보았다.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우습게 여겼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전혀 달랐다.
현실 그대로를 갖다 놓은 것 같은 생생함!
왜 요즘 전 세계에서 판온이 유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낚싯대를 기울이는 재미가 현실보다 더 쏠쏠한 것 같았다.
홀짝-
“음식도 맛있고 말이야.”
친절한 두 플레이어가 주고 간 음식들. 별로 비싼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도 꽤 감칠맛이 있었다.
부스스-
“……!”
물론 가끔 저 멀리서 움직이는 토끼를 볼 때마다 떨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노란 비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낚시 스킬이 오릅니다.]
[한 자리에서 24시간 넘게 낚시를 했습니다. <못 말리는 낚시광> 칭호를 얻습니다.]
‘칭호? 이건 뭐지?’
유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주니까 일단 받는다!
“아니, 아저씨 아직도 낚시하고 계셨어요?”
“……!”
유 회장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친절한 두 플레이어가 다시 나타났다.
유 회장은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겼다.
“자네들 왔나?”
“저희 마을 들렸다 갈 건데 같이 가시지 않을래요?”
“난 좀 더 낚시를 하고 싶은데…….”
“…….”
두 플레이어는 질린 눈으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계속 여기서 낚시만 한 것 같은 모습!
“질리지도 않으세요?”
“아니, 난 이게 좋아. 자네들도 해보면 재미를 알 거야. 해보겠나?”
“아, 아니. 저희는 낚시는 조금…….”
“맞아요. 지금 갈 곳도 있어서요.”
“어디를 가는데?”
“아저씨는 지금 가기 무리일 거예요. 프리카 대륙이라고, 여기 중앙 대륙 밑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다른 대륙 있거든요. 거기서 투기장 프로 리그 열린다고 해서 참가해 보려고요.”
“프로 리그?”
“아저씨도 아세요?”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다른 게임 프로 리그는 들어봤지.”
“오, 어떤 거요?”
“그…… 뭐였더라…….”
유 회장은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예전에, 유성 그룹이 E스포츠에 뛰어든다고 해서 게임 팀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됐었더라?’
유 회장의 기억이 맞다면, 그 팀은 별로 좋지 않은 성적만 거두다가 해체한 팀이었다.
시원찮은 성적 덕분에 기획을 한 담당자는 시말서를 산처럼 써야 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예전에도 게임 리그는 많았으니까요. 지금 워낙 판온이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그래서 자네들은 거기 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