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9화
“어쨌든 김태현 플레이어한테는 제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배장욱은 가브리엘과의 대화를 그만 끊으려고 했다.
-잠깐만요! 태현 님이 역병 저주를 깨려고 하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인데요.”
-그러면 제 말을 전해주세요! 저는 태현 님이 말한 대로 했다고! 전투 직업이라고 싸가지 없게 굴던 플레이어들도 이제 그러지 못하잖습니까! 지금 이게 다 역병 저주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그걸 전해달라고요?”
배장욱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왜 전해달라고 하는 거지?
-예! 이걸 들으시면 태현 님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역병 저주는 필요악이라고! 그러면 역병 저주를 풀 생각을 버리시겠죠!
“아, 네. 말은 전해드리죠…….”
대답하면서 배장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걸 듣는다고 태현이 생각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 * *
배장욱은 일단 태현에게 연락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저 걔 모르는데요?
‘역시!’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나오는 반응!
슬슬 배장욱 안에서 가브리엘은 스토커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실제로 스토커기도 했고!
-진짜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네요.
“어, 어쨌든 저는 전해달라는 대로 전해드렸습니다.”
-네. 들었습니다.
“혹시 역병 저주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이 드셨습니까?”
-아뇨? 전혀요?
‘역시!’
배장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말에 넘어갈 태현이 아니었던 것!
-남들이 다 한 대 치면 죽는 상황이 좋긴 한데, 어차피 저거 저주 안 걸리는 놈들은 다 안 걸리는 상태고. 저도 보상 좀 얻고 퀘스트 깨야 하는 상황이라서…….
쑤닝이나 다른 태현의 적들이 역병 저주 걸린 상황이라면 신나서 PK를 하러 찾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차오한테 상황을 들어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태현의 적들은 제각각 이기적으로 구느라 뜻도 통일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굳이 상대할 필요 없이 태현의 이익을 챙기는 게 제일!
“아, 그리고 이 가브리엘이라는 플레이어가 이것도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
가브리엘이 따로 전달해 달라고 한 말은 던전의 공략법이었다.
역병 저주를 찾은 던전의 공략법!
“태현 님이 저주 자체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걸리신 저주는 풀어야 하니 전해달라고…….”
-걔 진짜 뭐하는 놈이지? 어쨌든 잘 알았습니다.
배장욱은 침을 삼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이제부터는 배장욱이 세운 계획에 태현을 끌어들일 차례!
배장욱은 긴장했다.
태현의 눈치는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서둘러서 들키기라도 한다면 계획은 무조건 실패였다.
“그리고 가브리엘과 한 대화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어? 그래도 되는 겁니까?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역병 저주로 관심이 뜨거운 상황에서, 가브리엘과 한 대화는 모두의 관심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방송국으로서 그런 걸 포기하다니?
“괜히 공개했다가 태현 씨의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요? 고맙네요. 그런 배려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
“하하, 태현 씨는 저희 방송사에서도 중요한 분이시니까요.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방해라도 된다면 그게 더 손해죠.”
배장욱은 더욱 자세를 낮추고 들어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복잡해서, 상대방이 필요 이상으로 잘해준다면 갑자기 자기 자신도 뭔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다.
-음, 그래도 이건 좀 미안한데…….
“그러면 다음에 제 간단한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부탁이요?
태현이 바로 OK를 하지 않고 되묻자, 배장욱은 움찔했다. 설마 들켰나?
-아버지가 부탁 함부로 받지 말라고 했는데.
“…….”
-뭐, 괜찮겠죠. 근데 무슨 부탁입니까?
“방송 출연 부탁입니다.”
-네? 뭐 현실로 나가서 연예인들이랑 떠들고 그러는 거 아니죠?
태현의 말에 배장욱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걸 시킬 리가 없지 않은가!
“물, 물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거라면 뭐…….
‘됐다!’
배장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방심하지 않는 태현이 드물게 미끼를 문 것이다.
태현이 나가게 될 방송은…….
바로 프리카 대륙 투기장 리그 방송!
그것도 이세연과 함께!
배장욱은 이세연과 김태현이라는 두 흥행 보장 카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왜 이세연은 김태현 아니면 안 나간다는 억지를 부려서…… 자기 팀도 있으면서!’
김태현이야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지만, 이세연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같이 팀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역병 저주도 그렇고 정말 사람 고생 많이 시키는군.’
배장욱은 한숨을 쉬었다.
프리카 투기장 프로 리그가 사람을 제대로 고생시키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다.
언론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판온 1에서 실패했던 투기장 리그가 제대로 활성화될지도 모른다고.
해외 유명 플레이어 팀이 초대팀 관련으로 참석할 수 있냐고 먼저 연락을 해올 정도였으니…….
‘태현 씨, 믿습니다!’
* * *
“왜 갑자기 한기가 들지?”
태현은 갑자기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기 기운 있으세요?”
“걸렸으면 상태 이상 떴겠지. 이상하다? 누가 나 노리나?”
보통 이런 감각은 누군가가 태현을 노리고 있을 때 느끼곤 했던 감각이었다.
예민하게 발달한 직감!
그게 바로 태현이 이제까지 온갖 함정을 겪었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다.
“음, 누가 태현 님을 노려도 이상하지 않기는 한데요…….”
“너는 사실을 아프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태현은 이다비의 입을 다물게 하고 퀘스트를 확인했다.
파티에 들어오고 나자, 파티장이 받은 퀘스트가 공유된 것이다.
<고대 드워프의 미궁 탐험–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저주 퀘스트>
고대 에스파 왕국에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드워프들이 살고 있었다.
오크들이 에스파 왕국을 점령하고 나자 드워프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든 거대한 지하 미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데메르 교단의 신탁은 이 지하 미궁 안에 역병 저주를 풀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파 왕국 지하 미궁을 공략하고 역병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라.
보상:?, ???, ????
파티장이 데메르 교단 소속 플레이어여서 그런지 데메르 교단창이 떴다.
태현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었다.
그나마 사이가 좋은 교단이 데메르 교단이었으니까!
‘다른 교단 놈들이 이상한 거야.’
“어느 던전으로 들어갈까요?”
“던전이 하도 많아가지고…… 어디로 들어가든 차이 없으니까 최대한 많이 돌아야 하지 않을까?”
“에스파 왕국 지하 던전은 유명하지…….”
태현이 퀘스트창을 확인하는 동안 파티원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다른 파티에 비해 훨씬 화기애애하고 편한 분위기!
그 이유는 모두 다 역병 저주에 걸렸다는 점에 있었다.
다른 파티들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니, 그들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동쪽 고블린 언덕 밑 던전 입구는 이미 들어갈 대로 들어간 곳이야. 여기는 새로 들어가 봤자 뭐 안 나올 거 같아.”
“오크 다리 쪽 던전 입구는 어때요?”
“거기도 너무 유명하지 않나? 좀 알려진 던전은 가봤자 의미 없을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다 털어봤을 거 아냐.”
에스파 왕국 지하에는 수많은 던전들이 있었다.
길 가다 발에 차이는 게 던전 입구!
그게 다 고대 드워프들이 만든 미궁이라는 설정이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짜증만 날 뿐이었다.
던전이 하도 많아서 뭐가 좋은 던전이고 뭐가 나쁜 던전인지 파악하기 힘든 것!
어떤 던전은 30분 만에 돌파가 가능하고 보상도 별거 없는 짧은 던전이지만, 어떤 던전은 몇 시간은 기본으로 잡고 준비도 단단히 해야 들어가는 던전이었고…….
그러다 보니 에스파 왕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은 이런 던전을 확인하고 공략하는 게 일과였다.
좋은 던전의 정보를 얻는 것도 능력 중 하나!
“그런데 여기 들어간 사람들도 결국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일 텐데, 어려운 던전은 못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쓴 거 아닐까?”
파티원들은 딱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그걸 본 태현이 끼어들었다.
“그냥 확실한 정보 없으면 가능한 대로 던전 도는 게 빠르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떠들던 파티원들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를 따르며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기계공학 스킬이 중요한 던전이라…….’
가브리엘은 태현한테 어떻게 던전을 통과했는지 정보를 전달했다.
-던전 밑에 고대 드워프들이 만든 기계 골렘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골렘들을 조종하는 스킬을 찾아내서 던전을 뚫었습니다. 태현 님도 기계공학 스킬이 있으실 테니 그 골렘들을 찾으면 쉬우실 겁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문제는…….
‘어떤 던전인지도 말해줬어야지 이 자식아!’
급하게 말하다 보니 어느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하는 걸 까먹은 가브리엘!
결국 다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신의 예지 스킬도 지금은 잘 안 먹히고…….’
스킬로 표시된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나왔다. 던전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웅성웅성-
“?”
가장 가까운 던전 입구로 가고 있는데,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열 명이 넘어가는 파티 하나가 이미 와있는 상태였다. 그들도 이 던전을 찾아보려고 온 것 같았다.
“저기, 우리가 먼저 왔거든요? 그쪽은 다른 곳 가시죠?”
상대 쪽 파티장이 앞에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말은 정중했지만 태도는 거만했다.
‘너희가 안 갈 거면 어쩔 건데’라는 게 전신에서 느껴지는 태도!
당연히 태현이 속한 파티의 파티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던전 막는 거 비매너인 거 아실 텐데요? 그쪽이 뭔데 던전 들어가는 거 막아요?”
“아, 비매너인 거 누가 몰라요? 급하니까 이러는 거지. 우리 파티가 지금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손발도 잘 안 맞아요. 괜히 같이 들어왔다가 스킬 잘못 맞을 수도 있다고요. 이건 배려해 주는 거예요.”
“배려? 배려??”
“그쪽 분들 역병 저주 걸린 분들 아닌가? 스킬 한 번 잘못 맞으면 훅 갈 텐데, 그냥 다른 던전 가세요. 괜히 우리랑 같은 던전 들어왔다가 죽지 말고.”
상대 파티장은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보는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미소!
그들은 태현 파티가 역병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들을 모은 파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에서 파티원들 모을 때 봤나 보군.’
그러면 저런 자신감이 설명이 됐다.
“윽…….”
상대 파티장의 협박에, 파티원들은 움찔했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케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야. 저번에 했던 거 해라.
-진짜 하라고?
-진짜 하라고.
-난 뒷감당 못 한다!
케인은 손을 뻗어 상대 파티장을 조준했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노예의 쇠사슬!
촤르르륵!
상대 파티장의 팔과 케인의 팔이 쇠사슬로 연결되더니, 상대 파티장이 그대로 앞으로 끌려왔다.
“?!”
갑작스러운 기습.
상대 파티장은 재빨리 방패를 들고 공격을 방어할 준비에 들어갔다.
기습을 당했는데도 보여주는 반응치고는 재빠르고 좋은 반응!
그러나 케인은 그런 걸 노리고 있지 않았다.
케인이 노리는 건…….
와락!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습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렸습니다.]
“…….”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