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8화
“좋습니다. 들어가죠!”
태현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다른 파티 들어갈 상황이 아닌 셋이었기 때문!
둘은 역병 저주에 걸린 상황에, 태현은 보아하니 레벨 제한에 걸릴 것 같았다.
‘하도 다른 파티 안 들어간 지 오래 되어가지고 레벨 제한을 잊고 있었네.’
보통 판온을 하다 보면 즉석 파티를 맺어서 던전을 공략하는 플레이를 많이 하게 됐다.
그런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레벨 제한을 경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태현!
언제나 굵직굵직한 대박 퀘스트만을 깨 왔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파티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걸어가는 태현의 귀에 대고 이다비가 속삭였다.
“설마 레벨 제한 걸린 건 아니죠?”
“……!”
케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눈치를 가진 이다비!
* * *
“수혁아! 여기야!”
정수혁의 친구들은 정수혁을 반갑게 불렀다.
그 정다운 태도에 정수혁은 멈칫했다.
예전의 어리바리한 호구 정수혁이 아니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급격하게 오른 눈치!
“너희…… 뭐 원하는 거 있냐?”
“……!”
“어떻게 알았지?”
“……나 갈래.”
“안 돼!”
“일단 앉아! 앉아!”
최진혁은 의자를 탁탁 치며 앉으라고 말했다. 정수혁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옆에 앉았다.
앞으로는 투기장의 시대가 온다!
곧 열릴 투기장 프로 리그의 예선을 통과해 이름을 알리겠다!
그렇게 야심 차게 말했던 친구들이었다.
그 이후 딱히 연락이 오지 않았었다. 정수혁도 자기 퀘스트 깨느라 바빴기에 친구들을 신경 쓰지 못했었고.
‘웬 이상한 놈이 우르크 지역에 날아와 가지고…….’
우르크 지역의 일일 퀘스트를 깨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이었는데, 웬 이상한 교단 NPC들이 단체로 날아왔던 것이다.
정수혁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
간신히 그들을 돌려보내고 돌아온 상황이었다.
“수혁아, 네 도움이 필요하다.”
“뭔 도움?”
“프리카 대륙 투기장! 우리하고 같이 하자!”
그랬다.
최진혁이 찾아온 이유는 바로 투기장 때문이었다.
“???”
정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희 다섯 명 팀 있잖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최진혁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설명했다.
“한 명이 역병 저주 걸려가지고…….”
“…….”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
정수혁도 역병 저주 퀘스트창은 본 상태였다.
우르크 지역이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에랑스 왕국에서는 난리였으니까.
“저주 해결되면 같이하면 되잖아.”
“그게 언제 해결될 줄 알고?”
“태현 선배님이 해결하려고 가셨다던데.”
“뭐? 정말로?”
최진혁은 귀를 쫑긋거렸다.
언제나 들어도 신기한 태현의 이야기!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렇게 유명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건 언제나 신기했다.
“그래도 그거 해결될 때까지는 못 기다려. 게다가 그 저주 걸린 애는 지금 몇 번 죽는 바람에 사망 페널티까지 심하게 받아가지고 그거 복구해보겠다고 빠졌거든. 우리랑 투기장 하기는 힘들 거 같아.”
최진혁의 5인 투기장 팀은 생각보다 더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예 인원이 빠져 버린 상황.
“수혁아, 우리 팀에 들어와 주라!”
“맞아! 네가 딱이야!”
“아니…… 그건 좀…….”
정수혁은 머뭇거렸다. 친구들은 정수혁의 실력에 뭔가 되게 많이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
물론 정수혁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뛰어나기는 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폭풍적으로 올린 레벨과, <아키서스의 교단 마법사>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가능성, 그리고 정수혁 본인의 끈기까지.
혼자 마탑 수련장에서 마법을 쓰는 것만으로 마법 스킬을 고급까지 찍는 플레이어는 정말 흔치 않았다.
태현이 괜히 같이 다닌 게 아니었던 것!
문제는…….
정수혁의 스킬에 있었다.
<아키서스의 마법>!
모든 마법에 랜덤 효과를 부여해 버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패시브 스킬.
이게 혼자 돌아다닐 때면 어떻게든 수습이 됐는데, 5:5 투기장 싸움에서 잘못 터지면 수습이 불가능했다.
잘못했다가 팀킬이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힘들다고.”
정수혁은 구구절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이렇게 설명을 하면 좀 이해를 하겠지!
그러나 친구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바로 그거야!”
“그런 걸 원했어!”
“……???”
정수혁의 얼굴이 더욱 멍해졌다.
“뭐라고?”
“그런 걸 원했다고. 역시 수혁이야! 김태현 선배님하고 같이 다니는 게 폼이 아니었어!”
“내가 말했잖아. 수혁이 실력이라면 분명 통할 거라고.”
“아니…… 애들아?”
정수혁은 당황해서 끼어들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신이 나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내 말 제대로 이해한 거 맞지?”
“그래. 마법 쓸 때마다 랜덤으로 추가로 나간다고.”
“그게 어떻게 좋은 건데?!”
정수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투기장에서는 마이너스인 스킬!
탁-
그러나 최진혁은 정수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혁아.”
“……?”
“우리는 그런 거라도 필요한 상황이다.”
“…….”
그랬다.
<아키서스의 마법>이 더럽게 운빨인 스킬이라, 한 번 잘못 터지면 복불복으로 나가는 스킬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최진혁 팀에는 더더욱 필요했다.
최진혁 팀은 객관적으로 실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
“우리가 다른 투기장도 돌고, 프리카 쪽 투기장도 가서 돌아보려고 했잖아? 우리 실력이…… 생각보다 구리더라고…….”
다른 쪽 투기장에서 졌을 때는 ‘에이 씨 레벨 때문에 졌네! 더러운 레벨빨!’, ‘에이 씨 장비 차이 때문에 졌네! 더러운 템빨!’ 같은 변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카 대륙 투기장은 그런 변명이 완전히 차단되는 곳!
거기서도 몇 번이고 패배한 최진혁 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들의 실력이 달린다는 것을!
“우리가 예선전 통과해서 본선을 올라가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운빨!”
“맞아! 그거 아니면 방법이 없다고!”
레벨과 장비는 봉인되지만, 직업과 스킬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평균적인 실력이 밀리는 최진혁 팀은 직업과 스킬에 모든 걸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수혁아! 운빨로 가자!”
“우리한텐 그거밖에 없어 이제!”
정수혁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너 저번에 투기장에 인생을 건다고 하지 않았냐?”
“이게 거는 거지!”
“투기장을 하는 게 아니라 동전 뒤집기를 하겠다는 거 같은데…….”
아픈 곳을 찌르는 정수혁의 말!
그러나 최진혁과 친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들!
다리를 붙잡고 흑흑거리며 비는 친구들의 모습에 정수혁도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알겠어. 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합류하면 되지!”
“수혁아!”
“고마워!”
“아니, 근데 진짜 너무 기대하지 말라니까. 이거 스킬 역효과 뜰 때가 얼마나 많은데.”
“괜찮아! 괜찮아!”
최진혁과 친구들은 정수혁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일단 신나 했다.
기분만 따지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
“혹시 김태현 선배님은 팀에 못 넣겠지?”
“네가 직접 말해봐라. 방송국에서 초대하셨다는데 거절하신 걸로 아는데 절대 무리지.”
“와, 방송국에서 초대팀으로?”
최진혁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상상치도 못하는 대접이었다.
“그러고 보니 해외 팀 몇 팀 정도 초대 팀으로 온다고 했었지?”
“한국 쪽에서는 이세연이 온다고 하던데, 그거 진짜인가? 아직 확정 아니지?”
시끌시끌-
각자 자기 할 이야기를 하자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최진혁은 손을 흔들며 말을 멈추게 했다.
“지금 우리가 남들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수혁이도 들어왔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자! 목표는 예선 통과!”
“좋았어!”
* * *
“가브리엘하고 대화 연결합니다.”
직원의 말에 배장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판온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불리는 플레이어를 고른다면 바로 가브리엘이었다.
-가브리엘 개XXX야!
-가브리엘 X—X---XXX-XX야! 너 보이면 레벨 1 될 때까지 죽여 버린다!
역병 저주 때문에 제대로 피해를 본 플레이어들의 원한!
물론 그런 플레이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저런 식으로 크게 사건을 저지르는 플레이어에게는 팬이 생겼다. 판온 1의 태현에게 팬이 생겼던 것처럼.
-가브리엘 완전 갓브리엘 아니냐?
-가브리엘은 모든 플레이어를 평등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역병 저주를 옮깁시다. 역병 저주가 있다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앞으로 다시는 기계공학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화제가 됐던 가브리엘이었지만, 정말 사건이 터지고 귀신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아예 접속을 안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MBS 쪽에 접촉을 해온 것이다. 배장욱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브리엘은 해외 플레이어로 아는데?’
해외 플레이어면 해외 방송에도 나갈 곳은 많았는데 왜 하필 한국의 방송인 MBS에 연락을 해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가브리엘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장욱입니다. 무슨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태현 님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태현 님이 출연한 방송사가 여기라고 들어서요.
“태현 님??”
“태현 님???”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무슨 극존칭?
“진짜 친한 거 아냐?”
“기계공학 제자 맞나? 진짜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이 역병 폭탄을 김태현 플레이어가 퍼뜨린 거라고요? 설마…….”
직원들이 떠들었지만, 배장욱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본 태현은…….
‘터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긴 하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물론 태현은 전혀 상관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네. 김태현 플레이어가 계약한 방송사가 여기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에 연락하신 겁니까?”
-일단 태현 님한테 사과의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보니까 마계 퀘스트가 방송으로 나갔는데 저 때문에 좀 묻힌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배장욱은 놀랐다. 해외 플레이어인데 저런 거까지 안다니. 해외 플레이어는 저런 사실을 알기 힘들었다.
정말 김태현의 광팬이 맞구나!
‘그런데 김태현은 별로 신경 안 쓸 텐데?’
배장욱 생각에 태현은 딱히 시청률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시청률을 신경 썼다면 애초에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지 않았을 것!
MBS의 방송은 태현에게 덤 같은 것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댈 핑계도 만족시키고.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하다니. 좀 더 기다렸다가 터뜨렸어야 했는데…….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배장욱은 대답하다가 멈칫했다.
만약에 조금 더 늦게 터뜨렸다면?
‘이거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
아직 프리카 투기장 리그가 본격적으로 시작 안 한 상태여서 망정이지, 만약 본격적으로 시작한 상태에서 터졌다면 일정 자체가 틀어졌을 수도 있었다.
배장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흑흑 저는 쓰레기입니다! 저는 쓰레기예요!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태현 님은 지금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잠깐, 그것보다 해외 플레이어면서 그런 속담은 어디서 배운 겁니까?”
계속 땅을 파고 들어가는 가브리엘의 모습에 배장욱은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둘이 무슨 사이길래 가브리엘이 저러는 걸까?
남들이 보면 헤어진 부모자식 사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물론 정답은 ‘아무 사이도 아니다’였다.
태현은 가브리엘이 누구였는지 제대로 기억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