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5화
원한 가득한 목소리.
태현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많이 본 놈들이 서 있었다.
차오와 그의 길드원들, 그리고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 여럿!
“뭐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해 주려고 부른 건가?”
“그래. 인사해 주려고 부른…… 게 아니라! 이 자식, 김태현! 뻔뻔하게 모르는 척할 셈이냐!”
“뭘?”
“내 퀘스트를 방해했잖아!”
차오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옆에 있는 길드원들은 창피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 왕궁 퀘스트 실패한 게 왜 김태현 때문이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길마가 슬슬 맛이 가고 있다니까. 김태현한테 몇 번 당하더니 사람이 이성을 잃었어.’
‘우리 이 길드 나가야 하지 않나?’
길드원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른 채, 차오는 방방 뛰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밖에 이유가 없었던 것!
“이야. 재주도 좋네. 어떻게 알았냐?”
태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뭐라고?!”
차오보다 뒤에 있던 길드원들이 더 놀랐다.
“정말 김태현이 한 거였다고?”
“길마님이 미친 줄 알았는 읍읍…….”
홱!
차오가 뒤를 돌아보자 말하던 길드원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뭐라고 했냐! 김태현이 했다고 했잖아 이 XXX들아! 왜 나를 못 믿어!”
“죄, 죄송합니다…….”
‘그걸 믿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차오와 길드원들이 서로 시끄럽게 떠들자, 태현은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떠나려 했다.
“그럼 잘 있어라. 나중에 또 보자고.”
“그래, 잘 가……가 아니라 이 자식이! 감히 NPC들을 매수해서 날 엿 먹여?”
“매수? 매수 안 했는데?”
“……?”
“매수가 아니라 내가 NPC로 변장해서 들어갔어.”
“…….”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태현의 말을 들은 플레이어들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내가 NPC로 변장해서 들어갔다고. 네 요리 먹고 난리 치던 놈 기억 안 나냐?”
“……!!”
차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설마 그 NPC가……!
“그거 때문에 눈치챈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뭘로 눈치챈 거야 그러면?”
“이, 이, 이 자식……!”
“그러면 네 요리에 뭐 넣은 것도 모르고 있었냐?”
“뭐?”
“네 요리 먹고 다른 NPC들도 마비 상태 걸렸잖아. 그게 왜 그랬겠냐.”
“매수가 아니면…….”
“그야 내가 네 요리에 다른 재료 넣어서 그런 거지.”
“…….”
태현한테 복수하려고 왔다가 새로운 사실만 알고 더 열만 받게 된 차오!
그 모습을 본 케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이미 호구를 잡혔어!’
태현한테 당해본 선배(?) 피해자로서, 케인은 차오의 속마음이 이해가 갔다.
분노와 억울함과 기타 등등의 감정으로 폭발 직전!
그러나 그 마음을 냉정하게 추스르지 못하고 덤벼드는 건 자살행위였다.
냉정하게 덤벼들어도 승산이 적은데 저렇게 감정적으로 덤벼들어서는 더더욱 무리!
‘더 강해져서 왔어야지! 멍청하기는!’
차오가 듣는다면 두 배로 열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내 요리에 다른 재료를 넣었다고?!”
“들었으면서 왜 모르는 척이야? 넣었다고 했잖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하는 태현의 모습. 그 모습이 차오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자식! 감히 내 요리에!”
“다른 놈은 몰라도 네가 그러면 좀 뻔뻔하지 않냐?”
말은 맞는 말!
태현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차오의 길드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태현이 길드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고개 끄덕였다.”
“?!”
설마 태현이 이 상황에서 고자질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길드원은 사색이 되었다.
차오가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자 손사래 치며 아니라고 부정하는 길드원!
“어쨌든 고맙다. 퀘스트 보상은 잘 받았고. 너 있어서 다른 플레이어들도 의심 안 하더라. 그러게 평소에 좀 착하게 지내지 그랬냐.”
상처를 후비다 못해 헤집고 소금을 뿌려버리는 태현의 도발!
차오는 이를 갈며 말했다.
“오냐, 계속 그렇게 말해봐라! 곧 그 낯짝에 한 방 제대로 먹여줄 테니까.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어떻게 하려고?”
차오야 요리사 플레이어였고, 그의 길드원들도 대부분 요리사 플레이어였다.
즉 전투력만 보면 태현보다 한참 아래인 플레이어들!
그러면 여기서 싸울 수 있는 전력은 차오가 데리고 온, 처음 보는 얼굴의 플레이어들뿐만이라는 건데…….
‘뭐 레벨 높은 놈들인가?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태현은 살짝 긴장했다.
언제나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게 판온!
게다가 태현은 이제 나름 잘 알려진 플레이어였다. 태현을 상대하러 온 놈들은 무슨 숨겨진 방법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고 봐야 했다.
“크크크…… 김태현. 허세를 부리는군. 그래 봤자 알고 있다. 아까 이야기를 들었거든.”
“??”
“너희 파티 놈들이 저주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응?”
태현은 뭔가 오해가 있다 싶어 말하려고 했다. ‘저주에 걸린 건 여기 케인이랑 이다비지 내가 아니야 멍청한 놈아’라고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차오는 신이 나서 태현한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면 눈치를 못 챌 줄 알았냐? 지금 네 HP가 1이라는 건 알고 있어! 즉, 제대로 한 대만 맞으면 곧바로 죽는다는 거지!”
스르릉-
차오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멍청한 놈들…….”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피해 보는 건 케인뿐!
‘포션 값 아까워 죽겠는데, 젠장!’
아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안 먹으면 바로 죽을 테니까.
“자, 김태현! 어떠냐! 아직도 허세를 부릴 셈이냐!”
“저놈들은 저주에 안 걸렸냐?”
“하하! 우리가 너처럼 멍청한 줄 아냐! 우리는 전원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아, 그래?”
태현은 말이 끝나자마자 케인을 붙잡고 앞으로 집어 던졌다.
“가라, 케인!”
“야 인마!”
앞으로 날아가는 케인!
예전이었다면 욕을 하고 허둥지둥했겠지만, 케인도 이제 태현한테 당한 경험이 많이 쌓인 상태였다.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쿵짝을 맞출 수 있게 된 것!
케인은 날아가면서 태현이 뭘 원하는지 깨달았다.
쾅!
“저, 저거 피해라!”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외쳤다. 케인과 부딪히면…….
저주가 확실하게 전염!
“어딜 가냐, 이 자식들아! 너희들도 좀 당해봐야지!”
케인은 신이 나서 팔을 뻗었다.
태현한테 당한 걸 다른 놈들한테 푼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습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렸습니다.]
곧바로 뜨는 메시지창.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이제까지 잘 피해왔는데!
“아직 안 끝났다. 노예의 쇠사슬!”
촤르륵!
원래는 타겟을 잡고 앞으로 끌고 오는 스킬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스킬이었다.
“모두 피해!”
“맞으면 끝장이다!”
덤비려고 온 플레이어들은 싸우는 걸 잊고 케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흠. 케인 혼자 싸우니까 좀 외로워 보이네.”
“그러네요?”
태현은 이다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이다비는 불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설, 설마…….”
“너도 가라, 이다비!”
“잠깐만 으아아앗!”
-아키서스의 축복!
둘을 적들의 한가운데에 던져버린 다음 태현은 <아키서스의 축복>을 사용했다.
HP가 얼마나 깎이든 간에 모든 공격을 전부 다 회피해버릴 사기적인 스킬!
그 틈을 타 이다비와 케인은 닥치는 대로 부딪히고 접촉해 저주를 걸어댔다.
“멍청이들아! 피하는 건 포기하고 김태현을 공격해! 지금 공격하면 한 방이라고!”
차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어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태현을 공격해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그들 몇 명이 죽어서 로그아웃 당해도 태현 한 명을 잡으면 엄청난 이득 아닌가!
그래서 기껏 데리고 왔더니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제대로 공격 안 하면 돈은 없다! 빨리 공격해!”
차오의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차리고 주문서를 꺼냈다.
이미 케인과 부딪혀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들은 잃을 게 없었던 것이다.
-하급 약화의 저주!
-하급 발목 잡기 저주!
마법이나 스킬이 아닌 주문서를 꺼낸 이유는 하나.
태현의 회피를 뚫고 빠르게 데미지를 넣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1만 깎으면 되는 상황이니 명중률이 높고 빠른 공격이 제일 필요한 상황!
“가라!”
퍼퍽!
태현에게 주문서의 저주가 적중하자 푸른색 연기가 잠깐 피어올랐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잡았다!”
“제대로 들어갔어!”
“애들아?”
“김태현 별거 아니라니까!”
“우리가 김태현을 잡았다! 지금 이거 영상 올리고 있지?”
“애들아? 내 말은 안 들리니?”
“이제까지 아무도 김태현을 못 잡았는데 우리가 김태현을 잡았…….”
“애들아. 내가 말하잖아!”
퍼퍼퍼퍽!
“?!?!”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아. 맞다. 너희 HP가 좀 적겠구나. 까먹고 있었다.”
멀쩡한 태현이 연기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공격을 받은 플레이어 하나는 꼼짝도 못 하고 즉사!
“뭐, 뭐야?”
“뭐긴 뭐야. 저주 안 걸린 거지. 너희들 공격도 안 맞아줄 수 있었지만…….”
태현은 말끝을 흐리며 검을 들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있었지만?”
“그래. 있었지만. 왜 맞아줬을까?”
태현은 검으로 플레이어 한 명을 지목해서 물었다. 지목당한 플레이어는 지금 상황도 잊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어…… 어…… 어…… 아! PK 페널티 안 받으려고?”
“정답.”
퍼퍼퍽!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폭딜을 넣는 수단을 몇 가지나 갖고 있는 태현에게, 역병 저주에 걸려 HP가 1까지 내려간 플레이어들은 그냥 걸어 다니는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미, 미친…….”
차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차오가 모아온 플레이어들은 급하게 모아왔어도 나름 레벨 100 넘는 고렙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방에 날아가다니.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넘어간 셈!
차라리 서로 저주에 안 걸린 상태로 덤벼들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싸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원래는 선빵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좀 악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자, 그래서 다음은 누구?”
“으아악!”
태현이 검을 내밀자 지목당한 플레이어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HP가 1밖에 없는 상황이니 스치기만 해도 사망!
그걸 본 태현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에비!”
“으아아악! 살려줘!”
“나 죽이러 온 거 아니었냐?”
“저, 저놈이 돈 준다고 해서 온 거야! 난 너한테 아무런 원한 없어!”
“죽이러 와놓고 원한이 없다?”
“미, 미안해! 그건 잘못했어!”
“그래. 용서하지.”
“……?”
“왜, 용서받기 싫어?”
“아, 아냐. 고마워?”
“그래. 얼마나 좋아. 용서하고 감사받고.”
“……???”
“너도 좋지?”
“좋…… 좋은데.”
“자. 이제 저기 가서 저놈 껴안아.”
태현은 차오를 가리켰다. 싸우는 상황에서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
“너 혼자 저주 걸리면 억울하잖아. 저놈이 너 데리고 왔다며. 안 억울해?”
“별, 별로 억울하지는…….”
“아. 그래? 그러면 억울하게 해줄게.”
태현은 검을 들어 올렸다.
“억울해! 억울해!!”
“그래. 그래야지. 자, 가서 껴안아. 그러면 억울함이 좀 풀릴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