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4화
먼저 에랑스 왕국의 대도시에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줄었다.
도시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은 이미 저주에 걸려서 밖에 나가는 걸 포기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근데 어차피 우리는 밖에 잘 안 나가지 않았냐?”
“그러게? 역시 제작 직업이 짱이라니까.”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도시 안에서 제작만 해도 어느 정도 퀘스트가 해결이 되었으니까.
그에 비해 가장 피해를 본 건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
“아니, HP가 1인데 뭘 어떻게 깨라는 거야?!”
“다른 놈들도 한번 걸려봐라! 같이 죽자! 에이!”
시간이 흐르고 저주의 효과가 정확하게 알려지자, 플레이어들은 나눠지기 시작했다.
-시간 지나면 누가 풀어주겠지.
포기하고 도시 안에서 퀘스트를 깨는 플레이어들.
-억울해서 못 참겠다! 다른 놈들도 저주 걸려야 해!
나 혼자는 못 죽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도시에 가서 저주를 퍼뜨리려는 플레이어들.
-여기 저주 해결해 주는 포션 팔아요! 단돈 1골드!
이번 기회에 한몫 잡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사기를 치는 플레이어들.
-잠깐, 지금 다들 HP가 1이면 내가 한 대 때리면 죽는 거 아냐?
평소에 싫어했던 놈들을 찾아가는 플레이어들까지!
잃을 게 많은 고렙 플레이어들은 아예 도시를 피했다. 중앙 대륙은 넓어서 숨을 곳이 많았다.
판온은 혼란으로 끓어올랐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이번 사건이 커지자, 욕심을 내는 플레이어들이 생겼다.
-이거 해결만 할 수 있으면 대박 아닌가?
-저번에 사디크의 화염 퀘스트는 해결 못 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한다!
경험 많은 랭커 탐험가 파티들도 퀘스트 해결에 뛰어들었다.
그중에는 저번에 사디크의 화염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가 태현한테 뺏긴 파티도 있었다.
* * *
“포션 팝니다! 저주를 한 방에! 3골드라는 파격가!”
“이 새끼 사기꾼이에요! 믿지 마세요!”
“진짜 저주 해제 포션이에요! 레벨 100 넘는 사제가 만들어준 포션! 이 자식은 자기가 못 사서 훼방 놓는 거니까 믿지 마시고! 자! 와서 사세요! 다 팔리면 사지도 못해요!”
태현 일행은 아직 에랑스 왕궁 앞 거리에 있었다.
저주 폭탄 때문에 완전히 뒤바뀐 분위기!
왕궁 같은 곳은 아예 플레이어의 출입이 불가능하게 바뀌었다.
‘퀘스트 준비하던 놈들은 피눈물 좀 흘리겠네.’
다른 플레이어들이야 도시를 떠난다, 사람 적은 곳으로 숨는다, 요란을 떨어댔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상관없었으니까!
케인과 이다비는 걸렸고, 태현은 회피로 저주를 계속 피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여유만만한 게 바로 태현!
“이 자식, 장사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라니까!”
“내 골드 내놔!”
“죽고 싶냐? 응? 안 꺼져?”
“쳐봐! 쳐봐! 페널티 받고 싶으면 쳐보라니까!”
사기를 치던 플레이어와 사기에 당한 플레이어가 멱살을 잡고 다투는 게 보였다.
그걸 본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미리 준비를 해서 사기를 치는 건데…….”
“…….”
케인은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뭐라고?”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미리 포션 만들어서 크게 사기를 치는 거였다고. 이제 와서 하기에는 늦었지. 푼돈밖에 안 될 테니까.”
“넌 저걸 보고 그런 생각밖에 안 드냐?!”
“상황을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지.”
“맞아요! 저도 똑같은 생각 했어요.”
이다비는 손을 들고 동의했다. 케인은 기가 막혀서 둘을 쳐다보았다.
지금 HP가 1까지 떨어진 상황인데 저런 생각이 든다는 게 신기했다.
‘저 인간들은 진짜……!’
“HP 1인 걸 고칠 생각이나 하자고!”
“난 괜찮은데? 저주 안 걸렸는데?”
“저도 상인이라 밖에 안 나가도 괜찮은데요?”
“…….”
빠드득!
케인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놀릴까?”
“그래요. 좀 더 놀리면 우실지도…….”
“울긴 누가 울어!!”
“케인은 여기까지만 놀리고, 일단 계획을 좀 짜보자고. 나야 그렇다 쳐도 너희 둘은 밖에 나갔다가 재수 없으면 한번에 훅 갈 수 있을 테니…….”
“싸우려면 싸울 수는 있어. 포션 빨고 스킬 쓰면 어느 정도 HP는 차니까.”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싸우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하려나? 지금 공개된 정보가…….”
태현은 게시판을 켜서 확인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저주.
이 저주에 당한 플레이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관련 정보가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저주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정보가 하도 많아서 거짓 정보도 몇 개 있었지만, 그걸 거르더라도 꽤 쓸만한 정보가 많았다.
-저주 폭탄을 터뜨린 건 가브리엘이라는 기계공학 대장장이 플레이어다.
-터진 곳은 에랑스 왕궁 광장 앞. 거기서 저주 걸린 플레이어들이 곳곳으로 움직이면서 저주를 퍼뜨리고 있음.
-저주에 걸리면 HP가 1까지 계속 내려감. 회복해도, 죽어도, 계속 1까지.
-가브리엘이 김태현한테 기계공학을 배웠다는 소문이 있음.
“아니, 어떤 새끼가 이딴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야?”
태현은 자기가 말해준 것도 잊어버리고 당당하게 외쳤다. 옆에서 이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리 태현 님이 NPC로 위장해서 남의 퀘스트를 망치고, 점령한 성에 오크 군대를 끌고 가신 적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한 누명이잖아요!”
“……너 나한테 뭐 쌓인 거 있니?”
“네? 없는데요?”
이다비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말한 것 같았다. 태현은 갑자기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게 됐다.
의심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행적들!
“어?!”
게시판을 보던 이다비가 깜짝 놀랐다. 그걸 보고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 중요한 정보라도 있냐?”
“미국에 사는 길 베이브 씨가 이거 해결해 주는 사람한테 현상금 쏘신다고…….”
“……필요한 정보나 찾을래?”
“이것도 필요한 정보에요!”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판온. 거기서 터진 대규모 재해.
덕분에 몇몇 별난 부자들은 이 질병(?)을 해결해주는 사람한테 실제로 돈을 주겠다고 현상금까지 건 것이다.
“아니, 이런 거에 돈을 걸어? 왜?”
케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태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껌값이지. 게다가 이런 걸로 홍보도 되고.”
“홍보?”
“저런 부자가 자기 혼자 있겠냐. 기업 사장이면 이번 사건이랑 같이 엮여서 기업 이름이 퍼질 거 아니야. 다 그게 홍보지.”
둘의 대화와 상관없이, 이다비의 눈빛이 반짝였다.
“꼭! 해결하죠!”
“너는 참 한결같아서 좋다. 그래. 알겠으니까 좀 게시판이나 찾아봐. 정보를 모으라고.”
셋은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퀘스트 터지기 전, 도망친 가브리엘과 대장장이들이 에스파 왕국 남쪽에서 발견된 적 있음.
-몇몇 탐험가 파티가 고문서를 확인하고 에스파 왕국 남쪽으로 이동했음.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에스파 왕국 남쪽으로 가는 퀘스트가 나옴.
“으음…….”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이 진짜고 거짓인지 걸러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런 데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게 경험!
판온 1에서 온갖 경험을 겪은 태현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에스파 왕국 남쪽이다.”
믿기 힘든 정보는 거르고, 사실만을 보고서 예측했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가브리엘도 거기서 모습을 보였었고, 랭커 탐험가 파티도 거기로 향했으니, 지금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거기!
“에스파 왕국 남쪽이면…… 어? 지금 거기 사람 많지 않나요?”
에스파 왕국의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항구가 나왔다.
그 항구에서 배를 타면…….
바로 프리카 대륙!
그리고 지금 프리카 대륙에서는 투기장 리그 준비로 플레이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야, 거기 볼 만하겠는데.”
“남 이야기하듯이 할 때가 아니지 않냐?”
“뭐 나야 저주 안 걸리는데.”
‘아오, 한 대 때리고 싶네. 진짜.’
HP가 1이라면 태현도 한 대 맞으면 죽을 텐데, 정작 저주에 안 걸리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케인은 분노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거기 가보자고. 거기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하는 거 보고 끼어들면 되겠지.”
“역시 태현 님이에요!”
스스로 퀘스트를 깨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퀘스트를 깨고 있는데 끼어들 생각부터 먼저 하는 태현!
* * *
“마가 껴도 단단히 꼈지, 이게 뭐야?!”
배장욱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투덜거렸다.
‘단순히 게임 내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과 이권이 걸린 판온은 더 이상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지금 MBS 내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번에 터진 사건 때문이었다.
원래 마계에서 귀환한 태현의 특집을 대대적으로 밀어서 대박을 치려고 했었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했었다. 예고편만 나왔을 때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끼어든 역병 저주 사건!
그 사건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분산되어 버렸다.
지금 방송 특집은 대부분 다 이 역병 저주에 관한 특집이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저주란?>, <저주를 피하는 방법>, <저주 해결 퀘스트 진행 방송> 등 방송국들은 기회라는 듯이 방송을 편성하고 있었다.
태현의 마계 특집도 나름 선방하고 있었지만, 평소 태현의 인기를 생각해본다면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개인 방송하는 놈들만 신나게 됐어.’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방송에 내보내는 방송국은 이런 퀘스트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빠른 정보를 원하는 시청자들은 퀘스트에 도전하는 탐험가 플레이어의 개인 방송을 찾아가는 것이다.
“판온 측에 요청은 해봤나요?”
“당연히 해봤지. 안 된대. 걔네 꽉 막힌 걸로 유명하잖아. 젠장, 가상현실 게임은 걔네가 다 잡고 있으니까 아쉬운 게 없겠지.”
그리고 지금 더 큰일인 것은, 곧 프리카 대륙 투기장 리그의 예선이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많은 플레이어가 프리카 대륙의 투기장으로 가고 있어서 흥행이 예상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저주가 끼어든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참가자들이 얼마나 빠질지 알 수 없었다.
‘제발 누가 빨리 해결 좀 해줘라……!’
배장욱은 초조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문을 들어보니까, 이거 터뜨린 가브리엘이라는 플레이어가 김태현 제자라고…….”
“김태현 제자? 김태현한테 제자가 있었나?”
“그렇죠? 저도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의아해했다. 태현의 영상을 통째로 받아서 편집하는 그들이었다.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있지도 않았다.
“피디님, 제가 쓰는 계정에 쪽지가 하나 와있는데요.”
“……?”
직원 중 한 명이 배장욱에게 말을 걸었다.
방송국 명의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직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이나 플레이어들의 반응들이 어마어마하게 이 계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쪽지 하나를 신경 쓸 계정이 아닌 것!
“무슨 쪽지인데?”
“자기가 가브리엘인데, 이야기하고 싶다고…….”
“?!”
배장욱은 깜짝 놀랐다.
정말 가브리엘이 쪽지를 보냈단 말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 * *
방송국 쪽이 방송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고, 태현은 마음 편하게 왕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청자 수에 일희일비하는 플레이어들과 달리, 태현에게 시청률이나 시청자 수는 그냥 알아서 따라오는 것!
“사람 없으니까 쾌적한데? 그냥 안 풀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김태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