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293화 (293/1,826)

§ 나는 될놈이다 293화

그 말을 시작으로, 플레이어들은 흩어져서 도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기가 저주에 걸린 상태라는 건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을 피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상황은 완전히 가브리엘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밖에서 커다란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태현은 사루온과 마주보고 있었다.

물론 태현에게도 퀘스트창은 떴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저주를 퍼뜨렸대?’

태현은 상상도 못했다.

태현한테 소심하게 물어본 그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이런 폭탄을 터뜨렸을 거라고는!

사루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주 잘됐군.”

“……?”

“네게 어울리는 퀘스트가 없었는데, 이번 일을 시험으로 삼지. 이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저주를 찾아 해제한 다음 갖고 오도록. 그러면 비전 스킬을 전수해 주겠다.”

“아니, 잠깐…….”

“음, 아주 좋아. 너 정도 되는 모험가에게 맞는 시험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운이 좋았군.”

“잠깐만이라고 하는 소리 안 들리냐!”

태현은 울컥해서 외쳤다.

대륙 퀘스트가 장난도 아니고, 깨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운도 어느 정도 필요했다.

게다가 이번 퀘스트는 저주의 해제 방법부터 찾아야 하는 고난이도의 퀘스트!

어떤 저주인지는 몰라도 쉽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대체 어떤 놈이 이딴 저주를 퍼뜨린 거야?’

태현은 이를 갈았다.

이제까지 한 업적 때문에 쉽게 갈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생겨난 대륙 퀘스트 때문에 비전 스킬 퀘스트 난이도도 같이 올라갔다.

이제는 깰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그 비전 스킬이 뭔데?”

“으하하. 악마가 미리 알려줄 수는 없는 법이지.”

“…….”

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명백히 의심하는 눈초리!

‘이 자식. 별 쓰잘데기없는 비전 스킬 갖고서 이렇게 생색내는 건 아니겠지?’

보통 각 스킬의 비전 스킬은 정말 강력한 스킬이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기계공학 스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강력한 대신 꽝도 많은 복불복 스킬!

어느 스킬이나 꽝 취급받는 스킬은 있기 마련이었지만, 기계공학은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괜히 사람들이 기계공학 스킬을 기피하는 게 아니었다.

‘이 자식, 만약 이 퀘스트 다 깼는데 별거 아닌 보상 나오면 각 교단 공적치 포인트 전부 사용해서 레이드해주마.’

사루온은 태현이 속으로 레이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호탕하게 웃었다.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에 퍼진 역병 폭탄을 찾아서 가지고 와라!”

* * *

“그런데 깰 수 있겠냐? 대륙 퀘스트잖아.”

“태현 님은 대륙 퀘스트 깬 적 있잖아요.”

“그렇긴 하네.”

케인과 이다비는 태현 뒤에서 떠들어댔다. 태현이 퀘스트 수락을 하는 걸 보고 ‘진짜 할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태현은 이미 대륙 퀘스트를 깬 적 있던 사람!

이번에도 쉽게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간 좀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할 거야.”

“?!”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이제까지 대륙 퀘스트를 깰 수 있었던 건, ‘깰 수 있는 대륙 퀘스트’가 나와서였다.

그러나 지금 나온 대륙 퀘스트는 어떻게 깨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대륙 퀘스트!

게다가 보상도 확실하지 않았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는 권능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이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공학 비전 스킬이었다.

‘확인 좀 해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다른 퀘스트부터 깨야지.’

태현에게는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이다.

“네가 포기하면 포기하는 거겠지만…… 근데 이거 무슨 저주냐?”

“그러게요. 대륙 퀘스트 정도면 엄청 강력한 저주 아닌가?”

사루온의 상점 안에 있던 셋은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지 못했다.

태연하게 밖으로 나서는 그들!

“아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들리던데, 퀘스트하고 관련 있는 거 아닌가?”

“에이, 설마요. 여기가 어딘데.”

“하하. 하긴 그렇지?”

순진하게 대화를 나누는 케인과 이다비. 그러나 태현은 둘의 대화를 듣고 움찔했다.

설마…….

“으아아악! 살려줘!”

“저주 걸리기 싫다고!”

“모두 도망쳐!”

저 멀리서 달려오는 플레이어들!

태현은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까 밖에서 난 소리가 정말 이 퀘스트와 관련된 소리였구나!

“뭐, 뭐야?!”

케인은 당황해서 비키려고 했지만 달려오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았다.

그대로 부딪히는 케인과 이다비!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습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렸습니다.]

둘은 그대로 저주에 걸려 버렸다. 태현은 그 와중에도 재빨리 피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지만, 하필이면 케인이 붙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습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제까지 회피한 스킬과 공격이 수십 개가 넘었다.

이 정도 회피 가지고 놀랄 단계는 지난 지 오래!

그러나 지금 다른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태현을 봤다면 놀라서 뒤집어졌을 것이다.

수많은 버프 스킬, 방어 스킬, 치유 스킬, 회피 스킬…… 하여튼 어떤 스킬로도 피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접촉한 플레이어는 전원 전염!

그런데 태현은 태연하게 그 법칙을 피해간 것이다.

당사자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고 있었지만…….

“HP 깎인다!!”

“?!?!”

케인과 이다비가 허둥거리는 동안, 태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퍽!

“야!”

케인을 바로 걷어차는 태현!

“이거 접촉하면 저주 걸리는 거군.”

“이 자식아! 넌 피도 눈물도 없냐!”

케인은 넘어져서 외쳤다.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걷어차는 태현이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론 태현이 이런 항의에 눈 하나라도 깜박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디서 나까지 전염시킬 뻔한 놈이 뻔뻔하게…… 넌 내가 전염됐으면 네 직업 때문에 페널티 엄청 먹었을 거다. 감사한 줄 알아!”

“…….”

맞는 말이었지만 케인은 왠지 모를 억울함이 가슴 가득히 올라오는 걸 느꼈다.

케인이 흑흑거리며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동안, 태현은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에랑스 왕궁 앞이라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너무 안일했군. 하긴, 저주 퍼뜨리려는 놈이 사람 많은 곳을 노리겠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터뜨릴 줄은 몰랐는데…… 대체 뭐하는 놈이지?’

태현은 이 저주를 퍼뜨린 방법에서 뭔가 익숙함을 느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익숙함!

정답은 태현 스스로의 방법이었다.

가브리엘은 태현이 나온 영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전부 찾아보았다.

MBS의 방송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의 개인 방송에 잡힌 태현의 모습까지 수십 번 넘게 돌려볼 정도로 집요하게!

그 결과 가브리엘은 스토커에 가까운 능력을 얻게 되었다.

김태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김태현이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이 저주가 담긴 역병 폭탄을 에랑스 왕궁 앞 광장에서 터뜨린 것도 그 결과였다.

태현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터뜨렸을지를 생각해 보니, 가장 사람이 많고 잘 퍼질 만한 곳이 나온 것!

어떻게 보면 태현이 저지른 짓이 돌아온 셈이었지만, 태현은 그건 상상도 못 하고 고민에 잠겨 있었다.

‘보아 하니까 저주 전염력이 엄청나게 강한 것 같아. 케인도 나름 고렙인데 부딪히자마자 전염되어버렸지. 저주 피한 놈이 몇 명이나 있으려나?’

가볍게 회피에 성공한 태현은 알지 못했다.

태현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가 바로 전염되어버렸다는 것을!

‘저주 막을 수단 있는 사제나 마법사 아니면 위험한 거 아니야? 빠르게 퍼지겠는데.’

태현은 생각을 멈추고 케인에게 물었다.

“야, 저주 효과 뭐냐?”

“HP가 더럽게 빨리 떨어진다!”

“뭐? 그거밖에 없어?”

“그거라니 이 자식아! 네 피 깎이는 거 아니라고 막말이냐?!”

스킬과 포션을 사용하면서 HP를 올리려고 버둥거리던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태현은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케인과 달리 이다비는 평온하게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넌 왜 가만히 있어? 같이 저주 걸리지 않았나?”

“포션 값 아까워서 안 쓰고 있어요.”

“……정말 너답다.”

저번 퀘스트에서 알게 되었다.

이다비에게는 사망 페널티를 무시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래도 그렇지, 포션 아끼려고 회복도 안 하다니!

“그리고 굳이 회복 안 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건 무슨 소리지?”

“HP가 1에서 더 안 내려가요.”

“……!”

태현은 움찔했다.

대륙 퀘스트가 뜰 정도로 강력한 저주가,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도 아니라 HP 1에서 멈춘다고?

이건 뭔가 이상했다.

물론 전염성만으로도 정말 강력하기는 했지만, 이건 설마…….

“설마 이거, 계속 HP 1로 고정은 아니겠지?”

태현의 말에 케인이 고개를 홱 쳐들었다.

“뭐, 뭐?”

“그거 아니면 대륙 퀘스트 정도로 뜰 저주가 아닌데…….”

“말도 안 돼! 이거 안 풀리면 어쩌라고!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지. 일단 보자고. 다른 놈들도 많이 걸렸을 테니 효과야 곧 나오겠지.”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는 법이었다.

태현의 추측이 맞다는 게 증명되기까지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 * *

-죽었는데도 저주가 안 풀려요!!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이거 버그임!! 죽었다가 다시 들어왔는데도 HP가 1임! 어서 고쳐주셈!

-판온 일 이렇게 할 거냐? 버그 빨리 고쳐라!

죽었다가 다시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HP가 1인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 못 한 그들은 버그라고 생각하고 항의했지만…….

-버그 아닙니다.

“!?!?!?!?!?”

그랬다. 버그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이 저주의 강력함은 그 전염성과 지속성에 있었다.

보통 저주는 죽으면 풀리는데, 이 저주는 그렇지 않았다.

아예 해제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HP가 1이 될 때까지 쭉쭉 감소하는 저주!

아무리 힐을 해도, 포션을 마셔도 소용없었다.

그때 잠시 올라갈 뿐, 저주는 계속해서 HP를 1까지 내렸다.

그야말로 끔찍한 저주!

필드로 나가서 사냥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퀘스트를 깨려고 해도 대부분의 퀘스트를 깰 수 없었다.

HP가 1이면 마을 앞 토끼한테 맞아도 죽을 수 있는 상태!

상황을 파악한 플레이어들은 방향을 바꿨다.

동정심에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건 좀 해결을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판온 운영진은 냉정했다.

게임 내 벌어진 이벤트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게 어떤 이벤트라 할지라도!

-플레이어들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도 판온이고, 찾아내지 못하는 것도 판온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군요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다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반응할 리 없었다.

-장난하냐!!

-판온 운영진은 반성하라!

포기하지 않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판온 운영진의 저런 정책은 1에서부터 유명했던 것이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해.

-저거 터뜨린 가브리엘은 뭐하는 놈이야?

-몰라. 처음 들어보는 놈이야.

-김태현 제자라던데?

-진짜 제자 맞아? 같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누가 김태현한테 물어봐.

-내가 5골드 줄 테니까 제발 이 저주 좀 누가 풀어봐!

-일단 풀기 전까지는 난 숨어다녀야겠다. 대도시는 들어가지도 못하겠네.

-너희 조심해라. 지금 저주 걸린 놈들 중에서 남 옮기려고 하는 놈들 많다. 나도 당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런 놈들이 있어?

-네가 못 당해봐서 그래! 지금 반갑게 인사하는 놈들 가장 조심해라. 손뼉이라도 치면 그냥 끝이야!

저주가 터지고 나자, 판온의 모습은 색다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