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91화
그러나 귀족 NPC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태현이 간다고 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들!
고급 화술 스킬로도 따돌려지지 않자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얘네들 왜 이래?’
“조금 더 미식에,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합시다! 테란드 남작!”
“당신의 요리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소!”
“……!”
태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NPC들이 태현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너무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것!
거기에 감동한 귀족들이 어떻게든 더 이야기를 하려고 태현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미친…….’
설마 자기가 했던 일들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태현은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야!
그 순간 들어오는 귓속말!
-너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은신이라도 한 거야?
귓속말을 건 것은 스킬을 사용해 태현이 있는 광장 앞까지 도착한 케인이었다.
* * *
광장 앞까지 도착했는데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태현!
물론 케인에게 ‘김태현이라면 분명 귀족으로 변장해서 사이에 끼어 있겠지’라고 의심할 능력은 없었다.
“여기 맞는데? 왜 안 보이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변장한 거 아닐까요?”
“누구로 변장해? 저기 귀족 NPC들하고 요리사 플레이어들밖에 없잖아. 쟤네는 고렙 요리사라서 김태현이 변장할 수 없어. 저기가 어디라고.”
“혹시 저 귀족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렇죠?”
서로 마주 보고 웃는 케인과 이다비!
“귓속말 보내봐야겠다.”
“처음부터 그러시지 그랬어요.”
“이 자식이 별일 아닌 걸로 귓속말하면 구박한다고……!”
서러움이 가득 담긴 케인의 대답!
-너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은신이라도 한 거야?
-나 네 앞에 있다.
-?!
-손 들고 있는 귀족 안 보이냐?
-?!?!
케인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귀족 NPC들 사이에 손을 들고 있는 귀족이 있었던 것!
-네가 왜 거기에 있냐?!
-그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소란 좀 일으켜.
-???
-소란 일으키라고.
-뭔…… 소란?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빨리!
-어, 어, 어…….
케인은 당황했다.
소란을 일으키라니. 여기서?
광장 주변에는 이번 요리 축제를 구경하러 온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축제를 관리하는 여러 NPC가 우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레드존 길마, 케인이다!”
“!?”
이다비는 깜짝 놀라서 케인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레드존 길마, 케인이다!!”
“왜 그래요?”
“내가 레드존 길마, 케인이다!!!”
세 번째 외치자 이다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케인이 광장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자, 다른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저거 케인 아니야?”
“케인? 케인이 누구야?”
“너 케인도 모르냐? 그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 놈!”
“아, 그…….”
“김태현이 누군데?”
“한국 쪽 유명한 플레이어.”
“한국? 걔네들은 왜 그렇게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많아?”
워낙 플레이어들이 많다 보니 그중에는 태현을 모르는 해외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사이, 케인이 일으킨 소란에 병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란이냐!”
“내가! 케인이다!”
“앗, 저놈은! 현상금이 걸린 놈이다!”
“……기억하고 있었냐!”
케인은 투덜거리며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에랑스 왕국에서는 딱히 그렇게 한 것도 없는데!
잡히면 골드를 내고 풀려날 수 있지만, 케인은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저놈 잡아라!”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하하!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
순식간에 광장 주변에서는 크게 소란이 벌어졌다.
태현에게 말을 걸던 귀족들도 그 소란을 구경하려고 움직일 정도!
‘지금이다!’
태현은 재빨리 광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태현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만큼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등 뒤로 쏟아지는 주현영의 시선이 조금 따가웠지만, 태현은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
* * *
“이야, 잘했어. 케인. 역시 케인이야!”
“대단해요, 케인 씨!”
태현과 이다비는 케인에게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그러나 케인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왜 그런 곳에 변장해가지고 들어가 있는 거냐……!”
“하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네가 에랑스 왕국에서 현상금 걸린 것처럼.”
“그건 예전 일이라니까!”
“아까 병사들 보니까 안 잊고 있던데. 됐고, 이제 이 요리 축제에서 건질 건 다 건졌으니까 바로 이동하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지.”
“그러죠.”
“난 요리 못 먹었는데?!?!”
태현을 찾느라 요리를 제대로 먹지 못한 케인만 억울할 뿐!
“이다비! 너도 못 먹었잖아!”
“네? 전 먹을 거 다 먹었는데요?”
“……!”
케인과 달리, 이다비는 움직이면서도 계속 요리를 집어 먹었던 것이다.
케인과는 차원이 다른 집념!
“야 이 치사한……!”
* * *
“뭐?? 케인이 있었다고?”
“네. 광장 앞에서 난리를 쳤다고…….”
“……김태현이다!”
“??”
“김태현 그 자식이 뭔가 한 게 분명해!”
차오는 바닥을 쾅 내려찍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다른 길드원들에게는 ‘드디어 우리 길마님이 미쳤나 보다’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김태현이 왜 나와?’
‘몰라. 저번에는 길 가다가 넘어지셔놓고 김태현 탓하시던데.’
‘우리 길드가 망할 때가 된 거 아닐까?’
그러나 차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길드원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이 자식들…… 내 말을 못 믿는 거냐! 들어봐라! 케인 그놈이 최근에 김태현과 따로 다녔던 적이 있냐?”
“없었죠?”
“그러면 그 주변에 김태현이 있었을 거다. 김태현이 여기 왜 있었겠냐?”
“글쎄요……?”
“놈의 강력한 경쟁자인 나를 견제하려고 온 게 분명해! 내가 여기 왕궁 퀘스트를 깨고 있다는 정보를 얻고서!”
“…….”
차오를 쳐다보는 길드원들의 시선이 살짝 더 차가워졌다.
“저, 길마님. 김태현은 마계 퀘스트 깨고 있느라 바쁘지 않나요?”
“끝나고 온 거겠지!”
“그러니까 마계 퀘스트를 하다가 길마님 소식을 듣고 견제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저 귀족 NPC들을 매수한 거겠지!”
“…….”
더욱더 차가워지는 길드원들의 시선!
“아…… 네…… 그런 거겠죠. 길마님이 그런 거라면…….”
“이 자식들아! 내가 맞다니까! 아니면 그게 설명이 안 돼!”
“그래요. 길마님이 맞은 걸로 합시다.”
“야!!”
길드원들에게까지 신뢰를 받지 못한 차오는 분노했다.
그런 차오가 보여줄 반응은 하나였다.
대형 길드 연합의 길마들을 다시 소집!
-김태현 그 자식을 처리합시다!
-?
-그거 저번에 암살자들 보내지 않았나? 돈도 꽤 들었을 텐데.
-그놈들이 제대로 일 안 하고 있잖습니까!
길드 연합에게서 의뢰를 받은 플레이어 중 한 명, 잭.
잭은 길드 연합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최대한 끝까지 따라붙었는데 김태현이 타고 있던 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라고.
잭은 사실만 말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라고밖에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잭 같은 플레이어한테 신뢰고 뭐고 있을 리 없었으니 더더욱!
-애초에 그런 놈들을 믿은 게 잘못이라니까. 내가 말했을 텐데. 그런 놈들은 먹고 튈 놈들이 많다고.
-맞아. 우리는 말렸어.
‘이 자식들이…….’
차오는 이를 갈았다.
대형 길드 연합이라고 해도, 그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이들 중에서 차오나 쑤닝처럼 태현한테 당한 적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태현에게 이를 갈았다.
그렇지만 당한 적 없는 길드들은 태현에게 딱히 적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더 키우는 게 우선!
-그래서 김태현을 두고 보자고?! 연합의 뜻을 잊었나? 연합의 적은 먼저 처리해야지!
-아니, 그래서 김태현이 뭘 했는데?
-나도 축제 영상 봤는데 김태현은 보이지도 않더라.
‘크으윽……!’
차오는 주먹을 쥐었다. 분명 김태현이 한 게 맞았다. 그의 직감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설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김태현 같은 놈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어. 너도 그만 집착하고 네 일이나 하라고. 김태현처럼 혼자 다니는 플레이어는 한계가 있다니까.
-맞아. 맞아.
‘이 새끼들이 김태현한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차오는 설득을 포기했다.
지금은 여기 길마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때가 너무 안 좋았다.
지금 저들이 저러는 이유는…….
‘프리카 대륙 투기장 리그 때문이겠지!’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투기장 리그.
판온 1에서 한 번 실패했던 리그였지만,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를 거 같다고.
만약 그렇다면, 이 투기장 리그는 엄청난 기회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아 놓으면, 그 이후 프로 리그가 커질 경우 대박이 나는 것이다.
어떤 게임이든지 간에, 리그의 시작과 함께한 플레이어는 언제나 강한 인상을 남겼으니까.
‘한국 대회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어차피 커질 리그라면, 기다리기만 해도 리그가 더 생길 텐데!’
이번 투기장 리그 예선에 참가하는 팀들은 대부분 한국 팀이었다.
한국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회였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길드 연합의 길마들이 노리는 건 예선이 아니었다.
초대 팀!
수많은 팀이 몰려 있는 복잡한 예선을 뚫는 건 아무리 실력이 있는 팀이어도 힘들었다.
아무리 레벨이 똑같아지고 스탯이 똑같아져도, 판온의 스킬은 정말 이상하고 예측 불가능한 게 많았던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건 싸우지 않고 본선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초대팀이었다. 방송국 측에게서 ‘예선이 아닌 본선에 바로 참가해 주세요’ 하고 요청을 받는 것.
태현이나 이세연이 받은 게 바로 저거였다.
지금 길드 연합의 길마들은 투기장에 특화된 길드원들을 모아 투기장을 돌리고 있었다.
명성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들어올 초대!
그 초대를 받고 본선에 바로 진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태현을 견제하는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차오는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소원이 있다면, 제발 이 이기적인 놈들도 꼭 김태현한테 공평하게 당해줬으면 좋겠다는 것뿐!
* * *
“이 주변 같은데…….”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태현이 있는 곳은 에랑스 왕궁의 앞, 상점 거리였다.
찾는 것은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
마계에서 만난 퀘스트를 깨기 위해 온 것이었다.
‘가능하면 크고 강력한 폭탄 스킬이었으면 좋겠다.’
기계공학 비전 스킬이라면 다양하게 가능했지만, 태현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크고 강력한 폭탄!
물론 크고 강력한 폭탄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태현이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서.
-신의 예지.
태현은 길을 확인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이 스킬을 잘못 사용했다가 귀족을 사칭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신의 예지>는 좋은 스킬이었다.
‘여긴가?’
덜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평범해 보이는 상인이 보였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인 NPC!
아무리 봐도 마족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상인 NPC였다.
그러나 신의 예지는 여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태현은 잠깐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척척척-
태현은 상인 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마족 개XX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