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89화
“뭐 스킬 없어요?”
“어?”
“<아키서스의 노예>인데 태현 님 찾을 스킬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
케인은 이다비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랬다.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은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인 태현과 아주 관계가 깊은 직업.
당연히 스킬이 있었다.
‘왜 잊고 있었지?’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킬창을 확인했다. 왜 잊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인님, 어디 계십니까>
아키서스 교단의 최고 권력자의 위치를 찾아냅니다. 대가를 지불할 경우 바로 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 스킬 이름이 구려서 잊고 있었지.’
스킬 이름을 보니 떠오르는 이유!
정말 잊고 싶은 스킬 이름이었다.
* * *
케인과 이다비가 태현을 찾아서 헤매는 동안, 광장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불꽃 튀는 요리사들의 요리 대결!
이제 그 요리도 슬슬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저도 끝났습니다.”
“끝냈습니다!”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며 외쳤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가장 먼저 끝내는 것도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파즈, 차오, 주현영은 신중했다. 끝까지 요리에 집중했다.
‘시간 보너스 조금 받자고 먼저 끝내는 건 멍청한 짓이지.’
‘어차피 재료에 장치를 해놨어. 굳이 저런 보너스에 집착할 필요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저런 보너스는 머릿속에서 잊고.’
삼인 삼색.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방식은 비슷했다.
시간 보너스 조금 받자고 요리의 품질을 망치는 건 멍청한 짓!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었다.
“……다 됐다!”
“끝났다.”
“저도 다 됐어요.”
짝짝짝짝-
플레이어들이 요리를 끝내자, NPC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태현은 가만히 있다가 눈치를 보고 급히 손뼉을 쳤다.
“…….”
그걸 본 주현영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냈다. 태현은 왠지 모르게 그 시선이 아프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은 일!
태현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덜컥-
“……?”
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다른 NPC들의 시선이 태현에게 모였다.
“폐하, 외람된 말이지만 제가 먼저 시식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어째서인가, 테란드 남작?”
“첫 번째는 혹시 모를 독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여기 요리사들은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이지만, 혹시 폐하의 몸에 한 방울의 독이라도 흘러간다면…… 흑!”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대면 울먹이는 태현.
그러나 주현영은 똑똑히 보았다. 태현이 재빨리 눈 밑에 물방울을 바르는 것을!
“오오, 테란드 남작……! 그대가 그렇게 나를 생각해 줄 줄이야!”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변장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상대를 속여넘기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에랑스 국왕이 크게 감동합니다.]
에랑스 국왕은 매우 기뻐했다.
이쯤 되자 태현은 테란드 남작으로 위장해서 여기 들어온 게 아깝게 여겨졌다.
태현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국 좋은 건 테란드 남작뿐 아닌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테이블 위에 올라오기 전의 요리를 맛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리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접시 위에 올라오기 전의 요리도 맛봐야 합니다.”
“그런 건가?”
‘나도 모르지!’
태현은 그냥 그럴듯하게 지껄였을 뿐이었지만, 왕은 그걸 듣고 ‘오오 그런 건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하게 말하면 통한다!
태현은 고급 화술 스킬 레벨을 10까지 올려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면 어느 정도가 될지 궁금해졌다.
아무나 붙잡고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해도 통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수준!
“폐하! 아무리 그래도 테란드 남작에게만 그런 특혜를 주는 것은…….”
아까 태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NPC가(태현은 아직 그 귀족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손을 들고 항의했다.
태현이 혼자 주목을 받는 걸 보니 질투가 난 것이다.
그러나 국왕은 한 번 손을 흔드는 것으로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됐네. 내가 허락했네.”
“예…….”
“테란드 남작, 한번 맛을 보게나. 그대의 평이 궁금하군.”
“예! 폐하!”
태현은 씩씩하게 플레이어들을 향해 걸어갔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긴장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먼저…….”
태현은 천천히, 거드름을 피우며 플레이어 앞에 섰다.
여기까지 올라온 요리사 플레이어였기에 요리 실력은 확실했다.
주현영을 1등으로 만드는 것 말고도, 여기 요리를 먹어서 스탯 보너스를 챙긴다!
[레드 드래곤의 꼬리 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를 먹었습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15 증가합니다.]
[화염 내성이 영구적으로 5% 증가합니다.]
[…….]
[…….]
[드래곤의 활력 버프를 받습니다.]
[뛰어난 요리사의 요리를 맛보는 것으로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요리 스킬이 모자라 완전한 레시피를 얻지 못합니다.]
‘맛있다!’
씹는 순간 강하게 느껴지는 탄력. 적절하게 되어 있는 간. 거기에다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각각의 맛.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요리 재료도 엄청나게 좋은 걸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레드 드래곤의 꼬리 고기를 썼다고 하니…… 다른 재료도 어마어마했겠지.’
태현은 살짝 반성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차오, 파즈, 주현영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요리사 플레이어들도 각자 나름의 각오를 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
쉽게 물러서기 위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 나도 최선을 다해서…….’
“짜군.”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태현한테 ‘짜다’라는 말을 들은 요리사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요리 스킬이 초급일 때도 듣지 못했던 맛 평가!
‘맛있다’가 아니라 ‘짜다’라니!
“예?!?!”
“짜다고.”
물론 전혀 짜지 않았다. 태현은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
주현영을 1등으로 만들려면?
‘다른 모든 플레이어를 꺾어버리면 그만이지!’
악당 그 자체!
그리고 태현은 선동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짜다고 말하는 거 자체는 <고급 화술 스킬>로 넘어가질 테지만, 실제 맛은 먹으면 알게 될 테니까.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어야 했다.
샤르륵-
은근슬쩍 움직이는 태현의 손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사위원 역할을 맡은 귀족 NPC가 요리사들의 요리에 훼방을 놓을 거라고는!
태현은 플레이어들의 방심을 정확히 꿰뚫었다.
스테이크 요리 위로 떨어지는 아주 적은 양의 소금!
소량의 소금이라고 얕볼 게 아니었다. 태현이 갖고 있는 행운의 요리 스킬과, 그냥 요리 스킬의 효과.
거기에 가장 강력한…….
괴식 요리 스킬까지!
[괴식 요리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소량의 재료로 요리의 효과를 크게 뒤흔듭니다.]
[<레드 드래곤의 꼬리 고기를 이용한 스테이크>의 맛을 바꾸는 데 성공합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계속해서 괴식 요리를 만들 경우 괴식 요리사들의 관심을 살 수 있습니다.]
‘……?’
태현은 순간 당황했다. 괴식 요리사라니.
뭔가 친해지기 싫어지는 이름!
‘정말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태현은 알고 있었다. 이런 놈들은 언제나 만나기 싫어해도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을.
예를 들면, 펠마스나 타이럼 사냥꾼 같은 놈들!
* * *
“이노오오옴……!”
유 회장은 허리를 문지르며 신음 소리를 냈다.
아까 강하게 날아와 부딪힌 토끼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태현한테 보기 좋게 속았다는 것을!
‘이놈! 두고 보자!’
유 회장은 속은 놈이 바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걸로 화를 내면 스스로가 더 우스워질 뿐.
“어, 아저씨. 아직 거기 계세요?”
아까 유 회장을 도와준 플레이어들이 유 회장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유 회장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토, 토끼한테 당해가지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내용!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비웃지 않았다. 그들도 여기서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
“그 토끼 강하죠.”
“저희도 몇 번 죽었어요.”
“?!?!”
뭔 놈의 토끼가 저렇게 강하단 말인가. 유 회장은 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으며 혼란에 빠졌다.
“원래 초보자들끼리는 파티 맺으면서 다녀야 하는 게 기본인데…… 사실 타이럼 시는 이제 초보자들이 잘 안 보여요.”
“……?”
“소문이 퍼져서 다들 여기서 시작하는 걸 피하거든요.”
“…….”
“아저씨 같이 속아서 온…… 아니.”
“……속아서 온 거 맞으니 편하게 말해도 괜찮네.”
“네. 속아서 온 사람들 말고는 여기서 시작하는 초보자들이 없어서 파티 구하기가 좀 힘들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두 플레이어는 서로 마주 보았다.
“아저씨, 그냥 저희 파티에 들어오실래요?”
“맞아요. 그냥 레벨 10까지 찍어드릴 테니까 다른 마을 가셔도 괜찮아요.”
눈물겨운 우정!
같은 타이럼 시에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두 플레이어는 유 회장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유 회장은 더더욱 감동했다.
‘기특한 녀석들……!’
현실에서 만나면 기특한 젊은이로 바로 입사를 시켜줬을 정도의 감동!
물론 두 플레이어는 눈앞에 있는 중년 엘프가 회장님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아니야! 나는 여기를 떠나지 않겠어.”
“???”
“어떡하시려고요?”
“뒷산에 가서 낚시를 하겠네.”
“?????”
두 플레이어는 모르고 있었다.
유 회장도 고집 하면 한 고집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이럼 시에 떨어진 이상, 유 회장은 보기 좋게 타이럼 시에서 성공해서 태현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싶었다.
“아니, 아저씨. 그건 좀…….”
“맞아요. 다른 도시에 가시는 게 나을 거에요.”
“아니야! 난 여기서 하겠어.”
설득하려던 두 플레이어는 단호한 유 회장의 태도에 설득을 포기했다.
“그러면 호수까지만 모셔다드릴게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네요. 가능하면 그냥 다른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는데…….”
“……자네들……!”
유 회장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동했다. 최근에 이렇게까지 감동을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굳이 따지자면 유지수한테 생신 축하 편지를 받았을 때 정도?
“자네들 혹시 취직은 했나?”
“예? 그게 무슨?”
두 플레이어는 유 회장이 농담을 하는 줄 알고 흘려넘겼다.
퍽! 퍼퍼퍽!
달려들던 토끼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고, 셋은 곧바로 뒷산에 있는 호숫가로 향했다.
* * *
“쓰군.”
“!!!!”
“시군.”
“??!?!?!?”
처음 요리사 플레이어가 태현에게 망신을 당했을 때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저 멍청한 놈, 그런 실수를 하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 명 연속으로 혹평이 나오자, 그들도 슬슬 깨달았다.
플레이어가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지금 시식을 하고 있는 귀족 NPC가 이상하다는 것을!
‘저거 뭐 저렇게 까다로워?’
‘이번 심사에서 까다로운 역할을 맡은 NPC로군.’
당황스러웠지만,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바로 받아들였다.
여기까지 오는 퀘스트는 어렵고 고된 퀘스트들이었다. 저런 까다로운 귀족 NPC 하나 때문에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지. 저 귀족만 극복하면 돼.’
‘저 귀족의 혹평은 무시해도 된다. 다른 귀족들하고 왕의 혀를 만족시키면 그만이지.’
설마 태현이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요리 하나하나를 다 망치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그들!
그리고 태현은 차오 앞에 섰다.
이미 서로 몇 번 만난 적 있는 그들이었지만, 차오는 태현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볼 뿐!
‘내 요리를 맛봐라! 다른 놈들과 차원이 다를 테니!’
태현은 신중하게 요리를 한 스푼 떠서 입으로 옮겼다.
“쿹헕둝헕궭!”
그리고 요리를 옆으로 뱉으며 뒹굴뒹굴 구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