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88화
그래도 태현은 일단 설득하려고 들었다.
이런 기회를 날리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게다가 태현은 주현영에게 요리 스킬로 스승/제자 관계를 맺은 상태였다.
주현영이 여기서 우승이라도 한다면 태현한테도 요리 스킬 보너스가 들어오는 상황!
-아니, 저 차오란 놈을 보라니까? 딱 봐도 속에 구렁이 몇 마리는 있을 놈이잖아. 이번 요리장에서도 뭔가 수작을 부렸을 게 분명해. 저기 요리사 랭커가 있는데도 자신만만하잖아.
-그렇긴 하네요.
주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태현이 누군가한테 ‘속에 구렁이 몇 마리는 있을 놈’이라고 하는 게 좀 웃기긴 했다.
속에 구렁이 많이 담고 있는 걸로 따지면 기네스에 올라갈 사람이 바로 태현 아닌가!
그러나 주현영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태현을 배려해주는 착한 마음이었다.
-그렇지? 도와줄게?
-아뇨. 괜찮아요.
-…….
-상대방이 치사하게 나온다고 해서 저도 똑같이 굴고 싶지는 않거든요.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태현과는 정반대의 가치관!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돼! 결과가 있어야지!’
태현은 속으로 외쳤다. 귓속말을 하지 않은 건 이미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주현영 같은 사람은 한 번 고집을 세우면 꺾지 않았다.
-그래, 어쩔 수 없네. 최선을 다해. 응원할게.
-네. 감사합니다.
주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태현이 그녀의 고집을 들어준 것에 살짝 감동을 받은 것이다.
역시 사람의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
그러나 아니었다.
태현이 물러선 것은 주현영이 설득당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뭐 알아서 해야지.’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상관없다는 게 주현영의 가치관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결과를 만드는 게 태현의 가치관!
‘생각해 보니, 어차피 주현영이 도와줄 건 별로 없었어. 내버려 두면 알아서 요리 열심히 잘 할 테니까. 나머지는 내가 1등으로 만들면 된다.’
* * *
요리를 준비하면서, 주현영은 문득 궁금해졌다.
태현은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였을까?
‘여기서 방법이 있을까? 아무리 심사위원이라도 혼자인데.’
태현이 혼자 심사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먹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 평가가 틀릴 경우 태현만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큰 상황!
‘분명히 태현 씨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냈을 거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현영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추고 요리에 집중했다.
치사하고 더러운 수작은 실력으로 상대할 뿐!
정공법 그 자체!
다다다닥-
식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요리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작이다. 잘해라.
-예.
차오는 옆에 있는 요리사 플레이어 한 명과 눈빛을 교환했다.
‘멍청한 놈들. 내가 아무 준비를 안 했을 줄 알았나?’
다른 놈들이면 모를까, 랭커인 파즈까지 있는데 순수하게 실력으로 부딪힐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100% 확실한 방법을 쓰는 게 바로 차오였다.
차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꺼운 철제 냄비를 불 위에 놓고 스킬을 사용했다.
화르륵!
화려하게 파란색으로 피어오르는 불꽃!
요리용 불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요리사의 고급 스킬, <고급 불꽃 조종>이었다.
“……!”
그 모습에 다른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흔들리는 표정이었다.
겉모습도, 소리도, 차오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저놈, 수상한데.’
차오는 나름 계략에 자신이 있었지만, 태현과 비교한다면 보름달과 반딧불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차오가 어떤 계략을 생각하든지 간에, 이미 태현이 한번 해본 적이 있거나 한번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던 계략!
남 괴롭히는 것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 바로 태현이었다.
태현이 보기에, 요리사 플레이어 중에 수상한 놈이 한둘 있었다.
다른 요리사들이 차오의 스킬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을 때, 별로 놀란 것 같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여기서 놀라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겠지.’
차오야 유명한 플레이어니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건 좀 수상했다.
그리고 태현은 차오의 수법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풀어서 물량으로 압박하거나, 몰래 사람을 보내서 속임수를 쓰거나.’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았다.
원래 쓰던 수법을 쓰는 게 사람!
이 자리에 차오와 손을 잡은 놈이 있어도 놀랄 게 없었다.
스르륵-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요리를 잠깐 멈추더니, 은근슬쩍 발걸음을 옮겼다.
노리는 건 파즈의 솥!
다들 요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고 온 재료를 가지러 오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접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차오가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파즈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크크.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차오가 그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스킬 <시간 차 조리>!
재료를 넣고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게 만드는 스킬 중 하나였다.
평범한 요리 스킬이었지만, 이걸 남의 요리를 방해하는 데 쓴다면 매우 쓸모가 있었다.
당한 사람은 바로 눈치를 못 채고,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눈치를 챌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는 이미 늦은 거나 다름없었다.
“잠깐!”
“?!?!”
갑자기 NPC로 보이는(태현이었지만) 귀족이 입을 열자 모두 고개를 들었다.
“요리를 하는데 움직이다니! 이 자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가!”
“???”
태현한테 지적을 당한 차오의 부하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까다로운 귀족 NPC라고 해도 변명을 하면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여기까지 오기 위해 깬 퀘스트가 몇 개인데, 설마 트집을 잡겠는가?
“아, 아니. 두고 온 재료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갖고 오겠습니…….”
“어허!”
“?!”
“이 자리는 위대하신 폐하가 함께하신 신성한 자리다!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하는데 놓고 온 재료가 있다니! 정말 뛰어난 요리사라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듣고 싶지 않네! 자네는 준비가 덜 됐어! 여기서 요리를 하기 전에 마음가짐부터 다시 닦고 오게!”
재료 하나 놓고 왔다고(사실은 거짓말이지만) 미친 듯이 구박을 받은 요리사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그러나 더 기막힌 건, 다른 NPC들이 태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설득이 실패합니다. 명성이 하락합니다.]
[왕궁 내 평판이 하락합니다.]
‘저 귀족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데 저렇게 까다로워? 게다가 화술 스킬도 높은 거 같은데…….’
변명이 통하지도 않고 그냥 밟혀버렸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요리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보며 태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 명 제거.’
“…….”
그러자 따갑게 들어오는 시선!
주현영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데요…….
-알아. 알지. 나는 그냥 이 귀족이 원래 했을 법한 소리를 했을 뿐이야. 나도 위장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으읏. 알겠어요. 진짜 안 도와주셔도 되니까요!
‘미안하다. 나도 요리 스킬 좀 얻자.’
여기 온 김에 태현은 아주 제대로 본전을 뽑을 생각이었다.
* * *
‘멍청한 놈. 그것도 설득 못 하고 쫓겨나? 화술 스킬이 중급이라는 놈이…….’
차오는 부하를 욕했다.
요리 스킬에 화술 스킬까지 있어서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웬 이상한 귀족 놈에게 트집을 잡혀서 쫓겨나 버렸다.
“허허. 테란드 남작이 아주 적극적이군.”
“폐하 앞에서 저런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는 게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허허, 그 마음 고맙게 받지.”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에랑스 국왕과 이상한 트집을 잡은 귀족 NPC는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었다.
‘침착하자. 그놈 없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다른 준비만으로도 충분해.’
차오는 한 가지 준비를 더 해놓은 상태였다.
시작하기 전, 비싼 은신 포션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요리 재료에 접근한 것이다.
<상급 요리 재료 변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
요리 재료의 성질이나 맛을 바꾸는, 고급 요리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비전 스킬이었다.
차오는 그 스킬을 사용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재료의 성질을 하나씩 바꿔놓았다.
요리를 할 때는 몰라도 나중에 완성되면 뭔가 균형이 안 맞는 결과물이 나올 게 분명!
‘그걸 눈치챌 수는 없을 거다!’
* * *
-요리 미래 예지.
파즈는 요리하는 도중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결과물을 먼저 볼 수 있는 사기적인 요리 스킬 중 하나였다.
‘응? 왜 이렇게 되지?’
파즈는 결과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오지 않자, 넣으려고 했던 재료 중 하나를 재빨리 빼버렸다.
특수한 스킬은 차오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
그리고 그건 주현영도 마찬가지였다.
-요리사의 직감!
<행운의 요리> 스킬을 태현한테 배우고 나서 계속해서 사용한 덕분에 추가로 얻게 된 스킬.
어떤 재료가 좋고 어떤 재료가 나쁜지 확인이 가능한 감별 스킬이었다.
주현영은 방심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다고 했지만, 차오를 믿는 건 아니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면서 건너는 거야. 철저하게.’
태현이 믿고 물러섰는데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주현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재료 하나하나를 정성껏 검사했다.
물론 그녀가 그러는 동안, 태현은 어떻게 수작을 부릴지 고민했다.
‘설마 이 아이템을 진짜로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신 잡아먹는 괴물의 촉수 꼬리:
신 잡아먹는 괴물의 몸통 끝에서 나온 촉수 꼬리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요리를 만들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복용 시 무조건적으로 기절 상태에 빠짐.
신 잡아먹는 괴물의 점액질:
신 잡아먹는 괴물의 몸통에서 나온 점액질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요리를 만들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복용 시 무조건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짐.
태현은 요리를 하는 동안 아이템을 꺼내서 준비를 시작했다.
대회에서 한 명을 우승시키려면?
그 한 명을 꼭 밀어줄 필요는 없었다.
다른 모든 참가자를 떨어뜨려 버리면 되니까!
차오와 차원이 다른 사악함!
‘큭큭큭…… 어디 한번 열심히 요리해 봐라, 차오!’
이쯤 되면 누가 악당인지 구분하기 힘든 상황!
* * *
“야! 너 어디 갔어! 김태현이 너 찾았는데!”
“우물우물…… 네?”
“그만 먹고!”
“케인 씨도…… 꿀꺽. 빨리 드세요. 안 드시면…… 꿀꺽. 늦을걸요?”
이다비는 우물거리면서 계속해서 음식을 챙겨 넣었다. 케인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 손으로는 음식을 입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에 넣는 이다비의 신들린 컨트롤 솜씨를!
양손을 동시에 쓰는데도 한 번 멈추는 모습이 없었다.
“아, 알겠어. 일단 먹고. 그런데 김태현 못 봤냐?”
“케인 씨랑 같이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 자식이 날 팔았다고!”
“네? 팔았어요? 얼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팔았다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니라, 가격부터 묻는 이다비!
“귓속말 보내셨어요?”
“이 자식이 보냈는데 무시하잖아. 어디 간 거야?”
“그냥 저희도 기다리면서 더 먹는 게 어떨까요?”
“에이 씨. 사람 버려놓고 자기 혼자만 어디 간 거야?”
케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거대한 이벤트라면, 태현을 따라다니는 게 가장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어디로 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