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86화
-주인이여! 설마 그런 사악한 힘을 쓰려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태현이 얻은 스킬을 깨닫자 용용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마계에서 경험치를 뺏어 먹은 것 덕분에 싸늘해진 주인의 눈동자!
“하하. 물론이지.”
그러나 태현의 눈은 매우 진지했다.
기회만 되면 바로 쓰고 싶어 하는 눈동자!
물론 지금 바로 쓸 수는 없었다. 악명이 명성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페널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지간한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온갖 NPC를 상대할 때 들어오는 불이익까지.
아무리 태현이 백작 작위를 갖고 있어도 악명이 명성보다 확 높아지면 여러모로 불편해졌다.
‘그나마 편하게 쓸 수 있을 때는 내 영지에 있을 때인가?’
태현이 주인으로 있는 영지에서는 악명이 높아봤자 뭐라고 할 NPC가 없었다.
그래도 태현은 <마수 소환>은 급하게 쓰지 않기로 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찾아올 기회!
<사디크의 화염>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거기에 데메르 교단의 권능도 언젠가 얻을 수 있었다.
“다 끝났냐? 보상 언제까지 확인하는 거야?”
“다 끝났다. 그런데 이다비는 어디 갔어?”
아까까지 있던 이다비는 어디 가고, 케인만 지루한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밖에 재밌는 일 있다고 구경하러 갔는데.”
“넌 근데 왜 여기 있냐?”
“……이 자식이 기다려줘도…….”
내버려 두고 가면 괜히 구박할까 봐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건 싸늘한 반응!
“재밌는 일은 뭐야? 이벤트인가?”
“에랑스 왕국이니까 당연히 이벤트야 많겠지.”
플레이어들이 에랑스 왕국처럼 잘나가는 왕국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왕국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벤트!
그걸 구경하는 것도 재미였고, 그런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도 이득이었다.
“지금 악마 하나 만나러 가야 하는데…… 뭐, 이벤트 확인하고 가도 되겠지.”
태현도 날로 먹는 이벤트는 매우 좋아했다.
이제까지 그럴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잘츠 왕국의 타이럼 시에서 시작한 덕분에 제대로 된 이벤트 퀘스트는 경험도 못 해보고 토끼만 죽어라 잡다가 떠난 태현!
“좀 좋은 거였으면 좋겠는데. 공짜로 스탯도 올려주고.”
태현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둘은 멈칫했다.
“김태현! 김태현!”
“…….”
태현이 보상을 확인하는 동안 소문을 듣고 몰려온 플레이어들!
신전 정문 주변으로 뱅 둘러싸고 있는 게 그냥 나갈 수는 없어 보였다.
태현과 케인은 서로 마주 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
“흠, 다 방법이 있지.”
“오, 무슨 방법이…… 컥!”
태현은 케인을 앞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마르덴 후작의 가면을 사용해 얼굴을 바꾸고, 장비도 바꿔버린 다음 신전 뒷문으로 사라져 버렸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눈부신 변장술!
그러나 케인에게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야?!”
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냉정함!
정문에서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은 환호하며 케인을 위로 들어 올렸다.
누가 보면 콘서트에라도 온 것 같은 모습!
“케인! 케인! 케인! 케인!”
“야! 김태현! 이 XX! 이거 놔!”
“그런데 왜 코에 이상한 걸 달고 계세요?”
“…….”
* * *
떠들썩한 거리!
고렙이든 저렙이든 상관없이 플레이어들은 서로 모여서 거리에서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흥겨워지는 모습이었다.
‘무슨 이벤트지?’
“저기, 오늘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네? 오늘 에랑스 국왕이 요리사들 모아서 무료로 요리 뿌리잖아요. 모르고 계셨어요?”
“다른 왕국에 있다 와서…….”
“에랑스 왕국에서 시작하신 플레이어가 아니구나. 에랑스 왕국 좋아요. 초보자는 다른 왕국보다 여기로 귀환 잡고 키우는 게 훨씬 편할걸요?”
허름한 초보자용 장비를 입고 가면으로 얼굴까지 바꾼 태현은 누가 봐도 초보자였다.
태현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재빨리 움직였다.
그 뒤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야, 저기 케인 있다는데?”
“뭐? 그러면 김태현도 있나? 구경 가보자!”
‘미안하다, 케인.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 이런 이벤트는 제대로 즐길 수가 없거든.’
태현은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케인을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이벤트.
그러나 태현 같은 몇몇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이벤트는 전투였다.
가장 효율적으로 보상을 얻어내야 하는 전투!
‘요리사들 모아서 무료로 요리 뿌리는 거면 스탯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다.’
판온에서 요리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일단 현실에서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요리기도 했지만, 정말 좋은 요리를 먹을 경우 일정 시간 버프를 받거나 영구적으로 능력치가 오르는 것이다.
에랑스 국왕이 모은 요리사들이라면 실력은 보장되어 있을 테니, 가서 먹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
그러나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많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몇 개 되지 않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앞에 있는 걸 집어먹거나 손이 가는 걸 집어먹을 것이다.
그건 멍청한 짓!
최선의 효율을 뽑아내야 했다.
태현은 눈을 부릅뜨고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최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을까?
마계에서 싸울 때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
“백성들이여, 들으라! 짐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푸니 그대들은 감사히 받으라!”
“와! 국왕님 만세!”
“재수 없지만 멋있어!”
몇몇 겁 없는 플레이어들의 말은 워낙 시끄러웠기에 다행히 묻혔다.
왕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당장 기사들이 달려왔을 소리!
촤르륵-
넓은 대로에 거대한 탁자들이 깔리고, 그 위에 요리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랑스 왕국 병사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요리들을 옮겼다. 순식간에 푸짐하게 쌓이는 요리들!
네 가지 고기를 향신료로 구워낸 요리:
보기 드문 고기 네 가지를 골라서 향신료를 사용해 구워냈다. 어떤 고기인지는 모르는 게 좋을 것이다.
꽤 뛰어난 요리사가 만든 이 요리는 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복용 시 일시적으로 물리 방어력 상승.
복용 시 일시적으로 힘, 민첩 상승.
‘저건 필요 없고.’
일시적으로 버프가 걸리는 건 지금 필요 없었다. 태현은 빠르게 확인하며 움직였다.
우르르-
“맛있다! 진짜 맛있어!”
“밀지 마요! 그쪽만 먹습니까!”
온갖 플레이어들이 몰려와서 음식을 집어대는 탓에 탁자 주변은 전쟁터에 가까웠다.
아무리 병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플레이어들은 신나게 달려들었다.
우걱우걱!
‘젠장, 확인하기가 힘든데.’
-신의 예지!
태현은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게 바로 만능 스킬인 <신의 예지>!
지금 가장 필요한 곳은?!
태현은 스킬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 * *
“응?”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태현은 넓은 거리가 아닌 그 뒤의 뒷골목으로 들어와 있었다.
물론 뒷골목에는 요리를 차려 놓은 탁자 같은 게 없었다.
“???”
그러거나 말거나, 신의 예지 스킬은 계속해서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움직이라고 하니 움직이기야 하는데…….’
떨떠름한 마음으로 태현은 움직였다. 뒷골목으로 빠져서, 담을 넘고, 건물을 하나 뛰어넘어서…….
‘잠깐, 이거 위험하지 않나?!’
그제야 태현은 정신이 들었다.
스탯 보상에 눈이 멀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
하필 주변에 기사들부터 시작해서 병사들까지 우글거리는 상황인데!
에스파 왕국에서 현상수배당하고 있는데 에랑스 왕국에서까지 당할 수는 없었다.
‘아니, 괜찮겠지. 변장도 제대로 했고 화술 스킬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태현은 다시 움직였다.
스킬이 가리키는 곳은 건물의 문 안!
덜컥-
이제 남의 집 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여는 태현! 도적 직업 플레이어여도 이보다는 더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
“…….”
그리고 문 안쪽에는 거울을 보며 옷차림을 다듬던 귀족 남성 한 명이 있었다.
귀족은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넌 뭐하는 놈이냐! 경비…… 읍읍!”
일단 제압!
태현은 당황했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혼란스러운 머리와 별개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
“읍읍! 읍읍읍!”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저씨. 내 이름은 쑤닝이고 나중에 오스턴 왕국으로 만나러 오던가 말던가…….”
태현은 재빨리 귀족을 붙잡고 묶은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옷장이 적당해 보였다.
“읍읍읍!”
[에랑스 왕국의 귀족을 감금했습니다. 나중에 신분이 발각될 경우 현상수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아니, 이 스킬 고장 난 거 아니야?”
태현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상황은 끝난 게 아니었다. 투덜거린 게 끝나기도 전에, 반대쪽 문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
“남작님, 준비 다 되셨습니까? 모시러 왔습니다.”
“……?!”
태현은 기겁해서 다시 옷장을 열어젖혔다. 읍읍거리던 귀족은 태현을 보고 당황해했다.
“남작님?”
“잠깐만 기다려라!”
[고급 화술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시종을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악명이 오른다는 메시지창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태현은 재빨리 남작의 얼굴을 기억하고, 남작의 겉옷을 뺏었다.
[악명이 오릅…….]
“시꺼!”
재빨리 가면을 사용해 얼굴을 비슷하게 만들고, 겉옷을 위에 두르고, 태현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요리 효율적으로 많이 먹으려고 스킬 한 번 썼다가 이상한 곳으로 와버린 상황!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나중에 도망을 치더라도,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이 귀족으로 위장을 해야 했다.
“지금 나간다!”
“폐하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발각되면 꼭 쑤닝이라고 이름 말하고 도망가야지.’
* * *
각오는 각오고, 일단 태현은 최선을 다해 상황을 맞추려고 들었다.
“이봐, 내 이름이 뭐지?”
“예?”
“내 이름이 뭐냐고 물었네!”
고급 화술 스킬을 믿고 지르는 호통!
“예, 예? 테란드 남작님이십니다!”
“그래. 잊지 말라고.”
“???”
‘테란드 남작이었군.’
일단 이름 하나는 얻어낸 태현! 태현은 속으로 고민했다. 여기서 더 나가도 괜찮을까?
고급 화술 스킬 때문에 어지간한 거짓말은 다 통할 것 같긴 하지만…….
“잠깐, 저것 좀 먹고 가도 되나?”
“……네?”
태현이 길가에 차려진 요리들을 가리키자 시종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하는 법!
“왜, 내가 먹고 가면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특별한 비법 같은 겁니까?”
“……?”
“곧 시식을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다른 요리를 먼저 먹다니…… 남작님께서 그러고 싶으시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다만 서둘러 주십시오. 폐하께서는 기다리시는 걸 싫어하십니다.”
“……!”
그제야 태현은 이 테란드 남작이 어떤 이유로 그러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오늘 이 이벤트의 심사를 담당하는 귀족으로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필 옷을 다듬으며 준비하던 도중 태현을 만나가지고 봉변을 당한 테란드 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