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83화
어리둥절해하는 태현과 달리, 유지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껏 태현의 번호를 받고서 전화를 걸지 못한 것 때문에 속앓이만 한 그녀였다.
게다가 처음에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자 전화를 걸기가 점점 더 어색해진 것!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다니!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 * *
“이상하게 귀가 간지러운데…….”
유 회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에선가 그가 모르는 곳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어르신, 아까 태현이가 이야기한 걸 보니 판온을 하시기로 마음먹은 겁니까?”
“으음……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자네가 많이 도와줄 거지?”
“물론입니다. 연락만 하시죠. 저희 길드에 넣어드리겠습니다! 하하!”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유 회장은 김태산의 길드 이름이 <최강지존무쌍>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혼자서 하면 했지 절대 들어가지는 않았을 길드 이름!
“자네 아들놈한테는 별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
“하하. 이해합니다. 그놈이 사람 얄밉게 만드는 게 있죠.”
“그렇지!”
유 회장과 김태산은 태현이라는 주제로 뜻이 맞았다.
태현의 뒷담을 하는 거라면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는 둘!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더군.”
“그래요?”
“뭐…… 그릇도 크고, 씀씀이도 괜찮고, 눈도 좋고…… 속도 음흉할 정도로 깊고.”
유 회장의 칭찬을 들은 김태산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 사람, 좋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속마음을 들킨 김태산은 민망한 듯 웃었다. 태현의 칭찬을 들었는데 아버지로서 기분 나쁠 리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물을 보는 눈이 있는 친구더라고.”
“태현이가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유지수가 들었다면 ‘그런 사람이 성별도 못 알아봐요?!’라고 했을 소리!
* * *
“이상한 하루였어…….”
태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었던 하루!
옆에 있던 케인은 태현의 말을 듣고 물었다.
“응? 뭐라고 했냐?”
“별거 아니야. 일단 최대한 빨리 에랑스 왕국으로 가자고.”
“마차 탈까, 배 탈까?”
“배가 빠르긴 하겠는데 잠깐만…… 마차가 낫겠다.”
태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위험에 대한 본능!
저번에야 교단의 함선들이 옆에 있었으니 안심하고 배로 같이 나갔지만, 지금은 태현 혼자 배에 타는 것 아닌가.
바다 위로 갔다가 적을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
-주인이여.
“……?”
-내가 태우고 날면 되지 않나?
“아…….”
태현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용용이는 상처받은 반응을 보였다.
-실망이다. 주인이여.
“아니, 네가 강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당연히 머리에서 못 떠올리지!”
-내가 경험치를 뺏어가서 날 무시하는 거다, 흑흑.
“아니야!”
용용이를 달래는 태현!
이다비는 둘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손에 팝콘이라도 있다면 먹으면서 봤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실제로 팝콘을 먹고 있었다!
“……넌 옆에서 뭐 먹냐?”
“네? 아, 이동 전에 능력치 올리려고 팝콘 먹는데요?”
“음…….”
이다비는 딱히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뭔가 기분이 나쁜 음식 선정!
“일단 용용이 위에 올라타자! 빠르게 에랑스 왕국으로 날아가자고.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마계에서 용용이의 레벨이 올라간 덕분에 셋 다 타고서 에랑스 왕국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건 좋았다.
태현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용용이한테 물었다.
“너 근데 지금 레벨이 몇 정도냐?”
-……그렇게 높지는 않다.
용용이는 태현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태현은 그걸 못 깨닫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몇인데? 설마 200이라도 되냐?”
-…….
갑자기 입을 다무는 용용이!
“……넘는구나?”
-…….
“많이 넘는구나……?”
-주인이여!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 네 잘못이 아니지…… 물론 그 경험치는 내가 먹었어야 할 경험치지만…….”
마계에서 얻은 경험치를 독식+거기에 신수로서 악마들을 쓰러뜨린 것 때문에 추가 보너스까지!
용용이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힘을 회복한 상태였다.
현재 레벨이 대략 250대!
‘레벨 250이라니 무슨……’
그 경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에이, 됐다. 가자.”
용용이의 전투력은 곧 태현의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전투용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냥꾼처럼!
물론 좀 많이 강하고 많이 경험치를 잡아먹는 애완동물이었지만…….
* * *
“이렇게 날아가니 편하네. 와이번 같은 탈 것은 못 빌리나?”
“여기서는 못 빌리지. 아탈리 왕국에서는 빌릴 수 있을걸.”
말이 끄는 일반 마차는 개나 소나 다 빌릴 수 있었지만, 왕국에서 데리고 있는 와이번 기사들의 뒤에 타서 날아가는 건 왕국 퀘스트를 깨거나 공적치 포인트가 좀 있어야 했다.
대신 보장된 속도와 안정성!
괜히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탈것에 환장하는 게 아니었다.
“와이번 타러 갔다가 안 잡히면 다행이지.”
“…….”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에스파 왕국에서 한 짓이 있는데, 왕국의 와이번 탈 것을 빌리러 가는 건 너무 뻔뻔한 짓이었다.
“그나저나 용용이가 이렇게 날 수 있게 됐으니 따로 만들 필요는 없겠네.”
“응? 뭘?”
“나중에 시간 되면 기계공학 탈것 만들려고 했거든.”
“그런 게 있었나?”
“??”
태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너 판온 1 안 해봤나? 판온 1 보면 기계형 탈것 나오잖아. 날아다니는 증기돛단배 같은 거.”
“그게 기계공학 스킬이었냐?!?!”
케인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이제까지 그냥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만들었겠지~ 하고 넘겼던 게 사실은 기계공학 스킬이었던 것!
“이 자식은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아니, 그런 거 아는 건 대장장이들이나 알지, 나는 1에서도 전투 직업이었다고! 그런 거 아는 놈이 더 적어! 넌 용케 그런 걸 안다?”
케인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태현은 움찔했다.
그러나 케인은 태현의 그런 반응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더 중요한 말을 들었던 것이다.
“기계형 탈것 만들 수 있냐?! 만들어줘! 아니, 만들어주세요! 골드 낼 테니까!”
“용용이 있는데 뭐하러 만들어? 지금 폭탄 재료도 없는데. 폭탄을 더 만들어야지.”
“야! 폭탄 없어도 넌 충분히 강하잖아! 그런 것보다 탈것 만들자! 탈것!”
케인이 눈빛을 빛내며 태현한테 들러붙었다.
태현은 케인을 밀어냈지만, 케인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탈 것은 플레이어들의 로망!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말도 구하려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칙칙폭폭 대고 덜커덩덜커덩 소리를 내는 묵직한 기계형 탈것은 탈것의 최고봉이나 마찬가지였다.
만들려면 기계공학 스킬 높은 대장장이가 오랜 시간을 걸려 온갖 재료를 모아야 하는 희귀한 아이템.
어쩌다가 경매장에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날은 경매장이 폭발하는 날!
“안 돼, 인마. 할 거 많아. 재료 구하기도 힘들고.”
“그러고 보니 판온 1에서 그 증기기관 로켓 타고서 자폭한 사람 있었죠?”
“……!”
“!!!”
태현과 케인은 둘 다 움찔했다. 물론 둘의 이유는 서로 달랐다.
케인은 ‘아니, 그런 귀한 탈것을 타고 자폭을 하는 또라이가 있어? 미친놈 아니야?’ 하는 의미로 움찔했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미친놈이 태현이었으니까!
이다비는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케인이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봐도 태현이 판온 1의 김태현하고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았다.
“아까워 죽겠네! 그런 걸로 왜 자폭을 해! 나나 줄 것이지! 그런 놈은 분명 머리가 나쁜 놈이…… 아! 왜 때려!”
“네 뒤통수에 모기가 앉아 있었다.”
“이 공중에서 뭔 모기?!”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올라가는 태현의 손! 케인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하, 생각해 보니 있었네! 어쩐지 간지럽더라!”
그리고 둘의 대화를 본 이다비는 점점 확신했다.
‘아무리 봐도 판온 1의 김태현 같아!’
“그 판온 1에서 자폭한 놈도 다 이유가 있어서 자폭을 한 거야. 다른 길드 놈들도 설마 저런 귀한 탈것을 처박고 자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시렁대는 케인!
이다비는 태현을 보며 물었다.
“재료 필요하시면 저희한테 부탁하세요. 귀한 재료는 못 모으더라도 잡다한 재료는 순식간에 모을 수 있거든요.”
길드원 숫자와 남아도는 시간으로 승부하는 <파워 워리어>!
이다비의 말을 들은 케인은 무릎을 쳤다.
“그러면 되겠네! 역시 개똥도 쓸 곳이 있…….”
“뭐?”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케인은 조용히 찌그러졌다. 태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내 재료는 맨날 내가 다 모았는데. 다른 사람들 시키는 건 뭔가 좀 그렇잖아.”
“다른 사람들은 다 길드 지원을 받아가면서 움직여요. 쑤닝 길드 같은 곳만 해도 대단하잖아요.”
쑤닝 길드의 힘 중 하나는 쑤닝 길드와 친한 몇 개의 중국인 길드들이었다.
아예 아이템 재료만을 모으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작업장을 돌리는 길드가 따로 있을 정도!
아이템을 뺏기고 박살이 나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건 다 이런 길드들의 힘이었다.
쑤닝 길드만큼은 아니어도 다들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솔직히 지금 랭커들 중에서 혼자 힘으로 하나하나 다 하는 사람들은 태현 님 정도밖에 없지 않나요?”
“음…….”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판온 2를 하면서, 판온 1 때와는 많이 달라진 스스로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 고독한 늑대처럼 플레이하던 판온 1 때와 달리, 판온 2는 확실히 이것저것 다른 사람들과 많이 엮여서 움직이고 있었다.
길드를 안 만드는 고집도 이미 반쯤은 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계속 고집을 피울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판온 1보다 더 적이 많아진 상황에서?
“맞는 말이야. 그래,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말할게.”
“네!”
“고마워. 이다비. 좀 감동…… 잠깐.”
태현은 멈칫했다. 이다비는 태현과 질적으로 비슷한 인간이었다.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어줄 리 없는 인간!
“너 뭐 꿍꿍이 있냐?”
“헤헤…… 이번에 예고편 나오잖아요. 마계 관련 방송. 그거 방송 나오면 저희 길드 개인 방송에 한 번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솔직해서 좋다. 그러지 뭐.”
이다비가 해준 걸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물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김태현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대체 왜 자꾸 저런 방송에 나오는 거야’ 싶었지만!
쉬이익-
“거기 모험가들! 잠깐 멈춰라!”
“……!”
하늘이라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와이번을 탄 기사들이 날아왔다.
대화하는 사이 위아래로 붙은 와이번 기사들!
“헉. 들킨 건가?”
“아직 안 들켰어. 가만히 있어.”
태현은 케인을 입 다물게 하고 웃는 얼굴로 기사들을 맞이했다.
가능하면 하늘 위에서는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싸워봤자 손해밖에 없는 상황!
“무슨 일이십니까?”
“못 보던 탈것이라 확인하러 왔다. 어디로 가는 거지?”
“에랑스 왕국으로 갑니다.”
“수배된 얼굴들은 없는 것 같군.”
[에스파 왕국의 기사들을 속여넘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변장 스킬이 오릅니다.]
태현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속여 온 놈들과 비교한다면 여기 앞에 있는 기사들은 그저 풋내기에 불과할 뿐!
실제로 기사들은 별로 의심하지 않는 태도로 태현 일행을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