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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81화 (281/1,826)

§ 나는 될놈이다 281화

태현이 발을 멈춘 건 앞의 연못 때문이었다. 순간 호수로 착각할 정도로 커다란 인공 연못!

‘뭘 이런 걸 별장 안에 만들어놨냐?’

예쁘고 보기 좋긴 한데, 굳이 이걸 여기에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은 수준!

그리고 그 연못가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어르신, 여기서 낚시해도 됩니까?”

“……?”

유 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뒤에 웬 처음 보는 젊은 놈이 서 있었다.

험상궂고 기골이 장대한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낯익은 모습!

‘내가 이놈을 어디서 봤더라?’

유 회장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처음 본 놈인데 낯설지가 않았다.

게다가 여기는 초대받은 사람만 올 수 있는 곳.

“넌 내가 누군지 모르냐?”

“어…… 어르신 옷에 명찰이라도 달고 계시나요?”

“…….”

순간 유 회장은 태현이 그를 놀리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태현은 진심 같아 보였다.

옷에 명함이 있나 훑어보는 태현!

“……나는 여기서 낚시를 해도 상관이 없어.”

“왜요? 설마 들켜서 쫓겨나도 아쉬울 게 없어서? 몰래 들어오신 건 아니죠?”

‘이놈이……’

유 회장은 순간 울컥했지만 이성을 되찾았다. 상대는 새파랗게 어린놈.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됐다.

“여기 별장 주인하고 친하니까!”

“아, 그러셨군요. 몰래 들어오신 거면 몰래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이런 곳에 들어왔다가 잡히면 별로 좋은 꼴 못 보잖습니까.”

태현의 말을 듣자 유 회장의 마음이 살짝 풀렸다.

원래 잘나가는 놈일수록 약자한테 냉정하기 마련인데, 태현은 처음 본 노인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돈 많고 잘나가는 놈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성격!

“그런 걱정은 안 해줘도 돼.”

말하고 나니 유 회장은 뭔가 좀 기분이 묘했다.

재계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를 이렇게 ‘남의 별장에 몰래 들어온 노인’으로 취급하는 놈이라니.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런데 너는 어떻게 여기 들어왔냐?”

“아버지 친구 생신이셔서 같이 왔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고?”

“아. 안 물어봤네요.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긴 해요.”

“뭐가?”

“아버지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이런 별장 가지신 분 없는데?”

“새로 사귀었을 수도 있잖아?”

“에이, 저희 아버지 성격이 새로 친구 사귈 성격은 아니라서.”

가차 없는 디스!

유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걸로 상대가 누군지는 감이 왔다.

‘이놈 김태산이 아들이잖아!’

깨닫고 나니 왜 처음에 못 알아차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현은 김태산과 닮아 있었다.

험상궂고 큰 덩치에, 얼핏 보이는 배려심.

“……여기서 오늘 생일인 사람은 유성수 회장이야.”

자기가 자기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좀 민망하기는 했지만, 유 회장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렇게 말했다.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태현은 이 별장 주인의 정체(?)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까?

“유성수 회장이 누구시죠?”

“……유성그룹 회장도 모르냐!”

“아…… 유성그룹. 뉴스에서 봤어요.”

“그렇지! 유성그룹이 그렇게 기억 못 할 그룹이 아니지!”

“저번에 과징금 물은…….”

“그, 그건 회장 잘못이 아니라 그 밑의 사장 놈 잘못…….”

유 회장은 다시 한번 느꼈다. 이놈은 확실히 김태산의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장을 임명한 건 회장이니까 회장 잘못도 있는 거 아닌가?”

반박할 수 없는 아픈 사실!

사실로만 된 공격에 유 회장은 비틀거렸다.

“어쨌든 어르신이 그 누구냐, 유성수? 유성수 회장님하고 친하다는 건 잘 알겠네요.”

“왜, 왜?”

유 회장은 말을 더듬었다. 이놈이 뭔가 눈치를 챘나?

“유성그룹 편을 들고, 거기에다가 회장님 잘못 아니라고 하고, 여기 별장에도 몰래 들어온 게 아니라고 하고…… 당연한 거죠.”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산이가 아들 자랑할 만하군.’

허술해 보여도 눈이 꽤 좋은 놈이었다.

“그런데 어르신은 왜 여기 계십니까? 저기 밑으로 내려가서 친목ㅈ…… 아니,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어차피 지겹게 많이 본 놈들인데. 맨날 와서 똑같은 소리만 하는 놈들이야.”

그렇게 말하며 유 회장은 낚싯대를 기울였다.

밑의 건물이 아니라 여기 있는 이유는 낚시를 위해서였다.

지겹게 많이 본 사람들한테 ‘축하드립니다’, ‘오래 사셔야죠’, 같은 소리를 들어봤자 유 회장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늘 기대하고 있는 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의 축하와 새로 생긴 친구인 김태산 정도!

“똑같은 소리를 듣는 게 싫으시다니, 저 밑의 분들과 별로 안 친한가 봅니다?”

“……!”

태현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유 회장은 아픈 곳을 찔리는 기분이었다.

저 밑의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이야기는 하지만 정작 친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놈이…… 예리하긴 하군.’

털썩-

“……?”

태현은 유 회장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는 왜 앉나?”

“어르신 낚시하는 거 구경이나 하려고요.”

“오. 낚시를 좋아하나?”

“아뇨?”

“…….”

꿈틀거리는 유 회장의 눈썹!

“판온 1에서 재료를 구해야 해서 낚시만 주구장창 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낚시는 손이 안 가더라고요.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판온 1에서 태현은 대장장이가 쓸 만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그 노력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다른 길드들이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역으로 공격해서 아이템들을 뜯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태현이 직접 구해야 했던 게 대부분!

“판온? 아. 판타지 온라인인가…….”

“어르신도 아세요?”

“크흠. 이름은 들어봤네. 한번 해볼까, 하고 있기는 한데…….”

유지수도 하고, 김태산도 추천했기에 유 회장은 해볼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 나이에 애들이 하는 게임이라니’하는 망설임만 없었다면 벌써 잡았을 게임!

“해보세요. 재밌어요. 어르신 하는 낚시도 거기서는 더 재밌을걸요.”

“그 소리도 이미 들었어.”

“한 번 더 들으시죠.”

“…….”

“도움 필요하면 말하셔도 됩니다.”

“레벨이 높은가 보지?”

“……레벨은 안 높지만 잘합니다.”

자기가 말하고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태현이었다.

태현의 말을 오해했는지, 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게임에 너무 몰두하면 안 좋지. 적당히가 가장 좋은 거야.”

유 회장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태현은 오해를 풀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내 손녀도 요즘 너무 판온에 몰두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란 말이지.”

“어련히 알아서 할까요. 젊은 애들 노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면 미움받습니다.”

“이, 이놈이…….”

누가 김태산 아들 아니랄까 봐 김태산이 했던 소리를 똑같이 하고 있었다.

“어쨌든 한 번 해보고 도움 필요하면 귓속말이나 보내주시죠.”

“네 도움은 필요 없어!”

“하긴, 어르신도 친구 있을 테니. 맞다. 그 손녀한테 친추하실 거면 이름 좀 바꾸고 하세요.”

“……!”

속마음을 들킨 유 회장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놈이 그걸?

판온을 하게 되면 유지수한테 가서 ‘할아버지다, 껄껄 친구 추가를 받아주겠니’라고 말할 생각이었던 유 회장!

“가족한테 게임 아이디 들키는 거 좋아할 사람 없을걸요? 거절당하기 싫으시면 그냥 하시죠.”

“내, 내 손녀는 그럴 애가…….”

“뭐 그러면 믿고 해보시던가요.”

“크으윽!”

슬프게도 태현의 말에 확실하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요즘 유 회장의 손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슬슬 내려가지 그러냐? 너는 왜 여기 계속 있는 거야?”

태현한테 자꾸 아픈 곳을 찔리자 유 회장은 나이도 잊고 성질을 냈다.

분명 괜찮은 놈이긴 한데 계속 대화를 하다 보면 묘하게 말려드는 기분!

“어르신 낚시 구경하는 걸 보는 게 좋네요.”

“크흠. 크흠. 낚시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유 회장은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낚시 구경하는 걸 보는 게 좋다’는 말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유 회장이 애착을 갖고 있는 취미가 바로 낚시!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수면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유 회장의 즐거움이었다.

그런 모습을 좋다고 하니 살짝 뿌듯해진 유 회장이었다.

“낚시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르신이 하는 건 낚시 같지가 않아서요.”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하나도 못 잡고 계시잖습니까.”

빠직!

유 회장은 울컥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놈이 감히 내 낚시의 미학도 모르고 막말을 해?’

“너는 잡을 수 있을 거 같냐?”

“에이, 유치하게 왜 이러십니까. 못 잡을 수도 있죠, 어르신. 이해합니다. 잘 낚이는 날이 있으면 안 낚이는 날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할 말 다 해놓고 저렇게 유들거리게 나오는 모습이 더 얄미웠다.

유 회장은 태현에게 낚싯대를 내밀었다.

“해봐!”

“네? 제가 왜요? 낚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람 약을 올리는 데에는 타고난 태현! 그러나 유 회장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네가 이 연못에서 하나라도 잡는다면 네가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겠다. 어떠냐?”

“오, 내기라면 좀 흥미가 동하긴 하는데…….”

“대신 네가 못 잡으면 넌 내가 원하는 걸 하나 들어줘야 한다.”

“공평하네요. 그런데 어떤 방법을 쓰든 잡기만 하면 되죠?”

“그래.”

유 회장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내기를 건 것은 유 회장이 자신이 있어서였다.

‘어디 한번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 이놈아!’

유 회장이 연못에 드리우고 있던 낚싯대는 사실 미끼도, 바늘도 없는 반쪽짜리 낚싯대였다.

이걸로는 절대 물고기를 낚을 수 없었다.

유 회장이 이걸 드리우고 있던 건, 혼자서 조용히 수면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

그걸 ‘어르신은 아까부터 물고기를 하나도 못 잡으시네요’라고 폄하하다니!

‘골탕 좀 먹어봐라.’

유 회장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태현이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느끼고 있었다.

김태산의 아들답게 심지가 굳고 그릇이 큰 놈. 그게 유 회장이 느낀 태현이었다.

‘김태산이가 아들 교육은 제대로 시켰군.’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이런 실패에 더욱 분해할 가능성이 높았다.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실패는 견디지 못하는 법!

‘자, 어서 잡아보고 네 패배를 인정해봐라!’

유 회장은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태현은 낚싯대를 받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

‘설마 이 낚싯대의 비밀을 눈치챘나? 아니, 눈치를 채도 어쩔 수 없지.’

알아채기 전에 받아들인 놈이 바보였다. 유 회장도, 태현도, 그건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항의하기 위해서 일어선 게 아니었다.

툭-

“???”

태현은 낚싯대를 드리우지도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첨벙첨벙 연못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촤악!

“?!?!?!?!”

맨손으로 물고기 하나를 잽싸게 잡아 올리는 태현!

“야!!”

유 회장은 오랜만에 냉정이 깨지는 경험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손에 들고서 걸어나왔다.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는 놈이 어디 있냐!”

“제가 그래서 분명 물어봤지 않습니까. 어떤 방법을 쓰든 잡기만 하면 되냐고.”

“……!”

유 회장은 깨달았다.

태현은 뒤늦게 낚싯대의 비밀을 깨달은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 알고 있었냐?”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죠. 설마 제가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내기도 그래서 하신 거고?”

유 회장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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