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78화
교단 관련 NPC들도 설득을 끝냈고, 이제 룰루랄라 도망만 치면 되는데…….
‘역시 불안해.’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케인과 용용이!
이제까지 필드나 던전의 몬스터들이 케인과 용용이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건 즉, 태현은 정체를 숨길 수 있어도 이 둘은 숨기기 힘들다는 것.
악마들의 마을에 들어갈 때야 숨을 곳이 많아서 둘을 따로 빼돌릴 수 있었지만, 성의 차원문은 이야기가 달랐다.
거의 마주칠 확률이 100%!
‘안 들키길 빌고, 들키더라도 타격이 없도록 제일 마지막에 같이 나가야겠군.’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 결정했다.
* * *
일행은 천천히, 눈치를 살피며 성 앞의 다리를 건넜다.
밑에서 끓어오르는 용암들과 성 주변에 날아다니는 악마들. 충분히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다드가 약속을 바꿔서 습격해오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일행은 다리를 건너서 성안으로 들어가, 차원문 앞에 섰다.
푸른색 빛을 번쩍거리며 뿜어내는 차원문. 그 주변에는 고위 마법사 악마들이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라, 인간들.”
“약속을 잊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주인님께서는 거짓말을 싫어하신다.”
일행은 차례대로 차원문을 향해 걸어갔다.
한 명, 한 명…….
태현은 가장 뒤에서 입맛을 다셨다.
‘상대가 둔하면 좋겠지만…… 눈치챌 경우 그냥 빠르게 달린다.’
악마라고 모두 다 아키서스의 기운을 느끼고 덤비는 건 아니었다. 눈치챌 능력이 있는 놈은 눈치를 채고, 그렇지 못한 놈은 그냥 넘어갔다.
저 고위 마법사 악마들은?
“음? 잠깐.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젠장. 모두 달려!
태현의 귓속말에 남은 일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태현의 등뒤에 몸을 최대한 줄이고 붙어 있던 용용이가 속삭였다.
-주인이여! 공격해야 하나?
-공격은 무슨! 그냥 튀어!
“뭐, 뭐냐! 왜 뛰는 거냐! 멈추라고 했을 텐데! 인간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가야 할 것 같답니다!”
“급한 일이 생겼다면 어쩔 수 없…… 그게 말이 되냐!”
[설득에 실패합니다.]
아무리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법!
악마들은 지팡이를 꺼내더니 휘두르기 시작했다.
-진홍색 피의 벽!
그러자 앞에 솟구치는 황동색 벽들! 다행히 태현과 케인, 용용이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일단 발을 묶은 다음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달려, 달려!
덕분에 앞에 있던 일행들은 천금같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교단의 NPC들은 전부 다 빠져나갔고,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도 후다닥 차원문을 통해 달려 나갔다.
-신의 예지, 그림자 잠수, 그림자 도약, 완전한 도주!
태현은 도주용 스킬들을 풀가동시켰다.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있는 패는 모조리 내놓아야 살 수 있는 상황!
“이놈이 감히 어디서!”
악마 마법사가 분노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짙은 붉은 색 화염의 창들이 태현을 향해 날아왔다.
-지옥의 화염창!
-지옥의 화염창!
태현은 이를 악물었다.
악마들은 무조건 명중되는 저주가 아니라, 데미지가 높은 대신 피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했다.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저, 저놈…….”
“저놈 아키서스다! 저놈 아키서스다!!”
“뭐?! 아키서스?!”
“성의 악마들을 불러라! 너는 주인님께 가서 알려라!”
방금까지 조용했던, 차원문이 있던 방 안은 미친 듯이 시끄러워졌다.
악마들은 격노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아키서스를 직접 씹어 먹겠다!”
“아키서스! 죽일 놈의 아키서스!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피부로 느껴질 것 같은 증오!
태현을 따라 달리던 케인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대체 뭘 했는데 저러는 거냐? 너 혹시 설마…….”
“내가 친 거 아니야, 임마!”
케인이 태현에게 ‘너 설마 악마들도 등쳐먹었냐’라는 눈빛을 보내자, 태현은 억울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등쳐먹기는 했지만 저 악마들이 화내고 있는 이유는 태현 때문이 아니었던 것!
콰콰콰콰쾅!
화르륵!
“차원문에 못 들어가게 막아라!”
순식간에 주변에 이글거리는 화염 덩어리들이 생겨나더니 미친듯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성 자체를 날려버릴 것 같은 강력한 위력!
-아키서스의 축복!
태현과 케인, 용용이에게 강력한 행운이 공유되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으아아악!”
케인이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한 대 맞으면 치명상일 것 같은 마법들이 뒤에서 우르르 날아오는데, 멀쩡하게 있기는 힘들었다.
“점프!”
케인은 차원문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남은 건 태현과 용용이. 태현은 작아진 용용이를 잡고 집어 던졌다.
-주인이여?!
-네가 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차원문 주변에 화염이 작렬하자, 차원문이 요란하게 일렁였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지옥의 화염에 직격당했습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신성 권능으로 피해가 감소합니다.]
[화상 상태에 빠집니다.]
일격에 HP가 20% 밑으로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데미지였다.
‘젠장, 명중률도 어마어마하군!’
차원문까지는 한 걸음.
태현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들이 분노로 이성을 잃고 그나마 회피 가능한 마법으로 덤벼서 다행이었다.
만약 회피 불가능한 저주로 공격해왔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워낙 고렙에 숫자도 많다 보니 데미지 약한 저주도 맞다 보면 위험!
차원문까지 가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서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노오오오오옴-!”
차원문에 발을 넣으려는 순간, 저 뒤에서 아다드의 고함이 들렸다.
“감히 나를 속이다니! 네가 믿고 있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은 모조리 저주를 받을 지어다! 도망쳤다고 안심하지 마라, 필멸자! 네놈의 카달타 성으로 내려가 산산조각을 내줄 터이니!”
“……얼마든지 와라!”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도발했다. 생각해보니 카달타 성으로 오든 말든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차원문으로 들어갑니다. 마계에서 대륙으로 이동합니다.]
[마계에서 탈출했습니다. 명성을 얻습니다.]
[타이란, 야타, 파이토스, 데메르 교단의 NPC들을 성공적으로 마계에서 대륙으로 귀환시켰습니다. 공적치 포인트를 받습니다.]
[각 교단과의 관계도가 올라갑니다.]
[…….]
“헉, 헉헉…….”
어지럽게 뜨는 메시지창을 다 확인하지도 못한 채, 태현은 주변을 확인했다.
어디로 날아왔는지가 중요했다. 대륙의 에스파 왕국으로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차원문에 들어올 때 마법이 엄청나게 날아왔다.
다른 곳으로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케인하고 용용이, 이다비는 옆에서 같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떨어졌나?’
“여기는…….”
도시 근처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근처에 커다란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도시가 뭔가 많이 부서져 있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그러게. 나도 본 거 같다.”
태현과 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시를 쳐다보았다. 저 도시는 분명, 어디서 많이 본…….
다그닥, 다그닥-
“……?”
옆에서 마차를 탄 플레이어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길가에 누워 있는 태현 일행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판온 2에서 저 정도는 이상한 축에 들지도 못했으니까.
“아발랍 시에 가면 정말 퀘스트 많은 거 맞아?”
“맞다니까. 지금 한참 수리 중이라서 제작 직업 퀘스트도 많이 나오고, 이 주변을 점령한 악마들 토벌하는 퀘스트도 꽤 나와서 전투 직업도 많이 오고. 게다가 에스파 왕국의 남쪽에서 항구 타면 바로 프리카 대륙 항구잖아.”
“구경 가려고?”
“투기장 구경만큼 재밌는 게 어디 있다고 그래. 방송으로도 나오겠지만 솔직히 가서 직접 보는 게 낫지. 이거 홍보한다고 항구에서 배 타는 것도 무료로 해준다는데.”
마차에 탄 플레이어들은 멀어져갔다. 태현은 벌떡 일어섰다.
투기장이고 뭐고 방송 관련된 이야기가 뭔지 궁금했지만, 지금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여기 아발랍 시라는데?”
“……우리 위험하지 않냐?”
그랬다.
에스파 왕국에서 잡으라는 악마는 안 잡고 악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깽판이란 깽판은 다 친 태현!
아무리 아탈리 왕국에서 백작 작위를 갖고 있고,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고 해도 수습 가능한 범위는 넘은 지 오래였다.
무조건 수배자!
“…….”
태현과 케인, 이다비는 서로 시선을 마주 보았다.
* * *
정수혁은 하품을 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슬슬 이 우르크 지역에서도 하품을 하며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정수혁이었다.
“다른 부족들하고는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우르크 지역에서 적응을 하고, 관련 퀘스트를 깨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지만, 정수혁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남은 부족들을 설득하는 일!
‘데메르 교단 NPC들은 다시 안 오나?’
저번에 왔었던 최하준, 최하영 두 플레이어는 데메르 교단이 빠져나갈 때 같이 돌아간 상태였다.
혹시나 우르크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 저번에 사라진 걸 사과하고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우우웅-
“??”
정수혁은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우르크 지역에서는 별 이상한 스킬을 쓰는 몬스터들도 있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근데 이런 소리를 내는 놈들은 없었는데?’
“으어억!”
“?!?!”
허공에서 갑자기,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과 각 교단 NPC들이었다.
* * *
“당황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난 괜찮아. 변장에다가 화술 스킬 있으니까.”
“……너만 괜찮으면 다냐?”
“거 참 까칠하기는. 일단 너도 변장은 시켜줄게. 악마들도 속였는데 경비병들은 쉽지.”
[변장 스킬을 사용합니다. 고급 화술 스킬로 인해 보너스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으로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태현은 갖고 있는 아이템들을 즉석에서 뚝딱뚝딱 개조해 케인의 겉모습을 가렸다.
묵직한 중갑들만 가려도 확 이미지가 달라졌다.
“잠깐, 생각해 보니 얼굴이 이렇게 변했는데 다들 못 알아보지 않나?”
“…….”
-그럴 것 같다. 주인이여.
“뭐야. 괜히 걱정했네. 잘됐네, 케인. 안 그래?”
“다행은 무슨 다행이야 이 자식아!”
케인은 뭔가 울컥해서 외쳤다. 다행은 다행인데 납득할 수 없는 그런 마음!
케인이 옆에서 펄쩍 뛰거나 말거나, 태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지금 해야 할 게…… 데메르 교단의 대신전으로 가서 권능 받고, 그 주변에 있는 다른 교단 가서 공적치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거 확인하고. 아, 그 전에 <권능 포식>도 써야 하는데. 사망 페널티는 이제 대륙 왔으니까 괜찮겠지. 여기서 갑자기 죽을 위험에 처할 리는 없을 거고.’
“야. 근데 아까 지나간 놈들이 한 소리는 뭐지?”
“뭐가?”
“투기장 구경 간다고, 방송에서도 한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나? 그거 설마 그건가? 이번에 대대적으로 대회 연다고 기사 올라왔었는데.”
케인의 말에 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기장 대회? 그거 판온 1에서도 있었는데 별로 흥행 못 하지 않았나?”
“아냐, 이번에는 룰을 좀 제대로 만들었다나봐. 레벨 100으로 스탯도 다 고정시키고, 참가자들 아이템들도 다 기본 아이템으로 맞추고 한다던데.”
“재밌겠네.”
“……흥미 없으면 그냥 흥미 없다고 말해!”
“아니…… 투기장 좋아하는데, 지금 굳이 거기 가서 참가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런 식이면 더 위험하고.’
전 세계 규모로 열리는 대회에, 밸런스가 완전히 맞춰진 투기장에 참가한다면?
태현은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판온 1 김태현 설이 다시 떠오르잖아!’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